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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의 !

이 글은 갈 곳 없는 망상을 때려박은 동방 2차 창작 소설입니다. 따라서 때때로 역겹습니다. 읽는걸 권하지 않습니다.

이 글에는 2차 창작에서의 터부(개인적 관점)인 오리지널 캐릭터, 줄여서 오리캐가 나옵니다. 우욱씹 소리가 절로 나올것으로 예상됩니다. 한번 더 읽는걸 권하지 않습니다. 욕설이 나옵니다. 좀 많이 나올 예정입니다. 또 한번 읽는걸 권하지 않습니다.

뒤로가기와 창 닫기 버튼은 항상 여러분의 곁에 있습니다. 잊지 마십시오.

 

 

 

 

23년 끝나기 전에는 업로드 하려고 했는데....

 

오늘이 23년 12월 38일인걸로 합시다.

 

 

 

 

 

 

 

 

 

 

 

 

 

 

 

 

 

 

 

 

홍무이변 후 약 1달 후. 환상향은 완전히 여름 날씨가 되어 있었다.

 

"후우..."

 

하늘을 올려다보니, 구름 한점 없이 깔끔하다. 다이렉트로 꽂히는 햇빛에 눈이 부시다. 강한 햇빛 때문(아마도)에 나는 여름의 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진짜 여름이라는 느낌이구만. 실제로 온도도 제법 높겠지만, 부정적 피드백이 발생하는 자극은 대부분 차단되고 있어서 내 몸은 굉장히 쾌적한 상태다. 가끔씩 덥다거나 춥다거나 하는 감각이 그리워서 차단을 끄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솔직히 1~2분 안가서 다시 키곤 한다. 그리움이라는건 생각보다 빨리 사라지더라... 에어컨 켰다가 추워서 끄게 되지만, 잠깐 있다 다시 키게 되는 감각이랑 비슷한 느낌이다.

날씨가 이런지라, 코이시는 지상으로 올라오지 않았다. 밤에는 곧잘 돌아다니러 나가긴 하던데... 그리고 아이리는 코이시의 장난감으로써 붙잡혀, 합류하지 못했다. 참고로 붙잡은 아이리를 가지고 뭘하나 싶었는데, 옷 갈아입히는 인형 대용으로 쓰이고 있었다. 건전 그 자체.

 

"옷이라."

 

생각해보면 그때 파츄리한테 받은 집사복, 전혀 도움이 안됐지. 곧바로 플랑이랑 조우해버렸으니까... 상대가 나빴던 걸로.그리고 몸이 개조 된 이후로, 생각한대로 옷의 형태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게 불과 며칠 전. 체형이 여성형인지라 치마도 입어봤지만, 남자일때의 감각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 묘하게 마음이 안정되지 않아, 흰색 와이셔츠에 검은 정장 바지라는 재미 없는 세트를 입고 있다. 원래는 긴팔 와이셔츠였지만, 보는 사람이 덥다는 평이 있어서(주로 코이시) 반팔로 바꿨다.

생각해보면 환상향의 여자애들은 다들 복장이 특이하단 말이지. 거기에 비해서 나는 몰개성하다고 해야하나... 아니, 오히려 모두들 특이하게 입고 있으니 나도 개성있게 보일지도 모르겠는걸.

 

뭐, 그건 어쨌든. 오늘의 목적지는 여기.

 

"향림당..."

 

반인반요, 모리치카 린노스케라는 남자가 경영하는 골동품 상점. 환상향에 흘러들어오는 바깥 세계의 물건을 취급하고 있는 유일한 상점이다. 마법의 숲 근처에 위치하고 있는지라, 오는 길이 위험해 손님 자체는 적은 편이라고 들었다.

바깥 세계에서 온 입장에서 어떤 물건을 취급하고 있는지 개인적으로 흥미가 있었는데, 마침 생각난 김에 찾아왔다. 코이시 말로는 '요샌 밤엔 영업 안하는거 같더라' 라고 하길래, 일부러 이 더운 낮에 찾아온 것. 물론 나는 더위 안타지만.

 

- 딸랑~

 

그때, 향림당의 문이 열리더니 그 안에서 살짝 마른 체형의 은발의 남자가 나오더니, 문패를 뒤집어 놓는다. CLOSED. 뭐여 시벌. 오자마자 문 앞에서 영업 종료한거야?

 

"엇. 손님인가. 미안하지만 오늘은 돌아가 주겠어? 오늘은 영업을 좀 빨리 끝내야 해서 말야."

"허어... 음?"

 

문득, 남자의 손에 들려 있는 것에 눈이 간다. 도시락...? 아니, 저건 반찬통이다. 게다가 온기나 냄새를 보아 방금 만든 것.  내용물은 장아찌나 조림 같은건가. 제법 오래가는 반찬들인걸. 그나저나, 감각이 너무 좋아지니 별 상관없는 것까지 보이게 되는구만.

 

"조금 서두르고 있어서 말이지. 실례할께."

"어? 어어..."

 

그렇게 말하고는, 숲속으로 사라져버리는 남자, 모리치카 린노스케. 하지만 이상한걸. 레이무한테 듣기로는 린노스케는 향림당에서 살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럼 저 반찬은 뭐지? 피크닉을 가는 것 같아 보이진 않는데. 애시당초 저 반찬 라인업으로 피크닉도 좀 이상하지 않나.

뭔가 수상하군. 신경 쓰이니 조금만 미행해볼까.

 

"후우...."

 

어릴떄부터 남의 시선에 민감했던 탓인지, 다른 사람의 시선을 피하는건 잘한다. 즉, 기척을 억누르고 주위 사람에게 눈치채지 못하게 움직이는건 특기다 이 말씀. 거기에 지금은 마계신에 의해 몸이 개조된 상태. 이론상 지저 마을의 요괴들 절반 이상은 아무도 모르게 암살할 자신이 있다. 안할거지만.

숲에 들어선 린노스케는 짐승들이 만들어낸 길을 따라 숲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점점 의도를 알 수가 없구만. 반찬을 들고 숲속으로 간다고? 어디 제단 같은 곳에 공양 같은거라도 하나? 아니, 근데 보통 밥반찬을 공양하기도 하나...? 아니, 그런 것 치곤 양이 많다. 저건 마치... 자취하는 애한테 반찬 챙겨주는 느낌인데...?

 

얼마나 갔을까. 어느정도 넓은 공터가 나타났다. 아니, 정확하겐 공터는 아니지. 저기에 집이 하나 지어져 있으니까. 체계적으로 지어진 집은 아니라는 느낌이 확 들긴 하지만, 묘한 정감이 가는 형태의 집이었다. 중세의 마녀의 집을 어설프게 따라한 것 같다고 해야할까?

 

- 똑똑!

"이봐. 마리사. 안에 있지?"

"허어."

 

과연, 마리사의 집이었구만. 그러면 집의 외형도 어느정도 설명이 되는군. 근데, 린노스케가 마리사한테 반찬을...? 마리사는 생활력이 있다는 인상이 있었는데, 딱히 그렇지도 않았던걸까?

 

"...오늘도, 인가. 하아."

 

대답이 돌아오지 않은게 하루이틀 일은 아닌듯, 한숨을 푹 쉰 린노스케는 체념하듯 문 앞에 반찬통을 두고 집에서 멀어진다. 뭔가 좀 위화감이 드는걸. 린노스케와 마리사의 관계를 생각하면, 린노스케의 행동은 어느정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마리사의 반응이 없는건 이상한걸. 열감지 시점으로 확인해봐도, 마리사가 집 안에 있는건 확실하다. 듣고 있는데도 무시하고 있는것. 린노스케와 싸운걸까? 아니, 아까전의 린노스케의 표정을 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 끼이익...

 

린노스케가 집에서 멀어지고 얼마 안가, 열리는 마리사네 집의 문. 그리고 그 문 너머에서 나타난건...거의 반쯤 폐인이 된 상태의 마리사였다. 눈 밑은 퀭하고, 머리는 관리도 안한듯 퍼석퍼석. 옷도 제대로 안입고 있어서 거의 반라 수준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눈빛은 아직 날카롭게 서 있었다. 저거, 나 대학교때 졸업작품할때 저런 느낌이었던걸로 기억하는데. 뭔가 연구 같은걸 하고 있는걸까?

 

"...미안, 코우린. 잘 먹을께."

 

나지막히 중얼거리더니, 반찬통을 들고 들어가며 문을 닫는 마리사. 무슨 아직 양심이 남아 있는 히키코모리 여고생 같은 느낌이네. 음... 좀 신경 쓰이는 광경을 보고 말았네. 그러고보면 마리사를 내 눈으로 직접 본건 이번이 두번째다. 첫 만남은 홍마관에서. 쟤때문에 내가 한번 죽었다고 생각하니 살의가 일만도 하지만, 의외로 아무 생각도 안든다. 지금의 상태에 만족해서 그런걸까? 그런 것도 있겠지만... 아마, 내 마음속에서도 '그건 뭐 사고 비슷한거였으니까' 라고 매듭지어져 있어서 그런 것일테지....하기사, 아무리 그래도 책 한번 펼쳤다고 죽는건 너무하긴 했어. 아무리 펌블이 난다고 해도 보통은 그렇겐 안돌아간다고.

아무튼.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들어볼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는걸. 방금 전에 떠난 모리치카 린노스케를 만나서 이야기를 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만, 저쪽은 나를 모른다. 괜히 수상한 사람 취급 받아서 경계당하면 곤란하다. 그렇다면... 음...

좀 간접적으로 조사를 해볼까.

 

 

 

 

 

 

 

 

 

 

 

 

 

 

 

 

 

 

 

 

 

 

홍마관, 마법도서관.

사건으로부터 1달이 지났지만, 아직 그 여파는 도서관 여기저기에 남아 있다. 파괴된 책장은 다시 만들어야했고, 책의 파손 상태 확인이나 재배열 하는 일은 하루이틀로 끝날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이 도서관에서 일을 하는 인원은 굉장히 적다. 그런 탓에, 아직 정리되지 않은 책이나 부서진 책장등은 아직 일부 남아 있는 상태이다. 뭐, 물론 이전에 비해선 훨씬 나아진 상태이지만.

 

"뭐야 저거?"

 

근데, 오늘은 뭔가 상황이 다르다. 소악마 외에도, 뭔가가 복구 작업을 하고 있어...? 복장 때문에 처음엔 요정 비슷한건가 생각했지만, 뭔가 다르다. 애시당초 요정놈들은 일을 시키면 한 5분 뒤면 지들 하고 싶은 장난을 치곤 한다. 특히나 공정이 조금이라도 복잡해지면 그런 경향이 매우 강해진다. 그렇기에 이번 일에는 별로 맞지 않을터...

 

"...인형."

 

잘 보니, 마력으로 만든 실이 그것들의 등 뒤에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인형들은 일사불란한 움직임으로, 책장에 책을 채워 넣고 있었다. 각각의 마력실은 모두 도서관 중앙의 마스터의 책상과 테이블이 위치한 곳으로 이어져 있다. 과연. 확실히 그녀의 인형이라면 이런 복잡한 일도 쉽게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느긋하게 걸어가 도착한 마법도서관의 중앙. 거기에는 느긋하게 홍차를 마시며 책을 읽고 있는 금발의 단발 머리 소녀가 앉아 있었다. 그녀를 시야에 포착한 순간, 내 몸속에 있는 무언가가 크게 한번 요동친다... 아마 내 몸에 흐르는 마력에 남은 신키의 잔류 사념 같은거겠지. 얼마나 딸내미를 좋아하는거야. 좀 깬다.

그 때, 소녀의 몸짓이 멈추더니 마치 끼익- 하는 소리가 나는 듯 삐걱이며 고개를 이쪽으로 돌리는 소녀. 그리고 그녀가 나를 바라보자, 굳은 표정은 의문의 표정으로 바뀌어 있었다.

 

"......누구?"

"아니, 그건 내가 묻고 싶은데. 마스터는 어디 갔어?"

"마스터? 설마, 파츄리 이야기를 하는거야?"

"달리 이 공간에서 마스터라고 부를 만한 인물이 있던가?"

"흐응... 제자를 자처하는 이상한 녀석이 있다는 이야기는 듣긴 했지만."

"이상한 녀석이라니..."

 

파츄리 앞에서는 스스로 생각해도 말도 안되는 전투를 보여줬었다. 그런 녀석이 갑자기 자기보고 '스승님!'이라고 말하는거다. 솔직히 질 나쁜 농담으로 들리지 않았을까... 반에서 상위권인 학생 앞에 갑자기 전국 1등이 찾아와서 '오오오! 이런 풀이법이! 앞으로 선생님으로 부르겠어!' 라고 말하는거랑 뭐가 다를까 싶기도 하고.

뭐, 실제로도 기본 지식은 파츄리에게 배우고 있으니까 마스터라고 불러도 문제는 없지 않을까?

 

"앉아도?"

"...어짜피 내 집도 아닌걸."

"감사."

 

앨리스에게 가볍게 인사하고, 대충 가까운 의자에 앉는다. 마스터는... 적어도 도서관 안에는 없군. 침실이려나. 거긴 여기보단 시원할테니까. 이놈이고 저놈이고 더운거에 이렇게 약해서 쓰나. 아니 뭐, 거의 반쯤 치트 치고 있는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아무튼, 나는 우이라고 해. 그쪽은...?"

"앨리스. 앨리스 마가트로이드."

 

물론 알고 있다. 7색의 인형사이자, 마계신이 특별히 아끼는 '아이'. 신키가 그정도로 신경 쓰는걸 보면, 아마 스스로 '만든' 아이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치면 내가 동생이 되는건가? 뭐, 실제 나이로도 그녀가 훨씬 많을테니 크게 다르진 않겠지만... 겉모습이 아무래도 잘 쳐봐도 고등학생이란 말이지. 이걸 누나라고 부르는건 좀.

 

"파츄리는 잠깐 쉬러 갔어. 마력 소모가 커서 말야."

"마력 소모...?"

"네가 언제부터 파츄리의 제자를 자처한진 모르겠지만... 그녀의 최근의 연구 테마는 알아?"

"테마라."

 

그러고보면 마스터, 홍무이변 이후에도 마계와의 바이패스를 잇는 실험을 계속했었지. 신키측에서 막았다는 사실을 분명 전달 했던 것 같은데 말이지. 하긴, 그 막대한 마력량을 보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고 싶어하기 마련이다.

 

"마계와의 바이패스를 잇는 방법이었나?"

"어머, 의외로 알고 있네. 오늘은 그 마지막 실험을 위해서 나를 불렀어. 저번 실험때도 내가 도와줬거든."

"흐음."

 

음? 가만 있어봐. 생각해보면 앨리스가 파츄리를 도와준 것 때문에 백트래킹 당해서, 내 영혼만이 마계로 끌려간거잖아? 마리사도 마리사지만, 얘도 결국 내 몸을 이렇게 만든 원흉 중 하나인거...

...그만 두자. 일일이 따지면 연루된게 한두명이 아닌 사건이었다. 따져봐야 의미도 없다.

 

"보아하니 실패한 모양이네? 성공했으면 이 주변 마력이 이정도로 낮진 않을테니까."

"어머. 잘 알고 있네. 마력은 어느정도 느낄 줄 아는 모양인가봐?"

 

약간 다시 봤다는 듯 눈을 크게 뜨는 앨리스. 그런 그녀는 어째서 내 마력을 못 알아채는가... 하면. 내가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힘숨찐이나 이런걸 동경해서 그런건 아니고, 근본적으로 내가 숨어다니고 하는걸 좋아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마력이 갈무리되고 있다는 모양이다. 개인의 기질에 따른 차이라고 마스터가 말해줬지.

 

"아무튼 맞아. 이번에 실패하면 정말로 그만둔다고 한걸 보면... 뭔가 마음속에 매듭이 지어진 모양이더라. 제법 오래 연구한 테마인데 말이지."

"흐응."

"...너, 진짜 제자 맞아? 제법 관심이 없어보이는데."

"아니, 솔직히 그런 어려운 이야기는 잘 몰라서."

 

뭐, 그렇다기 보단... 내게서 바이패스에 대한 진실을 듣고 접기로 결심한 거겠지. 뭐, 실제로 마법 자체는 성공 했었기도 했고. 만족한거 아닐까?

 

"그나저나, 그런감... 쉬고 있는데 마리사 관련으로 물어볼 수는 없겠네. 다음에 와야하나."

"마리사?"

 

순간, 컵을 입에 가져다대려던 앨리스의 움직임이 멈추더니 살며시 그 컵을 내려놓는다.

 

"어떻게 된거야? 왜 너한테서 마리사의 이름이 나오는거지?"

"응? 왜냐니...으음???"

 

어째선지, 책을 정리하던 앨리스의 인형들이 천천히 모여들고 있었다. 그것도, 품에서 무기를 꺼내 들면서.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은 넷으로, 넷은 여덟으로... 아니 시발, 잠깐만. 대체 몇개를 풀어놓은거야? 그보다 이걸 전부 다 조종하고 있다고?

그리고 그... 좀 열받는군. 마리사를 언급했다고 이런 위협을 받아야 하는 이유가 납득 되질 않는걸.

 

"대답은 신중히 하는게 좋을꺼야."

"...지랄하고 있네. 뭔가 사정이 있는 모양이긴 하겠지만, 다짜고짜 사람을 위협하려고 들어? 미안하지만 위협해오면 반격하고 싶어지거든?"

"네가 마리사를 어째서 알고 있는거야!"

"인형 물리면 이야기 하지. 물릴 생각 없으면... 마스터한텐 미안하지만, 이 도서관 째로 작살내 주겠어."

 

물러나지 않고 오히려 맞서자, 앨리스는 침묵을 지키며 나를 한동안 노려본다. 그리고는...

 

"...조금, 머리에 피가 올라온 것 같네. 실례했어."

"그려."

 

인형들은 손에 들고 있던 무장을 해제하고, 다시 원래의 작업 위치로 쫄래쫄래 돌아가기 시작한다. 잘 보면, 앨리스의 손 끝이 조금씩 미세하게 움직이고 있다. 즉, 수동으로 전부 조종하고 있는 것이다. 씨바, 끝내준다...

 

"인형은 물렸어. 자, 대답해줄래?"

"오케이. 하지만 대신에 조건이 하나."

"뭔데?"

"너도 마리사에 대한 이야기를 해줘. 상황 파악을 하고 싶으니까."

"알겠어."

 

고개를 끄덕이는 앨리스. 자, 이걸 어디서부터 이야기하면 좋을까. 간단하게 하자면 간단하게 할 수는 있지만, 앨리스의 아까 전의 그 반응. 결코 정상적인 반응은 아니었다. 이야기를 생략했다간 이상한 오해가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으니, 전부 말해둘까...그러면 결국 신키의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을거 같긴 한데. 뭐, 어쩔 수 없지.

 

"나는 원래 홍마관에 취직할 예정의 바깥 사람이었어. 모습도 원래 이 모습이 아니었고."

"마리사의 이야기를 하는게 아니었어?"

"이야기엔 순서라는게 있는겨. 아무튼, 갈 곳 없는 내 처지를 본 레이무가 홍마관에 나를 소개시켜줬거든. 덕분에 아무런 트러블 없이 홍마관에 들어와서, 숙소를 배정받았지. 문제는 그 다음이었어."

"....."

"키리사메 마리사가, 마스터의 그리모어를 들고 튀고 있었더군. 지 말로는 '빌려간다' 나. 기왕 홍마관의 직원이 된거, 첫 일이다 싶어서 마리사를 붙잡았지. 마침 마스터도 그녀를 쫓고 있었거든."

"파츄리가? 새삼스럽네. 자주 당하는 일일텐데."

"새삼스럽다고 말할 정도로 자주 훔치는거냐... 아무튼, 마리사를 붙잡아 책은 다시 돌려줬어. 마스터는 말했지. 정말로 위험한 책이 있으니, 빌려줄 수 없다고. 뭐, 그 말을 들은 마리사가 가만히 있진 않았고."

"그래서?"

"그걸 막으려고 내가 몸을 던졌더니, 어쩌다보니 내가 그 책을 펼치게 되었지 뭐야. 그래서, 죽었어."

"!?"

"그 책은 마스터의 최근까지의 연구 테마였던 '마계와의 바이패스를 잇는 마법'. 그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 그리모어였어. 네가 도와줬다는 그거지."

"부, 분명히 저자 이외의 인물이 펼쳤을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미지수인 상태이긴 했지만... 죽었다고?"

"음. 사실, 네 말대로 죽을 정도는 아니었을거라고 생각해. 실제로도 내게 나타난 현상은 종족에 따라선 죽지 않았을테지만."

 

어느샌가 소악마가 따라준 홍차를 한번 느긋하게 들이킨다. 매번 느끼는거지만, 뭔 맛으로 마시는질 모르겠군. 차는 잘 모르겠단 말야.

 

"내 영혼은 몸과 분리되어서, 마계로 넘어 갔어. 그 시점에서 내 신체는 생명 활동을 정지했고... 그리고 눈 앞에는 마계신, 신키가 있었지."

"...뭐?"

"뭐, 못믿을만도 하니까 증거."

 

주머니에서 마계신의 상징, 즉 머리 장식을 꺼내 앨리스에게 보여준다. 마침 머리를 풀고 있던지라. 머리 장식을 본 앨리스는, 얼굴이 새파래졌다. 그리고...

 

"...그 바보 어머니... 다시는 마계론 안돌아갈꺼야."

"대충 의도는 눈치챘나봐?"

"보나마나 뻔하지. 그렇다고 해서 그런 위험한 함정, 보통 만들고 그럴까나..."

"귀성 좀 하고 그러지 그랬냐... 덕분에 말려들어서 죽어버린 난 뭐가 되냐고."

"윽."

"뭐, 너희 모녀한테는 별 감정 없어. 몸도 느그 엄마 덕에 개조됐고, 이렇게 살아났으니까. 그보다 중요한건... 마리사 쪽이야.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마리사는 내가 아직 죽은 줄 알고 있는 것 아닐까?"

"....곧바로 살아난거 아니었어?"

"아니, 그게... 니 엄마가 니 자랑을 얼마나 하던지. 눈 떠보니 마리사가 울면서 내 관에 흙 뿌리고 있더라. 나는 나대로 몸이 움직이질 않아서 꼼짝도 못하고 묻혔다고."

"어머니..."

 

이마를 짚으며, 크게 한숨을 쉬는 앨리스. 그녀의 표정에서, 이제서야 납득이라는 감정이 엿보였다. 과연, 앨리스가 민감하게 군 것도 마리사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걸 알고 있어서 그랬던거구나.

 

"상황은 이해했어. 마리사가 그렇게 된 이유도 이제 이해가 되네."

"그, 혼자 납득하지 말고 설명 좀 해주지?"

"...최근의 마리사의 모습, 봤어?"

"뭐, 어쩌다보니. 제법 그... 힘들어보이던데."

"마리사는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나 연구에 심하리만큼 몰두해. 일종의 자기 방어겠지."

"자기 방어라... 그런 것치고는 눈빛만큼은 살아 있던데. 단순히 현실 도피를 위해서 행동하는 사람의 눈빛은 아니었어."

"그랬어?... 나는 그렇게 된 이후로는 얼굴도 못봐서 말야. 그랬단 말이지..."

 

턱에 손을 갖다대고, 무언가를 생각하는 앨리스. 마리사가 그녀 말대로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다면... 테마는? 그녀가 저렇게된 원인이 나에게 있다면, 그 테마 또한 나에 관한 것이지 않을까? 어디까지나 추측에 지나지 않지만...

 

- 콰아아앙!!!

 

"파츄리!! 파츄리 있냐!"

 

그때, 문을 박차는 소리와 함께 들리는 소녀의 우렁찬 고함소리. 돌아보니, 문 앞에는... 마리사가 있었다. 아니, 아무리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이라지만 이건 좀.

 

"마리사?!"

"오우, 앨리스. 의외네. 이런 곳에서 보다니. 파츄리 못봤냐?"

"에? 아.... 파츄리라면 안에서 자고 있을거야..."

"어라? 그래? 곤란하네. 물어볼게 있었는데..."

 

그나저나, 아까전의 앨리스에게서 느껴지던 도도함이라고 해야하나, 약간 쿨한 느낌이 마리사 앞에선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뭔데. 마리X앨리임? 저는 이 커플링 지지합니다.

 

"음? 못 보던 얼굴이네."

 

아까와는 비교도 안되게 활기찬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마리사. 전환이 빠른 여자로구만. 뭐... 아까전같은 꼬라지보단 백배는 낫다만. 그나저나, 나를 못 알아보는건가... 그럼 정말로 그때 나를 알아봤던 사쿠야나 플랑이 특별했던걸까? 레밀리아도 못 알아봤었으니...

 

"마스터... 파츄리의 제자야. 이름은 우이."

"파츄리한테 제자?...못 본 사이에 제자까지 들이다니, 그 녀석도 방심을 못하겠는걸."

"뭐, 멋대로 자처하고 있을 뿐이지만."

"자칭이었냐. 뭐, 좋아... 그나저나 마침 잘됐다. 앨리스한테도 물어볼게 있었어."

"에? 나?"

"음. 마계로 전송되어버린 혼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어?"

"응?!"

 

순간, 앨리스가 곁눈질로 나를 바라본다. 그러더니, 한숨을 푹 쉬는 앨리스.

 

"...요 몇주 안보이더니. 왜 그런걸?"

"해야할 일이 있어서 그래. 중요한 일이야. 도와줄 수 있을까?"

"글쎄. 애시당초 그런 예시 자체가 많지도 않고. 보통 죽은 사람의 혼은 저승으로 날아가니까."

"자세한건 나중에 이야기 해줄께. 찾는 방법만 알려줄 수 없을까?"

"그, 그건..."

"제발! 너한테 밖에 부탁할 사람이 없어."

 

얘 아까 마스터를 찾지 않았던가? 잘도 그런말을 하는군.

 

"어, 어쩔 수 없네. 이번 말이야."

 

얼씨구. 이쪽은 이쪽대로 엄청 쉬운 분이시네.

 

"후우... 일단 말해둘께. 그 드넓은 마계에서 특정한 혼 하나만을 찾는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

"그, 그렇겠지."

"하지만, 마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모두 마계신의 귀를 통하게 되어 있어. 즉..."

"마계신을 만나서 물어보면 가르쳐준다는거지? 고마워, 앨리스!  이 빚은 꼭 갚을께!"

"자, 잠깐!?"

"바빠서 이만!"

 

앨리스가 말릴 새도 없이 급하게 손에 든 빗자루를 타고, 도서관 안에서 빗자루로 비행하여 순식간에 사라지는 마리사.

 

"...어째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처럼 보이는데요, 앨리스 씨?"

"네가 빨리 정체를 밝혔으면 이런 일도 없잖아!"

"아니, 그렇긴 한데. 댁이 멋대로 이상한 말을 한게 원인 아뇨? 댁이 그냥 내 이야기를 꺼내면 되는거잖아?"

"그, 그거야..."

"뭐, 간거는 간거고. 아무래도 마리사는 마계에서 '나'를 찾으려는 모양이네."

"...그런 모양이네."

 

마계로 전송된 혼. 그건 분명, 파츄리의 마도서를 펼쳐 신키가 만든 함정에 의해 날아가버린 내 혼을 말하는 것일 것이다.

그나저나, 혼 같은걸 찾아서 뭐하려는거지? 사과라도 하려는걸까?...아니, 그걸 위해서 그렇게 열심히 연구를 하고 있던 건 아니었을 것이다. 애시당초에 그런 일이었으면 무녀인 레이무의 손을 빌려 강령술이라도 하면 어떻게든 되었을테니까.

 

"근데, 저거 그대로 보내도 되는거야?"

"응?"

"아니, 잘은 모르겠지만. 마계라는 곳 말야. 그냥 평범하게 투어링하는 기분으로 갈 수 있는 곳인가 싶어서. 게다가 신키를 만난다고 한다면... 위험도라던가, 어때?"

"...그렇네. 사실을 말하자면, 때에 따라 달라."

"그건 또 뭔 소리여."

"어머니는 창조하실때 모두에게 애정을 주시지만... 창조하시는 개체의 종류는 굉장히 편파적이거든. 영향을 잘 받으신다고 할까..."

 

뭔가 확실하지 않은 말투다. 말하기 어려운거라도 있는걸까. 편파적이라. 내가 그때 만난 신키도, 기계적인 인물로는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지나치게 인간적. 그 등의 엄청난 날개를 떼고 보면, 평범하게 엄청나게 예쁜 누나 정도로 보였다. 누나라고 해도 되겠지? 아무튼 나보다 나이는 많을테니까.

 

"특히, 바깥 세계에서의 문물을 받아들이는걸 정말로 좋아하셔서... 가끔씩 곤란해질 때가 있긴 해."

"문물이라니. 구체적으론?"

"...만화나 영화, 그리고 게임."

"조진거 같은 예감이 드는군."

 

그 말을 듣자마자, 내 몸은 자동적으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마리사를 뒤쫒기 시작했다. 좆됐다 씨발. 그런거 때문에 마리사가 죽기라도 하면 여러모로 상황이 꼬일거다. 창조신이라는 녀석이 그렇게까지 기분파일줄은.

...생각해보면 그 편린을 내가 직접 맛봤었지. 시벌.

 

"존나 빨리 사라졌네, 미친."

 

얼마나 재빠른지, 마리사는 나간지 얼마나 됐다고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 있었다. 하지만, 아예 방법이 없는건 아니다

 

조금 빗나간 이야기지만, 코메이지 코이시는 '무의식을 다루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능력 사용의 가장 보편적인 예시가, '은신'. 구체적으로는 무의식 하에서 자신을 인지하지 못하게 하여, 눈 앞에 있지만 그녀를 인식치 못하게 하는 기술. 뭐, 광범위한 인식 소멸 스킬이라고 할까.

 

거기서 나는 궁금증이 생겼다. 그녀 자신을 인식할 수 없다고 해도, 그녀는 거기에 있다. 즉, 존재가 지워지지는 않는다는 것. 그럼, 그녀를 직접적으로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데이터로써 그녀를 인식할 방법이 있지 않을까?

그렇게 해서 개발한 것 중 하나가, 이 'Scent Chaser' 능력. 구체적으로는 체취, 향 등 특정한 냄새를 시각적 데이터로 변환하여 추적하는 능력이다. 영어로 저렇게 표현 했지만, 그냥 냄새 추적 능력이다. 물론 이건 누군가의 능력은 아니고, 내가 인지할 수 있는 정보를 토대로 일종의 필터 및 인식 방식을 바꾼 것에 지나지 않는다. 즉, 프로그래밍.

 

참고로, 이 능력으로는 코이시를 추적하지는 못했다. 내가 의도적으로 코이시의 능력에 대한 '적응'을 해제하자마자, 그녀가 남기는 모든 종류의 데이터를 단 하나도 인식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기계적인 센서에는 아무래도 반응을 하겠지만... 인간이 인지하려고 하는 동안에는 모든 추적을 떨쳐낼 수 있는 모양이다.

 

아무튼, 조금 이야기가 탈선되었지만. 결과적으로 무슨 소리냐. 마리사의 냄새를 쫒아 추적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냄새라는건 공기 중에 흩어지기 쉽기 때문에 너무 오랜 시간 방치하면 정보의 정확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지겠지만... 지금 정도라면 추적이 가능하다. 음... 근데 여자애의 냄새를 쫒아서 추격한다라. 단순한 변태 아닌가 이거?

 

"인간 마을 쪽인가."

 

일단은 단서를 따라서 따라가보자.

 

 

 

 

 

 

 

 

 

 

 

 

 

 

 

 

 

 

 

 

 

 

 

 

 

 

 

인간 마을.

 

처음에 환상향의 인간 마을이라고 했을떄, 개인적으로는 대충 헤이안 시대나 이 언저리의 생활을 하고 있는 농촌 정도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정작 와서 보니, 마을에는 전기가 통하고 있었고 문명 레벨도 시골 정도의 레벨을 지키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자동차는 없는 모양이지만.

전기 자체가 풍족한건 아닌지라 밤에는 거의 다 불을 끄고 있어 어두컴컴하다. 물론 지금은 대낮이지만.

 

"마리사는... 으음, 여기서부터는 추적이 안되는군."

 

일단, 마리사가 인간 마을에 내린 것은 확실하다. 그녀가 인간 마을 상공을 지나쳐갔다면 아무리 희미해도 그 흔적은 남을터. 하지만 여기서 뚝 끊겼다는건... 그런 이야기다. Scent Chaser의 성능이 좀 더 좋았다면 정확한 위치까지 파악할 수 있었겠지만, 아직 프로토타입이니까.

다행히 인간 마을이라면 마계라는 키워드와 엮었을 때 적어도 한 곳, 짐작 가는 곳이 있다. 한번도 방문한 적은 없지만, 인간 마을은 몇번 들린적이 있다. 위치는 알고 있으니...

 

"읏차."

 

갑자기 마을 한복판에 날아들면 민폐일 수도 있으니, 뒷골목을 향해 날아 살짝 착지한다. 슬쩍 뒷골목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은 있지만 대다수읜 인간들은 내가 내려오던 말던 신경쓰지 않는 눈치. 뭐, 이렇게 날아다니는 놈이 나만 있는 동네는 또 아니니까. 새삼스럽다는거겠지.

 

내가 내린 곳은 명련사 인근. 즉, 환상향의 3대 종교 파벌 중 하나인 불교의 총본산이다. 이런저런 요소를 생각해보면, 마리사는 분명 여기를 들렸을 것이다. 나아가서, 아직 여기 있을 가능성도 있다.

 

"아무도 없나?"

 

명련사의 커다란 입구에는 아무도 서 있지 않았다. 야마비코인 쿄코 정도는 서 있을 줄 알았는데... 근데 대신에, 안쪽에서 뭔가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온다. 이 열기... 뭔가 행사라도 하는걸까?

입구를 넘어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자,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살짝 날아서 안쪽을 보자, 안에는 대량의 수박과 그 중심에 서 있는 이 절의 주지스님이 보였다.

히지리 뱌쿠렌. 요괴와 인간의 평등을 외치는 승려이자, 사식 사충의 마법을 익힌 마법사이기도 하다. 명련사는 항상 입구만 지나쳐서 그녀를 직접 보는건 지금이 처음이다. 근데, 저기서 뭘 하는거지? 수박으로 대체 뭘...?

 

"하아아아압!!!"

- 쿠우우웅!!!

 

우렁찬 기합과 함께 충격음. 그리고 다음 순간, 수박이 일제히 8등분으로 갈라졌다. 주변에선 '오오...'하는 감탄의 목소리와 함께 박수갈채. 하지만 나는 다른 의미에서 감탄사를 내뱉고 있었다.

 

"미....미친 괴물년..."

 

설마 그 한순간에 모든 수박을 일일이 손날로 깨버릴 줄이야. 그것도 저렇게 단면도가 깔끔한걸 봐서, 손날에 마력을 둘러 닿는 면적을 정말로 칼로 베는 것 마냥 최소화 시킨 걸테지. 체술, 마력 조작 능력 모두 높지 않으면 불가능한 곡예다. 저런거랑 적대적인 관계가 된다면 과연 살아남을 수나 있을까? 솔직히 자신 없다.

정신차려보니, 뱌쿠렌이 쪼갠 수박을 모두가 나눠먹고 있었다. 8조각으로 쪼개긴 했지만, 여전히 크기가 크다보니 이건 뱌쿠렌의 제자들이 알아서 잘라주고 있는 모습. 헤, 이런 지역 이벤트도 하고 있는건가. 포교의 전술로썬 제법 좋은 전법이라고 생각한다.

그 때, 뱌쿠렌이 나를 발견하고는 내게 생긋 웃는다. 아까전의 그 움직임을 보인 상대에게 인식 당하니 온몸에 소름이 끼쳤지만, 마음을 다잡고 바닥으로 내려온다. 그러자, 뱌쿠렌은 인파를 해치며 내게 다가왔다.

 

"당신이 우이, 인가요? 듣던대로의 모습이라 깜짝 놀랐어요."

"뭐?"

"아, 실례했어요. 당신에 대해선 코이시에게 들었답니다."

"아하. 과연."

 

코이시는 '일단은' 명련사 소속이기도 하다. 뱌쿠렌의 권유로 명련사에 소속된 수행자라는 이야기. 물론 코이시는 딱히 수행 같은거에 흥미가 있어보이진 않았지만...

 

"제 이름은 히지리 뱌쿠렌. 이 곳 명련사의 주지스님이랍니다."

"우이. 코이시한테 들었겠지만, 바깥 세계에서 왔어. 허. 댁 같은 미녀가 주지스님이라면 바깥에서라면 엄청난 인기였을텐데 말이지."

"어머, 초면에 이런 칭찬이라니. 능숙하시네요."

"아니, 그냥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솔직히 이정도의 얼굴에 이 몸매라. SNS에 퍼졌으면 진짜 전설이 됐을텐데. 잘만 굴러가면 불교계의 전설의 아이돌이 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존나 쌔니까 보디가드도 필요 없지. 거의 무적이다.

 

"후후. 날도 더운데, 우선 수박이라도 한조각 드실래요?"

"그러고보니 자르고 있던데. 오늘 무슨 날이야?"

"아, 그런건 아니구요. 날이 덥다고 해서 마을 분들이 수박을 가져와 주셨거든요. 그래서 기왕이면 다들 나눠먹으면 좋을 것 같아서..."

"...평범하게 잘라먹으면 되잖아."

"아하하... 아이들이 좋아하더라구요. 남성분들도 제법 좋아하시는 눈치라서, 가끔씩 이런식으로 힘을 쓰기도 한답니다."

"아...과연."

 

아이들이야 신기해서 좋아하는거겠지만... 남자들은 격하게 움직이면서 흔들리는 히지리의 그것을 보고 싶어서 그런거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군. 번뇌퇴산의 길은 멀고도 험하구나.

 

"아, 수박은 괜찮아. 나는 별로 덥지도 않고, 그리고 부족할 수도 있으니까."

"그러신가요. 그러고보니 오늘은 무슨 일로?"

"키리사메 마리사를 찾으러. 이쪽으로 왔지?"

"글쎄요? 저는 보지 못했습니다만..."

 

고개를 갸웃하는 뱌쿠렌. 보아하니 정말로 모르는 모양이다. 질문을 바꿔볼까.

 

"오늘 혹시 성련선이 출항할 예정은 있어?"

"어머. 오늘 처음 오신 것 치곤 굉장히 상세히 아시네요. 성련선에 대해선 코이시에게?"

"뭐, 그런 셈이지."

 

사실은 이미 설정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는지라, 그냥 대충 얼버무렸다.

 

"성련선... 그러고보니 아까, 미나미츠가 오늘 출항하겠다고 이야기를 했었던 것 같네요. 오늘은 정기 일정이 아니긴 하지만... "

"행선지는?"

"...그러고보니 행선지까지는 물어보진 않았네요. 통상적인 운행 스케쥴이라면 어디까지나 '관광'의 요소로써 쓰이고 있으니까요.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을까요?"

"음... 설명하기엔 좀 긴데. 조금 서두르고 있거든. 혹시 그 배에 나도 탈 수 있을까?"

"코이시의 친구분이기도 하고, 뭔가 사정이 있는 모양이니... 물론이죠. 하지만, 한가지 조건이 있어요."

"뭔디?"

"별건 아니고, 며칠 뒤에 정기 집회가 있거든요. 거기에 참석해주신다는 조건이라면."

"아하. 뭐, 그런거라면야."

 

솔직히 억지로 뭔가를 강매당하거나 그런거였으면 거절하려고 했는데. 뭐, 훈련소에 있을땐 초코파이 얻어먹으려고 종교행사에 참여하기도 했으니까. 이정도 약속은 할 수 있다.

 

"그럼 이걸 가져가서 본당 쪽으로 들어가셔서 기다리고 계시면 될거에요. 혹시나 배 안에서 미나미츠한테 침입자로 오해 받았을 때, 그걸 보여주시면 될거에요."

 

그녀가 건내준 것은 그녀가 어째선지 목에 차고 있는 커다란 염주를 축소해놓은 듯한 녹색 염주였다. 근데 유리구슬인가...? 유리라고 하기엔 좀 감촉이 특이한걸.

 

"갑자기 들이닥친건데도 이렇게까지 도와줘서 고마워, 히지리."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자세한 이야기도 들려주시겠어요? 그땐 차라도 한잔 하면서."

"그러자구."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하고, 히지리가 아까 가르켰던 본당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친절하네...다른 속셈이 있는가 싶을 정도로. 하지만 그녀에게서 거짓말을 하는 낌새는 느껴지지 않았다. 하기사, 분류로 따지면 뱌쿠렌은 '선한 인간'에 속한다고 알고 있다. 그 기본 설정이 달라지지 않았다면... 의심할 필요는 없겠지.

본당에 들어서자, 바깥의 왁자지껄한 분위기와는 다른 정적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건물 여기저기서 느껴지는 요력의 기운. 정확하게는... 요력으로 움직이는 무언가에 발을 들였다는 감각. 묘련사 본당이 성련선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정보로는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들어와보니 뭔가 실감이 난다. 어떤 식으로 변형해서 배가 되는지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지만 요력의 흐름을 따라서, 어디에 있으면 안락하게 배에 탑승할 수 있을지 정도는 감이 잡힌다.

 

- 치지직...

 

그때, 법당 구석에 있는 스피커(왜 있지?)에서 지직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스피커 너머로 숨소리가 들려온다.

 

- 아아, 테스트 테스트. 이거 들리는거 맞지? 내쪽에선 안들리니까 확인할 방도가 없단 말이지...

 

"뭐여?"

 

- 아아. 현 시간부로 긴급출항을 실시하겠습니다. 위험구역에 계시거나, 승선을 원치 않는 분들은 지금 바로 이탈해주시기 바랍니다.... 뭐, 걔 말고는 아무도 없겠지만.... 아, 뭐. 괜찮겠지. 출항!!!

 

- 쿠구구구구구...

 

낮은 진동음과 함께, 주위의 벽이 밀려나는 것이 보인다. 배의 형태를 취하기 위해서 내부 구조가 변하는건가? 그런 주제에 벽에 붙어 있는 장식이나, 가구 위에 올라가 있는 것들은 그대로다. 물리법칙을 벗어난 그 모습에, 다시금 여기가 환상향이라는걸 느낀다.

아니, 그보다. 안전구역 안에 없었으면 저 벽에 밀려 들어가서 죽었던거 아냐?...하기사, 여기 요괴들이 그런 사소한걸 신경 쓸리도 없나.

 

"......?"

 

그나저나, 내부 구조가 변형된 이후로는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다. 변형만하고 대기하고 있는건가? 분명 출항! 이라고 선언했던 것 같은데... 음?

 

"좌표가..."

 

지도를 열어 현재 좌표를 확인하니, 이동하고 있는 것이 확인된다. 속도로 환산하면 시속 50km 정도로 날고 있는건가... 아니, 벌써 떠올라서 날고 있는데 이 탑승감이야? 존나 쩌는걸?...아참, 그러고보니.

 

- 야, 아이리.

- 아, 마스터. 무슨 일이에요?

- 지금부터 좀 멀리 떨어질 예정이라서 말야. 한동안은 절전 모드로 있어줘.

- 같이 가면 되는거 아니에요?

- 코이시한테서 도망치는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건 너잖아.

- 그, 그랬죠.

- 아무튼, 마계까지 다녀올거니까 얌전히 있어. 무슨 일 있으면 다시 연락할께.

- 알겠어요. 코이시님께도 전달 드릴까요?

- 그러던ㄱ...아, 아니다. 코이시한텐 말하지마. 비밀인건 아닌데, 괜히 말했다가 여기까지 쫒아오면 일이 꼬여.

- 네. 그럼, 올 때 메로나~

- 그려.

 

...참고로 올 때 메로나~ 라는 인사는 내가 가르쳐준거다. 바깥세계에서 쓰던 인사법 중 하나라고 가르쳐준건데, 생각보다 입에 잘 붙나보다.

아이리가 나와의 마력 링크가 디스커넥되고, 절전모드로써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약 3일. 절전모드 중의 아이리는 번개를 이용한 공격을 하지 못하며, 기본 신체 능력의 70%만 사용 할 수 있게 된다. 외부요소를 통한 마력 충전은 단 하나의 방법을 제외하고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실상 USB 포트 없는 휴대폰이랑 크게 다르지 않은 상태다. 그리고 이 3일이 지나면 인간의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무기 상태로 되돌아가게 된다. 이 상태에선 물론 반영구적으로 존재할 수는 있지만, 자기방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외부의 공격에 매우 취약해진다.

뭐, 그 전까지 돌아갈거니까 별로 상관은 없지만...

 

자, 그럼 일단 이제부터 어쩐다. 마리사를 쫒아 성련선에 탑승한 것 까진 좋은데... 아차, 그러고보니 정작 마리사가 이 성련선 안에 있는지부터 알아내야지. 찾아볼까.

 

"지도 정보는... 아무리 그래도 없나. 그렇다면."

 

설마 싶어 스마트폰에 저장되어 있는 지도 앱을 켜서 확인해보지만, 아무리 그래도 성련선 내부의 정보까지는 없는지 현재의 좌표만이 확인된다. 뭐, 다른 방법이 없는건 아니니까 상관 없지만.

 

"후우..."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오른쪽 손바닥을 바닥에다 댄 뒤 손바닥으로부터 기를 퍼트려, 이 성련선 전역에 기를 흘려넣는다. 혹시라도 배에 악영향이 있을 수 있으니 최대한 천천히, 그리고 최소한의 양만 흘린다. 음... 제법 크네. 그리고 배에 대해선 전혀 모르니까 정작 내가 있는 위치를 뭐라고 부르는지 전혀 모르겠다. 일단은 한층만 더 올라가면 갑판인건 알겠는데. 거기에 배 전체에 요력과 마력이 흐르고 있다보니, 누군가의 존재를 특정하기가 좀 쉽지가 않다. 좀더 많은 양의 기를 흘리면 어떻게든 될 것 같긴 한데... 급한건 아니니까.

그나저나, 흐름에 따라 움직인 것 뿐이긴 하지만 설마 벌써 마계로 가게 될 줄이야. 굳이 찾아갈 생각조차 없었다보니 스스로도 의외의 상황이다. 뭐, 이왕 간 김에 나도 신키 얼굴은 직접 한번 보고 가고 싶긴 하네.

 

"에고고. 얼마나 걸리려나."

 

자리에 누워, 팔을 베개 삼는다. 기는 아직도 흘리고 있기 때문에, 얼마 안가서 마리사의 존재여부 자체는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목적지까지의 거리도 모르는 판이니, 괜히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 보단 누워서 쉬고 있는게 좋겠지.

 

"배에 이상한걸 불어넣고 있는 녀석이 있다 싶더니. 넌 뭐야?"

"어라라. 벌써 들켰나."

"이 성련선에 밀항자라니 간이 부었구나. 거기다가 느긋하게 누워서 쉬고 있기까지... 간을 좋아하는 녀석들 한테는 거의 진미이겠는걸?"

 

누운채로 시선을 내려보니, 거기에는 국자를 손에 든 세일러복의 소녀가 서 있었다. 이 배의 선장이자, 배를 침몰시키는 배유령. 무라사 미나미츠. 근데 선장이 배유령인건 괜찮은건가? 자기 배는 침몰 안시키니까 ok라는걸까...

 

"일단은 진짜 주인한테는 허가 맡았어~"

"그 염주는... 뭐야, 히지리의 손님이야? 간만에 재밌게 놀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쉽네."

"나로써는 굉장히 안심되지만 말야."

 

뱌쿠렌이 줬던 염주를 꺼내 흔들어보이자, 아쉬운 듯 중얼거리는 미나미츠. 정말로 효과가 있을 줄은 몰랐기 때문에, 솔직히 내심 놀라고 있다. 뱌쿠렌 녀석, 겨우 몇마디 이야기 했을 뿐인데 이정도로 나를 이정도로 신뢰하고 있다고?...사람이 좋은 것도 정도가 있지. 아니면, 어짜피 배신 당해도 힘으로 찍어누르면 된다는 자신감에서 오는 신뢰...아니지, 믿어준 사람한테 그런 말은 실례다.

 

"그나저나, 오늘은 일반 투어 루트가 아닌데 괜찮아? 마계로 가고 있다구~"

"마계라."

"난폭한 손님이 있어서 말야~ 뭐, 약속은 약속이니까."

"흐응."

 

잘 보니, 미나미츠의 옷 여기저기가 살짝 그을려 있다. 아무래도 탄막 승부로 마리사에게 진 모양. 스펠카드 배틀의 룰, 인가. 그러고보니 나도 슬슬 스펠카드 한 두개정도는 만들어둬야 하는데. 엔드 오브 문라이트는 굳이 따지자면 스펠카드로써는 실패작이니까 말야. 인펄사의 상심은 스펠카드라기보단 특수 마법이고.

 

"뭐, 상관 없어. 근데 마계라는 곳은 배를 타고서만 갈 수 있는 곳이야?"

"마계? 음~ 그렇지만도 않긴 한데. 맨몸으로 마계의 경계를 넘는건 그리 추천할만한 행동은 아니야. 몸에 압력이 좀 들어오거든."

"좀? 좀이라면 어느정도?"

"어린 인간 정도라면 그대로 고깃덩어리가 될 정도려나?"

"좀이 아닌거 같은데."

 

반대로, 이런 배 안이라면 배가 압력을 받아서 안에 있는 사람은 무사하다는 이야기인가. 과연... 아니면 경계에 대항할 수 있는 마력 방벽을 몸에 두르고 있으면 괜찮다는 이야기기도 하겠군. 나 같은 경우에는 몸에 기를 두르는걸로 어느정도 대응이 가능해 보인다.

 

"뭐, 경계를 넘을 때만 그런거니까 크게 걱정 안해도 될거야. 그렇지, 마계까지 도착할 때 까진 아직 좀 시간이 있는데, 갑판에 올라가보는건 어때?"

"갑판에?"

"응. 이곳에는 날아다닐 줄 아는 녀석이 많으니까 하늘 위에서의 풍경이라는거에 익숙해져 있을지도 모르지만, 성련선 갑판 위에서 내려다보는 환상향이란건 또 맛이 다르다구?"

 

약간 흥분조로 말하는 미나미츠. 자신의 배에서 바라보는 풍경을 자랑하고 싶었던걸까. 그녀의 목소리에선 어느정도 자부심도 느껴진다. 과연. 이러니저러니 해도 항해를 좋아하는 선장님이라는걸까. 그렇다면야.

 

"그럼 그럴까. 그렇게까지 말하니까 궁금해지는걸."

"분명히 마음에 들거야! 자자, 이쪽으로~"

 

미나미츠의 안내를 따라 갑판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향해 걸어간다. 그러면서 기의 흐름을 토대로 만들어진 이 배의 지도를 GUI로 띄워 곁눈질로 바라본다. 마리사의 위치는 아까전 부터 파악하고 있다.

그녀는, 여기서 조금 떨어진 선실 안에서 미동도 하지 않고 그저 앉아 있었다.

 

 

 

 

 

 

 

 

 

 

 

 

 

 

 

 

 

 

 

 

얼마 뒤.

 

"후우~어땠어, 성련선은?"

"생각 했던 것 보다 많이 즐길 수 있었던 것 같아. 대단한 배인걸."

"히히, 그렇지? 그렇게 말해주니 기쁘네. 곧 있으면 마계 입구로 진입할 거야. 안에서 기다리고 있으라구."

 

그럼~ 하고 손을 흔들며 어디론가 걸어가는 무라사 미나미츠. 배유령이라길래 제법 음습한 요괴인가? 라고 생각 했었는데, 아무래도 큰 착각이었던 모양이다. 그녀에게선 선장으로써의 프라이드, 손님을 즐기게 하고자 하는 엔터테이먼트 정신, 그리고 숨길 수 없는 밝은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말하는 구석구석에 '요괴다움'이 숨어 있긴 하지만... 굉장히 호감가는 인상이었다.

그리고 이 배, 성련선. 생각 이상으로 흥미로운 기체다. 단순히 요력만을 이용하고 있지 않고, 기, 마력, 순수한 운동 에너지 등 폭 넓은 부분에서 거리낌 없이 기술을 활용한 흔적이 느껴진다. 미나미츠는 이 배를 뱌쿠렌한테 받았다고 했었지. 그리고 그 시점은 어디까지나 '요괴가 존재하던 시절'. 뱌쿠렌이 이 배를 직접 만들었을 것 같진 않고, 누군가가 뱌쿠렌의 의뢰로, 혹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배를 뱌쿠렌이 이용한거라면... 의외로 바깥 세계의 옛날은 제법 낭만 있는 시대이지 않았을까. 덕분에 이것저것 영감을 많이 받았다. 나는 요괴가 아니기에 아직 요력을 다루진 못하지만, 마력과 기, 그리고 운동 에너지... 그리고, 파츄리의 마법인 '금' 과 '목'의 마법을 이용하면 무언가 제대로 된 것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들뜨는건 여기까지 하고.

 

"...누가 보면 뒤진줄 알겠군."

 

미나미츠의 설명을 계속 들으면서, 마리사의 위치는 계속해서 파악하고 있었다. 적어도 30분 이상은 미나미츠랑 움직인 것 같은데, 그녀는 미동도 하지 않고 그저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잠들거나 그런 상태는 아니다. 정말로 그저, 그 자리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솔직히 조금 소름끼치는군. 음... 아니지. 내가 그렇게 반응하는건 아무리 그래도 좀 실례인가. 어찌됐던 그녀는 나 때문에 마계로 향하고 있는 거니까.

 

그 때.

 

"음..."

 

마치 사우나 안에 있다가 바깥에 나온 것 같은... 순식간에 공기가 일변한 감각. 거기에 온몸을 도는 마력이 평소보다 훨씬 더 활성화 되는 것이 느껴진다. 본능적으로 마계에 진입했다는걸 깨달았다. 과연... 그러고보면 내 몸은 신키가 만든 것. 마계에서의 친화도가 훨씬 높다는 이야기인가?

 

- 아아. 어텐션 플리즈. 본 함은 마계에 진입 하였습니다. 도전자와의 약속대로, 본 함은 3분 뒤에 여기서 회항하여 명련사로 복귀합니다. 내리실때 잊어버린 물건이 없는지 확인하고...

 

"여기가 종착인가."

 

GUI로 지도를 켜, 시선의 오른쪽 아래에 배치한다. 지역명은 마계, 에소테리아. 어디서 많이 들어본 지역명인데... 아, 성련선 5면 필드곡. 이거 진짜로 지역명이었어? 신기하네... 아차차, 나도 하선해야지. 계속해서 좇고 있는 마리사의 위치는, 미나미츠의 방송 이후 조금씩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한다. 여태까지 일부러 컨텍은 피했고, 미나미츠에게도 내가 승선하고 있다는 사실은 마리사에게 말하지 않도록 주의를 줬다. 우선은 먼저 하선해서 어떻게든 미행할 수 있도록 포지션을 잡아봐야지.

 

"홀리..."

 

그리고 갑판 위로 나서서 본 풍경은... 너무나도 비현실적이라, 스스로도 눈을 의심했다. 자색의 구름들 사이로, 울긋불긋한 바닥이 엿보인다. 아마 정말로 지면이 붉은색인 것은 아닐 것이고, 이 주변을 가득 채우는 마계의 마력이 대기의 색을 붉게 만들고 있는 것이리라. 그나저나 구름 위라니, 숨기가 좀 애매하긴 하네... 아, 구름 속에 숨어 있으면 되려나? 조심스럽게 진입하면 그야말로 연막속에 몸을 숨기는 셈이 되겠군.

 

그나저나, 예상했어야 했는데. 성련선이 항로로써 뚫어놓은 길이라고 해봐야, 결국 마계의 일부인 '법계'로 향하는 항로뿐일 것이라고 말이지. 여기서 조금 더 들어간 곳에, 뱌쿠렌이 봉인되어 있던 장소가 있으니까.

아무튼, 빠르게... 하지만 구름이 흩어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구름 뒤에 숨어 성련선에서 마리사가 하선하는 것을 기다린다. 얼마되지 않아, 마리사가 빗자루를 타고 어딘가로 날아가는 것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이와 엇갈리듯 성련선은 지나왔던 항로를 다시 되돌아가기 시작한다. 그나저나 마리사 녀석... 신키를 만나려고 하는 모양인데. 무려 마계를 창조한 신을 대체 어떤 식으로 만나려고 하는거지? 바깥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유일신 종교에선, 기도하면 나타난다고는 하던데.

 

- 삐융!!!

 

"뭐여 시벌."

 

마리사의 인영을 중심으로 빔이 뿜어져 나와, 어디론가 발사된다. 그 궤도에는, 몇마리의 요정들이 있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마리사가 내뿜은 빔에 맞은 요정들은 시원하게 증발. 아니, 애꿎은 요정은 왜 갑자기 괴롭히는거지...?

라고 생각하고 있자니, 어디선가부터 요정들의 무리가 마리사에게 덤벼들기 시작한다. 그 수는,수십에서 수백. 어디서 저렇게나 많은 요정들이 나타나는걸까. 솔직히 벌집 들쑤신거랑 비슷한 감각이 느껴진다. 아니, 근데 더 이해가 안되네. 대체 무슨 결과를 바라고 저런 짓을?

 

"응?"

 

그때, 무리를 지어 마리사에게 덤비려던 요정들 중 일부가, 어째선지 나를 향해 날아오기 시작한다. 아니, 나는 갑자기 왜? 아니 시발, 어그로 관리 안해? 거기다가 저 녀석들, 표정이 굉장히 호전적인 것이 내가 알고 있는 요정들이랑은 조금 다른 모양. 마계라서 그런걸까.

 

"조용히 처리 해야겠군."

 

일단은 미행하고 있는 입장이다. 화려하게 처치했다가 미행 대상한테 들키는 것 만큼 한심한 일도 없겠지. 뭐, 그것을 위한 물건은 이미 준비해놨지. 쓸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빵야빵야."

 

- 퓩! 퓩! 퓩!

 

[금]의 마법으로 순식간에 소음기가 달린 권총을 만들어내, 요정들의 미간을 향해 정확하게 총알을 발사한다. 소음기를 통해 발사된 총알은 빠르게 요정들에게 날아가, 머리에 기절할 정도만큼의 충격을 주어 기절 시킨다. 발사한 것은 고무탄이지만(목속성의 마법으로 만들었다), 탄에 담겨 있는 마력에 의해 기절할 정도의 충격을 줄 수 있는 것이다. 고무탄이라 불안한 명중률도 마력이 담겨 있기 때문에 크게 향상된 상태. 상대가 의식하고 피하지 않는 이상 사실상 못맞출 수가 없다.

총에 맞은 요정들은 그대로 슈우욱 하며 바닥으로 떨어져 내려가지만... 뭐, 요정이니까 여기서 자유 낙하 한다 해도 죽지야 않겠지. 애시당초 죽음의 개념이 없긴 하지만.

 

그나저나, 보통 '평범하게 쓸 수 있는 수준'의 완성도를 지닌 권총을 만들어낼 때에는 잘해봐야 30초 정도 소모되고, 평소에는 1분 정도 쓰는데... 지금 만들어진 권총은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게다가 그 완성도는 '실제 권총'보다 훨씬 오래 쓸 수 있는 수준. 마계에 있어서 그런걸까? 평소보다 마법 사용의 상태가 좋다. 그나저나, 마리사 녀석. 뭐 때문에 갑자기 난동을 부리기 시작한거지?

 

"...설마, 난동 부리고 있으면 신키 쪽에서 찾아올거라고 생각하는건가."

 

하는 짓이 야쿠자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이상으로 가망이 있는 작전인가? 라는 생각이 든다. 뭣보다, 여기는 법계. 마계에서도 깡촌이라고 불리고 있는 모양인 곳이다. 그런 곳에서 페어리 슬레이어 짓 좀 한다고 창조신과 만날 수 있을 것 같진 않는데. 다른 의도가 있는걸까?

마침 마리사가 주위를 정리하고 어디론가 이동하기 시작한다. 좋아, 따라 붙어보자.

 

 

 

 

 

 

 

 

 

 

 

대충 1시간 정도 지났을까.

 

"...아무 생각도 없었나보네."

 

가져와서 주머니에 넣어뒀던 육포를 씹으면서, 멀리 있는 마리사를 관찰한다. 비행 마법과 전투를 병행한지 1시간. 마계의 요정들은 제법 호전적이고 양이 많아, 한번의 전투마다 소비되는 체력이 평소의 전투보다 높을 터. 게다가 그걸 거의 쉬지 않고 1시간 동안 강행하는건... 아무리 마리사라고 해도, 쉽지는 않을 터. 아니나다를까, 그녀의 얼굴에는 피로한 기색이 역력하다. 게다가 마계의 마력 농도. 마리사가 '마법사' 라면 괜찮았겠지만, 그녀는 어찌됐던 아직 인간의 몸이다. 숨을 쉬는 것 만으로도 천천히 몸에 부담이 올텐데.

 

그나저나, 정말로 이렇게 난동 부리는 것 만으로 신키가 올 것이라고 생각한걸까. 전투 이외에는 다른 행동을 보이지 않는다. 아니면, 이 법계에서 나의 영혼을 찾고 있다던가? 아예 찾아다니지 않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모래사장에서 맨눈으로 사금 찾기보다 무모하다.

자, 그럼 어떻게 할까... 이대로는 마리사가 지쳐서 쓰러진다. 그냥 내가 나서서 강제로라도 되돌려보내야 할까. 겸사겸사 내 정체도 밝히고.

 

...알고 있다. 사실 이럴 필요 없이 애시당초 내가 성련선에서 마리사가 있는걸 확인하자마자 그녀와 컨택해 나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면, 굳이 이럴거까지 없다는 사실은. 아무래도 나는 아직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녀를 용서하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1시간이나 저렇게 필사적으로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도, 내 마음속 한 구석은 여전히 차가운 시선을 그녀에게 향하고 있다. 원한 같은건 아니다. 애시당초에 그녀의 행동에 대해서 무언가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진 않다.

 

나는 그저, '살인'이라는 죄를 청산하기 위해 그녀가 어디까지 행동하는가가 궁금한 것 뿐일지도 모르겠다. 피해자이기에 가능한... 아니, 이건 피해자만이 채울 수 있는 권리를 지닌 호기심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녀가 쓰러지게 되면 도울 생각이지만... 아무튼, 그 호기심이 충족될 떄 나는 그녀를 용서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똑같은 짓을 하는 건 아무리 그래도 좀 보기 안타까운데... 음? 뭐야 이 반응은. 저 멀리서부터 뭔가가 다가 오고 있는데? 

 

"음...? 뭐야, 저 빨간거."

 

시력을 마력으로 더 강화시켜, 멀리서 다가오는 것을 포착한다. 뭔가 빨간 옷을 입고 있는 무언가... 요정은 아니고. 옷이 마치... 메이드복? 금발에, 메이드복에, 이 마력 반응... 이 조합, 뭔가 기억이 날랑말랑하는데...

...유메코. 맞다. 유메코다. 아, 그 도박에 미친 쪽 말고. 신키의 최측근이자, 마계 최강의 존재 중 하나. 저런게 왜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는거지? 설마 마리사의 작전이 먹힌건가? 마리사를 신키에게 안내하려고 찾아온걸까? 만약에 그런거라면... 이야 시발, 이게 되네.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그런 것 치곤 그녀의 표정이 밝지 않다. 거기에 이 느낌은... 살기.

 

"애미."

 

전속력으로 마리사를 향해 날아간다. 그리고 저 멀리서 마리사를 향해 날아오는 나이프의 군집. 젠장. 마리사 녀석, 눈치 못챘는지 피하려고도 하질 않는구만. 내가 직접 쳐내는건 이 거리에선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나이프엔 나이프지!"

 

[금]의 마법으로 수많은 나이프를 만들어내, 마리사에게 날아가는 나이프의 군집과 겹치도록 발사한다. 계산하고 발사한건 아니기 때문에 날아드는 모든 나이프를 상쇄하진 못했지만, 적어도 그녀에게 닿을 수 있는 나이프는 전부 튕겨냈는지 날아든 나이프는 마리사의 뒤를 넘어 허공으로 사라진다.

 

하지만, 그러던 말던 유메코는 그대로 마리사에게 돌진한다. 다행히 날아드는 나이프에 놀란 마리사가 회피기동을 하여, 유메코의 발차기를 피한다.

 

"여기는 내 구역이야. 또 언제나처럼 난동을 피우는구나. 너는."

"누구냐? 넌."

"기, 기억 못한다고? 이쪽은 마계에서 네녀석들이 난동을 부렸던 날을 아직 잊고 있지 않은데..."

"아~....신키 옆에 붙어 있던 그 메이드 녀석이로군. 기억 났어."

 

이제야 자신을 기억한 마리사를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는 유메코. 그런 그녀가 이번에는 내게 시선을 보낸다.

 

"그리고... 과연. 신키님의 반응이 두군데서 느껴진다고 했더니. 네가 그 인간이구나."

"그런듯?"

"어, 너 분명... 우이였나? 왜 네가 여기 있는거야."

 

이제서야 내 존재를 알아챘는지, 살짝 놀란 눈치로 내게 말을 거는 마리사.

 

"뭐, 투어 비슷한거지. 이런데서 만나다니 우연이네, 마리사."

"오, 오우..."

"그나저나 여기는 진짜 아무것도 없네. 마계라고 하길래 뭐라도 있을 것 같아서 기대했는데 말야."

"여긴 마계에서도 깡촌인 법계니까. 신키님이 계신 곳과 가까워질 수록 너는 상상도 못한 풍경이 펼쳐질껄?"

"헤에-"

"...굉장히 관심 없다는 듯한 리액션이네. 투어라고 하지 않았어?"

"뭐, 투어라고 해도 사람마다 목적이 다른법이지. 자, 나는 신경 쓰지 말고 둘이서 볼일 보세요."

 

아까전에 자신이 던진 나이프를 상쇄 시킨게 나인걸 알고 있어서 그런걸까. 유메코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지만, 이내 마리사에게 시선을 돌린다.

 

"내 구역을 이렇게 어지럽히다니, 마리사. 뭐가 목적이야?"

"신키와 만나게 해줘. 찾아야 할 영혼이 있어."

"영혼?... 명계랑 헷갈린거 아냐? 왜 영혼을 여기 마계에서 찾는건데?"

"그건 내 사정이고. 만나게 해줄거야? 말거야?"

"...제법 건방지네. 내 구역을 어지럽힌 것도 모자라서, 다짜고짜 요구질이라니. 싫다고 하면 어쩔건데?"

"당연히 이 녀석으로 승부를 봐야겠지."

 

품에서 스펠카드를 몇장 꺼내 보여주는 마리사. 스펠카드 룰. 가지각색의 종족이 사는 환상향에서, 인명피해를 내지 않고 서로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결투 룰. 하지만, 그 카드를 보고도 유메코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아, 그거. 요새 마계가 그럴만한 상황이 아니라서 말야. 미안하지만 스펠카드 결투는 받지 않을거야."

"뭐...?"

 

이건 또 다른 전개로군. 확실히, 상대가 룰을 지키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것이 이 스펠카드 룰이다. 다만, 이런 경우 하쿠레이의 무녀가 제재를 준다거나 하는 무언가가 있었던 것 같은데... 가만, 아까전에 '요새 마계가' 라고 말했지? 뭔가 있는걸까.

그보다, 좀 흐름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은데. 마리사가 아무리 날썌고 강하다고는 해도 일개 인간. 반대로 유메코는 마계에서 신키가 만든 창조물 중 최강에 속하는 존재. 만약에 유메코가 진짜로 진심으로 마리사를 상대한다면...

 

"구역에서 난동을 부린건 눈감아주지. 지금 당장 돌아가도록 해. 지금 마계는, 평범한 마법사가 있을만한 곳이 아니야."

"잠깐만! 나 진짜로 신키를 만나야한단 말이야!"

"...눈 감아줄때 빨리 떠나. 안 그러면 녀석들에게 당하기 전에 내가 처리해주겠어."

 

살의에 가득찬 눈빛으로 마리사를 노려보는 유메코. 그 기백에는 아무리 마리사라고 해도 다소 움츠러들 수 밖에 없었다.

근데, 녀석들? 마계에 침입자 같은거라도 있는걸까?

 

"...이쪽은 이쪽대로 사정이 있단 말이야. 만나게 해주지 않는다면...!."

"하아... 진짜로 말귀를 못알아듣네."

 

그럼에도 물러서지 않는 마리사를 향해, 유메코는 엄청난 속도로 마리사에게 다가가 그녀의 복부를 주먹으로 가격하려고 한다.

 

- 턱!

 

"뭐야?"

"우, 우이?"

 

몸이 먼저 움직여서 다행이다. 유메코의 팔에 들어가 있는 힘은, 평범한 인간의 육체라면 쉽게 뚫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진짜로 죽이려고 했냐, 이 미친 메이드...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사람이 부탁을 하면 적어도 거절하는 이유정도는 말해줘야 하지 않겠어?"

"건방 떨지마. 그저 신키님에게 도움을 받았을 뿐인 일반인이."

"존나 쌉인정하는 부분이긴 한데, 그렇다고 해도 이건 아니지. 그리고, 창조신의 최고 걸작이라는 녀석이 이렇게나 속이 좁아서야, 창조주가 뭘 가르쳤나 몰라?"

"...그 말 취소해!"

 

팡! 하고 강하게 내 손을 뿌리치는 유메코. 그 반동으로 나와 유메코 사이의 물리적인 거리가 벌어진다. 심리적으로도 멀어진 것 같지만, 그건 뭐 패드립의 순작용이니.

 

"원하신다면 싸워드리지. 다만, 내가 이기면 신키를 만나게 해주는거야. 안그래도 나도 면담이 좀 필요할 것 같거든."

 

과장스러운 제스쳐를 취하며 지금 이 대화를 듣고 있을 누군가에게 말하듯 말한다. 분명히 지금 제 3자의 시선이 느껴진단 말이지.

 

"닥쳐. 어짜피 네놈은 여기서 죽는다. 감히 신키님을 모욕해?"

"ㅋㅋ 그니까 신키 욕 안먹게 니가 잘했어야지. 안 그래?"

"......"

"어... 마리사, 멀어지는게 좋겠어."

"뭐?"

"떨어져 씨발!"

 

멍때리는 마리사를 발로 차 밀어낸 직후, 유메코의 바디블로가 내 복부에 직격한다. 부정적 감각 차단으로 통증은 느껴지지 않지만, 몸의 제어가 한순간 불가능해진다. 부정적 감각 차단이 있다고는 해도 익숙해질 수가 없는 불쾌한 감각이다. 거기에 그 충격파만으로 마리사는 한번 더 멀리로 날아가버렸다. 이거, 내 몸이 이 공격으로 산산조각이 안난게 기적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존나 쌔시네요."

"죽어!!!!"

 

바디블로의 충격으로 날아가는 내 몸. 그리고 그걸 따라오듯 수많은 나이프가 나를 향해 날아온다. 나이프라니. 아까부터 느끼는거지만 좀 사쿠야랑 비슷한 전투 스타일이네. 힘의 수준이 전혀 다르고, 시간 조종 능력이 없지만... 뭐지? 야부키 신고인가? 아니, 이런 비유는 유메코한텐 실례려나.

몸에 제어를 되찾는 것과 동시에 나이프의 궤도에서 벗어나 아까 만들었던 권총을 꺼내 유메코의 미간을 노리고 발사한다. 이번엔 고무탄이 아닌 실탄. 거기다가 마력으로 사속을 강화시켰다. 어짜피 이거 맞아도 안죽는건 아까 전 얻어맞는 한 순간에 파악했다.

 

- 탕탕탕!!!

 

"치졸하긴!"

"뭐, 그러시겠죠."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총알을 피하며 내게 돌진해오는 유메코를 보며 나도 모르게 쓴웃음 지었다. 일단은 쏜 직후에 마력으로 발사 위치를 조종했기 때문에 총구를 보고 피하는건 불가능했을텐데 말이지. 즉, 탄을 직접 보고 피했다는 이야기다. 뭐하자는 동체시력이야?

 

"결국 그정도 뿐이라는거겠지, 인간!"

 

머리를 노리며 날아오는 유메코의 강권. 아까는 복부였기에 몸의 제어가 일시적으로 불가능해지는 충격이었겠지만, 머리는 좀 위험하다. 하지만, 아까부터 느끼던거지만 공격이 제법 정직하다. 상대가 어떻게 잔재주를 부려도, 압도적인 기초 스펙 하나만으로 이를 전부 상쇄해 왔기 때문일까. 잘 모르겠지만.

 

"글쎼. 나름 이것저것 겪어서 말야."

 

몸을 살짝 비틀어 그녀의 주먹을 피함과 동시에 기를 극단적으로 모아 강화시킨 손날로 이를 흘려보낸 뒤, 그 힘을 이용하여 그대로 그녀의 팔을 붙잡아 그대로 그녀를 내동댕이 친다. 메이린의 '기'의 활용법을 얻으면서, 동시에 그녀가 가지고 있던 권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문득, 유메코의 팔을 흘려보낸 왼쪽 손목을 보니 새빨갛게 부어 있었다. 금방 낫긴 했지만, 이렇게 될까봐 이 부위를 기로 극단적으로 강화 시켰는데도 이 꼬라지다. 진짜로 괴물인가? 그렇다면 그걸 준비해야겠는걸.


- 콰아아아아앙!!!

 

자신의 힘이 더해져 내동댕이 쳐진 유메코는 새까만 법계의 바닥으로 떨어져, 그대로 바닥에 크레이터를 만들며 쳐박힌다. 이걸로 무력화 됐을리는 없을거고.

 

"읏차."

 

금의 마법으로 총구가 6개인, 이상하리만큼 총신이 긴 총을 만들어내 그 손잡이를 붙잡는다. 다총열기관총, 일명 '미니건'. 당연한 이야기지만, 평범하게 살면서 이 총의 구조를 이해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나도 그렇고. 그런 내가 이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마스터의 마법도서관에 관련 서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법도서관 최고야.

자, 어디보자. 일단 정확하게 유메코의 머리 위로 이동해서, 총열을 직각으로 내리고...

 

"자, 문명의 이기의 위력 한번 보실까."

 

총에 뒤쪽에 있는 스위치를 킨 뒤, 총을 단단히 붙잡는다. 그리고 얼마 안가.

 

- 드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우어어어어어어어어 시발 존나 쩔어!!"

 

마치 예초기 돌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분당 4천발의 탄환을 발사하는 미니건이 불을 내뿜는다. 탄을 계속 만들어서 보급하고 있기 때문에 급속도로 온몸의 마력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지지만, 못버틸 정도는 아닌데다가 이 압도적인 화력에 온몸이 떨려온다. 실제로 총의 반동으로도 떨리고 있고,.공중에서 쏘고 있다보니 자연적으로 몸이 점점 위로 떠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휴우. 기분 좋았다."

 

대충 1분 정도 쐈을까. 슬슬 현기증이 나기 시작해서 총의 스위치를 끄고, 그대로 던져버린다. 누가 줏어가도 환상향에서는 나 말고는 써먹지도 못할 무기다. 기껏해봐야 둔기로 쓰지 않을까. 자, 유메코의 상태는...

 

"아무리 그래도 이건 못버텼나보네."

 

유메코의 신체 자체는 탄에 피해를 입어도 꿰뚫리지 않아 몸은 멀쩡해보였지만, 그녀가 입고 있던 옷은 사실상 옷이라고 부르기도 힘든 수준으로 걸레짝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아무리 유메코라도 4000발이나 되는 그야말로 '총알 세례'를 맞고서도 멀쩡하진 않았는지, 기절해 있었다.

솔직히 이걸 맞고도 그녀가 전투 속행이 가능했다면 나는 명백하게 졌을거다. 총알을 만들고, 발사 할때의 탄 퍼짐 방지, 그리고 사거리 증가 마법을 동시에 쓰고 있었기 때문에 마력 고갈로 대응을 못했을테니까...

...반대로 맞아준게 신기하네. 방심이라도 했던걸까?

그나저나, 다른건 몰라도 탄 생성 마법의 마력 소모가 너무 큰걸. 하기야,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금속을 '만들어 내는' 마법을 쓰고 있으니까. 마력 소모가 클 수 밖에 없지.

 

"휴우."

"대... 대단해... 방금 그건?"

"아아, 방금 그것은 [미니건] 이라는 것이다. 분당 4000발의 탄환을 발사하는 괴물 같은 총이지. 참고로 살상용이니까 농담으로라도 사람한테 겨누면 안돼. 위험하니까."

"저 녀석한테는 겨눴잖아."

"안 죽을거라는 확신이 있었거든. 그리고 사람 아니고."

"그, 그러냐... 그나저나, 저 녀석한테는 신키가 있는 곳을 물어봐야 하는데 말이지."

"......"

 

으음- 하고 곤란한듯 신음을 흘리는 마리사. 문득, 궁금해졌다.

 

"어떤 영혼을 찾는다고 했지. 왜 찾는거야?"

"...글쎄다. 사실 나도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찾는다 한들 죽은 녀석을 되살릴 수 있는 것도 아닌데."

"......"

"그저.... 그렇네. 적어도 여기가 아니라, 명계로 제대로 보내서 좋은 곳으로 보내주려는걸까. 듣자하니 바깥 세계에서 온 녀석이라고 하던데... 나 때문에 그렇게 허무하게 가버렸으니까 말야."

"음."

"뭐, 나는 염마랑도 얼굴을 마주한 적이 있으니까 말야. 잘 말해두면 어떻게 좋은 곳으로 보내주지 않겠어?"

"그것 때문에 마계까지?"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니까."

 

라고 말하며, 품에서 플라스크 병을 하나 꺼낸다. 은은하게 마력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보아, 아마 영혼을 안전하게 담기 위한 용기겠지. 과연, 마리사의 목적은 이거였나.

 

"...라니, 아하하. 사정도 모르는데 이렇게 말해봐야 잘 모르려나."

"아니. 대강의 사정은 사실 마스터에게 들었어."

"...그런가. 알고서 따라온거지?"

"뭐. 그런 셈이지."

 

이제 와서 숨겨봐야 뭔 소용이 있겠나.

 

"...결국은 자기 위안에 지나지 않는다는건 알아. 이런걸로 용서 받을 수 있을리도 없고. 하지만... 할건 해야하지 않겠어?"

"그럴지도 모르지. 뭐, 그렇다는데! 신키! 그만 구경하고 나와!"

"에?"

 

아까부터 느껴지는 시선을 향해 소리를 지른다. 시선도 시선이었지만... 마력. 아무리 숨긴다고 해도 그녀의 마력은 나의 마력과 매우 유사하다. 근처에 있다면 모를 수가 없다.

 

"아하. 들켜버렸네☆"

 

무안한듯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모습을 드러낸, 3쌍의 이형의 날개를 가진 창조신. 신키. 그녀의 머리 위에는 전에는 본적 없는 이형의 헤일로가 떠 있었다.

 

"그 헤일로는 왠거야?"

"에? 아, 이거? 요새 어린 여자애들은 머리 위에 이런걸 띄우고 있던데? 패션인거 같아서!"

"그러십니까..."

 

'젊은 애'는 둘째치고, 정말로 영향받기 쉬운 성격이구만. 하는 김에 교복에 총기류도 등에 메고 있지 그랬어.

 

"오랜만이네 마리사. 요새 앨리스는 건강해?"

"...신키. 부탁이 있어."

"만나자마자 부탁이라니, 꽤나 급하네~ 뭔데?"

"네 힘으로, 마계로 흘러들어온 영혼을 찾아줘."

"영혼?"

"파츄리의 책 때문에 이쪽으로 흘러들어온 영혼이 있을거야."

"어? 그 영혼의 주인이라면 네 옆에 있잖아."

"뭐?"

"......그걸 바로 말해버리면 어쩌냐."

 

째릿, 하고 신키에게 눈총을 쏜다. 눈치가 있으면 적어도 '왜 그런걸 묻느냐-' 같이 대화를 이어나가는 그런... 에휴. 됐다.

 

"에? 뭔데?"

"아니야. 아무것도... 뭐, 그런거야. 마리사."

"하, 하지만... 그때 만났을땐 분명..."

"남자였지 않냐고? 그렇긴 한데 말이지."

"아하하. 신체를 변형시키다보니 어쩌다보니 여성형으로 바뀌어버렸네?"

"신이라는건 생각보다 대충대충인 모양인지라."

"아.... 아아..."

 

마리사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더니, 그 손에서 플라스크를 놓치고 만다. 그리고 그 직후.

 

"미안.... 미안해...!...흐윽...!"

 

내게 푹 고개를 숙이며, 사죄의 말을 입에 올리는 마리사. 그 얼굴에는,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에 대한 안도도 포함되어 있었다. 뭐, 여러모로 복잡한 심경이었겠지. 그런 그녀를 보고 있자니, 어느샌가 마리사를 차가운 눈으로 보는 내 시선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있었다.

 

"됐어. 뭐 어때. 사람이 살면서 실수도 할 수 있는 법이지."

"하... 하지만..."

"하지만이고 킹치만이고 없어. 당사자인 내가 용서한거니까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 오케이? 뚝. 울지 말고. 괜히 너 울렸다가 앨리스한테 걸리면 인형들한테 꼬챙이형 당할걸?"

"...그녀석한테도 아무래도 걱정하게 만든듯하네."

"하는 김에 모리치카 린노스케 한테도 제대로 인사하러 가야겠지?"

"...물론이지. 돌아가면 할게 많겠는걸."

"그려그려."

 

마리사의 표정은 여전히 어둡지만, 약간은 구원받은 듯한 얼굴이 되었다. 지금은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자, 그럼 이제...

 

"신키. 아까 유메코가 한 말은 뭐야?"

"아~ 그거! 안그래도 요새 골머리를 앓고 있단 말이지. 그 검은 기운!"

 

약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여기서도 출몰하고 있었나.

 

"내 귀여운 애들한테 들러붙어서, 이상하게 만들지 뭐야~ 어디서 자꾸 나타나는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일단은 틈새 요괴한테도 상황은 전달하고 이쪽에서 대처하고 있었어."

"그래서 스펠 카드 룰의 정지를..."

"애시당초 서로간의 중재를 위해서 만들어진 룰이니까 말야. 지금 같은 비상시에는 적용할래야 적용할 수 없어."

"그것도 그렇지."

 

이전의 홍무이변을 떠올려본다. 마계의 녀석들도 그 영향을 받아 변성했다면, 확실히 스펠 카드 룰이 어쩌고 할 상황이 아니다. 그나저나 당장 유메코가 그 검은 기운에 당했었다면... 솔직히 소름이 끼치는군.

 

"...그런데 이상하네. 평소보다 틈새 요괴한테서 답이 오는게 늦네. 보통은 메세지 보내면 거의 몇초만에 답장이 오는데 말야."

"메세지라니, 뭔가 메신저 같은게 있는거야?"

"응? 라○ 쓰는데?"

"○인."

 

과연, 여기 일단은 일본이었지. 카카○톡보단 라○인가. 그보다 얘네들 어플로 메세지 주고 받고 있었나...

 

"그 검은 기운에 대해선 뭔가 알아낸건?"

"아직은. 하지만 적어도 환상향 내에서 만들어진건 아니야. 바깥에서 흘러들어온 무언가."

"으음..."

"...아! 그렇지. 우이한테는 이걸 넘겨주려고 했었어."

 

그렇게 말하며 그 넓은 소매를 뒤지는 신키. 이윽고, 그녀는 소매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비녀?

 

"머리장식 치고는 제법 수수하네."

 

재질을 알 수 없는, 머리쪽에 작은 푸른 장미 1송이만이 유일한 장식인 은빛 비녀였다. 받아들어보니, 서늘하고도 의외로 묵직한 감촉이 느껴졌다.

 

"전에 머리방울도 줬잖아. 이걸 또 주는거야?"

"그건 따지고보면 방어구에 가까우니까. 요건 그거야. 우이만 쓸 수 있는 무기. 말하자면 전용 장비."

"전용 장비라. 뭔가 멋진데."

"그치?"

 

천진난만하게 웃는 신키. 고맙긴 한데, 이런게 창조신이어도 괜찮은거냐 마계. 그보다 이게 무기라고? 비녀로 눈이라도 찌르라는걸까.

 

"쓰는 법은 그거 안에 데이터도 포함되어 있을테니까, 나중에 읽어봐."

"아, 그러네. 고마워 신키. 아, 맞다. 앨리스랑 만났는데 말야."

"에, 정말!? 뭐라고 했어?"

"일전의 함정에 대해 이야기 해주니까, 절대로 안돌아올거랜다."

"그, 그럴 수가..."

 

절망한듯 꽈당-하고 쓰러지는 신키. 공중에서 쓰러지다니, 실력도 좋으셔라. 일단 신키에게 받은 비녀로 머리를 묶어 고정시킨다. 비녀라. 이것도 간만에 써보네. 이전에 몇번 써보긴 했는데 머리끈보다 머리가 더 많이 빠지길래 그만 뒀었지... 마음에는 들었는데 말야. 지금이라면 머리도 안빠질테니까.

 

"아무튼, 고마워 신키. 우리는 이제 슬슬 돌아갈께."

"아, 포탈 열어줄께. 저 경계를 맨몸으로 넘는건 별로 건강에 안좋으니까. 우이는 괜찮겠지만."

"오, 그러면 좋지."

 

에잇- 하고 신키가 손을 휘두르자, 푸른색 포탈이 열린다. 그 너머에는, 인간 마을 상공이 보인다. 이거 존나 편해보이는데. 난 못쓰려나? 신키한테 지금 당장 물어봐도 좋겠지만... 오늘은 일단 돌아가자. 슬쩍 마리사의 스테이터스를 확인했는데, 슬슬 기분이 나빠질 수준의 마력 잠식이 이루어지고 있다.

 

"가자, 마리사."

"...응."

 

마리사와 함께 포탈을 통과해, 인간 마을 상공으로 돌아온다. 뒤를 돌아보니, 신키가 쾌활하게 손을 흔들고 있는 모습이 보이더니 이내 포탈이 닫혀 완전히 소멸한다.

...자, 이제 어떻게 할까. 이래저래 일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마리사의 짐을 덜어낼 수 있었으니 오케이다. 으음... 일단은 마리사는 집까지 배웅해주고, 뭐라도 사서 지령전으로 돌아갈까.

 

"추, 추워. 뭐야? 왜 이렇게 추운거야?"

"엥?"

 

마리사의 말에 GUI를 통해 주변 온도를 체크한다. 잠깐만 있어봐. 영하 2도라고? 왜? 지금 한여름 아니었어?

 

"...아."

 

코 끝에 닿는 감촉. 문득 손바닥을 들어보니, 새하얀 눈송이가 손바닥 위에 내려 앉아 녹아내리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출발할때와는 다르게 구름이 잔뜩 끼어, 조금씩 눈이 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뭐야 이거. 지구 온난화의 영향인가? 아니, 아무리 그래도 한여름에 눈은...

 

"설마...."

 

그러고보니, 신키가 유카리와의 연락이 끊겼다고 했지. 거기에 이 날씨... 스멀스멀, 뭔가 불안한 예감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보통, 지금 올라오는 불안한 예감은 항상 맞더라

 

"마리사, 겨울옷 준비해서 합류하자. 하쿠레이 신사로 와."

"...알았어."

 

고개를 끄덕이더니, 마법의 숲으로 날아가는 마리사. 여름 복장이었는데 저렇게 날면 겁나 추울텐데, 괜찮으려나 모르겠네.

 

- 아이리.

- 마스터, 지저에도 급격한 온도 저하 현상이 발생하고 있어요.

- 우선 지령전 안에 난방 준비 해두고, 합류해줘. 하쿠레이 신사로.

- 알겠습니다.

 

인간 마을을 내려다보니, 뱌쿠렌과 그 제자들, 그리고 움직일 수 있는 마을 사람들이 마을 전체를 돌며 난방 준비를 최대한 빠릿빠릿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이렇게 급작스러운 이변인데도 저렇게 빠르게 대응을 하다니, 역시 산전수전 다 겪은 인간 마을이구만.

 

"또 시발 뭔 지랄이 나려고 이러는건지. 어휴 시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하쿠레이 신사를 향해 날아간다. 지금의 이 현상이, 정말 단순한 이상기후이기만을 바라며.

...절대 그럴 일 없겠지만.

 

 

 

 

 

 

 

 

 

 

 

 

 

 

 

 

 

 

 

 

 

 

 

 

AND

! 주의 !

이 글은 갈 곳 없는 망상을 때려박은 동방 2차 창작 소설입니다. 따라서 때때로 역겹습니다. 읽는걸 권하지 않습니다.

이 글에는 2차 창작에서의 터부(개인적 관점)인 오리지널 캐릭터, 줄여서 오리캐가 나옵니다. 우욱씹 소리가 절로 나올것으로 예상됩니다. 한번 더 읽는걸 권하지 않습니다. 욕설이 나옵니다. 좀 많이 나올 예정입니다. 또 한번 읽는걸 권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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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 걸린듯








































"오... 이건 참."

 

지하, 플랑도르의 방 근처.

파츄리를 구하고 난 뒤 내가 바로 향한 곳은, 플랑도르의 거처였다. 그대로 레밀리아를 상대 했어도 좋았겠지만, 가장 성가신 능력을 지닌 플랑도르가 갑자기 튀어나오거나 하면 어찌할 방도가 없기에... 물론, 그 역이 성립해도 내게 승기는 없겠지만.

 

플랑의 방 입구 언저리는, 일전의 그 '말랑말랑한 벽' 으로 감싸여져 있었다. 사쿠야의 시간 정지 능력으로 닫힌 공간의 단면은, 이렇게 말랑말랑하고 뚫을 수 없는 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물론,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벽을 물리적으로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 예를 들어 여기에 나이프를 던져 넣으면, 벽 안으로 들어가긴 하지만 아주 빠르게 그 자리에 멈춰버린다. 플랑은 이 멈춰버린 공간 안에 갇혀 있는 상태다. 아마 사쿠야가 필사적으로 탈출하면서, 그녀를 일시적으로 봉인한 거겠지. 다만...

 

"곧 깨지겠구만."

 

사쿠야가 정신을 잃은 탓인지, 혹은 안에 갇혀 있는 플랑의 능력의 영향인 것인지, 정지된 공간의 벽에 균열이 나고 있었다. 균열 자체는 크지 않지만, 아마 이 공간이 해제 되는 것은 시간 문제이리라. 결국 교전은 피할 수 없겠지.

...다만, 선공권은 나한테 있다. 이 기회를 살려 크게 우위를... 나아가선, 노 데미지 클리어를 목표로 삼자.

내가 사용 할 수 있는 것은... 파츄리의 원소 마법, 기. 그리고, 언젠가 한번 사용 했었던 '대상의 능력을 완전 카피' 하는 능력. 마지막껀 당장은 쓸모가 없고... 기는 최후의 호신술 같은걸로  그나마 쓸만한 패는 파츄리의 원소 마법인가. 눈동냥으로 익힌 것들 뿐이라, 당장 쓸 수 있는건 월부, 일부, 화부, 수부, 금부의 일부분뿐. 예상되는 가장 좋은 유효타는 아무래도 '태양의 마법'이지만, 사쿠야의 능력은 닫혀 있는 플랑의 방 전체를 감싸고 있다. 태양의 빛을 미리 비출 수 있는 방법은 없는 상태. 선공권이 있는건 좋은데, 정작 상황을 다시 보니까 딱히 유리한 것도 아닌 거 같은 느낌이 드는걸.

음... 방에 직접적인 데미지를 줄 수 없으면... 그 이외의 구역을 전부 장악하면 되지 않을까? 다행히 주변 지형은 이 휴대폰의 지도로 모두 파악되고 있다. 좋아. 생각난 김에, 재빨리 준비해 볼까.

 

 

 

 

 

 

 

 

 

 

 

 

 

 

 

 

 

 

 

 

 

 

 

 

 

 

"으아아아아아!!!"

 

- 콰아아아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무너지는 벽. 플랑도르가 정신을 차렸을땐, 이미 사쿠야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분명히 아까까지만 해도 있던 대상이 사라진 것에 의아해 하지만, 이내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고 무너진 벽을 걷어차고 방 밖으로 걸어 나온다. 그녀의 눈은 흰자위조차 붉게 물들어 있었고, 그 행동거지에는 이성을 찾아볼 수 없었다. '검은 기운'에 의해 능력은 강화 되었으나, 안그래도 능력 때문에 불안정하던 이성은 이미 제 기능을 수행하고 있지 못했다. 그저 본능에 따라, 부숴버릴 누군가를 찾아 배회할 뿐. 그러나,

 

- 철커덩! 슈우우욱! 

 

플랑도르의 머리 옆을, 거대한 무언가가 스쳐 지나간다.

 

- 콰아아앙!!!

 

그리고 복도에 울려퍼지는 굉음. 플랑도르가 돌아본 그 곳에는, 무언가 길다란 금속 막대기가 저 너머의 벽에 박혀 있는 것이 보였다.. 상황 이해보다 먼저, 그녀는 몸을 움직여 막대기가 날아온 방향으로 돌진한다. 그리고 그곳에는 옛날 시대의 공성전에서나 쓸법한 목제 발리스타만이 덩그러니 놓여져 있었다. 물론, 복도의 크기 때문인지 공성전에서 쓸 만한 정도의 크기는 아니었지만, 이 활시위에 걸려 있던 화살의 위력은 플랑도르에겐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크르르...!"

 

공격을 당한것에 대한 분노일까. 플랑도르는 거칠게 손을 휘둘러, 발리스타를 파괴한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 콰아아앙!!

 

"키이이이이이이이익!!!"

 

발리스타에 장착되어 있던 부비트랩이 폭발하며, 플랑도르의 몸에 자그마한 나무조각과 금속 조각이 후두둑 박힌다. 고통에 괴성을 지르는 플랑도르. 하지만, 고통은 아직 시작에 불과했다.

 

- 치이이이익---!!

 

"키이이익!?"

 

금속 조각이 꽂힌 상처부위로부터, 살이 구워지는듯한 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반사적으로 플랑도르가 그 상처를 상처쨰 몸에서 도려내자, 바닥에는 살점과 함께 소리의 근원이 드러났다.

'은'. 흡혈귀에게 있어서, 천적과도 같은 금속. 그런 금속이, 몸 안에서부터 그녀를 불태우고 있었다. 지금 상황이 무언가 위험하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감지한 플랑도르는 그 자리에서 벗어나려고 하지만...

 

- 딸깍! 콰아아아아앙!!!

 

돌바닥에 어떻게 설치를 했는지 알 수 없는 지뢰가 폭발하여 그대로 플랑도르의 발목을 날려버린다. 폭발의 충격으로 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지는 그녀의 몸에 이번엔 무언가 가느다란... 하지만 단단한 무언가가 걸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직후.

 

- 펑! 파바바바바박!!!

 

수백개의 금속 구슬이 날아와, 그녀의 몸을 벌집으로 만들어버린다. 게다가 이번에 날아온 금속 구슬 또한 전부 '은'. 순간적으로 너무나도 많은 데미지를 입은 플랑도르는 이젠 으르렁거릴 기운도 없는지, 지면에 엎드린채 움찔거리고 있었다.

그 때, 그녀의 귀에 들려오는 목소리.

 

"확인사살은 중요한 법이지."

 

- 탕! 탕! 탕!

 

저 멀리서 날아온 3발의 탄은, 정확하게 플랑도르의 머리를 3번 꿰뚫었다.

 

 

 

 

 

 

 

 

 

 

 

 

 

 

 

 

 

 

"허. 생각보다 엄청 빨리 끝났네."

 

- 삐융!

 

플랑에게서 흘러나오는 검은 기운을 마계신의 머리장식에서 뿜어져 나오는 광선으로 정화시키며 중얼거려본다. 사쿠야를 공격한 시점에서 이성을 잃었을거라곤 생각했고, 이성을 잃은 상대한테는 함정을 이용하는게 꽤나 유효할 거라고 생각해서 준비해봤는데... 설마 준비한 트랩의 절반도 안썼는데 무력화 시킬 수 있었을 줄이야.

....그나저나, 목부랑 금부 이거 개사기네. 마력만 있으면 총이나 트랩 같은 군사장비까지 만들 수 있을 줄이야. 거기에 금속 종류도 정할 수 있다니... 뭐, 화약만큼은 시간 내에 준비할 수가 없어서 화약류는 '기'로 대용하긴 했지만. 군대 있을때 내부 구조같은걸 알아놔서 다행이야.

 

"그럼 이제 남은건 레밀리아 뿐인가..."

 

플랑도르처럼 이성을 잃은채라면 상대하긴 비교적 쉽겠지만, 지금처럼 선공권이나 밑작업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올거 같진 않단 말이지... 뭐, 일단 가장 중요한건 레밀리아의 위치를 파악하는거다. 휴대폰이 제공해주는 지도 정보는 어디까지나 지형 정보까지. 누가 어디에 있는지까지는 당연하지만 알 수 없다. 단순히 생각했을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건 아무래도 레밀리아의 방 정도겠지만...

 

그 때.

 

"고마워. 덕분에 정신이 맑아졌어."

 

빠직, 하고. 몸 안에서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그 직후.

 

"크으으으으으으윽!?!!"

 

상상을 초월하는 격통에 그대로 무릎을 꿇는다. 숨도 안쉬어진다. 몸도 안 움직이고, 눈 앞이 번쩍번쩍거린다. 그럼에도 정신만은 멀쩡한게, 오히려 더 미칠 것 같다. 대체 무슨 일이...!?

 

"씨발!"

"?!"

 

- 탕! 퍼어어엉!

 

플랑의 가장 근처에 있던 하나 남은 트랩의 트리거를 쏴 맞춰 터트려, 그녀의 발걸음을 늦춘다. 자, 심호흡이다. 심호흡. 숨을 쉴때마다 몸의 고통은 줄어들고, 몸의 제어가 돌아온다. '기'를 습득했을 때 나도 모르게 습득한 기술로, 호흡으로 몸의 생명 에너지를 활성화 시켜 회복 속도를 증진시키는 것이다. 기존에도 마력을 호흡으로 회복했었기 때문에, 사실상 '호흡'이라는 행위가 업그레이드 된 것. 하지만... 지금 몸 상태로는 '기' 이외의 다른 기술들은 일시적으로 쓰지 못할 것 같은 직감이 들었다. 플랑의 능력을 고려하면, 죽지 않은 것 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겨야겠지만.

 

"켈록켈록... 놀랐어~ 설마 눈이 부서지고도 살아서 움직일 줄이야!"

"살아서 움직일 줄이야~ 같은 소리하고 있네. 좆같은년..."

 

그보다 좀 곤란하게 됐는걸. 안그래도 싸워서 이기기 힘든 플랑인데, 이쪽은 능력을 거의 다 봉인당했고, 저쪽은 도리어 이성이 돌아왔다. 그나저나, 분명 검은 기운을 제거했을텐데 왜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는거지? 아까전에 슬쩍 봤을 때, 그녀의 모습은 루미아나 치르노처럼 성장한 모습이었다. 복장도 새빨간 드레스로 바뀌어 있었지... 검은 기운은 옷도 바꾸어주는걸까.

어느쪽이던 저쪽은 아직 내게 적대적이다. 지금 상태에서 플랑을 이기려면....

 

"'그거'를 써볼까."

 

설마 이딴걸 쓰겠어? 라고 생각해서 지하 입구에 버려둔 '그것'을 떠올려본다. 내부 구조 같은건 잘 몰라서 대충 아는대로 만들어놔 아마 한발밖에 쓰지 못할, 조악한 모조품이지만... 하지만 맞추기만 한다면...? 어짜피 여기서 할 수 있는건 없다. 아까전의 '눈'의 공격으로 마법으로 설치해둔 모든 함정이 망가져버렸으니. 입구쪽엔 그나마 물리 공격 쪽 트랩이 남아 있으니 발 정도는 늦출 수 있겠지.

 

"크으으으~ 씨발! 달릴 때마다 몸이!"

 

마치 쥐가 났던 발로 움직였을때처럼, 발을 한발짝 내딛을 때마다 온몸에 전류가 흐르는 듯한 감각이 든다. 차라리 쥐가 난 것이면 다행이지만, 이 통증은 체내의 '부서진 마력회로' 끼리 부딪치면서 내는 것인 모양이다. 그나마 다행인건 고통과는 별개로 몸은 움직이고 있다는 점일까. 왠만하면 잠시 어디서 쉬면서 부서진 회로가 다시 수복되는걸 기다리고 싶긴 한데...

 

- 콰아아아앙!!

 

"어딜 그렇게 급하게 뛰어가는거야~?"

"씨발."

 

플랑의 느긋한, 하지만 살의로 가득찬 목소리가 휴식이라는 선택지를 찢어발긴다. 그 화려한 붉은 드레스와는 반대로, 격한 움직임으로 내게 달려오는 플랑. 솔직히 존나 무섭다. 내가 귀파주던 떄로 돌아가주면 안될까.

 

"슬슬 출구가...!"

"아하하하! 더 빨리 도망가지 않으면 붙잡힐 거라구!"

"아니 씨벌 존나 빠르네."

 

이쪽은 온몸의 격통을 참아가면서 전력질주 하고 있는데, 이걸 쳐 쪼개면서 따라붙어? 좀 많이 빡치는데? 아니,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존나 열받네? 좃같아서 저 히죽거리는 면상에 죽빵이라도 한방 갈기고 싶은 기분인걸.

...안할 이유는 없겠군.

 

"이--- 씨발련아!"

"웁!?"

 

- 빠아아아악!! 쿠우웅!!

 

기를 이용하여 이동방향과 속도를 그대로 반전, 그 기세를 몰아 플랑의 안면에 정권을 꽂아 날려버린다.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위력은 강했는지, 플랑은 그대로 벽에 세게 부딪친다. 의외의 기습이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통했군. 지하 입구는 저 모퉁이를 돌면 바로 앞에 있다. 아까의 손맛으로 보건데, 저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마지막 수단' 이라면 어느정도 먹힐 수 도 있을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죽이지는 못하더라도 큰 빈틈을 만들어 줄 수 있겠지. 문제는 어떻게 맞추냐...인데.

 

"찾았다."

 

지하 입구로 향하는 계단. 그리고 그 옆에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최후의 수단'. 몇걸음만 가면 바로 손에 들어올 수 있는 그 순간.

 

- 푸우우욱!!!

 

"으익!?"

"잡 았 다~"

 

왼쪽 종아리에 느껴지는 고통. 내려다보니, 새까만 긴 막대기가 종아리를 관통하여 그대로 땅에 박혀 있었다. 젠장, 고정 당했다! 억지로 하려면 할 수는 있겠지만, 이 고통...! 보통 막대기가 아닌지, 종아리로부터 극심한 고통이 밀려온다. 벗어나려면 종아리가 찢겨나가는걸 감수해야하지만... 지금도 이정도의 고통이다. 다리가 찢겨나가는 그 고통에 내 정신이 버틸 수 있을까? 씨바, 진짜 몇걸음 안남았는데...!

 

"잘도 레이디의 얼굴에 주먹질을 했겠다? 이번에야말로 너의 '눈'을 완전히 형태도 없이 박살내버리겠어."

"ㅈ됐노 씨발."

 

그래, 맞아. 아직 '기'는 쓸 수 있지. 몸에서 사출 시키지는 못하지만, 기를 땅에 퍼트려서 저 '최후의 수단'을 튕겨내는건 가능해. 하지만 과연, 내 '눈'이 작살나기전에 할 수 있을까? 아니, 할 수 있을까가 아니지. 해야한다!

 

"크으으윽!!"

"아하하~? 뭘 하려는진 몰라도, 늦었어! 자, 이걸로 네 '눈'을...!"

 

손바닥을 펼쳐 의기양양한 태도로 선언하려는 플랑도르. 하지만, 그녀의 말은 어째선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뭔진 모르겠지만 이걸로 틈이 생겼다!

 

- 티잉! 철컥!

 

"너... 어째서 '눈'이 보이지 않는거야?"

"알빠노 씨발. 뒤져!"

 

의아해하는 플랑도르를 일축하며, 기로 튕겨 내 가까스로 손에 들 수 있었던 '최후의 수단'을 그녀의 흉부를 향해 겨냥한다. 중량 16kg, 전장 39cm. 13mm 탄에 탄두는 은. 어디까지나 어느 신부를 사냥하기 위해 만들어진 총의 레플리카.

굳이 이름 붙이자면, '자칼 레플리카 프로토타입'.

 

- 쿠우우우우웅!!!

 

마치 대포라도 쏜 듯한 거대한 소리가 지하 가득 울려퍼지고, 손에 들려 있던 총은 슬라이드부터 시작해서 그 반동을 이기지 못하고 박살나, 재발사가 불가능 한 수준으로 망가져버린다. 반동도 엄청났지만, 쏘기전에 팔에 기를 두른 덕인지, 꼴사납게 넘어지거나 하진 않았다. 팔이 저리긴 하지만.

그리고 플랑의 가슴팍엔, 사람 얼굴 하나가 들어갈 정도로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어우야 씹. 파괴력 장난 아니네. 모조품의 프로토타입인데도 이 화력이라니. 좀 더 구조에 대한 이해를 높인다면, 보통 총 정도의 내구도 정도까진 끌어올 수 있지 않을까? 파괴력 보니까 실용화 마렵긴 하네.

 

"아..."

 

- 풀썩!

 

마치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입을 벌린채, 그 자리에서 풀썩 쓰러지는 플랑도르. 그런 그녀의 몸에선, 다시금 검은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를 마계신의 머리장식은 놓치지 않는다.

 

- 삐융!

 

마계신의 머리장식에서 뿜어져 나온 붉은 섬광은 순식간에 검은 기운을 소멸시킨다. 그리고, 플랑의 몸과 복장은 이전에 내가 알던 그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휴... 솔직히 이번 '검은 기운'은 여태까지랑은 변칙적이라, 이런식으로 재생이 진행되지 않을까봐 내심 걱정하고 있었는데... 좀 안심이 되는군.

 

"에고야 씨발. 디지겠다 진짜. 후우..."

 

털썩, 하고 제자리에 주저 앉아, 한숨을 크게 내쉬어본다. 솔직히 이번에는 진짜로 뒤지는거 아닌가 좀 쫄리긴 했는데, 어떻게든 됐구만. 아까전에 플랑이 내 '눈'을 한번 더 박살냈다면, 이번에야 말로 빼도박도 못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다만... 마지막에 플랑이 말한게 있었지. '눈이 보이지 않는다' 라고...

일전의 '적응 능력'이 역할을 수행한 것일까? 으음... 여전히 내 능력에 대해선 수수께끼가 많군. 정확한 효과를 알기 위해선 아무래도 이 힘을 부여했을 녀석 본인한테 물어보는게 최선이겠지?...근데 생각해보면, 걔는 일단은 그 세계의 '창조신' 이잖어. 그렇게 쉽게 만날 수 있는 존재인걸까? 마계에서의 하나님 같은거 아녀. 마계에 간다 한들...

 

"하아... 씹!"

 

- 푸우욱! 땡그렁!

 

아까전에 플랑이 던졌던 철봉 같은 무언가를 발에서 뽑아 아무렇게나 던진다. 이제보니까 저거, 플랑이 사용하는 무기잖아? 어쩐지 겁나 아프더라니.

 

"하아... 좀만 쉬다가 가자."

 

잠시 쉬는 동안에, 몸 상태를 점검해보자. 아까까지 플랑의 무기가 박혀 있었던 왼쪽 종아리는 더디긴 하지만 순조롭게 회복중. 저 무기 자체에 회복을 저하 시키는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다. 마력회로도 어떻게든 수복은 되고 있는 상태다. 다만, 여전히 '마력'을 사용한 무언가는 사용할 수 없을 것 같다. 기가 있으니 전투 속행은 가능하겠지만, 공중을 날지 못하고 강력한 원거리 공격을 할 수 없다는 부분은 좀 문제가 있다. 조금만 더 회복하면 기를 탄환처럼 발사할 수는 있겠지만, 아직까지 사거리는 짧을테지. 그나마 원거리 무기라고는 아까 만들어둔 예비용 권총 1정에, 탄은 3탄창 정도인가. 금부를 쓸 수 없기 때문에 탄의 보충도 불가능하고, 총이 망가지면 수복도 안된다. 탄창은 한 탄창에 17발에... 으음. 은 탄두니까 일단 맞출 수만 있어면 유효한 타격을 줄 수 있을거 같긴 한데. 애시당초에 거리를 못좁힐 것 같단 말이지.

 

"에휴 씨발."

 

생각해보니 마지막 남은 상대인 레밀리아는 '운명을 조종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 정확하게 어떤 능력인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고, 어떻게 강화되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예를 들어 '자신은 총을 맞지 않는 운명' 을 세팅해 놓는다면 진짜로 절망적일 것이다. 그리고 그 반대로 내게 '레밀리아의 모든 공격을 반드시 맞을 운명'이 세팅되면 솔직히 좀... 답이 없겠는걸. 아니 씨발. 그 검은 기운은 뭐길래 이전부터 사람 인생을 좃같게 만드는거람. 게다가 정체도 불분명하고.

대체 뭔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 짓 하고 있나 모르겠네. 그냥 레이무가 부활하는거나 기다릴껄 그랬나? 애시당초 이거 내 일도 아니었는데...

 

"으으..."

"깼냐."

 

생각보다 빠르게 정신을 차리는 플랑. 그녀가 고개를 들어 나를 보더니, 반가운듯 베시시 미소 짓는다. 아, 귀여워.

 

"그때의 그 인간이네? 홍마관, 돌아 왔었구나?"

"사쿠야도 그렇고, 어떻게 한눈에 알아보는거야? 나는 아직도 위화감 때문에 거울을 거의 못보는구만..."

"오래 살다보면 그정도는 보이게 돼... 그나저나, 나 왜 여기서 자고 있었던거야?"

"기억 안나?"

"응. 분명 사쿠야가 방에 찾아온 것 까진 기억 나는데...."

 

아무래도 사쿠야가 그녀를 봉인하기 직전까지는 기억을 하는 모양이다. 검은 기운에 잠식되고 나면 그 동안의 기억은 잃는건가...?

옷에 묻은 먼지를 털며 일어난 플랑은, 주저 앉아 있는 내 옆에 달라붙어 앉는다. 솔직히 아까전에 쳐맞던거 생각해보면 살짝 쫄리긴 하는데...

 

"미안. 거짓말이야."

"뭐?"

"사실 기억하고 있었어. 네 '눈'을 망가뜨리던 때부터."

"말의 뉘앙스를 들으니 자신의 의사는 아니었던 것처럼 들리는데."

"...무서웠어. 마치 남의 몸에 내가 갇힌 기분. 분명 내 목소리, 내 몸이었을텐데..."

 

살짝 떨리는 플랑의 어깨. 아무래도 두번째 각성 때 의식은 되돌아 왔었던 모양이다. 음... 의식이 살아 있는채로 몸의 의지를 뺏기는 경험이라...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무슨 최면물 동인지도 아니고 말이야.

 

"다 끝났으니까 괜찮아. 거기에 아무도 안죽었으니, 최고 아니겠어?"

"하지만... 네 '눈', 이렇게나 엉망진창인데..."

 

하며, 손바닥을 펼쳐보이는 플랑. 그런 그녀의 손바닥 위에, 금빛으로 빛나는 테니스공 정도 크기의 구체가 나타났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건, 내 존재의 본질. 플랑이 '눈'이라고 부르는 것의 정체였다. 자세히 보면 여기저기 금이 가 있고, 무언가 테이프 같은게 감겨 있다. 마치 응급처치라도 한듯한...

 

"이게 '눈'인가... 아무리 그래도 내 본질을 이렇게 물체로 보는건 묘한 기분이네."

"어!? '눈'이 보이는거야?!"

"어? 보이면 안되는거야?"

"언니한테도 몇번이고 보여줬는데, 안보인다고... 사쿠야나 다른 애들도 그랬구."

"그, 그래?"

 

짐작가는데는 있다. '적응 능력'. 플랑의 '모든 것을 파괴하는 능력'을 한번 먹어서, 거기에 적응해 버린 것이 아닐까. 으음, 그나저나 이거... 잘 보니까 구체라기 보단 무슨 글자의 뭉치 같기도 하고... 음...?

 

"잠깐만 그대로 있어봐."

"어? 어?"

 

당황하는 플랑은 잠깐 내버려두고, 손을 뻗어 나의 '눈'에 손대본다. 마치 내가 내 몸을 만진듯한 감각. 묘한 기분이로군. 어디보자... 글자 뭉치라기 보단, 무슨 종이를 몇겹이고 뭉쳐서 구체로 만든 느낌이구나. 이거 풀면 좆되는걸까? 솔직히 좀 궁금하긴 한데.

음... 왠지 괜찮을 것 같아. 해보자.

 

"에잇."

"!?!?!?!"

 

'눈'을 구성하던 종이(?)를 한장 떼어낸다. 거기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자열이 마구잡이로 나열되어 있었다. 마치 억지로 컨버팅 당한 문자를 보는 느낌. 혹시나 포멧을 다르게 한다면 보일까? 라고 생각한 찰나.

 

"어?"

 

마구잡이로 나열 되어 있던 문자열은, 내가 볼 수 있는 형태의 문장... 아니, 수치로써 변경되었다. 이건... 내 몸의 일부의 수치다. 왼쪽 종아리의 정보...인가? 근육의 어느 부분이 파열되어 있는지, 뼈에 금이 어느정도 가 있는지 등의 정보가 수치로써 빼곡하게 적혀 있다.

 

"이거..."


문득, 하나의 생각이 떠오른다. 떠올린 순간, 내 손은 '눈'을 빠르게 해체시키고 있었다. 갈라진 부분이 있으니 거긴 조심하면서.

 

"어?! 어어어어?!"

 

이 작은 구체를 얼마나 응축시킨걸까. '눈'은 줄어들 기세가 없고, 종이(?)는 한도 끝도 없이 나오고 있었다. 이대로는 끝이 없겠군. 우선 있는 '종이'를 이어 모아, 하나의 페이지로 만든다. 그리고 종이의 문자열을 마치 타블렛 PC를 조작하듯 옆으로 밀어내 종이에 공간을 만들어낸 뒤, 프로그램을 작성하기 시작한다.

일단 필요한 데이터를 저장할 변수를 만들고... 데이터 참조는 감으로 한다. 어짜피 내 몸이다. 원하는 정보는 알아서 불러오겠지. GUI 인터페이스는 얼추 RPG 느낌으로 하면 느낌이 살거 같고... 손으로 쓰는 것 뿐만 아니라, 생각만 해도 프로그램이 알아서 짜지는건,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는 환경이 '나 자신' 이라서 인걸까. 이거면 금방 하겠군. 5분이면 되겠어.

 

"저, 저기. 뭐 하는거야?"

"어? 아아, '스테이터스 창' 을 만들고 있어."

"스테...?"

"네가 꺼내준 '눈'은 나라는 존재의 본질을 구체로써 뭉친 것이었어. 그리고 본질이라함은, 그 용량의 최대 크기를 알 수 없는 '데이터 덩어리' 였던거지."

"데?이터?"

"응. 근본적으로 몸을 구성하고 있는 수치들이 이곳에 전부 기록, 수정되고 있었어. 몸 뿐만이 아니야. 기억, 지식, 경험. 그리고 능력까지. 아마 인격이나 '혼'도. 모든 것이 이 '눈'에 적혀 있었던거야. 뭐... 모두의 '눈'이 이런 형태일지는 잘 모르겠지만."

"으응...? 잘 모르겠어."

"그치? 나도 씨바 뭐라 씨부리는지 모르겠다 야. 뭐, 요지는 그거야. 이걸로, 나는 내 몸의 상태가 어떤지 바로바로 알 수 있게 되는거야."

 

게다가 GUI 제작 툴도 따로 작성해둔다. 이거라면, 지금은 만드는 걸 잊어버리더라도 즉석에서 원하는 정보를 한눈에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뭐, 지금 만드는 것 만큼 체계적으로 보여주진 않겠지만...

 

"...후우. 이런 느낌이겠지."

 

만들었던 GUI와 스테이터스 프로그램 Ver 0.1(beta)를 갈무리 한 뒤, 필요한 GUI만 표시한다. 거기에는 내 이름과 몸 상태만이 인체 모양으로 가볍게 표시되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가기 기능을 머리속에 입력하면... 끝. 당장 생각나는건 다 했다.

 

"'눈'이... 사라졌어."

"아, 외부에 간섭을 받지 않도록 방어코드를 심었어. 플랑 네가 마음만 먹으면 뚫을 수는 있겠지만... 뭐, 지금처럼 완전히 무방비인 '눈'의 형태로는 나오진 않을거야."

 

애시당초 그녀의 힘으로는 이젠 내 존재를 한번에 뭉갤 수 있을 수준의 '눈'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아까의 싸움 중 마지막 순간, 그녀가 나의 '눈'을 꺼낼 수 없었던 이유는 내가 추측한 대로 '적응 능력' 에 의해서였다. 아니... 정확하게는, '환경 적응 능력' 인가. 한번 들여다봤는데, 진짜 더할 나위 없는 사기 스킬이었다. 앞으로의 전술의 방침을 크게 바꿀 정도로.

 

"...자, 이제 남은건 레밀리아 뿐인데."

"언니도... 아까 나처럼 되어버린거야?

"그런거 같더라. 지금 니 언니 떄문에 환상향 전체가 붉은 안개로 가득하다구?"

"붉은 안개... 잠깐만, 지금 그 붉은 안개가 펼쳐진지 얼마나 된거야?"

"어? 글쎄. 아침 시간에 레이무랑 티키타카 하다가 안개가 퍼지는걸 봤으니까... 잠깐만, 지금 몇시야?"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해본다. 오후 7시 20분인가. 점심도 못먹었는데 벌써 저녁 먹을 시간이야? 안먹어도 되지만... 붉은 안개가 퍼진지... 얼추 10시간 쯤인가? 9시쯤에 레이무랑 만났으니까.

 

"대충 10시간 정도?"

"분명, 언니한테 들은 적이 있어. '내가 제대로 환상향을 먹어치우겠다고 생각하면 반나절이면 된다' 라고."

"혹시 언니가 중2병을 앓고 있니?"

"중2병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언니가 한 말은 허세가 아니야. 언니의 안개는, 마음만 먹으면 반나절만에 안개 속의 모든 생명을 빨아들일 수 있어."

"뭐?"

"직접 보여줬는걸. 식량 상대로."

"...좀 싫은 이야기를 들어버렸군."

 

어렴풋이 위험한거 아닌가? 라는 생각은 했지만... 거기다가 레밀리아가 검은 기운에 의해 강화되었다면, 이미 때가 늦은게 아닐까...  아니지, 그런 부정적인 시각은 지금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필요한건 정보.

 

- 아이리! 들려?

- 마스터? 어디서 말씀을 하고 계신거에요?

- 일종의 원거리 통신이야. 아무래도 너한테는 생각만 하는걸로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모양이더라.

- 지, 진짜요?

- 나도 능력 뒤져보다가 처음 알았어. 하여간, 레이무의 상태는 어때? 그리고 환상향 전반적인 상황도.

- 레이무는 3시간 전쯤에 치료가 끝나서, 지금은 쉬는 중이에요.

- 치료라고? 상태가 많이 안좋았나보네.

- 들이마신 안개가 폐에 들러붙는 바람에... 그리고, 야쿠모 유카리가 10분 전에 공유해준 내용을 공유해 드릴께요.

 

하쿠레이 신사 특파원(?) 아이리의 말에 따르면, 환상향 전역에 퍼져 있던 붉은 안개는 여전히 환상향 전체의 생명력을 흡수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몇몇 '안전지대'도 설치된 상태라고. 현재로썬 [인간 마을], [영원정], 그리고 [요괴의 산 전역] 이 안전지대라는 모양이다. 인간 마을은 유카리가, 영원정은 야고코로 에이린이, 그리고 요괴의 산은 천구들에 의해 안개를 막아내고 있다는 듯.

하지만, 그 외의 지역은 이미 한계를 맞이하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수많은 생명이 빼앗길거라고.

 

- 환상향 자체가 무너지진 않겠지만, 타격이 클거에요. 타임 리미트는... 1시간이라고, 전달 받았습니다.

- 오케. 너도 이쪽으로 돌아와. 같이 싸워야겠어. 너라면 안개는 문제 없지?

- 물론이죠. 금방 갈께요.

 

...좋아. 아이리한테도 복귀 명령을 내렸다. 지금부터는 시간 싸움. 50분 안에 결착을 지어야한다. 이렇게 말하니까 무슨 몬헌 같네.

 

"그럼 빨랑빨랑 해치워 볼까. 넌 어떻게 할래?"

".......도우려고 해도, 지금으로썬 발목만 잡을 것 같으니 여기서 쉴께."

"흠. 그러시던가."

 

그녀의 표정에는 피로감이 역력했다. 검은 기운에 잠식 되어 있었던 영향일까. 내심 도와줬으면 좋았을텐데 라고 생각이 들었지만, 생각해보면 '언니를 때리게 두진 않겠어' 라면서 막아서는 것 보단 훨씬 낫다. 그때, 그녀가 '아, 맞다'. 라고 말하며 내게 무언가를 건낸다.

...아까 내 왼쪽 종아리를 관통한 무기였다.

 

"이거라면 언니의 공격 정도는 몇번 막을 수 있을거야. 들고 가."

"그, 그려. 근데 이거 뭘로 만든거야? 금속? 같은데."

"내 뼈. 파츄리가 가공해준거야."

"보기와는 달리 통뼈시구만."

"그치-"

 

흡혈귀의 뼈는 가공하면 이런 금속같은 느낌을 낼 수 있는건가... 쓸데없는 지식이 늘었군.

 

"고맙다. 그럼 다녀올께."

"언니를... 부탁할께."

"오냐."

 

그 말을 뒤로 곧바로 정신을 잃은 플랑을 곁눈질로 확인하고, 지상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내 전공은 게임 제작. 그 중에서도 프로그래머 쪽에 치우쳐 있는 쪽이다. 원래부터 동방Project의 창시자인 ZUN을 동경하여 게임 개발에 몸을 담그려고 했었지만... 뭐, 여러 문제가 있어서 취직을 못했다.

스스로도 알고 있지만 고쳐지지 않았던 것이, '남과 합을 못 맞춘다' 라는 부분. 물론 일반적인 커뮤니케이션이나 평범한 부분에선 문제가 크게 없었다. 문제는, 업무적인 부분... 그러니까, 프로그래밍 파트. 스스로도 제어가 안될 정도로, 프로그래밍 과정에 있어서 나는 다른 사람들과의 기준을 맞추는 일을 정말 극단적으로 못했다.

이게 정말로 치명적인게, 내가 못맞춘다면 다른 팀원이 내게 맞춰줘야 프로그램이 성립이 되는 형태가 되는데... 때에 따라 비합리적이고, 의견이 갈릴 수 있고, 지나친 확장성을 고려한 스타일의 코딩을, 그것도 신입인 녀석을 중심으로 팀 전체가 따라간다고? 거기에 실력도 확실치 않은데? 말도 안되는 소리다. 애시당초에 1인 개발 이외에는 선택지가 없었던 걸지도.

 

이렇다보니 안그래도 취직이 어려운 상태인데, 상황이 이를 더 힘들게 만들었다. 집안 사정이 좀 급격하게 기울었던 바람에, 더 이상 하나의 길만을 관철할 수는 없어졌던 것. 그래서 그나마 연관된 일자리 여러군데에 이력서를 넣고, 면접을 하다가... 이쪽으로 날아오게 된 것이었다.

 

왜 이런 소리를 주저리주저리 했느냐. 당연히 이 스테이터스 창을 만드는데 든 속도에 대한 정당성을 어필하기 위해서지. 애시당초 '내가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만 있으면 어떻게 써도 코드로써 성립 되는' 형태였다. 거기에 머리속엔 게임 개발을 위해 조사했던 레퍼런스가 한가득. 눈 깜짝할 사이에 완성되는건 당연한 일이었던 것이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같은 상황이었어도 가능했으리라.

 

...뭐, 각설하고. 홍마관, 정문 인근.

 

아까 내가 벌인 파괴의 흔적을 바라보다가, 문득 하늘을 올려다본다. 치르노의 냉기결계로 막힌 안개가 주위의 빛을 차단하고 있고, 하늘 위 안개 사이로 살짝 뚫린 공간으로부터 붉은 빛을 띈 달빛이 비추고 있었다. 무슨 크툴루 신화 기반 TRPG에서나 묘사될 법 한 배경인걸.

 

"...우선 치르노부터 만나야겠군."

 

이번 이변에서 유일하게 공격적이지 않은 방향으로 진화한 개체, 치르노. 그녀가 만든 냉기의 결계가 없었다면 홍마관 내부에 있던 사쿠야나 마스터는 생존하지 못했으리라. 레이무까지 공격했던걸 보면, 제법 무차별적인 공격으로 보였으니까.

거기다 저 결계가 저 많은 붉은 안개의 입자들의 진입까지 막고 있다.  솔직히 저것들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레밀리아에게 흡수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평범하게 생각하면 파워업이겠지만... 그런 이유로 레밀리아와의 싸움이 끝날때까지, 치르노는 최대한 은엄폐를 하도록 부탁할 필요가 있다. 치르노가 쓰러지면, 당연하지만 이 결계는 사라질테니까.

 

그 때.

 

- 펄럭!

 

거의 무음이나 다름 없었기에 들려온 작은 날갯짓 소리. 그리고, 그 직후에 느껴지는 강렬한 '안 좋은 예감'. 살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위험하다. 이건...

 

"잠깐 잠든 사이에 재밌는 짓을 해주었구나, 잔챙이가."

 

- 피이이잉!!!

 

형언할 수 없는 굉음과 함께, 들려오는 소녀의 목소리. 소리를 듣자마자, 내 몸은 전속력으로 홍마관 내부로 도망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직후.

 

-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솨아아아아아...

 

마치 폭격이라도 당한 듯, 요괴의 호수의 물이 크게 솟아오른다. 폭발의 여파는 당연히 이쪽까지 도달했지만, 그 충격파는 어째선지 건물, 그리고 건물에 뚫어놨던 구멍으로 도망쳐 들어온 내겐 아무런 피해도 주지 않았다. 솟아올랐던 물이 마치 비처럼 쏟아져 내려오는 동안, 그 엄청난 파괴력에 내심 한숨을 푹 내쉬고 있었다. 솔직히, 어느정도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호수의 물을 통째로 증발 시켜버리는게 어디 있냐고. 그것도 한방에. 좀 너무한거 아냐?

 

"하아... 씨발..."

 

이젠 입으로 한숨을 내쉬며 다시 건물 밖으로 나선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치르노의 냉기의 결계가 사르르 사라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까의 일격으로 나가떨어진 모양이구만. 으음, 요정은 죽지 않는다지만, 아까의 그 공격으로도 안 죽는걸까. 좀 걱정되긴 하는데...

...아니지. 지금은 내 걱정을 먼저해야겠지. 저걸 던진 년을 상대해야하니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붉은 달을 등지고, 붉은 안개는 그것의 등 뒤로 흡수된다. 그 모습은, 마치 거대한 날개를 펼친 무언가.

 

스칼렛 데빌, 영원히 어린 흡혈귀. 레밀리아 스칼렛

 

하지만 의아하군. 저정도 충격파면 건물이 멀쩡할리가 없을텐데. 심지어 내가 구멍까지 뚫어 놓은 상태라, 개박살이 나야 정상일거 같은데... 마법으로 지켜지고 있나? 아니면... 이것도 레밀리아의 능력에 의한걸까. 그런거라면, 이 지형적 이점(?)을 살려야겠지.

 

"보자... 적당한 짱돌이..."

 

벽을 박살 내고 난 잔해에서 적당한 돌을 몇개 골라내 주머니에 넣거나 손에 쥐고, 저택 안을 달려 건물 실내에서 최대한 높은 위치로 이동한다. 뭐, 기껏해봐야 3층 정도지만. 그리고, 최대한 레밀리아가 보이는 위치로 이동한다. 제법 높은 위치에 있어서 위치 선정이 좀 쉽진 않은데... 다행히 어떻게든 각이 나오는군.

 

"선빵필승이라는 말이 있지."

 

창문을 연 뒤 오른손에 짱돌을 들고 온몸의 힘을 오른팔에 집중 시킨다. 중요한것은 테크닉이 아니다. 상대를 맞추는 '이미지'. 그 이미지만이 확실하다면, 몸은 알아서 따라올 것이다. 내 몸은 그렇게 설계 되어 있는 모양이니까. 노리는 것은, 심장. 앵간하면 이 한방에 모든걸 끝낼 거라는 생각으로!

 

"뒤져!"

 

- 파아아앙!! 퍼어어어억!!!

 

공기가 터지는 듯한 폭발음과 함께 쏘아진 짱돌은,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 그대로 레밀리아의 왼쪽 가슴에 적중한다. 하지만, 돌은 이내 가루가 되어 사라지고. 그녀의 그 붉은 눈동자는 나를 향하고 있었다. 드디어 이쪽을 봐주었구나?

그리고, 그녀는 마치 붉은 총탄이 된듯 이쪽으로... 씨발 직진해오잖아!?

 

"효과가 좀 너무 좋았는걸."

- 쨍그랑!!

 

창문을 통해 날아들어오는 레밀리아. 그 충격으로 복도 전체의 유리창이 깨지고 말았지만, 내 집 아니니 알바는 아니고. 나는 침착하게 보조용으로 남겨두었던 권총을 그녀에게 겨누고 있었다. 들어온 직후인 지금이라면 맞출 수 있을터!

 

- 탕!탕!탕!

 

양쪽 가슴에 한방, 머리에 한방씩 쏘는 모잠비크 사격법으로 그녀에게 총격을 가한다. 플랑에게도 은탄이 먹히는 것은 확인 된 상태. 맞추기만 한다면...!

 

- 파바박!

"뭐여 씨벌?"

 

하지만, 총알은 그녀의 앞에서 갑자기 부자연스러운 궤도로 방향을 틀어, 뒤쪽의 벽에 박힌다. 뭐지? 섹23스 피스톨즈인가?

 

"에잇."

 

- 탕! 팍!

 

시험삼아 한발 더 쏴봤지만, 총알은 또 이상한 방향으로 궤도를 틀어 벽에 박히고 만다. 이거... 아무래도 레밀리아의 능력인거겠지?

 

"소용없다. 내게 날아드는 공격은 이제 먹히지 않아."

"그럴 '운명'이라 이거겠지?"

"...흥. 파체나 동생에게 들었나보구나. 하지만 이해할 수 없군. 그걸 듣고도 내 앞에 섰단 말이냐?"

"뭘. 모기새끼 하나가 신기한 능력 가지고 있다고 해서, 달라질건 없다고 생각해서 말야."

 

사실 존나 쫄리고 있지만. 예상이야 했지만, 솔직히 이렇게 빠른 시간 내에 운명을 조종할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액티브한 능력은 아니었던걸로 알고 있었는데. 이것도 검은 기운의 영향인가?

 

"하. 모기라. 제법 허세를 부릴줄 아는 아녀자로군. 하지만 괜찮은가? 지금부터 그 '모기'의 손에 죽을텐데?"

"뭐여 씨벌. 일본뇌염모기였어? 안물리게 조심해야겠네잉."

"...하나하나 열받게 하는 말투로군."

"빡치라고 하는 말이니까. 잘 먹히고 있는 모양이라 기쁘네."

 

등에 대충 메달아뒀던 플랑의 검을 손에 쥔다. 이 서늘하고 묵직한 감촉... 소드마스터 우이로 돌아갈 때로군. 소드마스터였던 적은 없지만.

 

"일단은 물어볼께. 네가 환상향 전역에서 모으고 있는 저 생명 에너지. 저걸로 뭘 할 생각이야?"

"대답해줄 이유는?"

"없지."

 

어깨를 으쓱여보이고, 레밀리아를 향해 돌진한다. 그러자, 허공에서 수많은 붉은빛의 쇠사슬이 튀어나와 내 몸을 얽매려고한다. 그 수는, 피할 수 없는 수준. 물론, 어디까지나 지금의 속도로는 말이지만.

 

"축지."

"!?"

 

메이린이 썼던 기술, 축지를 이용하여 한순간에 레밀리아와의 거리를 좁힌다.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보이지만, 그녀의 몸은 누구보다 빠르게 나와 거리를 벌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대충 예상 했다 이거야.

 

"흡!"

 

레밀리아를 향해 플랑의 검을 던진다. 검의 궤도는 레밀리아의 심장으로의 직격 코스. 하지만 이렇게 던지는 칼조차 투사체 판정인지, 칼은 궤도를 틀어 레밀리아의 겨드랑이 아래를 스쳐지나가 바닥에 꽂힌다.

 

"머리가 나쁜 인간이로군."

"판단이 좀 이른걸."

 

플랑의 검과 내 오른손 사이에는 신축과 고정의 기를 부여해두었다. 그리고, 이렇게 오른손의 고정의 기를 해제하면?

 

- 슈우우욱!

 

"?!"

"그런 모기새끼! 수정해주겠어!"

 

- 빠아아아악!

 

검을 향해 몸이 고속으로 당겨지며, 순식간에 레밀리아와의 거리가 좁혀진다. 그리고 그 여세를 몰아, 레밀리아의 안면에 오른손 스트레이트 펀치를 갈겨준다. 수정펀치! 수정펀치!

 

- 쿠우우웅!!

 

안면에 주먹을 정빵으로 맞아버린 레밀리아는, 그대로 바닥에 부딪쳐 튕겨 나온다. 오? 이거 공중콤보 각인데?

 

- 촤라라락!!

 

하지만 그때, 붉은 쇠사슬이 그녀의 몸을 감싼다. 아니 이걸 공중 가드를 박네. 존나 치사한 새끼... 하지만 레밀리아를 안으로 끌고 들어온건 정답이었을지도. 큰 기술로 압도하려 들지 않는걸 보면, 홍마관을 망가뜨리고 싶어 하진 않는 모양이다.

 

- 피이이잉!!

 

들려오는 굉음. 마치 허물이 벗겨지듯 스르륵 풀려가는 쇠사슬 속에서, 거대한 붉은 창을 손바닥 위에 얹고 있는 레밀리아가 나타났다. 어... 생각했던거랑은 좀 다른데.

 

"궁그닐."

"씨발."

 

금방이라도 쏘아질듯한 붉은 창. 이쪽은 축지와 신축을 이용한 이동을 동시에 하는 바람에 저걸 피할만큼 빠르게 움직이기 힘든 상황인데...! 마력이라도 회복 되었으면 어떻게든 됐을거 같다만. 어찌됐던, 직격은 피할 수 없나...!

 

- 마스터! 충격에 대비해주세요!

- 으잉??

 

"번개여!!!!"

 

-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그때, 천장을 뚫고 내려친 붉은 번개가 그대로 레밀리아를 삼킨다. 그 충격으로 내 몸이 날아가긴 했지만, 저거에 말려든 것 보단 훨씬 낫다. 그보다, 이건...!

 

"아이리!"

"늦어서 죄송해요, 마스터!"

 

창문 밖에서 내게 손을 흔드는 붉은 머리의 소녀, 아이리였다. 그러고보니 합류하라고 이야기 했었지. 생각보다 빨리 왔는걸.

 

"일단 거기서 나와주세요! 곧 더 많이 내려칠거에요!"

"씨부럴."

 

프렌들리 파이어는 좀 에바지. 일단 급하게 창문을 통해 홍마관에서 나와, 정원으로 내려선다. 그리고 내가 나가길 기다렸다는 듯.

 

- 쿠르르르... 쾅!!!콰과광!!!콰아아아아앙!!!

 

마치 천지를 찢어놓으려는 듯한 기세로 붉은 번개가 내리쳐져, 레밀리아가 있던 곳을 몇번이고 부숴버린다. 이게... 아이리의 힘이라고? 존나 쌘데?

 

"흐에에에에..."

"?!"

 

갑자기 힘이 쫙 빠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 올려다보니, 아이리가 공중에서 그대로 낙하하고 있었다. 

 

"어이쿠, 씨발... 뭐야? 왜 그래 갑자기?"

"히...힘이 다해서..."

"...뭐? 설마 아까전의 공격..."

"네... 제가 알고 있는 가장 강력한 기술을 썼어요. 그래서 힘을 완전히..."

"......"

 

확실히, 위력은 대단했으니 이렇게 되는 것도 이해가 안가진 않는데... 설마, 어디 사는 멍청한 마법사처럼 이 한 스킬밖에 못쓴다거나 하진 않겠지?...나중에 물어봐야겠다.

 

"조...조금... 쉴께요."

"그려."

 

- 슈우우욱...

 

아이리의 모습이 마치 안개처럼 사라지고, 내 품속에는 그녀의 본체인 내 캠핑용 나이프만 덩그러니 남았다. 손에 쥐어보니, 여전히 아이리가 있는게 느껴진다... 음, 잠깐. 아이리를 쥔 손으로부터, 마력회로가...?

 

"오, 오오..."

 

작살났던 마력회로가, 급속도로 회복되기 시작한다. 갑자기 왜? 아이리를 손에 쥐어서인가? 이유는 당장은 확실하지 않지만, 어쨌든 이걸로 마법을 다시 쓸 수 있다. 그럼... 다시 재정비할 시간이로군. 아직도 모이고 있는 저 붉은 안개를 보아하니, 아까전의 뇌격으로 레밀리아를 쓰러뜨리진 못한 모양이니까.

 

일단 금부를 사용해 금속 쉬스를 만들어 아이리를 허리춤에 고정한다. 괜히 전투에 바로 썼다가, 쉬고 있는 아이리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지도 모르니까. 주무기는 아까 플랑에게서 받은 플랑의 검으로 충분하다. 원거리 공격은 통하지 않는걸 알았으니, 결국 근접 공격이 주가 되겠지. 최대한 보조를 위한 은제 무기를 많이 만들어놔야...

 

- 콰아아아아앙!!!

 

"생각보다 빠른데."

 

잔해로부터 쏘아져 나온 붉은 구체. 그 중심엔 당연히 레밀리아가 있었다. 아까보다 표정이 좀 굳어 있는걸 보니, 적잖이 빡친 모양인걸. 그나저나, 아까전의 그 뇌격을 맞고도 쓰러지지 않은거면... 대체 뭘 어떻게 해야할까? 흡혈귀 답게 심장에 말뚝이라도 박아야하나? 혹시 모르니까 만들어놔야지.

 

"방해하지마라...!"

"무리한 요구를 말씀하시는구만."

 

하늘을 가득 메우는, 사람 팔뚝만한 붉은 창. 아니, 형태를 보니 바늘인가? 그것들이 일제히 쏟아지기 시작한다. 이젠 진짜 앞뒤 가리지 않으려는지, 그 궤도에 끝에는 홍마관도 포함되어 있었다. 곤란한데. 궤도 상에는 사쿠야와 메이린이 자고 있는 방도 포함되어 있다. 제정신을 차리고 난 뒤에 지가 무슨 짓을 했는지에 대해 절망하는 그녀의 모습도 아주 조금은 보고 싶긴 하지만... 사쿠야에게는 빚이 있다. 어쩔 수 없지.

 

"뇌부."

 

아이리를 손에 쥐고 이미지한다. 그녀가 보여준 붉은 번개. 그리고 번개로 닿은 대상을 폭발시키는 이미지. 그리고 그 이미지의 연쇄. 아이리와의 종속관계를 통해, 그녀의 번개를 일부 빌릴 수 있게 된 모양이니, 잘 써먹어보도록 할까.

 

"인펄사의 부서진 마음."

 

- 퍼버버버버벙!!!

 

칼 끝에서 발사된 붉은 번개가 레밀리아가 만들어낸 바늘 하나에 닿아, 폭발을 일으키며 소멸한다. 그리고 그 폭발에 휘말린 바늘도 폭발을 일으키고... 연쇄 작용으로, 레밀리아의 바늘은 모두 폭파되었다. 연쇄폭발이라. 이것도 로망이지.

 

"뭣이...!?"

"자기 집 째로 박살내려고 하다니. 뭔 생각이냐?"

"...어짜피 이게 성공하면,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올거야. 그러니까 방해하지 마!"

"어이쿠 시발."

 

아까 전의 쇠사슬이 몇십가닥이 되어 내게 쇄도해온다. 그 끝에 달린 날은 크고 아름다워서, 몸 어디를 찌른다 해도 반으로 절단 당하겠지.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끝만 조심하면 파괴력은 거의 없는 셈.

 

"이럴떈 오히려 돌진이지."

"!"

"어금니 꽉 깨물어라잉?"

 

기를 이용하여 빠르게 도약하고, 비행 마법을 통해 이를 가속. 순식간에 레밀리아의 눈 앞까지 거리를 좁힌다. 그리고, 턱을 향해 수정 펀치!

 

- 빠아아아악!!

 

"큭!?"

"어따, 시원하게 박혔네. 그럼 한방 더!"

 

턱을 정통으로 맞은 탓인지 살짝 흔들린 레밀리아.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안면에 좌우로 훅을 갈겨준 뒤 멱살을 잡고 그대로 바닥으로 던진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거리가 어느정도 벌어진 시점에서 그녀의 몸에 아까전처럼 붉은 쇠사슬이 감싸지더니, 쇠사슬을 뚫고 나온 레밀리아가 자세를 되잡고 내게 달려든다. 제법 터프하신걸. 하지만, 예상한 바이다.

 

"나는 네게 '원거리 투사체'를 맞추지 못하는 운명인 모양이더라."

"!"

 

내게 달려들던 레밀리아는 보았을 것이다. 내 머리 위에 떠 있는, 수십개의 은빛 구체를.

 

"그럼 빔은 어떨까?"

 

- 삐융! 쿠구구구구구구...!!!

 

월부[엔드 오브 더 문라이트], 30발. 30개의 구체가 발사한 빔은 레밀리아를 중심으로 교차해, 지면에 닿아 작은 크레이터를 만들고 있었다. 빔은 굴절되지 않았다. 보아하니, 빔은 맞을 운명이었나보네. 치트를 칠거면 상황 설정을 좀 잘해놨어야지. 쯧쯧.

...근데 가만 있어봐. 이거 월부... 아냐? 레밀리아는 흡혈귀인데, 이거 먹히는거 맞아?

 

- 파아아아아아앙! 후두두두둑!!!

 

"으악 씨발 안먹히네!"

 

순간, 빔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붉은 폭발이 일어나더니 그 중심으로부터 엄청난 수의 파편이 쏟아져 나온다. 가까스로 피해보지만, 파편이 팔다리에 박히는건 피할 수 없었다. 게다가, 박힌 파편으로부터, 뭔가가 빠져나오는 이 느낌은...!

 

"애미 씨발. 좆같은 모기새끼!"

 

체내의 재생력을 최대한으로 올리는것과 동시에, 몸 표면에 화부로 불을 붙인다. 마력회로가 정상화되어 고통은 없지만, 생살 타는 냄새는 확실히 느껴진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것만으로 몸에 있던 마력의 1할이 빨려 나갔다. 아마 그녀가 흩뿌린 파편은 하늘위에 떠 있는 저 붉은 안개와 같은 성분, 즉 레밀리아의 몸의 일부였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판단이 늦었으면, 마력을 죄다 빼앗겼을지도 모른다.

 

"이제 장난은 끝이야."

 

날아올라, 나와 같은 높이로 올라오는 레밀리아.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 살의가 느껴지지 않는다. 왜지?

 

"덕분에 할당량은 달성되었어. 이걸로, 의식을 시작할 수 있겠네."

"...씨발."

 

...뭘 할건지는 몰라도, 당했다. 아까전에 내게서 빼앗은 마력으로, 아무래도 충분한 양의 힘을 얻은 모양이다.

 

"그래... 그렇겠네. 너는 이대로 두면 나를 계속 방해할테지. 그러니, 이렇게 해줄께."

"!?"

 

순간, 몸이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아니, 뭘 당했는지도 이해가 안되는데 벌써 수를 썼다고? 대체 무슨...!?

 

"너는 이제 나를 방해할 수 없는 운명이야. 받아들이도록 해."

"지랄났네 시발. 그래서 안 움직이는거냐?"

"이렇게 직접적인 운명 조작은 취미가 아니었지만... 지금은 좀 급해서 말야."

"씨발."

 

진짜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가 없다. '운명' 이라고 했지? 내가 그녀를 방해할 마음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이상, 움직이지 못하는건가? 게다가 운명이라면 내가 심리전을 걸 여지조차 없겠지. 어느쪽이던 내가 그녀를 방해할 의지를 가지고 행동을 하는 것 자체를, '운명' 단위로 막아 설테니까. 개사기 능력이잖아?

 

"이걸로... 드디어, 레이무에게 사과 할 수 있겠어."

"?"

"자, 시작하자. 이걸로 과거는 변할거야!"

 

레밀리아가 손을 뻗자, 엄청난 양의 마력이 가시화 되어 폭풍처럼 회오리 치기 시작한다. 과거를 변하게 한다고? '운명을 조종하는 능력'..., 운명이라는건 이미 정해져버린 과거는 바꿀 수 없지. 하지만 레밀리아가 이조차 변할 수 있다면.... 이건 이미 그 다음 단계다. 과연. 그녀가 환상향 전역에서 에너지를 모아온 건 이것 때문이었나...

하지만 뭐지? 이 불길한 예감은. 뭔가가 이상하다. 이 마력의 폭풍... 과거를 변하게 하는 능력이 발휘되려는 것 치곤, 지나치게 불안정하다. 마치, 다른게 간섭하고 있는 것 같은.

 

"...검은 기운?"

 

아무 생각 없이 무의식적으로 올린 그 단어. 하지만 그 단어로, 왠지 모르게 지금의 상황의 심각성을 이해했다. 여태까지 알 수 없었던 검은 기운의 목적. 만약에 레밀리아가 그 목적의 수단이었다면? 이 과거를 바꾸려는 힘에 간섭해서 '다른 무언가'를 하려고 한다면? 이정도의 에너지라면, 거기에 매개가 레밀리아라면, 솔직히 뭐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는 안되지."

 

여태까지 이렇게 말려들면서 몇번이고 생각했다. 내가 왜 이런 일에 말려들어야 할까? 그냥 붉은 안개고 뭐고 다 내버려둬도 되지 않았을까? 단순한 영웅심리로, 힘이 있기에 행동하려 했던걸까? 정말로?

...아니. 그렇지 않았다. 여태까지 그 답을 머리속에서 정리하지 못하고 있어 헤메고 있었을 뿐. 하지만, 지금은 알 수 있다.

 

나는 환상향이 좋다. 한 맥주 좋아하는 프로그래머가 만든 이 세상을 좋아한다. 거기에서 좌충우돌 난리를 치는 소녀들을 좋아한다. 그리고, 코이시.

그녀와는 아직 겨우 친구가 되었을 뿐이다. 좀 더, 아직 좀 더 그녀를 알고 싶다. 평소 취미는 무엇인지, 먹을 것은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좋아하는 장소는 어딘지. 그녀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이 산더미만큼 있는 지금, 나를 방해하려는 것을 눈앞에 두고 지나갈 정도로 인내심이 좋지 않다. 그러니까.

 

"방해하지 못하는 운명이라고 했던가?"

 

온몽에 힘을 주자, 몸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한다. 팔과 발목에서 무언가가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잘보니, 붉은 실이 양손발목에 묶여 있다. 과연, 이게 그 '운명의 붉은 실'인가... 그래. 아무리 신키가 준 '적응 능력' 이라 할지라도, [운명 조작] 같은 비상식적인 능력에 한방에 적응할 수 있을리가 없다. 그렇지만.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눈]의 기록에 따르면 내 운명은 이미, 레밀리아에 의해 크게 변성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운명을 바꾸는 능력 따위... 이미 적응했다.

 

"운명은 자신의 힘으로 만들어나가는거다. 망할 흡혈귀."

 

- 쩌저적! 파아앙!

 

운명의 붉은 실에 금이 가더니, 가루가 되어 터져 사라진다. 몸은 움직이고, 붉은 실에 의해 피를 흘리고 있었던 손목과 발목은 깔끔하게 아문다.

 

"뭐...!?"

"일단은 위험한 폭탄부터 제거해볼까."

 

등에 메달아뒀던 플랑의 칼을 쥐고, 폭풍의 중심, 즉 레밀리아의 손바닥 앞에 집중한다. 그러자, 무언가 하얀 구체가 보이기 시작한다. 저것이 '눈'. 지금 일어날 현상의 존재 증명. 플랑도르에게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능력'을 한번밖에 맞지 않아 '눈'을 관측할 수는 있되, 직접 간섭할 수는 없다.(내 '눈'은 내꺼라 간섭할 수 있었지만.) 하지만 내가 들고 있는 것은, 플랑도르의 뼈를 가공하여 만든 검. 이거라면!

 

"으랏차!"

- 까아아아앙!!!

 

플랑의 칼을 휘둘러 '눈'을 가격하자, 엄청 청명한 소리가 울려퍼지더니...

 

- 솨아아아아...

 

거짓말 같이 주변의 마력 폭풍이 싹 사라지고, 붉은 안개도 소멸한다. 그리고 무슨 원리에선지, 안개에 담겨 있던 생명 에너지도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제법 장관인걸. 하지만 아직 안끝났다.

 

"아... 안돼!"

"돼!"

- 꽈아아아앙!!

 

한번 더 플랑의 검을 휘둘러, 이번엔 레밀리아의 머리를 내려친다. 자고로 고장난건 내려치면 고쳐진다고들 하지.

아무래도 효과가 좋았는지, 머리를 맞고 기절해 떨어져 내려가는 레밀리아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흘려나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를, 마계신의 상징은 놓치지 않았다.

 

 

 

 

 

 

 

 

 

 

 

 

 

 

 

 

 

 

 

 

 

 

 

 

 

 

후일담.

 

며칠 후, 하쿠레이 신사.

 

"우으~..."

"......"

 

굉장히 어두운 표정의 레밀리아와, 무심한 표정으로 그 뒤에 서 있는 사쿠야. 그리고 그 맞은 편엔, 짜증을 참고 있는 레이무와 그 뒤에 대충 앉아 있는 나와 아이리가 있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미 레이무에게 전달한 상태다만, 레밀리아가 아무리 그래도 사과하고 싶다면서 쳐들어온게 지금 상황. 나랑 아이리는 놀러온 김에 개꿀잼 구경을 하는 중이다. 이렇게 재밌는 구경을 할 줄 알았으면, 코이시도 데려올껄 그랬나. 자고 있길래 두고 왔는데.

 

"뭐라도 말 좀 하지?"

"아우, 그, 그게..."

"......"

 

주인이 곤란해 하고 있음에도, 조용히 그 뒤를 지키는 사쿠야. 그냥 봐선 시종의 귀감이다만, 잘 보면 그 부드러운 시선이 레밀리아의 뒤통수를 향하고 있다. 저거, 곤란해하는 레밀리아가 귀여워서 가만히 놔두고 있는 모양인데... 직업 만족도가 굉장히 높아보여 참 부러울 따름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대로 계속 있으면 진행이 너무 더디겠군. 말문을 좀 트게 해볼까.

 

"그러고보니 레이무. 전에 홍마관에 소개장 써준거 고마워."

"하아?... 그러고보니 그랬지. 근데 갑자기 뜬금없이 왜 그래?"

"아니 뭐... 마침 고용주도 앞에 있겠다 싶어서. 거기에 덕분에 이렇게 환골탈태도 했잖아."

"아니, 아무리 그래도 보통 그렇게 되진 않거든."

 

질린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레이무. 처음에는 아무리 그래도 믿지 않았지만, 내가 찍어서 현상해준 사진 이야기를 하니까 어떻게든 믿어주었다. 참고로 그때의 사진은 아직 그녀의 방에 걸려 있는 모양. 마음에 들었었나보다.

그런 말을 하고 있자니, 레밀리아의 표정에 변화가 있었다. 저 표정은... 그렇군. 귀신을 본 표정이 저런 느낌일까.

 

"너....너!?"

"거 아가씨. 사람한테 손가락질 하는건 좀 예의가 없지 않아?"

"그때의 그 남자가 너야!?"

"이제야 눈치챘구만. 하긴, 겉모습만 보면 전혀 모르긴 할거야."

 

아직도 거울보면 깜짝깜짝 놀랜다. 슬슬 익숙해질만도 할텐데 말야.

 

"그보다, 사쿠야 너 이야기 안했어? 넌 알고 있었잖아."

"사쿠야?"

"아... 그, 죄송합니다. 경황이 없었던 지라."

"끄응..."

 

뭐, 실제로도 경황은 없었을 것이다. 요 며칠간, 사쿠야는 플랑에 의해 망가진 몸을 고치기 위해서 영원정에 입원해 있었으니까. 근데 그게 낫다니, 영원정은 대체 어떤 치료를 한거야? 솔직히 생활에 영구적인 장애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부상이었는데.

거기에, 그 때의 전투로 인해 홍마관은 여기저기 파손된 상태다. 복귀 직후에도 사쿠야는 바빴겠지. 레밀리아가 아무말도 못하는건, 아무래도 그런 정황이 있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사쿠야도 한눈에 보고 파악했는데 주인인 그녀가 파악을 못한건 좀 이상하긴 하네. 생각해보면 플랑도 한눈에 알아봤었잖아? 레밀리아, 생각보다 감이 좋지 않은 쪽일까? 아니면 사쿠야랑 플랑이 감이 좋은 편인걸까.

 

"뭐, 붉은 안개로 레이무 너한테 폐 끼친 것도 있겠지만, 내가 죽은줄 알고 사과하려고 했던 거 아냐?"

"그런거야?"

".......(끄덕)"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마치 물벼락 맞은 고양이 같은 행색으로 레이무를 올려다보는 레밀리아.

생각해보면, 이번 홍무이변도 그것 때문에 발생한 일이었다. 자신의 잘못으로 레이무가 맡긴 인간을 죽이게 해버린 것. 그 사실을 없던 것으로 만들기 위한 마음... 거기에 검은 기운이 파고들고 만 것이다. 타이밍이 안좋았던걸까.

 

...아니, 그럴거 같진 않군. 그런걸로 이변이 이렇게 완전히 재현되지 않을거고, 이번 싸움에서 레이무와 마리사가 홍무이변 중 만났던 녀석들이 하나같이 검은 기운의 영향을 받은 것도 설명이 되지 않는다. 검은 기운에는 무언가 법칙이 있고, 그 법칙을 따르는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만한 리턴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게 타당하겠지.

애시당초 검은 기운의 목적은 뭐지? 레밀리아의 '운명을 조작하는 능력'의 그너머, 과거의 운명까지 조작하는 능력을 발휘하면서까지 무엇을 하려고 했던걸까. 꺼림칙한 기분이 드는걸...

 

"우이!"

"아?"

"몇번이고 불렀는데."

"아, 쏘리. 생각 좀 하느라. 그래서, 무슨 일인데 레이무?"

"...이야기 안들었구나. 이 녀석의 처벌은, 네가 정하라는 이야기였어. 어떻게 할래?"

"음?"

 

귀찮은 듯이 어깨 너머의 레밀리아를 엄지로 가르키며 말하는 레이무. 참고로 그 레밀리아는 마치 벌받는 강아지 마냥 시선을 피하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어째 좀 불쌍하기도 하고... 아니지, 생각해보면 얘만 아니었어도 내 인생이 이렇게 꼬이진 않았을거 아냐?

...아니, 그것도 아닌가. 내가 그때 죽지 않고 홍마관에서 일한다고 해서, 내가 무사히 살아서 바깥 세계로 돌아갈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것은 그 누구도 보장해주지 않는다. 운명이라는 것은 그런거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레밀리아의 능력이라는건 의외로 꽤 애매한 느낌일 수도 있겠군. 그러니까, 실질적인 공헌도로써. 나처럼 운명 조작을 완전히 관측할 수 있는게 아닌 이상 진짜 능력이 발동 됐는지 확인할 방도도 없을거고...

 

"어찌됐던 니 몸이 그렇게 된건, 그리고 그 이후에 겪은 일은 얘가 원인인 셈이지. 이번 일의 전적인 피해자인 네가 그녀의 처우를 결정하는거야."

"참고로 대황갓무녀 레이무님께선 어떤걸 생각하셨는지요?"

"뭐야 그거.... 글쎄. 이번 일은 정말로 위험했으니까. 완전히 봉인시킬까 싶기도 해."

"oh..."

 

가차없구만, 레이무. 하긴, 하쿠레이의 무녀로써 이번 일은 쉬이 넘어갈 일은 아닐 것이다. 환상향 전역을 위험에 빠트린 거니까. 생각해보면 그 처우를 내게 정하게 하는 것도 꽤 큰 결심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처우라... 여기서 대충 대답하거나 레이무에게 떠넘기면, 진짜로 레밀리아가 봉인당할지도 모른다. 아니, 설령 실패한다고 해도 사이가 틀어질테니 결국 레밀리아와 레이무가 테에테에한 모습을 볼 수 없게 되는거지. 그건 인류적인 손실이다.

 

"음... 그럼, 홍마관 프리패스로."

"뭐?"

"에?"

 

의아해하는 레이무와 레밀리아. 아차, 조금 설명이 부족했나.

 

"뭐, 간단하게 말해서 홍마관에 자유롭게 출입하게 해달라는 이야기야. 정확하게는 마법도서관쪽이려나. 마법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서 말이지."

 

마법을 쓸 수 있게 되긴 했지만,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행히 배우는건 빠른 모양이니, 마법도서관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을 최대한 많이 배우고 싶다.

...검은 기운이라는게, 이번만 나타날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으니까. 최대한 힘은 키워놔야지.

 

"뭐, 덤으로 거기 애들이랑 노가리도 까고. 시간 되면 업무도 도와줄께. 괜찮지? 사쿠야."

"...나는 아가씨가 정한 일에 따를 뿐이야."

 

라고 말하는 사쿠야였지만, 살짝 안심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걸로 적어도 레이무가 레밀리아를 공격하진 않을테니까.

 

"그걸로 충분해?"

"그걸로 충분해. 애시당초, 대부분이 반쯤 사고같은거였으니까."

 

그리고 내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은 마리사였으니까... 아 참. 마리사도 만나봐야하는데. 뭐, 시간될때 가볼까. 폰 네비로 위치는 이미 확인한 상태다.

 

"그렇다고 하네. 이의는?"

"어, 없어."

"그럼 결정났네. 혹시나 나중가서 딴 소리 하면 말해, 우이."

"오냐."

"그럼 볼일 끝났으면 가봐~ 나 이제 장보러 갈거니까."

 

하늘하늘 손을 흔들어보이며 밖으로 나가, 그대로 날아가버리는 레이무. 날아가기 직전에 살짝 보였던 얼굴에는, 안도의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아무래도 레이무도 내키진 않았던 모양이네.

 

"자, 그럼 우리도 가볼까. 가자, 아이리. 올라온 김에 먹을 것 좀 사서 내려가자구. 사토리한테 돈도 받아놨어."

"네, 마스터."

"너희도 조심해서 돌아가. 다음에 보자구."

 

손을 흔들어보이곤, 이쪽도 하늘로 날아올라 인간 마을로 향한다.

 

"...어째서 이렇게 되어버린걸까나."

"마스터?"

"아니, 되돌아보니까 환상향에 온 이후로 이상한 일에만 말려드는거 같아서."

 

흡혈귀 눈에 띄었다고 인생이 꼬이질 않나, 한번 뒤지질 않나, 몸이 개조 되질 않나, 세계를 작살내버릴 레벨의 이변에 끼어들어서 해결해버리질 않나... 대체 시발 뭐가 문제인걸까 환상향은.

...뭐, 그래도 어쩌겠나. 좆같다고 콱 뒤져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사실 적응 능력 때문에 죽을 수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쩝."

 

시발 어떻게든 되겠지. 어짜피 깊게 생각해봐야 하등 쓸모가 없다. 지금은 눈 앞에 놓인 목표에나 집중하자. 환상향을 만끽하고, 환상향의 소녀들과 친해지면서, 코이시와 즐거운 나날을 보내는 것.

 

그것이 나의 환상들이니까.

 

 

 

 

 

 

 

 

 

 

 

 

 

 

 

 

 

 

 

 

 

 

 

 

 

 

환경 적응 능력(眞)

 

우이의 몸에 각인된 본래의 능력. '환경'에 적응하는 것 뿐만 아니라, 능력 소지자의 몸에 영향을 미친 능력에 대한 압도적인 저항력을 얻는다. 저항력을 얻은 상태에서 한번 더 그 능력의 영향을 받게 되면, 그 능력을 사용 할 수 있게 된다.

극단적인 예시로, 능력 소지자가 [죽음]의 개념을 겪고도 살아나면 죽지 않게 된다.

AND

! 주의 !

이 글은 갈 곳 없는 망상을 때려박은 동방 2차 창작 소설입니다. 따라서 때때로 역겹습니다. 읽는걸 권하지 않습니다.

이 글에는 2차 창작에서의 터부(개인적 관점)인 오리지널 캐릭터, 줄여서 오리캐가 나옵니다. 우욱씹 소리가 절로 나올것으로 예상됩니다. 한번 더 읽는걸 권하지 않습니다. 욕설이 나옵니다. 좀 많이 나올 예정입니다. 또 한번 읽는걸 권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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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만의 갱신




































홍무이변.

환상향 전역이 붉은 안개로 감싸여졌다고 하는, 임팩트는 확실하지만 '그래서 뭐 어쩌라는거임? 왜 문제인거?' 라고 묻는다면 살짝 미묘한, 그런 이변.
그런 홍무이변이, 이번엔 완벽한 치사성과 함께 화려한 컴백 무대를 장식했다. 안개를 들이 마실 경우, 즉각적으로 호흡 곤란에 빠지며, 안개와 격리 시켜 호흡 곤란을 안정시키면 이번엔 쇠약 증세가 찾아온다. 유카리 왈, 레이무가 아니면 죽었어, 라나. 레이무는 인간이 아닌걸까?
아무튼, 좀... 아니, 상당히 민폐다. 그리고 꼭 이런 아포칼립스 세계관에는, 꼭 한명이나 두명정도, 이러한 환경에서도 아무런 문제 없이 행동할 수 있는 인물이 있고, 그 녀석들이 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움직인다... 라는 스토리는, 이제와선 꽤나 진부한 이야기다.
문제는, 그 주인공이라는게 이번엔 나라는 것.

"*sigh*"

한숨을 푹 쉬며, 주위를 둘러본다. 이 언저리면... 마법의 숲 상공이로군. 본래라면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을 농도의 안개 속이지만, 내 눈엔 꽤나 맑게 보인다. 몸이 익숙해졌기 때문일까.
...익숙해졌다라. 그러고보면 구 작열지옥에서의 그 뜨거운 열기도, 공기따윈 통하지 않는 밀폐된 관 속에서도 나는 결국 '익숙해졌었'지.
가설이지만, 내 몸은 '익숙해 지는 것' 에 특화되어 있는 상태가 아닐까. 말하자면 적응? 뭐, 그런 느낌. 근데 뭐, 지금 그걸 생각해봐야 증명할 방도가 있는 것도 아니다. 다음에 신키에게 직접 물어보는게 더 빠르겠지.
아무튼, 현재 향하고 있는 곳은 홍마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변이 홍무이변인 만큼, 그 원인은 홍마관의 레밀리아 스칼렛에게 있겠지. 설령 아니더라도, 무언가 알고 있을 가능성은 크다.

"무언가 알고 있다... 인가."

분명, 아까전에 만난 야쿠모 유카리도 무언가를 알고 있을 것이다. 요괴의 현자, 행방불명의 주범, 틈새요괴. 그리고, 나를 이곳 환상향으로 데리고 온 주범(98% 확률로). 쇠약 증세에 빠져 있던 레이무를 치료해주고, '인간 마을은 괜찮다' 라는 말만 남기고 떠난 그 종잡을 수 없는 요괴를 떠올리니, 마치 이에 낀 고기 조각같은 찝찝함이 느껴진다. 마치 이변이 일어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한 말투. 뒤에서 얽혀 있었던건지, 아니면 뭔가 사정이 있었던건지...

뭐, 아무튼. 하쿠레이 신사엔 아이리를 두고 왔으니 자고 있는 동안 기습을 당하진 않을 것이리라. 아이리와는 멀리 떨어지면 안된다는 모양이지만, 이정도 떨어지는건 괜찮다고 한다. 나중에 재원을 확실하게 알아둬야겠는걸. 나랑 계속 함께 있어준다고 하고, 거기에 나를 '마스터'로써 생각한다면, 써주는게 예의일테니까.

"음?"

그때, 느껴지는 시선. 원래부터, 그러니까 환상향에 오기 전부터 시선에는 민감했다. 특히나 적의를 가진 시선은 더욱이. 지금은 그 시선이 어디에서 향하는지까지도 느껴진다. 몸이 이렇게 변한 덕분인건지.
떨쳐내고자, 조금 더 속도를 높인다. 그러자 지상에서 크게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시선의 각도가 정확하게 내 등뒤로 향한다. 지상에 있던 녀석이 하늘로 올라온건가. 과연, 이 환경 속에서도 문제 없이 움직일 수 있는 녀석이 나만은 아닌가보다. 그리고, 아마 내 편도 아니겠지. 내 편인 녀석이 저렇게 무시무시한 속도로 내게 따라붙으려고 하진 않을테니까.

"......으잉?"

슬쩍 뒤를 돌아보니, 새까만 구체가 나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처음엔 탄막의 일부인가 싶었는데, 그건 아니다. 저 안에 '시선의 주인' 이 있다. 그렇다는건... 루미아로군. 이것 참, 곤란한데. 홍무이변 시작 후에 처음으로 조우한 요괴가 루미아라니. 우연인가? 우연이라면 대단한 원작 리스펙트지만...

아무튼, 상대는 싸우기 위해 나를 향해 날아오고 있고, 나는 공중전에 익숙하지 않다. 아니, 애시당초 싸움에 익숙하지 않지만... 굳이 따지자면, 그렇다는거다. 그렇다면 최대한 시야가 트여 있는 공터 같은 곳... 저 언저리가 좋겠군.

"읏차... 어어어?! 후우..."

지상으로 착지...는 했지만 착지를 잘못해서 넘어질뻔 했다. 으음, 영 익숙해지질 않는다니까, 날다가 착지하는거. 하기사, 날기 시작한게 불과 몇시간 전인걸 생각해보면 당연한걸지도. 반대로, 왜 이렇게 능숙하게 날 수 있나 싶다. 돌아보니, 나를 따라오던 검은 구체도 다소 떨어진 거리에서 착지하여, 내게 다가 오고 있었다.

"그 새까만 구체에 속에 숨어서 싸우는게 니 전술이냐? 존중은 하지만, 그거 의미 있어?"

내가 살짝 비꼬듯 말을 걸자, 검은 구체는 그 자리에서 뚝 하고 멈춘다. 그리고 그 직후,

- 사아아아아악...

마치 녹아내리듯, 구체는 바닥에 가라앉아버리고 그 중심에 서 있던 소녀가 내게 빙긋 웃는다. 찰랑이는 긴 금발, 이전에 만났을때보다 훨씬 성숙한 바디라인. 그리고, 이전에 보았을떄보다 훨씬 '포식자' 다워진 붉은 눈.
해질녁의 요괴, 어둠을 다루는 요괴. 루미아. 내가 이곳에 환상들이 당하고 가장 처음 만난 지적생명체이자, 처음으로 마주친 위협이었다. 그보다, 예전에 봤을때랑은 분위기가 너무 다른데? 전에 봤을땐 천진난만한 아이었다면, 지금은...

"후후, 어둠속에서도 너무 잘 보여서 잊고 있었어."

...옆집 누나 같은 느낌이다. 이런 누나가 옆집에 있고, 자주 놀았으면 내 인생은 바뀌었을까?...아마 안바꼈을듯.

"전에 봤을때랑은 꽤나 다른 모습이네."
"전에?...우리 언제 본적 있던가?"
"이래서 가해자들이 문제야. 저지른 쪽은 기억을 못한다니까?"
"저지른 쪽... 아아, 혹시 이전에 잡아먹으려고 했던 그 인간? 중간에 무녀가 방해하는 바람에 실패했었지. 기억해."
"그래그래. 기억하고 있다니 다행이네."
"...하지만, 그때 먹으려고 했던건 분명 남자였을텐데, 너는....?"
"뭐, 이런저런 일이 있었거든."

...생각해보면 알아볼 수 있을리가 없네. 나 몸이 엄청 바뀌었잖아. 겉으로 보이는 성별까지 포함해서.

"그나저나, 왜 따라오는거야? 나는 댁한테 용무가 없는데."
"그게 말이지? 들어봐~ 갑자기 몸에 힘이 넘치기 시작한건 좋은데, 갑자기 배가 너무 고파지지 뭐야? 그러는 와중에 네가 지나가는게 보여서 말이야."
"호오. 그야말로 날아다니는 만찬이었겠군."
"그-런거지~"
"...그래서? 어떻게 먹으려고?"
"헤에, 먹혀주는거야?"
"그런건 아니고... 뭐, 어디까지나 호기심이지. 어떻게 먹힐지 궁금해서 말야."
"음~ 글쎄~? 나는 조리는 영 서툴러서 말야. 아마 생으로 먹을 것 같은데, 괜찮을까?"
"안된다고 해서 들어줄 거 같진 않은데.., 뭐. 하지만 순순히 먹혀주진 않을테니 너무 기대하진 말라고?"
"그런가~ 안타깝네... 하지만 좋은 기회야. 이 흘러넘치는 힘... 한번은 시험해보고 싶었어."

그렇게 말하며, 루미아는 자신의 손바닥 위에 어둠의 구체를 만들어내더니, 그대로 손아귀에 쥔다. 그러자, 어둠은 그 형태를 바꾸어... 검이 되었다.
오 씨발 뭐야. 그런것도 된다고? 존나 간지나는데? 내 중2병 심금을 울리는구만.

"아가씨, 이름은?"
"우이. 근데 너 이제부터 나 잡아먹는거 아냐? 굳이 이름은 왜 물어?"
"이 힘을 얻고 나서 사냥하는 첫 사냥감이니까. 기념으로 말야~ 그보다, 우이라, 좋은 이름이네."
"남들은 죄다 안어울린다고 웃던데."
"뭐 어때? 괜찮아... 그 이름조차도 함께 씹어 먹어줄테니까!"
"무례하긴."

검을 휘두르는 루미아. 휘둘러지는 어둠의 검은, 마치 채찍처럼 늘어나 그대로 내 목을 노린다. 하지만, 이번엔 무의식적으로 피하는게 아닌, 공격을 보고 내 의지로 행하는 회피 행동. 몸을 숙여서 칼날을 손쉽게 피한다. 유기의 힘을 베낀 이후로, 그녀의 힘이 몸 어딘가에 남아 있다는 실감이 있다. 뭐라고 할까, 30% 정도는 내 몸에 녹아들었다는 느낌?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신체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하고 동체시력 또한 동일하게 상승했다. 이게 30%라니 솔직히 말이 되나 싶긴 하지만.

"그거, 베이면 어떻게 되는거야?"
"한번 베여보던가!"
"싫거든?"

검을 마구 휘두르는 루미아. 검신이 탄력 있게 움직이다보니 그 궤도가 불규칙하긴 하지만, 못피할 정도는 아니다. 뭔가, 되는대로 휘두르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능력은 강화되었지만, 그걸 다루는 '경험'은 쌓이지 않았다는걸까. 하지만... 왜 갑자기 강화된거지? 이 붉은 안개의 영향인가? 아니면, 이변해결사들을 습격했다는 요정들에게 들러붙어 있었다는 '검은 기운'의 영향? 하지만, 유기때랑은 다르게 루미아와는 대화가 성립하고 있다. 개인차가 있는걸까,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있는건가... 아차차, 그런 생각을 할 정도로 여유가 있진 않았지, 지금은.

안타깝게도 내가 지금 당장 가능한 것은 근접 공격 뿐이다. 하지만 저렇게 대놓고 위험해보이는 어둠의 검을 휘두르는 루미아를 상대로, 근접 공격이라... 별로 내키진 않는데. 원거리 공격을 할 수 있는 수단은 없을까? 탄막... 은 당장은 시도도 해보고 싶지 않다. 지난번에 사용 했을때 리스크가 너무 컸던걸 고려하면. 그럼 뭐... 바닥에 떨어져 있는 돌이라도 던져야겠네.

"흡!"

크게 휘둘러지는 루미아의 검을 굴러서 피하며, 바닥에 떨어져 있는 돌을 줏어 그녀에게 던진다. 피융- 하며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날아간 돌맹이는, 그대로 루미아의 어깨에 명중... 하기 직전에, 어둠에 막힌다. 하지만, 둔하게 들려오는 타격음. 어둠에 가로 막혀서 어느정도로 데미지를 입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느정도 데미지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것 만으로 충분하다.

"어디보자..."

루미아가 다시 공격해 오기 전에, 던질만한 돌을 최대한 많이 줏어 주머니에 넣는다. 왠지 어렸을때 돌 주워서 주머니에 넣던 때가 생각나네.... 그때는 왜 그랬었더라? 이제와선 기억도 안난다.

- 투두둑!

"윽!?"

순간, 돌을 주우려는 손 바로 앞에 새까만 표창 같은게 여러개 꽂힌다. 반사적으로 물러나 앞을 보니, 고통으로 표정을 일그러뜨린 루미아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어깨는 마치 대물저격총에 맞은 것 마냥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데미지가 있을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저정도로 치명상을 입힐 줄이야? 대체 무슨... 설마, 유기의 힘이 이정도로 강한건가? 이거 30% 정도일텐데?

"죽인다... 죽여서 먹는다...!"
"...이거야 원."

온몸으로 살의를 내뿜으며 자신의 몸 주변에 어둠을 전개하기 시작하는 루미아. 아까의 여유는 온데간데 없고 거의 반쯤 이성을 잃은 상태인지, 무언가를 계속 중얼거리며 내게 한걸음씩 다가오고 있다. 압도적인 적의에 온몸에 오한이 들지만, 머리속은 매우 침착하다. 주머니에 챙겨 놓은 돌은 3개... 저 상태의 루미아에게 이걸 빗맞춘다면, 목숨이 위험할테지. 하지만, 맞추기만 하면 된다. 맞추기만 하면, 내기 이긴다.

"흡!"

주머니에서 손을 빼며 팔을 휘두르자, 루미아의 어둠은 반사적으로 앞으로 향해, 매우 두꺼운 어둠 장막을 만들어낸다. 그렇겠지. 한번 당한걸 또 당할만큼 어리석지는 않다는 거겠지. 다만,

"!?"
"훼이크다 이 병신아!"

루미아가 내가 돌을 던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건, 내가 빠르게 그녀의 옆으로 돌아 들어간 시점. 즉사는 조금 곤란하니, 노리는건 다리, 그리고 허리!

- 슈슉!

재빠르게 어둠의 장막이 그녀를 감싸지만, 한박자 늦었다. 둔한 파열음과, 소녀의 비명이 숲을 가득 메우고, 그녀를 감싸고 있던 어둠이 완전히 걷힌다.

"...오, 오우."

무릎 아래의 다리 부분은 저 멀리로 날아가고, 허리쪽이 움푹 파인채 루미아는 그 자리에 쓰러져 있다. 인간형 요괴는 아무래도 그 신체적 구조가 인간과 비슷해서 그런걸까, 척추를 박살낸 탓인지 몸을 전혀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이걸 노린거긴 하지만, 실제로 저지르고 보니까 꽤나 참혹한 광경이다. 애시당초에 이거, 이미 즉사급인데? 뭐가 '즉사는 조금 곤란하니' 냐...
...뭐, 어쩌겠어. 안그랬으면 산채로 잡아먹혔을텐데.

- 스스스스...

그때, 루미아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올라온다. 아까전에 루미아가 사용하던 어둠과는 다른, 어딘가 불길하게 느껴지는 그 기운. 유기를 상대로 이겼을때도, 유기의 몸에서 저런게 피어 올라왔었지. 그때는 아이리가 해결해줬지만... 지금은 어떻게 해야할까.

- 키이이잉...!

갑자기 주머니에서 엄청난 열이 느껴진다. 반사적으로 주머니에 손을 넣어 열원을 꺼내보니, 일전에 신키에게서 받은 머리장식이 강렬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에...에이쟈의 적석!"

※아닙니다.

- 삐융! 치이이익!

한줄기의 빛이 머리장식에서 뿜어져나와, 그대로 검은 기운을 지져 없애버린다. 그리고는 다시 빛을 잃고 잠잠해지는 머리장식.
이건 또 뭔 상황이여. 자동 방위 시스템같은거라도 설치되어 있는걸까? 그 창조신이 마계의 창세기때부터 계속 착용하고 있었던 물건이라고 했으니, 어떤 장치가 설치되어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거란 생각은 들지만.

"그런거라면 밖에다 꺼내둘까."

뒷머리를 정리하고 신키의 머리장식으로 머리를 묶는다. 그나저나, 아까전에 루미아가 공격하려고 들때는 왜 발동하지 않았던걸까? 저 검은 기운에만 반응하는건가...? 점점 저 검은 기운의 정체를 알 수가 없어지는데.

"어라?"

문득 루미아를 보니, 그녀의 몸에 입힌 상처가 모두 깔끔하게 사라져 있었다. 여전히 기절해 있낀 하지만... 요괴의 재생력?...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빠르고. 검은 기운이 빠져나가면 그전까지 받았던 데미지는 사라진다... 라는 법칙인걸까? 만일 그렇다면 꽤나 편리한 시스템이로군.
그나저나, 신사에서 출발한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이런 상황이... 왠지, 격하게 지령전으로 돌아가고 싶어지는데. 으음... 그냥 내팽겨치고 돌아갈까? 영 위험해보이는데...

"...쩝."

입맛을 쓰게 다시며, 홍마관을 향해 다시 날아오른다. 이번 이변이 그 '검은 기운'이 연관되어 있다면, 정보를 얻을 수 있을 때 얻어두는게 좋다. 지저에, 그런 사건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거라는 보장이 없으니까. 그리고 이대로 포기하면, 그거야말로 대참사다.

 

"귀찮네..."























홍마관 인근, 요괴의 호수.

"하아..."

꽝꽝 얼은 호수의 기슭에서, 숨을 뱉어본다. 아직 날이 쌀쌀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일단은 봄이다. 오히려 초여름이라고 해도 좋겠지. 그런데 이렇게 하얀 김이 나오는건 말도 안되지 않나? 아무래도 호수 주변 온도가 다른 곳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낮은듯 하다. 다행히 신체 기능의 저하는 아직 일어나고 있지는 않지만, 이정도 추위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

"치르노...겠지, 이건."

이 인근에서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녀석은 그 녀석 밖에 없다. 얼음의 요정, 치르노. 이 무식하다고 해도 될 수준의 냉기를 보아하니, 그 녀석도 검은 기운의 영향을 받았을 확률이 높다. 그렇다는건 즉슨, 지금 상황에 검은 기운의 영향을 받은 녀석들은, 홍마향 스토리 라인의 보스들이라고 생각해도 되겠지.

싸우지 않고 그냥 보내준다면 좋겠지만, 과연 어떨지... 적어도 내가 여태까지 만났던 검은 기운과 관련된 개체는, 전부 호전적이었다. 기대는 별로 하지 않는게 좋으리라. 어디보자, 여기서부터 홍마관에 어떻게 가는게 좋으련지. 치르노에게 들키지 않고, 곧바로 홍마관에 진입 할 수 있는 방법이라 하면...

"초고도에서의 직선 낙하를 통한 진입..."

치르노에게 들키지 않을 정도의 고도까지 날아 올라 직선 낙하로 곧바로 홍마관으로 진입하기 위해선, 상당한 비행 컨트롤이 필요 할 것이다. 문제는 그것 뿐만이 아니라 착지를 어떻게 할까, 다. 아직 착지하는데에 익숙하지 않은 상태에, 그런 걸 했다간 직선 낙하가 아니라 직선 추락이다.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조금 무모한 작전인 거 같은데... 하지만, 다른 방법이 당장 떠오르질 않는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어느쪽이던, 일단 이 근처를 벗어나야한다. 요는 치르노에게 들키지 않고 접근하는게 대전제이기 때문. 어디보자, 일단은...

"어디로 가느냐? 홍마관은 그쪽이 아니라 이쪽일터인데?"
"....쯧."

생각하기가 무섭게 바로 걸려버리네. 좀 너무한거 아닌가.
돌아보니, 아까전의 루미아와 비슷하게 상당히 성숙해진 모습의 치르노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루미아와는 다르게 그녀에게선 살의나 적의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뭐냐, 무녀가 아니지 않느냐. 나는 또 하쿠레이의 무녀가 찾아온줄 알았건만."
"레이무는 아마 이렇게 무식하게 키가 크지 않았을텐데 말이지."
"그랬던가? 뭐, 이 몸이 작을땐 전부 다 커보였으니 말이지. 하여, 그대는 이런 곳에 어떤 일로 찾아온거지? 이 붉은 안개속을 유유히 걸어다니는 모습을 보아하니, 평범한 인간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만."
"뭐... 사정이 있어서. 입장으로 치면 레이무 대신이라고나 할까."
"호오, 그런가. 그렇다면 환영하지. 홍마관까진 내가 안내할터이니, 따라오게나."
"너는..."
"아, 그러고보니 통성명을 하지 않았군. 내 이름은 치르노. 보다시피 최강의 요정이라네. 그대의 이름을 들려주지 않겠나?"
"우이. 그렇게 불러줘."
"음. 잘 부탁하네, 우이."
"나야말로, 치르노."

기품있게 고개를 숙이며 내 말에 답하는 치르노. 음..,. 뭔가 내가 생각했던 치르노의 상이랑 많이 달라서 당황스러운데. 중간중간에 치르노다운 편린이 보이긴 하지만.
치르노를 따라, 꽝꽝 얼어붙은 호수를 가로지른다. 얼음빙판 위를 걷는데도 이렇게 미끄럽지 않은건, 치르노가 내 앞을 걸어가면서 일부러 지면(?)에 얼음가루를 뿌려두어, 넘어지지 않도록 마찰력을 키워준 덕분이다. 감각으로 따지자면 마치 모래사장을 걷고 있는 느낌이다. 그러고보면...

"그러고보니, 이 호수 안쪽에는 붉은 안개가 끼질 않았네."
"음. 저건 우리들 요정에게 있어선 독 그 자체니까. 물론, 이 몸은 최강이니까 저정도 안개에 소멸하진 않아. 하지만..."

치르노가 바라보는 시선을 따라가보니, 거기에는 어디서 줏어왔는지, 드럼통에다가 장작을 넣어 불을 떼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불 근처엔, 꽤나 많은 수의 요정들이 모여 있었다. 다들 평범한 요정인것 처럼 보이는데...

"저 녀석들을 버릴 수는 없어서 말이지. 그래서 호수 전역에 이 몸의 힘을 전개해 둔 상태이니라. 그 흡혈귀의 피 따위는 이 몸의 힘으로 얼릴 수 있으니까."
"호오... 셸터구나, 여기는."
"그런 셈이지. 하지만 아쉽게도 이 몸은 얼리는 것 밖에 하지 못하니까 말일세... 이 추위는 저렇게 자기들끼리 어떻게 할 수 밖에 없는 상태라, 조금 마음이 아프군."
"흐음... 하지만, 내가 알기론 요정은 죽어도 죽는게 아니라며? 이런 말 하면 거슬릴지도 모르지만,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아?"
"...그대는 말을 고르지 않는 편인가 보군. 하지만, 그 말도 일리는 있지. 평범한 상황이라면, 말이지."
"평범? 그럼 지금은 평범하지 않은 상황이라는거야?"
"음."

고개를 끄덕이며, 홍마관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치르노.

"이 안개는 흡혈귀인 레밀리아 스칼렛의 혈액. 그리고 흡혈귀는, 빼앗는 힘을 지니고 있지. 힘도, 양분도, 그리고 존재도."
"요정은 자연현상의 발현... 존재를 빼앗긴다는건 즉 소멸...."
"그런 이야기일세. 그래서 이렇게 녀석들을 지킬 수 있는 방벽을 만들어둔게지."
"과연."

치르노가 레이무를 기다렸던건, 그런 이유인가. 이 현상을 해결하려고 나서려면, 호수 주위의 결계를 해제하고 홍마관으로 쳐들어아가야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이 안에 있던 요정들은 전부 소멸한다... 라는건가. 확실히, 곤란하긴 하겠군. 그래서 대신 이 현상을 해결해줄 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라는 거겠지.
...음? 가만 있어봐. 그럼 홍마관 전역을 이 결계로 감싸면 환상향 전역으로 퍼져나가는 안개를 막을 수 있는거 아닌가?

"치르노, 이 결계 말인데. 혹시 더 넓힐 수 있어?"
"음? 불가능하진 않네만..."
"그럼 이 결계로 홍마관 전역을 감싸면, 안개가 환상향 전역에 퍼지는건 막을 수 있는거 아냐?"
"호오... 과연. 막는데만 급급해서, 거기까지 생각은 못했군."
"할 수 있겠어?"
"음. 하지만, 이미 늦은게 아닌가? 이미 바깥으로 나가버린 안개는 어떻게 하지 못하네만."
"아니, 레밀리아가 저 안개로 에너지를 흡수한다면, 반드시 본체에게 돌아가야 할 필요가 있을터. 그걸 막는 것 만으로도 상당히 도움이 될거야. 그리고 그 사이에, 내가 레밀리아를 칠게... 아니, 그 이전에. 홍마관까지 결계를 확장 시킨다면, 같이 쳐들어갈 수 있는거 아냐?"
"글쎄. 해봐야 알겠지만, 지금보다 결계가 넓어진다면 나는 거기에 집중을 해야하네. 아마 전투는 힘들걸세. 맡기지."
"그런가... 그럼 어쩔 수 없지... 근데, 이거 이렇게 쉽게 믿어주는거야? 내가 이대로 도망갈지도 모르잖아."
"흐음. 그러니까 지금, 본인이 그렇다고 고백하고 있는건가?"
"아니, 그건 아닌데... 어디까지나 그럴 가능성이..."
"네가 그렇지 않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은가? 어째서 그런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군."
"뭐..."

이런 부분은 요정답다고 할까. 의외로 순진한걸... 뭐, 이렇게 전면 협력 해준다는데 마다할 이유도 없다. 오히려 이쪽은, 치르노가 내 뒤통수를 칠 것을 감안해야하는 상태이지만...
...그럴거였으면 진작에 공격했겠지. 이러니저러니 해도 나도 좀 나이브한건가.

"그럼 잘 부탁할께, 치르노."
"음. 건투를 비네. 간다!"

치르노가 눈을 감고 손을 앞으로 내밀자, 그녀의 얼음 날개가 환하게 빛나더니 결계의 범위가 점차 넓어지기 시작하고, 이윽고 홍마관 전역을 삼키는 것이 보였다. 이걸로, 레밀리아의 안개가 이 이상 환상향 밖으로 퍼져나가진 않을 것이다. 자, 그럼 나는 내 일을 해볼까.






























홍마관 정문 앞.
치르노의 냉기는 확실히 레밀리아의 안개와는 상성이 좋은지, 그녀의 결계 내부에선 시야가 굉장히 맑다. 물론 나는 안개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지만... 아무튼 그렇기에, 이 거리에서도 그녀의 모습이 잘 보인다.
금색 별이 달린 베레모, 그리고 치파오...라고 해야하나? 아무튼 중국풍의 복장을 입은, 붉은 머리의 여인, 홍 메이린. 지금와서 그녀를 쿠레나이 미스즈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겠지.
하지만 이 거리에선 그녀가 검은 기운의 영향을 받았는지, 받지 않았는지 구분하기가 어렵다. 외견으론 크게 변화가 없는 것 같은데... 그나저나, 무슨 회피 불가능한 게임 이벤트 npc 처럼 문 앞에 딱 서 있으니, 영 껄끄럽네. 왠만하면 안싸우고 지나가고 싶은데 말이지. 내 목적은 어디까지나 이 붉은 안개를 막는거지, 홍마관의 인원을 모두 쓰러뜨리는게 아니니까. 뭐, 치르노 덕에 반쯤 성공한 느낌도 들긴 하지만.
대화가 통하면 좋겠는데...

"....!?"

한걸음 걷자마자, 순간 온 몸이 무언가에 짓눌리기 시작한다. 마치, 중력이 적어도 10배는 된 것 마냥 몸이 무겁다. 그리고 온몸의 감각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말라고 경고 하고 있다. 이건... 메이린이 무언갈 하고 있는건가!?

"윽...!?"

꽤나 여러번 말하는 것 같아서 끈질기다고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신키에 의해 부활한 이후로, 내 신체능력은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당연히 거기엔 눈도 포함되어 있어서, 적어도 50m 이상 떨어져 있는 지금 이 위치에서도 메이린의 머리카락 갯수를 셀 수 있을 정도로 눈이 좋은 상태다. 그렇기에,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메이린은, 자고 있다. 자면서 침입자를 막는다니, 그야말로 문지기의 극의가 아닐까?
일단 걸을 수는 있으니, 좀 더 가까이 가야... 으윽...!?

"몸이... 말을 안들어...?!"

아래를 내려다보니, 마치 지나치게 무거운 물건을 들었을때처럼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있었다. 젠장, 이래서야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일단 몸을 움직여야 하니, 조금만 뒤로... 흐으으으읍!!!

- 철퍼덕!

"어우! 씨발! 좆되는줄 알았네!"

두, 세발자국 벗어난 것 만으로, 온몸을 짓누르고 있던 무언가가 사라져 나도 모르게 입에서 욕지거리가 여과없이 튀어나온다. 생각해보면 딱히 여과하려고 한 적도 없었던거 같군. 몸을 일으키며 몸에 묻어 있던 흙을 털어낸 뒤, 다시 한번 메이린을 본다. 음, 여전히 자고 있군. 무언가를 한것처럼 보이진 않는데. 아까 그건... 일종의 결계 같은거였던걸까? 가까이 오는 자를 짓누르는... 뭐, 결계이던 패왕색 패기이던 중요한건 메이린에게 가까이 가려고 하면 이런 일이 발생한다는거다.
가만 있어봐. 그럼 메이린이 없는 위치에서 진입 하면 되지 않을까?


- 5분 후 -

안되는 모양입니다.
모든 방향에서 접근을 시도 해보았지만, 가까이 갈 수록 몸을 짓누르는 감각이 심해져 나아갈 수가 없었다.
심지어 실제로도 힘이 가해지는 모양인지, 얼음 호수 위에서 접근하려다가 발밑의 얼음이 깨져 이 날씨에 수영을 하고 말았다. 어째선지 금방 말라서 감기 걸리거나 동상 걸릴 일은 없어 다행이지만...

"흐음... 이래서야 다가가지도 못하자녀. 씨벌."

화풀이로 길바닥의 작은 돌을 걷어차본다. 갑자기 코이시를 걷어찬 기분이 들어서 묘한 죄책감이 드는건 왜일까.
코이시라... 원래 동방을 알던 때에는 최애캐라고 막연히 생각했지만, 코이시를 실제로 보고 있는 지금은 난 그녀에게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걸까. 환상향에 환상들이 하고서 쭉 정신이 없었으니까 생각할 겨를도 없었지만...
실제로 그녀를 봤을때, 조금 이상한 여자애 정도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아니, 조금일까? 무덤을 파헤치고, 명백하게 사람이 들어 있을 관을 뜯어서 나를 꺼냈으니까.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것도 무의식적으로 행한걸까? 무의식이라, 마법의 단어로군.
아무튼...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지만, 계속 지내다보니 나의 생각은... 뭐,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하지만 자기 능력이 안통할때마다 분해하는 모습은 귀엽고, 얼굴도 귀엽고, 몸짓 하나하나가 귀엽다. 아무튼 귀엽다. 보고 있으면 질리지가 않을 정도로. 나는... 코이시를 좋아하는건가? 아직 만난지 기껏해봐야 한달이 덜 지나서, 아직 친하다고 부르기도 조금 애매한 느낌이 없지 않아 있는데... 으음, 이것저것 재는 성격인지라 영 이런 부분에선 확실하게 마음의 정리를 못한다니까. 지금 날아가는 저 돌맹이처럼 인간관계도 가볍게 생각 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
...가만, 돌맹이가 날아가네? 메이린의 패왕색 패기는 어쩌고?

"설마..."

아까전에 루미아한테 던지려고 줏어놨던 돌맹이를 주머니에서 꺼내, 가볍게 메이린의 머리 옆, 그러니까 홍마관의 정문을 향해 던져본다.

- 까앙!

고속으로 날아간 돌맹이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철문을 직격하여, 크고 거슬리는 소리를 울리게 한다. 메이린의 이 기운은, 무기물에는 통하지 않는건가...? 아, 하긴. 생각해보면 메이린의 기운이 모든 것을 짓누른다면 이미 이 주변의 지형이 변해 있어야 정상이다. 그렇다면 방침은 정해졌지. 노리는건... 다리!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고 싶었던 꿈을 담아...!"

그럴싸한 투구 폼으로, 메이린의 다리를 향해 돌맹이를 전력투구한다. 뭐, 정작 나는 야구 룰도 제대로 모르지만.

- 피융!

하지만 위력 자체는 엄청났는지, 돌맹이가 지나간 조금 후에야 흙먼지가 크게 휘날릴 정도로 빠른 속도로 돌맹이는 메이린의 다리를 향해 날아간다. 또 그 그로테스크한 광경을 보겠지만... 요괴니까 그정도로는 죽지 않겠지?

- 빠아아악!!!! 휘잉!

그리고 착탄과 동시에, 내 오른쪽 머리 옆을 무언가가 초고속으로 스쳐지나간다. 그리고 무심코 오른쪽 귀를 만져보니... 내가 알던 형태가 아닌, 상당히 축소된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리고, 손을 보니 피가 잔뜩.
고통은 거의 없다. 하지만, 잠깐이지만 의식이 멀어지고 수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뭐지? 귀가? 반 고흐? 뜯겨져나갔어? 뭐에? 내가 던진 돌맹이? 무심코 던진 돌맹이에 개구리가 죽는다? 개구리도 몰리면 문다? 아니 이건 아닌데? 메이린이 받아쳤어? 하지만 자고 있었잖아? 설마 몸이 멋대로? 그게 돼? 사람 맞아? 사람 아니잖아? 잠깐만 혹시 일어나 있

"지금은 시에스타 중이니, 조금만 조용히 해주겠어? 가능하면 영원히."

그때, 사고를 끊어내는 차가운 목소리. 어느샌가, 내 배엔 가늘지만 단련의 흔적이 보이는 팔이... 꽂혀 있었다.

"커....억...?!"
"이것만으로는 조용해주지 않을거 같으니... 조금만 더 일할까."

고개를 들어보니, 어디까지나 졸린듯한 얼굴로, 하지만 확실한 살의를 가진 푸른빛의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온몸에 무언가가 흘러들어온다. 따뜻한... 아니, 뜨거운 기운이... 게다가 엄청나게 요동쳐서, 마치 다음 순간에 폭발해버릴 것만 같은...!
이거 설마, 채광연화장!?

"크아아아아악!!!....어?"
"어?"

그때, 나도 메이린도 당황한듯 '어?'라는 소리를 낸다. 나의 경우는 방금전까지만 해도 폭발할 것 같았던 기운이 한순간에 사그라들어서. 메이린도... 비슷한 이유겠지. 그리고 어느샌가, 내 배를 꿰뚫고 있던 메이린의 팔은 그대로 절단되어 있었다. 빠르게 거리를 벌리는 메이린. 하지만 그녀의 팔 절단면이, 무지개색으로 빛나고 있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저렇게 보니 파문질주로 당한 상처 같구만.

"상처가...?"

양복 윗도리랑 와이셔츠에 뚫린 자국은 나있지만, 정작 메이린의 팔에 의해 꿰뚫린 상처는 온데간데 없었다. 그리고 이, 몸에 넘쳐나는 기운은...
...과연. 아무래도 내가 아까전에 세웠던 가설은 맞았던 모양이다. 최악의 방법으로 증명되고 말핬지만...

"적응 능력..."
"큭... 대체 뭐냐, 너는!"
"피콜로이신가? 무슨 팔이 벌써 자란대?"

잘려나갔던 팔이 벌써 재생된 메이린이 내게 소리친다. 그나저나, 이렇게나 메이린과 가까이 있는데 아까전의 그 패왕색 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고보면 메이린이 기습했을때도 느끼지 못했지. 그 기운은, 자고 있을때만 발산하는건가...? 그렇게 생각하면, 오히려 지금이 상대하기 편하다.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죽인다, 같은 소리하는건 아니지? 그만두는게 좋을껄. 아무래도 내 몸은, 같은 수가 두번은 통하지 않는 모양이니까."
"뭐라고?"
"그... 아무래도 적응해버린 모양이거든. '기' 라는거에 말야."
"뭐..."
"아니, 진짜라니까? 이런 것도 할 수 있게 됐다고. 봐봐?"

양손을 들어올리고, 그 손에 무언가를 감싸는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러자, 양손을 일곱빛깔로 빛나는 기운이 감싼다. 오오, 뭔가 될거 같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진짜로 되는구나. 존나 신기한데?

"기를...?!"
"야 ㅋㅋ 이게 되네. 아무튼, 좀 지나갈께. 댁네 주인한테 용무가 좀 있어서 말야."
"내가 순순히 지나가게 할거라고 생각하나?"
"안하지. 그러니까 이렇게 하는거야."

- 파아앙! 빠아아악!

다리에 기를 모아 마치 총알처럼 몸을 내던져, 그대로 메이린의 몸통에 옆차기를 갈긴다. 날아가는 속도가 생각보다 상당히 빨라서 발차기 하는 타이밍을 놓칠뻔 했지만... 몸이 멋대로 움직여줬다. 하지만 이정도 속도여도 반응이 가능한지, 메이린은 양팔을 교차시켜 내 발차기를 막았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 없다. 아까 내 몸을 날려버린 기술과 같은 원리로...!

"펑!"

- 파앙!

발바닥에서 작게 터지는 무지갯빛 기운. 그것이 그녀의 팔을 날려버리진 못했지만, 그 충격은 컸는지 팔의 가드를 풀어버린다. 아무래도 이 '기'라는 거, 온 몸으로 내보낼 수 있는 모양인데...

"그렇다면 이런 것도 가능하겠지!"
"뭣...!?"

공중에 붕 떠 있는 내 몸의 윗부분을 억지로 기로 짓눌러, 몸을 강제적으로 땅바닥에 착지시킨다. 그리고 그 다음, 몸을 돌리면서 일으켜 그대로 기를 담은 팔꿈치로 메이린의 몸을 가격. 그녀의 몸은 크게 밀려난다. 괴로워하는 표정을 보니, 꽤 쌔게 들어간 모양. 조금이라도 게임을 아는 사람이 내 움직임을 봤다면, 마치 게임처럼 모션 캔슬한 것 처럼 보였겠지.

"한번 더!"
"큭!?"

한번 더 발 밑에 기를 터트려, 빠르게 메이린을 향해 날아간다. 그리고 그녀는 또 다시 방어 자세를 취하지만...

"는 뻥이고!"
"?!"

공중에서 한번 더 기를 터트려, 메이린의 머리 위를 넘어간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돌맹이를 꺼낸다. 이건 못튕겨내겠지!
...조금 플래그 같은데, 이거.

"흡!"

- 피융! 파박!!!

"크윽, 비열한 놈!"
"기습한 놈이 할 소린 아니거든!"

피할 타이밍을 주지 않고 던진 돌맹이었지만, 급소를 빗겨나가 적중하여 다소 피해는 적어보인다. 심장을 노리고 던진건데, 옆구리에 맞았나... 그 짧은 순간에 몸을 비틀어서 맞을 위치를 바꾸다니. 쌓아온 경험이 다르다는 걸까? 어느쪽이던, 부상을 입힌 지금이라면 밀어붙여서 어떻게든 쓰러뜨릴 수 있지 않을까?...아, 생각해보니 얘 팔이 잘린 다음 순간에 재생됐었지. 의미 없구만.
그럼 어떻게 해야... 이 기라는걸 써서 어떻게든 할 수 있지 않을까? 으음, 떠올리는거다. 서브컬쳐에 대가리를 담군지도 어언 20년, 이쯤되면 유효한 사용법 정도는 나와야 정상이지 않겠어?
...전혀 안떠오르는데요. 기껏해야 아까전처럼 기로 억지로 몸을 움직이는 것 밖엔...

"이번에야 말로 완벽히 조용하게 만들어주마!"
"어? 야, 잠깐만! 나 아직 대책 안 떠올랐는데?!"
"문답무용!"
"뭐, 그렇게 나오시겠죠..."

이렇게 된 이상, 흐름에 맡길 수 밖에 없나. 메이린의 움직임도 보이기 시작하고 있으니... 아니, 그건 원래부터 보였었지. 가만, 그럼 왜 처음에 기습을 당한거야? 아무리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곤 하지만, 시선은 계속 메이린에게 고정하고 있었는데. 아무리 요괴라도, 잔재주 없이 순수한 신체 능력만으론 아까전의 메이린의 움직임을 체현하긴 힘들 것이다. 기를 이동한 고속 이동...? 그런게 있다는걸까? 아까 비슷한걸 시도해보긴 했지만, 그정도까진 아니었다고 생각하는데...
으음, 아까는 단순하게 생각난대로 써본 느낌이었으니, 좀 더 진지하게 해볼까. 발밑에 기를 터트리는게 아니라, 좀 더. 섬세하게. 마치 기로 탄성 있는 신발을 만들듯이... 탄성?

"오오..."

만들다 만 '기의 신발' 로 발을 굴러본다. 그러자, 발에 감은 기가 기세 좋게 발을 지면에서 튕겨낸다. 기로 탄성도 줄 수 있구나. 처음 알았네. 생각보다 만능이잖아? 탄성... 탄성이라 하면...

"아하♣ 그런 좋은 예시가 있었지?♠"
"뭣...?"
"아, 암것도 아냐. 그럼 이만."

다리에 기를 휘감은 뒤 전속력으로 홍마관의 반대편으로 달려간다. 제발, 눈치 채지 않기를...!

"순순히 도망가게 둘거라고 생각하나?"
"야! 문지기면 문을 비워두면 안되는거 아냐!?"
"일리있는 말이지만, 지금 당장 너를 처리하면 문제 없지 않겠어!?"

그것도 좀 그럴싸 하긴 하네.
메이린은 전력으로 도망가는 나를 계속 쫒아오고 있다. 내가 스타트가 빨랐는지라 아직까지 붙잡히진 않았지만, 메이린의 발걸음도 빠르다. 아까의 기습공격과 같은 움직임으로 내게 접근하지 않는걸 보니, 역시 사전준비가 조금 필요한 기술인 모양이다.
한 70m 쯤 갔을까. 문득, 기를 휘감은 다리를 크게 잡아당기는 감촉이 느껴진다. 으음, 탄성을 부여한 기의 장력은 이정도 거리쯤이 한계인가... 뭔가, 좀 더 기에 대해 연구하면 장력을 좀 더 늘릴 수 있을거 같은 감각은 느껴지지만 지금은 이정도로 충분하다.

"문은 문지기로 열어야 제맛이지."
"뭣?"
"뭐, 보고 있으라구. 마침 위치도 딱이네."

뒤를 돌아보니, 메이린이 내 등 뒤에서 나를 붙잡으려고 손을 뻗고 있던 때였다. 그 열렬한 마음에 응답하듯, 나는 그녀의 손을 붙잡고, 그대로 그녀에게 몸을 던진다.
출발 지점에 고정 시켰던 기를 해제하면서.

- 슈웅!

여태까지 느껴본적 없는 힘으로 몸이 당겨져, 메이린을 말려들게 한 채로 엄청난 속도로 문을 향해 날아간다. 그리고, 그 기세를 유지한채 그대로...

- 파아앙!! 콰아아아아아앙!!

홍마관의 정문을 부수고, 홍마관의 외벽과 내벽을 몇개나 부순 뒤에나 멈출 수 있었다. 나는 몸 전체를 기로 감싸고 있던 덕에 데미지가 거의 없었지만... 메이린은 아니었는지, 배가 움푹 파인채 기절해 있었다. 아니, 거의 죽은건가? 생각해보면 벽이랑 기를 두른 내 몸 사이에 끼여서 몇번이고 데미지를 입은거니...

- 스스스...

그때, 그녀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검은 기운. 그리고 다음 순간,

- 삐융! 치지지지직...

머리장식에서 아까처럼 레이져가 발사되어, 검은 기운을 그대로 소멸시켜버린다. 아까보다 반응 속도 빨라지지 않았어?

"그나저나, 꽤나 다이나믹하게 엔트리 해버렸네."

지나온 길(?)을 돌아보며 중얼거려본다. 무슨 만화에서나 볼 광경을 눈앞에 두고 있으니, 영 실감이 안난단 말이지. 뭐... 일단은, 그거다.

"이 승부, 어쨌든 저택에 들어온 나의 승리네♠"

우이, 판정승...!(의미불명)

...뭐, 농담은 집어두고. 주위를 둘러본다. 내가 지나온 자리는 폐허가 되어 있었지만, 이 방은 눈에 익다. 아마 여긴 내가 사쿠야에게 안내받은 방... 뭐, 아닐 수도 있지만 그게 중요한건 아니다. 생각해보면 여기에서, 나는 레밀리아를 기다리기로 했었지.
근데, 일이 이렇게 되어버릴 줄이야... 게다가 이번에는 다른 이유로 레밀리아를 찾아왔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뭔가 이상한 기분이다. 저번에는 취직때문에 왔었지.

"취직이라..."

여기에 처음 찾아왔을때는 한달간 살아남기 위한 일터로써 찾아왔지만... 이번에는 문지기로 문을 연 것만으로도 모잘라, 그대로 저택을 파손시키고 무단침입이라. 이거야 원, 취직하기는 글러먹었구만. 자, 그럼 이제 어떻게 한다. 저택에 들어오는건 성공했지만, 꽤나 화려하게 입장해버렸다. 눈치를 채고 누군가 요격하러 올지도 모르겠는걸... 아무도 없긴 하지만.

"...여긴?"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다소 익숙한 풍경임을 깨닫는다. 기억나는 방이다. 여기는... 그래, 내가 사쿠야에게 안내 받았던 그 방이다. 다이나믹 엔트리로 다소 어질러졌지만, 이 가구 배치와 풍경... 틀림 없다. 거기에, 확실한 증거가 하나.

"바스켓..."

사쿠야가 내게 가져다 줬던 빵이 담긴 바스켓이, 침대 옆 선반 위에 그대로 놓여져 있었다. 내가 놓은 위치다. 한달이 지났는데,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니... 거기에, 빵에는 전혀 상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방부제를 미친듯이 넣은거거나, 아니면.

- 몰캉~

"기, 기묘한 감촉이네."

바스켓 주변에 손을 갖다대니, 마치 보이지 않는 무언가로 만들어진 벽에 닿은 것과 같은 감각이 느껴진다. 굳이 따지자면... 그래. 달리는 자동차에서 유리창 밖에 손을 뻗었을때 느껴지는 그 감각. 그러고보니 그거, 속설에 의하면 가슴을 만지는 감촉과 비슷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즉, 지금 나는 가슴을 만지고 있는건가!

 

"...가슴...아니, 시간 정지 능력인가."


...그렇군. 사쿠야는 언제든 내가 돌아와서 빵을 먹을 수 있게 조치를 취해둔건가. 특정 공간을 시간정지 상태로 만들어 놓은거겠지. 하지만, 나는 오피셜하게 한번 죽었으니 꽤 의미 없는 짓인거 같은데. 감상인가? 아니면 레밀리아의 지시인가? 어느쪽이던, 나쁜 기분은 들지 않는군. 왠지 미안해지기도 하고.
그때, 복도쪽에서 누군가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온다. 슬슬 이 굉음을 듣고 누군가가 찾아올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그나저나, 발걸음에서 경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와줬구나, 레이무...!"
"레이무는 비번이야. 휴가 받아서 라스베가스에 놀러갔다고."
"...!?"

거기에는, 표정에 다급함이 보이는 이자요이 사쿠야가 숨을 헐떡거리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꼴은 말도 아니었다. 옷은 여기저기 찢어져 있고, 흉한 자상이 팔과 다리에 여기저기. 딱 봐도 흉터가 남을 수준의 것들이라 나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진다. 이상한 일이군. 레밀리아가 홍무이변을 일으켰다면, 사쿠야는 적으로써 나를 맞이해야하는 것 아닌가? 거기에, 마치 레이무를 기다렸다는 듯한 말투. 마치, 누군가 이변을 해결해주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아아, 대충 그런 느낌이구나. 이번 이변, 아무래도 고의적으로 발생한 이변이 아닌 모양이다.

"역시... 살아 있었어. 쇼우이치, 맞지?"
"그렇긴 한데... 어떻게 알았어? 스스로 생각해도 외견이 꽤나 바뀌었다고 생각하는데."
"이래뵈도 홍마관의 메이드장이야. 같이 일할 사람의 본질을 놓칠 정도로 눈이 옹이구멍은 아니라고."
"아니, 그건 평범하게 눈이 있어도 모를거 같은데."

당장 나 자신도 한동안은 거울 보는게 익숙하지 않았다고. 이걸 한눈에 알아본다니, 얘 뭐야. 무서워... 그나저나, 간만에 쇼우이치라는 이름으로 불렸네. 지령전에선 모두에게 우이라고 불렸으니까, 신선한 느낌이다. 어느쪽이던 본명은 아니지만.

"...다행이야. 아가씨 말씀대로, 살아 있었구나."
"어쩌다보니, 말이지. 그보다 중요한건 그게 아니고,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그건... 윽...!"

뭔가를 말하려다가, 괴로운듯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지려고 하는 사쿠야. 곧바로 그녀의 몸을 부축하기 위해 손을 뻗는다. 하지만 문득 그 뻗은 손을 보니, 미약하지만 기가 둘러져 있는게 보인다. 앗, 젠장할. 좆됐다. 아직 익숙해지지 않은건가. 그대로 사쿠야에게 닿으면 사쿠야를 공격하는 셈이 될텐데...!
허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고. 닿은 손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기는 그대로 사쿠야의 몸을 상냥하게 감싼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사쿠야의 몸 상태의 정보가 머리속에 흘러들어온다.

"뭐, 뭐야. 이 상처들은...!"

온 몸에 금이 가 있는 듯한 몸 상태였다. 뼈는 대부분이 금이 가 있었고, 근육은 끊어지진 않았지만 파열되기 일보 직전. 장기에도 꽤나 무리가 간 상태. 도저히 뛰어올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었다. 아니, 뛰어오긴 커녕 몸을 움직일때마다 격통에 정신이 혼미해질 레벨이다. 초인적인 정신력... 아니, 그건 아니다. 신체의 일부를 능력으로 손본 것일테지. 예를 들어 신체에 오는 고통의 시간을 조절해서, 몸만큼은 계속 움직일 수 있게 한다거나.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부상은... 말도 안된다.

"...작은 아씨의 능력을 피하는걸, 아주 조금 늦어버리는 바람에."
"이, 일단은 침대에서 쉬어. 아차, 잠시만 있어봐."

사쿠야를 조심스레 벽에 기대게 한 후 침대 위에도 흩어져 있던 벽의 잔해를 대강 치우고, 다시 사쿠야를 조심스레 침대에 앉힌다. 하는 김에, 메이린의 몸을 들어 사쿠야의 옆에 눕힌다.

"메이린...! 어떻게 된거야?"
"여기 들어갈려고 하니까 죽이려고 들더라고. 어쩔 수 없이 쓰러뜨렸어."
"쓰러뜨렸어, 라니... 쇼우이치 너, 대체..."
"아니, 그런건 됐고. 레이무를 찾았다는건 이번 이변이 원치 않은 상황이었다는 거고, 레밀리아는 무언가에 의해 조종 당하고 있는거라 생각하면 되겠지? 예를 들어 검은 기운이라던가."
"마, 맞긴 한데..."
"거기에, 플랑도르가 폭주한 것 치곤 건물이 전반적으로 성한 상태. 네가 어떻게든 한거지?"
"...그것도 정답. 너, 대체."
"파츄리 널리지에 대해선 정보가 없고... 의아한건, 사쿠야. 네가 검은 기운에 당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야."
"그건... 큭...!"
"아차, 미안. 지금 제대로 된 답변을 들을 수 없는 몸상태였지. 일단 쉬고 있어. 나머지는 어떻게든 해볼께."
"....부탁..."

말을 끝맺지 못하고, 사쿠야는 의식을 잃는다. 사실, 그녀의 몸상태를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의식을 유지하고 있는게 신기한 레벨이다. 오히려, 병원에 데려가야할 레벨이지만... 이 상태의 사쿠야를 치르노의 결계 밖으로 끌어내면, 십중팔구 붉은 안개에 의해 사망할테지. 자, 그럼 이제부터 어떻게 할까. 사쿠야의 반응을 보아하니, 레밀리아와 플랑은 검은 기운의 영향을 받은게 틀림 없다. 플랑은 사쿠야가 일단 어떻게든 해줬으니 우선순위를 뒤로 미뤄도 될거 같고... 이대로 레밀리아에게 돌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만, 누락된 정보가 신경 쓰인다.
파츄리 널리지. 그녀에 대한 정보만이 쏙 빠져 있는 상태.
...일단은 마법도서관으로 가볼까. 여기는 적진 한복판. 여유가 있을때 정보의 결손을 메워두고 싶다. 그렇지 않아도 모르는게 한바기지인데...

"...다녀 올께."

괴로운듯 끙끙거리는 사쿠야와 평안하게 잠들어 있는 메이린에게 이불을 덮어준다. 치르노의 결계 때문에 이대로 뒀다간 감기걸릴테니...
그리고, 복도로 나선다. 어디보자, 내가 지난번에 여기에 왔을때엔 마법도서관에 들리지 않았지. 정확하겐 못한거지만. 일단 위치를 좀 파악해봐야겠는데...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내 휴대폰의 지도 앱은 환상향과 완벽하게 동기되어 있다. 적어도 지저에서는. 지저에서도 그랬다면, 지상의 홍마관에서도 그 능력은 발동 될 것이다.
...근데, 생각해보면 보통 지도 앱에 저택 방 정보 같은건 안들어가 있을거 아냐? 아무리 이 지도 앱의 성능이 뛰어나다곤 해도, 홍마관의 내부 지도까지 보일리가...

"있네. 근데 UI가...?"

평소의 지도 앱과는 UI가 다소 상이하다. 마치, 게임의 미니맵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실내에선 이 앱을 사용해보지 않아서 몰랐는데, 구조물 안에 들어가면 이렇게 표시해주나 보다. 존나 고성능인데? 위치는... 지하인가. 근데 이 지하쪽에 까만색 원이 크게 표시되어 있는건 뭐지? 입구까지 막고 있는게 영 심상치 않은데...

뭐 어쩌겠어, 일단은 가보자고.





























- 피융! 피융!

"파츄리님, 제 3 방벽이 파괴되었어요!"
"알고 있어... 이것 참. 자기가 쓴 마도서에 자기가 공격 받다니, 오래 살고 볼 일이야."

홍마관, 마법도서관 중앙. 자조적인 웃음을 입가에 띄우는 피투성이의 보라색 머리카락의 소녀, 파츄리 널리지. 홍무이변이 재발한 시점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도서관을 벗어나지 않아 바깥 상황을 전혀 모르는 그녀였지만, 그녀는 그녀대로 다른 골칫거리와 싸우고 있었다.

시작은, 초급 공격 마법을 적어놓은 마도서가 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였다. 마도서가 자기 멋대로 움직이는 일은 드물지만, 이따금씩 있는 일이었다. 거기에 대해 아무런 의문을 가지지 않은 파츄리는 종자인 소악마에게 책을 정리하라고 명령했지만...
움직이는 책이 하나 둘씩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파츄리는 뭔가 이상하다는걸 눈치채, 움직이던 마도서를 조사하려는던 찰나.
마도서는 스스로 마법을 쏘아내어, 파츄리를 공격하였다.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파츄리는 그 공격을 복부에 정통으로 맞아, 관통상. 사식, 사충의 마법 익혀 불로의 몸이 된 파츄리였지만, 불로이지 불사의 몸은 아니다.
치명상을 입은 그녀는 반사적으로 마법방벽을 치고, 치유 마법으로 최대한 상처가 벌어지지 않도록 치료하며 농성 중인 상태인 것이었다.
누군가가 와주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하지만, 다시 한번 말하지만 파츄리는 도서관 바깥이 어떠한 상황에 쳐해있는지를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누군가가 금방 와주려니 하고 다소 낙관적인 상태의 그녀였지만 농성 시작 후 8시간 남짓 지난 지금, 뭔가가 단단히 잘못된 것을 인지했다.
마법방벽을 보수할때마다, 마력의 극심한 소모로 인해 상처가 벌어진다. 치유 마법을 동시에 돌리고 있어 한동안은 괜찮았지만, 아까전부터 방벽이 파괴되는 속도가 심상치 않다. 아마도 제멋대로 움직이는 마도서가 점점 많아지는 거겠지.
거기에, 파츄리의 마력은 이미 한계를 맞이하고 있었다.

"윽..."
"파츄리님!?"
"옆에서 소리치지 마. 머리가 울리니까..."
"아, 죄송해요..."
"...이대로라면 위험하겠는걸. 하아. 대체 뭐가 어떻게 된건지."

열심히 금이 가고 있는 제 4방벽을 올려다보며, 파츄리는 체념한듯 한탄한다. 자기가 만든 마도서에 쏘여 죽다니, 마녀의 죽음으로썬 솔직히 좀 심한게 아닌가- 하고 생각하던 파츄리는, 문득 얼마전 자신의 마도서에 의해 죽은 한 남자를 떠올린다. 레밀리아의 운명 조작에도, 기어이 죽어버린 운 나쁜 남자. 원인을 제공한 장본인으로써 일말의 죄책감이 있긴 했지만... 이건 그 벌인걸까? 배에 가져다대었던 손을 들어 피가 잔뜩 묻은 그 손바닥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죽을때가 되니 별 생각을 다하게 되는구나.'

적어도, 그 연구만은... 그 남자를 죽게 만든 그 마도서의 연구만은 완성시키고 싶었는데, 라고 생각하던 찰나.

- 쨍그랑!

"제 4 방벽이..."
"남은건 마지막 한장. 소악마, 이쯤에서 숨겨둔 힘 같은걸 발휘할 생각은 없니?"
"그런거 있을리가 없잖아요... 저도 방벽 강화에 마력을 전부 써버리는 바람에, 이젠 마력탄 하나도 안쏴진다구요."
"그래..."

마력이 부족해서 치유 마법조차 제대로 기능을 하지 않는건지, 그녀가 억지로 막아둔 상처에서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축축해서 기분나쁘네, 라고 흐릿해져가는 의식속에서 생각하는 파츄리. 마지막 방벽이 깨져 마도서에 공격 당해 죽는게 빠를까, 실혈로 인한 쇼크사가 빠를까. 어느쪽이든 절망밖에 없는 그녀의 눈동자에서 빛이 사라지려고 하던 바로 그때.
마력 방벽에 들어오는 충격이, 일제히 멈췄다. 방어에 사용하던 마력이 일부 넘쳐, 치유 마법으로 돌아온다. 흐려지던 의식이 맑아지는걸 느끼며, 파츄리는 고개를 갸웃했다.

"소악마,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있겠니?"
"...아무래도 저희를 공격하던 마도서들이 다른 타겟을 찾은 모양이에요."
"...안 좋은걸. 레미나 플랑이면 몰라도 사쿠야가 여기를 찾아온거라면, 그녀는 대처를 못하고 죽을텐데. 레미한테 혼나겠어."

누군가가 오길 바란건 맞지만, 지금 상황은 사쿠야로썬 수습이 안될 것이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파츄리는 미간을 찡그리며 말한다.
파츄리는 지금 현재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 자신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똥 씹은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방벽은 유지되고 있지만, 방벽 수복에 들 마력을 치유 마법에 돌리고 있는 덕분에 아까와는 다르게 치유 마법이 150% 정도 오버클럭으로 발동되고 있다. 덕분에 그녀의 상처가 빠르게 아물고 있어 가능한 움직임이었다.

그리고, 파츄리가 입구의 상태를 보기 위해 시야 확장 마법을 사용 하였을때, 보인 것은...

쏟아지는 수많은 마법 사이를 화려하고 확실하게 피하고 있는, 장신의 여성이었다.

















 

"이건 뭔 씹..."

 

마법도서관의 문을 열자마자, 10권의 마도서가 나를 덮쳐든다. 마도서는 제각각 펼쳐진채로, 그 앞에 마법진을 띄운채 내 주위를 어지러이 움직이며 내게 마법을 쏘아낸다. 10권이나 되는 마도서이고, 모두가 다른 마법을 쏘아내고 있지만 결국은 투사체를 쏘아낸다는 점이 공통점이려나. 파츄리가 하고 있는걸까?

 

'...아니겠군.'

 

마도서가 10권이나 되다보니, 그리고 이래저래 이동을 하고 있다보니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것 처럼 보이지만, 탄의 갯수, 사출 속도, 발사 빈도가 완벽하게 패턴화되어 있다. 자동 방위 시스템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인지... 어느쪽이던, 사람의 의지가 관여하고 있지 않는 것은 확실해보인다. 게다가 딱히 연계가 되고 있진 않아서, 하나씩 하나씩 조지면 크게 문제 없이 파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단 하나,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다는걸 제외하곤.

 

"사거리 이슈 시발!"

 

당연한(?) 이야기지만, 마도서는 날아다니고 있고 이쪽은 걸어다니고 있다. 물론 하늘을 날지 못하는건 아니지만, 뛰어다니는 것 보다 둔한데다가 탄막이 짙어 거리를 좁힐 수도 없다. 즉, 원거리 공격 수단이 없다는 치명적인 문제. 기를 응용한다면 어떻게든 원거리 공격을 할 수는 있겠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이거야 원.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돌 좀 더 주워서 올껄 그랬나. 적어도 3~4권 정도만 떨궈도 어떻게든 될거 같은데...

쯧, 지들만 불덩이나 얼음덩이 던지고 말야. 그리고 저 면도칼 같은거 던지는 저거. 투사체 크기가 너무 작아서 보고 피하도 존나 빡세네. 거기다가 쏘아낸 것들이 그대로 바닥에 남아서, 발 디딜 틈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잘못하면 미끄러 넘어질 수도...

 

"?"

 

생각해보니 게임도 아니고, 쏘아진 마법의 부산물은 당연히 바닥에 남는구나? 그럼 이거 줏어서 던지면 되는거 아냐? 아니, 굳이 손으로 잡고 던질 필요도 없겠구나.

 

"흡!"

 

강하게 발을 굴러, 주위의 금속 칼날을 공중에 띄운다. 바닥 주변에 얕게 '탄성' 속성을 가진 기를 흩어놓은 덕에, 꽤 높은 위치까지 떠오른다. 이거라면.

 

"따샤!"

 

다리가 다칠걸 대비해 다리에 기를 두르고, 그대로 떠오른 칼날들을 마도서를 향해 걷어찬다. 뭐, 아주 당연한 이야기지만 대부분의 칼날은 마도서에 닿지도 못하고 허공을 향해 날아간다. 하지만.

 

- 파바바박!!

 

일부의 칼날은 운좋게 두권의 마도서에 직격하여, 그대로 책장을 찢어발긴다. 일부가 훼손된 것만으로도 기능에 이상이 생겼는지, 마도서는 그대로 힘없이 바닥에 툭 하고 떨어진다. 본체 자체는 약한데다가 자체적으로 방어수단은 갖추고 있지 않나보군. 즉, 맞추기만 하면 어떻게든 된다는 이야기다. 맞추기만 하면 되는거라면, 최대한 많은 횟수로 공격하는게 맞겠지. 손으로 던지는게 가장 현명하겠군.

 

"좋아..."

 

남아있는 마도서의 마법을 피하며, 열심히 바닥에 흩어진 칼날을 줍는다. 그리고, 이동 패턴 상 지면과 가까워지는 마도서를 노려, 칼날을 던진다....몇번 빗맞추긴 했지만, 어떻게든 20번 내외로 마도서를 전멸 시킬 수 있었다. 이게 힘은 생겼는데, 정밀한 동작은 아직 힘든거 같네. 투척도 연습해야하나?

아무튼 슬슬 안으로 들어가자. 원래의 목적은 파츄리의 상태를 확인하는거니까.

 

"이건...?"

 

마법도서관 내부. 어두컴컴한 도서관 안에서, 소란스럽게 돌아다니는 마도서들이 한가득하다. 아까전의 그것들과는 다르게 이쪽을 공격하려는 것 같진 않지만... 뭔가 이상한데. 내가 마법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적어도 마도서라는 것들이 저렇게 정신 사납게 돌아다니는 종류의 물건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나 많은 책장이 필요할 리가 없을테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먼지! 씨팔, 존나 날려! 저것들이 움직이기 시작한게 얼마되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아니면 청소를 드럽게 안하고 있거나.

...그나저나, 뭔가 안쪽이 상당히 소란스럽다. 이 위치에선 책장에 가려서 안쪽이 잘 안보이네. 위에서라면 좀 보일거 같긴 한데, 이놈에꺼 책장이 너무 높아서...

아참, 나 날 수 있지? 날 수 있게 된지 어... 아직 30시간도 안지났구나. 그래서 그런지 영 익숙해지질 않는다.

 

"읏차... 뭐고 씨발."

 

마법 도서관의 중앙, 몇개의 테이블이 원형으로 엎어져 있고, 그 주위를 감싸듯 반투명한 방벽이 쳐져 있다. 다만, 방벽은 조금만 손대도 깨질 것 처럼 금이 심하게 가 있다. 그리고, 그 방벽을 공격하는 마도서들. 그 중심에는... 내가 찾던 파츄리와, 붉은 머리칼의 소악마가 있었다. 다만, 파츄리의 복부부터 아래가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다. 복부에 큰 상처를 입은 모양.

 

어디보자, 즉 그건가? 마도서가 폭주해서 파츄리를 공격하고, 지금은 농성중인 상태? 아마 마도서의 폭주는... 그 검은 기운이 원인일 가능성이 매우 다분하겠군. 그렇다면 파츄리를 구하는게 옳은 판단이겠는데... 문제는, 마도서의 숫자가 적어도 백단위로 보인다는 부분일까. 모든 마도서가 공격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반대로 언제 공격해올지도 모르는 상태다. '지키면서 싸운다' 라는 선택지는 없다. 애시당초에 아까전에 10권의 마도서를 무력화 하는데에도 사거리 이슈로 한 세월이 걸렸는데, 저 수를 상대로는 도저히. 내가 마법이라도 쓸 줄 알면 모르겠는데.

 

"...으음, 전혀 모르겠어."

 

시험삼아 움직이지 않는 마도서를 책장에서 슬쩍 꺼내 훑어보지만, 내용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말이 어렵다기 보단, 문장 구조 자체가 전혀 성립하지 않는다. 몇개 띄워서 읽어보면 어느정도의 규칙성은 보이지만... 일종의 암호화 같은걸까. 게임 같은거 보면 이렇게 읽기만 한 것만으로 마법을 쓸 수 있게 되고 그러던데. 으음, 그럼 나는 마법을 쓰지 못하는걸까? 적어도 유기의 힘을 어느정도 쓸 수 있고, 기는 쓸 수 있지만...
기라. 성질변환까지는 어떻게든 확실하게 내 것으로 만들었지만, 시간이 부족해서 그 이상의 것을 하진 못했다. 할려면 할 수 있을거 같다는 근거 없는 확신은 있지만, 안정적으로 현상을 일으킬 수 있는가 하면 그 부분은 꽤 부정적인지라.

 

자, 그러면 어떻게 할까. 어찌되었던 간에 파츄리에 대한 정보는 메워졌다. 그리고 당장 나를 공격할 수 있는 상태이긴 커녕, 가만히 놔두면 알아서 죽겠지. 다만, 지금의 파츄리는 저 검은 기운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도우러 가는게 맞는거 같은데...  이쪽은 원거리 공격 수단이 전무한 상태이고, 아까와 같은 요행이 통할거란 나이브한 생각은 애시당초 하지 않는다. 그런고로...음, 적어도 어그로 정도는 끌어서 그녀들이 재정비할 시간을 버는게 최선일려나? 

 

"그런거라면야 뭐... 좀 하는 편이지."

 

애시당초 아까전의 10권의 마도서의 공격도 가볍게 피했다. 그리고 저것들은 변칙적인 공격을 가하지 않는다. 프로그래밍 된 대로 움직이는 개체... 검은 기운의 정체를 알 수 없기 때문에, 방심은 할 수 없지만. 할 수 있는 만큼 해야지.

 

"간다."

 

저것들은 내가 어느정도 가까워졌음에도 여전히 파츄리를 노리고 있다. 그저 다가가기만 해서 어그로를 끌 수 있을지는 미지수. 확실한 행동으로 녀석들의 에임을 내게 돌려야해. 가장 간단한건... 적대적 행동이지. 이 높이라면, 직선 이동으로 마도서를 공격할 수 있다.

 

"아까만큼의 도움닫기는 필요 없겠어."

 

다리에 기를 두르고 기를 책장에 고정 시키고, 탄성을 부여한다. 그리고 두발자국 뒤로 물러난다. 조금이라도 힘을 풀었다간 순식간에 앞으로 튀어나갈 것 같은 감각이 다리를 감싸고...

 

"최대탄성, 두 발자국."

 

- 피융!!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귀를 때리고, 몸이 날아가며 들리는 소리가 이후에 들려온다. 그리고 엄청난 속도로 가까워져오는 풍경. 마도서의 무리는, 다음 순간 눈 앞에 있었다.

 

"너흰 아직 준비가 안 됐다!"

 

만년동정같은 대사와 함께, 발을 휘둘러 최대한 많은 마도서를 휩쓸리게 하며 고속으로 날아간다...만, 가만 있어봐. 이거 멈추는건 어떻게 하더라?

 

- 콰아아아아아앙!!!!!

 

"크엑!"

 

큰 충격음과 함께, 내 몸은 그대로 도서관의 벽에 쳐박힌다. 벽이 움푹 패이고, 주위에 종이쪼가리(아마 마도서의 잔해)가 날린다. 부러지거나 어디 다친 곳은... 없군. 기를 몸 주위를 둘러서 방어하는 것도 까먹었는데, 전혀 부상이 없다니. 무시무시하구만, 이 몸뚱아리... 그나저나, 또 홍마관에 구멍을 뚫을뻔 했군. 으음, 이거 나중에 변상하라고 하는건 아니겠지. 그러면 곤란한데.

 

"오. 작전은 성공이군."

 

옷에 묻은 먼지를 털며 뒤돌아보니, 파츄리를 공격하던 마도서 전부가 내게 날아오고 있었다. 거기에, 책장에 꽂혀 있던 마도서들도... 갑자기 매트릭스의 센티넬이 생각나는 장면이구만. 자, 여기서부터는 도망갈 시간이라 이거지.

 

"비 사이로 막가고~ 탄 사이로 막가는~ 아니, 당신은!?"

 

이제는 너무 낡아서 그 누구도 기억하지 못할 드립과 함께, 마도서 무리가 쏘아내는 각기의 마법을 피하며 도서관을 가로지른다. 그나저나 저렇게나 많은 마도서들이 공격을 해오는데, 날아오는 탄의 종류만 다를 뿐 죄다 투사체 마법이다. 그러고보면, 책장에 있는 모든 책이 조종당하고 있진 않은 것 같은데. 이 마도서들이 멋대로 움직이는 것들이라면, 조종 당하는 데에도 조건이 있는 걸지도.

 

- 들려? 거기 도망가고 있는 사람.

 

그때, 머리 속에 들려오는 목소리. 이건, 파츄리의 목소리... 염화 같은건가? 근데 이거 어떻게 다시 말 걸면 되는거지. /r 같은 명령어라도 쓰면 되나?

 

- ...명령어? 무슨 소리야?.

 

? 머고. 이게 왜 되지? 그리고 아까전에 머리속에서 명령어를 떠올릴 때, 뭔가 스위치가 눌러지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대충... 이런 느낌.

 

- 아아. 들려? 이러면 되나.

- ...들려. 염화를 쓸 수 있는걸 보니, 너도 마법사구나. 이 근방에선 본 적 없는 얼굴인데.

- 얼굴?... 아, 저거구나. 그걸로 보고 있는거야?

 

마도서 무리가 쏘아내는 탄막을 요리조리 피하며 슬쩍 둘러보니, 시야 한구석에 보라색 마법진이 떠 있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마법진의 중심에는, 눈이 그려져 있다. 아마 원거리에서 이쪽을 보는 마법 같은거겠지. 일단 손 흔들어주자.

 

- ! 벌써 시야 확장용 마법진의 위치를 알아낸거야?

- 눈이 좋은지라. 그래서, 어쩐 일로? 지금 좀 바쁜데.

- 알고 있어. 우선 본론부터 말할께. 네가 시간을 끌어준 덕분에 아슬아슬하게 마법을 쓸 수 있을 만큼 마력이 돌아왔어.

- 기껏해봐야 30초 정도 벌어줬을텐데.

- 그러니까 아슬아슬하게 라는거지. 내가 지시하는 타이밍에, 중앙으로 저것들을 유인해줄 수 있겠어?

- 오케이.

 

시간을 그렇게 길게 끌지도 않았는데 파츄리는 벌써 태세 정비를 끝낸 모양이다. 이런 상황을 언제든 준비하고 있는걸까, 아니면 평범하게 실력이 좋은걸까. 어느쪽이던 뭐. 일이 빠르게 진행되면 나야 좋지.

 

- 지금.

"으잉!?"

 

아니, 겁나 빠르네. 당황해서 발 헛디딜뻔 했잖아. 중앙으로 유인하라고 그랬지? 유인이라고 하면 당연히 매복 공격이 있겠지. 최대한 적을 몰아서 끌고 가는게 좋겠군. 그러기 위해선, 지금보다 이동이 느려야하지만... 솔직히 안맞는걸 전제로 움직이고 있어서 속도를 늦출 수가 없다. 즉, 맞을 각오를 하고 속도를 늦춰야한다는 이야기. 거기에 필요한 건...

 

"경화."

 

온몸을 기로 감싸고, 기를 딱딱하게 경화 시킨다. 경화 시킨 기를 두른 채 이동해야하기 때문에, 당연하지만 아까보다 움직임이 둔해진다. 하지만,

 

- 팅! 티티팅!

 

내 머리를 향해 날아오던 나이프탄이 차가운 금속음과 함께 튕겨져 나간다. 투사체 사용 마법 중 가장 탄속이 빠른건 저 금속계 마법들. 그리고 이 '경화'는, 저정도의 금속 투사체 정도는 간단하게 튕겨낼 수 있다. 정확하겐 '그런 느낌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생각만큼의 성능이 안나왔다면 지금쯤 내 머리에 나이프가 꽂혔을 거란거 아냐?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소름이 끼치는군.

아무튼, 경화만으론 막을 수 없는 빙결계만큼은 확실하게 피하며 중앙으로 향한다. 그나저나, 아까전보다 주변 온도가 살짝 뜨뜻해진 것 같은데?...가만 있어봐. 이 느낌, 작열지옥에서 느끼던 그 감각이랑 비슷한데... 설마.

 

- 도착하자마자 아래로 내려와.

 

"크레이지하구만."

 

내가 책장에서 뛰어내리는 것과 동시에, 하늘 높이 엄청나게 농축된 화염구가 떠오른다. 그리고, 내가 파츄리의 옆, 즉 마법방벽에 들어선 순간.

 

"일부, 로얄 플레어."

 

- 삐융! 쿠구구구구구구구....!!!

 

화염구는 팽창하여 마치 인공태양처럼 뜨겁게 불타며 내 뒤를 쫒아오던 마도서를 죄다 태워버린다. 덤으로, 주위의 책장들도 상당 수 그슬린다. 타진 않는걸 보면, 특수한 가공이라도 한걸까.

 

"하아....하아...큭..."

"어이쿠."

 

호흡을 거칠게 내뱉다가 무너져내리는 파츄리를 반사적으로 붙잡는다. 그러자, 아까전에 사쿠야의 몸상태를 알 수 있었던것과 같은 느낌으로 파츄리의 몸 상태를 이해한다. 복부에 커다란 상처. 어케 살았노 싶을 정도로 커다란 상처다. 장기에도 큰 손상이 갔는데... 아니, 무언가의 영향으로 시간이 되돌아가듯 회복 되고 있는것이 느껴진다. 이 방어막도 그렇고... 원소계열의 마법만 쓸 줄 아는줄 알았더니, 이런 계통의 마법도 쓸 줄 아나 보네. 치유 마법이라.

 

하지만 치유 마법의 회복 속도가 매우 더디다. 의식적으로 마법을 사용 하고 있다가, 정신을 잃어서 그런걸까. 하지만, 더디다는건 일단은 발동이 유지되고 있다는 증거. 자연스럽게 회복은 되겠지만... 일단은 눕혀두는게 좋으려나.

 

"이건... 좀, 힘들겠지."

 

바닥에 흥건하게 흘러 나오는 피를 손으로 슬쩍 만져보며 중얼거린다. 아까전의 로열 플레어 사용으로 상처가 벌어졌다. 거기에 마력을 한꺼번에 소모 하는 바람에 정신을 잃었고. 이렇게 될거라는걸 모를리는 없었을텐데.

 

"파, 파츄리님!"

"악마 아가씨, 혹시 치유 마법은 쓸 줄 알아?"

"에?! 아, 아뇨. 치유 마법은 애시당초 고위 마족이나 특수한 종족인게 아니면 보통 사용 할 수 없어요. 물론 전 어느쪽도 아니구요."

"실화냐..."

 

치유 마법이라는거, 생각보다 랭크가 높았구만...

 

"거기에 파츄리님의 치유 마법은 메이드장과 공동 개발한 다른 계통의 마법이라, 보통의 치유 마법이랑은 호환되지 않아요."

"얼씨구 씨벌. 가지가지 하네... 하지만, 납득은 되는군."

 

'시간이 되돌아가듯 회복' 되고 있길래 뭔가 했더니, 그런 내막이 있었군...아니, 지금은 그걸 따질때가 아니지. 이대로라면 파츄리는 확실하게 죽는다. 마녀는 불로지만, 불사는 아니니까.

하지만, 아주 방법이 없는건 아니다. 내가 파츄리의 몸 상태를 실시간으로 알 수 있는 상태이기에 더 확신할 수 있다. 술식은 약하지만 아직 발동되고 있다. 억지로 이 술식을 활성화 시키면, 그녀를 살릴 수 있을 터.

그리고, 그 활성화 방법이라는건...

 

 - 짜악!

 

"일어나 씨발! 잠들면 죽어!"

"에에에에!?"

"씨발 농담아니고 진짜 죽는다고! 일어나!"

 

- 짜악! 짜악!

 

파츄리의 얼굴에 왕복 싸대기를 갈기며, 그녀의 의식의 각성을 강제한다. 의식을 차리면, 자연적으로 술식은 활성화 될테니까. 문제는...

 

"씨...씨벌, 안 일어나네."

"파츄리님한테 무슨 짓이에요!"

 

- 빠아악!!

 

"크헉."

 

정수리에 박히는 묵직한 감각에 고개를 돌려보니, 소악마가 당황한 표정으로 다시 그 손에 든 하드커버 마도서를 들고 내 머리를 내려찍으려고 하고 있었다.

 

"아니, 잠깐만! 얘 의식만 돌아오면 되는거라고!"

"마력 부족으로 기절한거면 그런걸론 쉽게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단 말이에요!"

"리얼?"

"진짜에요!"

"좆됐네."

 

이러면 방법이 없는데. 마력이 부족하면 의식 각성도 힘든건가... 몰랐던 사실이네. 마력, 마력이라... 뭔가 이능을 쓸 수 있긴 하지만, 그 힘의 원천에 대해선 전혀 이해를 못했단 말이지. '기'는 어떻게든 이해했는데 말이지... 그, 방식이 좀... 쩝. 이러면 어쩔 수 없나. 똑같은 방법을 쓸 수 밖에.

 

"악마 아가씨, 혹시 손에 마력을 깃들게 할 수 있다거나, 그런거 있어?"

"이, 일단은 되는데요."

"팔 힘은 어느정도? 예를 들어서, 정권으로 사람 몸 정도는 뚫나? 이상한 질문이긴 하지만."

"뭐, 뭔가요. 대체."

"됐으니까 빨리."

"...당연히 마족이니까, 그정도 힘은 가지고 있어요. 거기에 근력이 없으면 이 도서관에서 일 하기도 힘들구요."

"그거 잘됐군."

 

파츄리의 몸을 살며시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소악마를 향해 양팔을 벌린다.

 

"손에 마력을 담아서, 그대로 내 몸을 꿰뚫어줘."

"에잇!"

"커억! 행동력의 화신!"

 

- 푸우욱!!

 

에잇! 이라는 귀여운 목소리와는 다르게, 그녀의 팔은 흉조가 되어 그대로 내 복부를 꿰뚫는다. 그리고, 흘러들어오는 무언가.

...아, 이게 마력이구나. 내 온 몸에 넘치는 이 힘 같은게 뭔가 했더니. 이게 마력이었군. 좋아, 이해했다.

 

"땡큐. 손 좀 빼줄래?"

"아, 네... 그, 근데. 괜찮아요?"

"...일말의 딜레이도 없이 복부에 스트레이트를 클린하게 박아놓고 그런 말 하는거야? 뭐, 괜찮아."

 

여전히 걱정스러운 기색을 내게 비치는 소악마. 아니, 그렇게 노딜레이로 사람 배를 꿰뚫어놓고 미안해 하는 거, 아무리 그래도 좀 이상하지 않아?

배쪽을 내려다보니, 복부의 상처는 순식간에 아물어 있었다. 옷이야 진작에 엉망진창이니까 상관 없긴 하지만... 배쪽에 구멍만 두개 뚫려 있는거 보니 좀 그렇긴 하네. 패션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세기말이군.

아, 중요한건 그게 아니고. 목적 달성부터 우선하자.

 

"간다."

 

누워 있는 파츄리의 양 손을 모아 잡고, 그 손으로부터 마력을 흘려넣는다. 어떤 감각이냐면 그... 뭐라고 해야하나. 좋아하는 노래를 들을때 나타나는 소름이 돋는 그 감각을 손에 집중시켜서 파츄리에게 전달한다는 느낌이려나. 좀 저릿저릿하군. 근데 이거, 얼마나 흘려보내야 치유 마법이 강제로 시동되는거지? 열심히 흘려보내고 있긴 한데...

 

"으윽..."

"파츄리님!"

"오, 슬슬 시동이 걸리는구만."

 

그녀의 회복 마법이 재활성화 되는 게 느껴진다. 일단 다 회복될떄까지는 마력을 보내줘볼까. 그나저나, 내가 마력의 양 같은건 잘 몰라서 그런데 이거 나는 괜찮은건가? 꽤 많은 양을 "보내고 있는거 같은데... 물로 치자면 한 30L 정도는 흘려 보낸거 같다. 어디까지나 감각의 영역이지만.

 

"그나저나,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마도서한테 공격 당하고 있었던거야? 실수로 이렇게까진 되진 않을거 아녀?"

"마도서가 멋대로 움직이기 전에, 검은 기운이 마도서에 흘러 들어가는걸 봤어요. 처음엔 먼지 같은건줄 알았는데... 그리고 그 뒤론 이렇게..."

"또 검은 기운인가. 하아..."

 

이제 홍마관에서 내가 목격하지 못한 애들은 둘. 레밀리아와 플랑도르. 레밀리아는 애시당초 붉은 안개를 살포하고 있으니 100% 검은 안개에 당한 상태일거고, 플랑도르도 갑자기 사쿠야를 공격한걸 봐서 그쪽도 동일하겠지. 그나마 파츄리쪽은 책만 불태우면 되는거였으니 다행인가...

...가만. 뭔가 이상하다. 마력을 이해해서 그런가? 마력의 흐름이라는게 어렴풋이 보이는데... 이 흐름, 자연적이라고 보기가 어렵다. 마치, 한 곳에 모이는 듯한...

 

"내가 마법을 잘 몰라서 그러는데, 마도서가 이렇게 멋대로 움직이는거, 정상이야?"

"네? 아... 간단한 마법이 부여된 마도서라면,. 마력을 부여하는 것 만으로도 어느정도 움직일 수는 있어요. 멋대로 움직이던 마도서들도 전부 기초 공격 마법이었거든요."

"복잡한 마법은?"

"이론상으론 원격 제어가 가능하긴 하지만... 제어도 어려운데다가, 애시당초 원격 제어라는건 마력량이 통상의 몇배는 더 들어요. 그래서 애시당초 마도서의 원격 제어의 기본은 간단한 마법이 담긴 마도서에 마력을 미리 부여하고, 타이밍 맞게 원격 조작 명령만 내리는 형태죠."

"반대로 말하면, 제어가 되고 마력량만 충분하다면 가능하단 이야기겠군. 그렇지, 예를 들면... 그 마법은 딱 시동할때까지의 마력만 있으면 될거야. 그 뒤론 멋대로 무한동력이겠지."

"아까부터 무슨 말을..."

"파츄리의 연구 중에, 혹시 마계와의 바이패스를 연결하는 마법이 있지 않았어? 아마 마력을 마계에서 직접 끌어오기 위한 목적이었던걸로 기억하는데."

"...!? 그걸 어떻게?"

"어떻게고 자시고, 그거 때문에 한번 죽었는걸. 슬슬 온다. 준비해."

"뭐가 온다는... 이, 이건!?"

"뭐든 붙잡아!"

 

이제서야 마력의 이상을 눈치챈 소악마가 깜짝 놀라며 커다란 책장을 붙들고, 나는 파츄리 위에 감싸듯이 엎어진 채, 기를 이용해 땅에 달라 붙는다. 그리고 그 직후,

 

- 쿠우우우웅!!!

 

마력의 분류는 커다란 충격파가 되어, 주변의 모든 것을 날려버린다. 나는 어떻게든 버텼지만, 소악마는... 날아가진 않았지만 충격으로 기절했군. 이정도로 마력의 흐름이 이상했는데도 알아채는게 너무 늦잖아, 소악마 녀석. 하급 악마라 그런걸까? ...그나저나, 귀찮은 일이 벌어진 것 같은데.

 

"저건 또 뭐야 씨발."

 

도서관의 가장 안쪽. 주위의 책장은 모두 어디론가 날아가거나 잔해가 되어 사라져 있고, 거기에는 그 높던 책장들 보다 조금 더 큰 크기를 지닌, 인간 형태의 무언가가 있었다. 인간 형태...? 아니, 정확하겐 인간 형태는 아니다. 동체에 비해 팔과 다리가 지나치게 크고, 머리는 거의 없다. 게임에서 본 '골렘'의 모습이 딱 저런 모습이었는데.

그리고 그 골렘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수많은 마도서들. 멀어서 잘은 안보이지만, 골렘이 조금씩 움직일때마다 마도서들도 유기적으로 움직인다. 단순히 몸을 구성하는 것만은 아닐테고, 마도서에 써져 있는 마법도 쓸 수 있을 거라 가정하고 움직이는게 좋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아까전의 충격파 이후론 저쪽에서 움직일 기미를 보이질 않는다. 오히려 그게 더 기분 나쁘지만. 어떻게 되어가는거야?

 

"...좋지, 않은걸."

 

그때, 힘겨워하는 목소리와 함께 파츄리가 약한 힘으로 나를 밀어낸다. 그러고보니 충격파 때문에 몸으로 덮어서 막았었지.

 

"일어나도 되는거야?"

"덕분에. 강제로 마력을 쏟아부어지는 바람에 뺨을 한 다섯대는 맞은 기분이야."

"....."

 

다행이다. 실제로 때린 부분은 정신을 잃어서 기억에 없나봐.

 

"그보다 저건 대체 뭐야? 저 마도서, 저런 기능도 있어?"

"그럴리가. 무언가 다른게 덮어씌워진 모양이네... 근데, 저 마도서를 알아?"

"모를리가 있겠냐. 저거 때문에 뒤졌는데. 그리고 저 마도서에 대해선 네가 말해준거잖아?"

"뭐?"

 

여태까지 본 것 중에 가장 크게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보는 파츄리.

 

"설마, 너..."

"아, 잠깐만. 그거 하기 전에 일단 마도서 골렘이나 어떻게든 하자고. 왜 저거 멈춘거야?"

"...멈춘 이유는 아마 '마법을 이해하기 위해'. 자기 몸을 구성하고 있는 마도서를 전부 읽어들일 생각인가보네."

"그게 가능한거야?"

"저기 있는 책들은 대부분 내가 집필한거야. 분량 자체는 많으니 시간은 조금 걸리겠지만, 그래봐야 마녀 한명이 집필한 양. 그렇게 오래 발을 묶진 못하겠지. 그보다, 저 마도서의 모든 내용을 사용할 수 있게 되는게 더 문제."

"허어."

 

즉, 지금은 로딩 중이라서 못 움직이고 있는거란 말이지? 그럼 지금이 오히려 찬스 아닌가? 렉럴렸을때 치는게 국룰 아님?

 

"그럼 지금 공격하는게..."

"그게 이상적이긴 하겠지만, 어설프게 마도서 분석을 끊고 공격 태세에 들어가면 더 위험할거야. 거기에 이 마력량... 저쪽은 마계와 이어져 있어. 공격을 시작한다면, 끝을 볼때까지 멈추지 않겠지."

"흐음. 그럼 공격 태세에 들어가기 전에, 일격으로 핵을 박살내면 된다는거지?"

"그게 베스트긴 해. 그리고 핵이 되는 저 마도서는 꽤 정교한 물건이라, 페이지의 내용이 조금만 소실 되어도 기능을 상실할테니, 저 마도서의 중심에 연필만한 구멍을 뚫는 것 만으로 충분할꺼야. 하지만..."

"그렇게 쉬워보이진 않네."

 

여전히 멈춰 있는 마도서 골렘은 그 핵을 두 팔로 감싸고 있다. 거기에, 얼핏얼핏 보이는 중심지엔 아까 파츄리를 지키던 마력장벽이 몇겹이나 쳐져 있었다. 적어도 12장. 저걸 한방에 뚫으라고?

 

"그렇게 쉬워보이지 않는게 아니라, 불가능한거야."

"그럼 뭐 어째. 뒤지라고?"

"그건... 플랑의 능력이 있다면 어떻게든 될 것 같긴 한데."

"아, 그건 안돼. 걔 지금 불안정한 것 같더라. 사쿠야가 공격 당했어."

"사쿠야가?...곤란하게 됐네."

"그럼 셈이지. 파츄리, 그나마 통할 것 같은 마법은 어떤게 있어?"

"...일단 관통력이 가장 높은건 사일런트 셀레나. 바깥 세계의 책에 빗대자면, 빔 병기려나. 하지만 파괴력은 약해."

"사일런트 셀레나라."

 

분명, 자기 중심을 기준으로 원형으로 빛의 화살을 쏘아올려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스킬이었지. 그 스펠 자체는 지금 쓰기엔 엄청 어려워 보이지만...

 

"그거, 하나의 마법을 '피할 수 있는 스펠카드'로 엮은거지? 근본이 되는 마법, 보여줘."

"어째서 아는거... 아니, 중요한건 그게 아니겠네. 이런 느낌이야."

 

의문은 잠깐 접어두고, 파츄리는 허공에 빠르게 마법진을 그려 마도서 골렘과는 정 반대 방향으로 마법을 사출한다. 마법진 중앙에서부터, 흰 빛의 화살이 쏘아지는 마법. 확실히, 건○에서 나올 것 같은 빔 병기와 살짝 비슷한 테이스트가 느껴진다. 그보다...

 

"이거, 마법을 모을 수도 있나보네?"

 

파츄리가 마법진을 그린걸 봐서일까, 아까전 파츄리가 쓴 마법의 구조가 직감으로 이해된다. 마력을 볼 수 있게 된 영향일지도. 어느쪽이던... 마법을 모으는데에는 이론상으론 한도가 없는 모양이다.

 

"그렇긴 한데... 아무리 모아도, 한도가 정해져 있어서 네가 노리는 그림은 나오지 않을거라 생각하는데."

"한도? 없어보이는데..."

"겉보기에는. 하지만 모으면 모을 수록 제어가 어려워. 그래서 적당히 모아서 연발로 쏘는게 가장 효율적."

"흠."

 

확실히 구조상, 겹쳐서 시전하면 마력의 제어가 점점 어려워지는 형태다. 약간 나뭇가지 하나는 쉽게 휘어지게 할 수는 있지만, 여러개의 나뭇가지를 동시에 잡고 한꺼번에 휘게 하기는 어렵다는 느낌일까... 그러고보니 이 마법, '범위가 커질 수록' 제어가 어려운 형태네. 즉, 애시당초에 효과 범위를 극단적으로 낮게 설정하면, 겹치기 쉬운거 아닐까?

 

"파츄리, 보통 사용되는 한계는 몇개정도야?"

"5개. 그렇게 강하진 않지만, 유의미한 수준의 파괴력은 나오지."

"그럼 저 마도서 골렘의 핵을 공격하려면 몇개정도 겹쳐야 하는거야?"

"어디까지나 이론상으론, 150번은 겹쳐야할지도."

"...그렇게나 많이?"

"내 마법방벽이 저기에 몇개나 쳐져 있다고 생각해? 아무리 달의 마법이 관통력이 높다곤 해도, 15겹 이상이나 마법방벽이 쳐져 있는걸 한번에 깰려면 그정도는 되어야 해. 물론, 어디까지나 이론적이지만."

"하기사, 그런가."

 

뭐, 시도는 해봐야겠지. 저 마도서 골렘이 로딩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만큼, 행동은 빨라야한다.

...그나저나, 제대로 된 마법을 쓰는건 이번이 처음일지도 모르겠네. 여태까지 비슷한 무언가는 계속 써온 느낌이지만, '마력을 이해하고 운용하는' 마법을 사용하는건 처음이다.

그러고보면, 신키 말로는... 마법을 쓰면 닫혀 있던 마법 회로가 열려서 불로불사가 된다고 했던가. 즉, 이걸 쓰게 되면 돌이킬 수 없는 무언가가 되버릴 수도 있다는 뜻인데....근데 생각해보면 이미 비스무리한 무언가가 된 상태라 크게 달라지진 않을거 같네.

 

"가볼까."

 

'마법을 쓴다' 라고 생각함과 동시에, 온몸에 기와는 다른 힘이 흘러 넘치기 시작한다. 마치 엄청 좋은 노래를 들었을때 온몸에 소름이 돋아오는 것과 비슷한 감각. 과연, 이게 '마력회로가 열리는 감각'인가. 그리고, 머리속에서 짜여지기 시작하는 마법 술식. 사일런트 셀레나의 초석이 되는 마법, 루나 레이. 하지만 그 면적을 일부러 줄임으로써, 겹치는데에 드는 부담을 경감한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좋아, 상정했던 것보다 마법을 모으는데에 부담이 적다. 하지만, 위력의 방향성을 완전히 동일하게 엮으려면 하나씩 준비해야하는군. 괜히 서두르다가 시간 낭비하는 것보단 낫겠지만... 하지만 완성만 한다면. 한번이라도 완성 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나저나, 꽤나 따분한 작업이군. 약간, 감각으로 따지면 엑셀 프로그램으로 반복해서 특정한 서식을 작성한다는 느낌이다. 중간중간에 공정을 단축하고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노가다 느낌이라 영 흥이 살지를 않네. 여러개의 마법을 섞는 작업이었다면 꽤 즐거웠을 것 같은 예상이 들기는 하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는 없고.

반대로 말하자면 정신적으로 여유가 없는건 아니다. 보통, 이런 노가다 작업에는 항상 따라오는 무언가가 있는 법이지. 그게 뭔지 아나?

노동요다.

 

 

 

 

 

 

 

 

 

 

 

 

 

 

 

 

 

 

절망. 이 한마디가 지금의 상황을 표현하기에 완벽한 말이라고, 파츄리는 생각했다.

 

치유가 되었다고는 하나 복부에 구멍이 뚫려 기력이 크게 떨어진 상태인데다가, 상대는 마력을 마계로부터 무한히 끌어오고 있는 괴물. 핵의 내구도가 낮다고는 하지만, '저것'은 그녀의 마도서를 전부 끌어다가 이해하려고 하고 있다. 어찌보면 의외일 수도 있겠지만, 그녀가 집필한 마도서 중에는 오행, 즉 화수목금토 의 마법 뿐만 아니라 속성을 지니지 않은 방어용 결계, 해주 마법, 약하긴 하지만 반사 마법 등 다양한 종류의 것들도 있다. 어디까지나 오행 마법은 전문분야일 뿐, 나머지 공부를 게을리 해서야 마녀라고 자칭할 순 없는 법.

 

그런 그녀의 마법을 전부 구사할 수 있고, 마력이 무한이니 출력도 압도적일 저 마도서 골렘을 상대로,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정말로 있는걸까? 게다가 외부의 도움을 바랄 수도 없다. 그녀를 찾아온 '우이' 라는 이름의 여자의 말에 따르면, 이지만.

결국, 이 상황을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파츄리 앞에 선 이 여자, '우이'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그런 그녀는 지금...

 

"~~~♪"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고, 느긋하게 휘파람이나 불고 있었다. 잘 들어보면, 휘파람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 같지만 파츄리는 모르는 노래이다. 휘파람 자체는 그렇게 못 부는 편이 아닌 듯하지만... 애시당초, 왜 이 상황에서 휘파람? 상황이 절망적이라는걸 깨닫고, 자포자기가 된 걸까?

 

"잠깐,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

 

짜증섞인 목소리로 파츄리가 우이의 팔을 붙들려고 하다가, 무언가를 느끼고 당황하여 뒤로 물러난다. 그녀의 팔을 붙들려고 뻗은 손이 저릿저릿했다. 파츄리는 이 감각이 어떤 감각인지 알고 있었다. 마력. 마력의 밀도가 높은 무언가에 손을 대면, 이렇게 저릿한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주로 마법진 등에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다. 그리고, 파츄리는 무언가를 깨닫는다.

 

"...설마, 휘파람으로 마법진을 구축하고 있는거야?"

 

소리로 마법을 구성? 들어본 적도 없는 이야기다. 물론 소리가 마력을 띄는 경우는 충분히 있다. 주로 소령(騒霊)이 자아내는 음색이나, 밤참새의 노랫소리 등에서 볼 수 있는 현상. 이쪽은 정확하겐 요력이지만... 하지만, 소리로 마법을 구성하다니? 하지만 이론상이라면 가능하다. 다만 생각치도 못한 발상이다. 파츄리는, 간만에 호기심에 눈을 크게 떴다. 그녀의 그런 모습은, 마리사가 처음으로 별의 마법을 그녀 앞에서 선보였을때 이후 처음이었다.

 

그리고, 이윽고 휘파람은 멎고.

 

- 파직! 파지직!

 

우이의 머리 위에는, 은색으로 빛나는 거대한 구체가 떠 있었다.

 

 

 

 

 

 

 

 

 

 

 

 

 

"여윽시 노동요야. 일이 금방 끝나는구만."

 

머리 위에 뜬 거대한 구체를 보며 옛 현인들의 지혜에 이마를 탁 치며 감탄한다. 스펠은 완성되었다. 루나 레이를 한번에 150겹 겹쳐, 그 위력을 극대화 한 마법. 그리고, 이걸... 어디보자. 그걸 어디다 뒀더라. 아, 찾았다. 양복 오른쪽 주머니에 있어서 다행히 안찢어졌네. 스펠카드.

 

요 스펠카드라는게 뭐냐 하면, 만들어둔 마법이나 동작을 '저장' 할 수 있는 기능이 있는 카드다. 환상향에선 이 '스펠카드'를 가지고 탄막 승부를 벌인다나 뭐라나. 다만, 이 압도적으로 편리한 기능 때문인지 탄막 승부 중에 사용 가능한 횟수는 정하고 들어간다고 한다. 마력도 그대로 먹고, 행동에 드는 체력도 그대로인데다가, 저장된 마법을 다시 발동할 뿐인, 수정도 불가능한 일종의 매크로 같은 물건이긴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유용하겠지. 으음. 코이시가 준걸 받아두길 잘했군. 이런 일에 쓰게 될 줄이야.

 

"아...음... 시동어가 뭐였더라. 아, 그거지 참. [스펠카드 명명]!"

 

내가 시동어를 외치자, 바닥에 결계가 쳐지고 은은하게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마법진이 아니라 결계가 쳐진건 정식적인 배부처는 하쿠레이 신사라서 그런걸까. 이름이라. 그러고보니 이름을 생각을 안했네. 어디보자, 원천이 되는 마법은 루나 레이지? 그러고보니 아까전에 휘파람으로 부른 노래, 모 리듬게임의 간판급 노래였는데... 생각해보니 그거 제목이 스펠명으로 딱이겠군.

 

"월부 [엔드 오브 더 문라이트]!"

 

내가 이름을 외치자, 번쩍! 하고 결계가 빛나더니 이내 사그라 들어 사라진다. 덤으로, 아까 머리 위에 시전 했던 마법도 사라져 있었다. 문득 스펠카드를 들어보니, 카드에 아까의 마법이 그려진 카드가 느릿느릿하게 현상되고 있었다. 휘적휘적 흔들어보니 어째선지 현상이 빨리되는군. 폴라로이드 카메라 같은건가?

 

"자, 이걸로 준비는 끝났고."

"스펠카드... 그렇구나. 지금같은 상황에선 스펠카드를 몇번이나 쓴다 한들..."

"문제가 되진 않을거란 이야기지. 문제가 된다고 하면 레이무랑 막고라 뜨지 뭐. 내가 지겠지만."

 

솔직히 죽일 기세로 달려드는 레이무는 이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능력도 능력인데, 솔직히 그냥 무서워...

 

"다녀올께. 왠만하면 방어결계 쓰고 버텨봐."

"뭐? 기습 하려던게 아니었어?"

"뭐, 만에 하나라는게 있잖아? 지금은 그것보단 확률이 높을 것 같지만."

 

어깨를 으쓱여보이고, 파츄리의 곁에서 벗어나 빠르게 마도서 골렘을 향해 돌아 들어간다. 저것이 적대적인 존재를 어떻게 색적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뭐, 이렇게 돌아들어가는게 유효한 방법이라고 믿는 수 밖에.

엔드 오브 문라이트의 기초가 되는 '루나 레이'의 유효 사거리는 15m 언저리. 뭉쳐서 파워업을 시켰기 때문에, 한 50m 까지는 사거리가 늘어났다고 믿고 싶지만, 이것만큼은 쏴보지 않으면 모른다.

으음, 색적 하니까 갑자기 생각난건데 코이시는 자동 방범 장치 같은것에 노출이 될까? 예를 들어 적외선 탐지기라던가. 코이시의 능력은 어디까지나 의식을 가진 존재에게서부터 자신의 존재를 지움으로써 그 모습을 숨기는 것. 의식이 존재하지 않는 기계는 속일 수 없는게 아닐까? 아니면, 데이터로써는 남지만 이 데이터 자체가 열람하는 인간의 인지를 조종하여 안보이는 것 처럼 만드는걸까. 그, 말하자면 길디 긴 코드에 사라진 하나의 중괄호처럼 에러만을 일으키는 무언가가 되는걸까?

 

라는 잡생각을 하는 사이에, 유효 사정 거리로 추정되는 거리까지 다가갈 수 있었다. 마도서 골렘의 후면. 말하자면 아슬아슬하게 백어택 판정을 얻을 수 있는 느낌의 각도다. 이 각도라면 골렘의 팔에 막히지 않고 정확하게 핵을 노리고 쏠 수 있다. 아직 마도서를 읽어오는 중이라 그런지, 아니면 나도 모르는 새에 어떻게 인지의 포위망을 피해서 들어온건지 골렘은 날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 자, 그럼.

 

"노리는 곳은 핵. 월부..."

 

스펠카드를 들고 스펠을 선언하려는 그 순간.

 

- 피비비비비비빙!!!

 

"이게 뭔 씹..."

 

골렘을 중심으로, 수십겹의 마력 방벽이 쳐진다. 세기도 어려울 정도고 겹쳐 있어서, 정확하게 몇개인지 파악도 안된다. 젠장, 스펠을 발동 시킬 때 사용되는 적대적인 마력을 감지 당한건가? 하지만, 이제와서 무를 순 없다. 방벽이 여러개라면, 이쪽도 여러번 공격하면 장땡이 아닐까? 이제 와서 무를 수는 없다. 각오를 다지자. 각오가 길을 열어줄테니.

 

"엔드 오브 문라이트!"

 

- 파지지직!!!

 

스펠카드가 발동되고, 나의 머리 위엔 은색으로 빛나는 거대한 구체가 생성된다. 그리고...

 

"응?"

 

...아무 일도 없었다. 잠만, 뭔가 잘못 된거 같은데.

 

"아아아~ 씨발. 맞다!"

 

그러고보니 방향 지정이 안된채로 스펠카드로 저장시켰구나. 그럼 평범하게 루나 레이를 몇겹이고 겹쳐놓은 구체만이 만들어 진 셈이잖아? 좆됐네. 하지만 이 구체 자체의 제어권은 아직 내게 있으니 쏠려면 쏠 수는 있는데 말이지. 으음, 이건 일단 스펠카드로썬 실패작이군. 다만, 아직 쓸모는 있다. 안그래도 한발만으로 충분할까 걱정하고 있었던 참인데, 이렇게 된 이상 응용이다. 스펠카드 자체는 한번 선언한 뒤로는, 다음 스펠을 선언하거나 스펠 브레이크가 되기 전까진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기술을 사용 할 수 있으니, 이 법칙을 응용한다.. 

 

"♪~♬~"

 

엔드 오브 더 문라이트를 휘파람으로 흥얼거리며, 고속으로 마도서 골렘의 주변을 종횡무진 이동하며 엔드 오브 더 문라이트의 마력구를 설치한다. 그 어느 각도에서도 맞을 수 있도록, 최대한 촘촘히, 그리고 신중하게 설치한다. 만약에 반사결계가 있어서 빔이 튕겨나갔을때, 최소한 파츄리 쪽으론 날아가지 않도록. 그리고, 왠만하면 지들끼리 맞았을때 상쇄되어 사라질 수 있도록. 파괴력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이다보니, 이게 벽너머의 누구에게 맞으면 좀 곤란하다. 적어도, 마도서 골렘이 행동을 개시하기 아슬아슬한 타이밍까진...!

 

- 쿠르르르르...!

 

에라이 씨발, 생각하자마자 움직이기 시작하네. 그래도 얼추 90개는 깔았다. 이걸로 충분하면 좋으련만. 조금만 더 깔아야 할까?

 

"아니, 한계다! 누를거다! 지금이다!!!"

 

- 삐융, 파바바바바바바바박!!!!!

 

90개의 엔드 오브 더 문라이트의 마력구에서 빔이 사출되어, 일제히 마도서 골렘을 향해 날아간다. 선글라스가 없으면 실명할 수준으로 엄청난 빛이 발산되지만, 내 몸의 눈은 금방 적응하여 마도서 골렘을 포착한다. 마도서 골렘 주변을 막고 있던 결계 중엔 다행히 반사 결계는 없었는지, 혹은 저정도 밀도의 마력포는 반사할 수 없었는지 죄다 박살나, 그대로 마도서 골렘의 핵을 일점사한다. 그 충격으로, 골렘을 구성하고 있던 마도서들은 여기저기로 펑- 하고 흩어진다. 장관이구만.

 

"해...해치웠나?...앗."

 

젠장, 이놈의 입이. 갑자기 뭔 부활 플래그여. 아무리 그래도 책 자체는 약하다고 파츄리가 이야기 했으니까, 이걸 버틸 수 있을리가 없지.

 

- 파아아앙!

 

그때, 마도서에서 3쌍의 이형의 날개가 펼쳐지고, 그와 동시에 펼쳐진 장벽에 엔드 오브 더 문라이트의 마력구를 죄다 지워버린다. 내 몸에도 닿았지만, 몸에 딱히 이상은 없다. 디스펠 매직 같은건가? 거기에 저 날개... 분명, 신키의 날개. 하지만 신키 본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대체 무슨...?

 

[아아... 앨리스... 내 귀여운 딸... 어디니...?]

 

"진짜로 이게 뭔 씹."

 

들려오는 목소리는 분명히 신키의 목소리다. 하지만, 탁하고... 뭐라고 해야할까. 보이스웨어의 목소리를 듣는 듯한 불쾌함이 있다. 합성된 목소리...? 신키 본체는 아니라는건가?

 

- 저건 사념이네.

 

그때, 머리속에 들려오는 목소리. 파츄리냐?

 

- 에에. 문헌에서 본 적 있는 마계신의 날개... 그리고 이 목소리... 믿긴 어렵지만, 저런 마계신 신키의 사념일거야. 조심해.

 

신의 사념인데 그냥 '조심해' 하나로 정리해도 될 정도의 위험도야?

 

- 원래라면 절망적인 상황이니 유언이나 말하고 있었겠지만... 아까전의 너의 모습을 보고 생각을 바꿨어. 너라면 저걸 어떻게든 할 수 있을거야. 같은 괴물이니까.

 

사람을 괴물 취급하다니... 뭐, 아마 크게 다르진 않을 거 같긴 한데. 공략법 같은건 있어?

 

- 저런게 현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마계와의 바이패스가 아직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야. 그걸 끊을 수만 있다면.

 

어떻게 하는건데?

 

- ...몰라.

 

얌마.

 

- 아무리 그래도 지나치게 상정 외의 상황인걸. 그보다 왜 갑자기 신키의 사념이 나오는거야?

 

애시당초 저 마도서에 연결된 바이패스 통로는 신키가 일부러 놔둔거니까. 저 책을 통해 앨리스랑 만나려고 한거라구.

 

- 처음 듣는 이야긴데.

 

당연하지. 처음하는 이야기니까. 애시당초 저런 남의 세계에 빨대 꽂는 기술을 아무런 의도도 없이 허가할리가 없잖아?

 

- 으...

 

뭐, 어찌됐던 바이패스를 끊으면 된다는거였지. 생각해보니 어떻게든 될거 같아.

 

- 뭐?

 

처음부터 저쪽이 나한테 해답을 준 셈이니까. 보고나 있으라고.

 

자, 여기서부터가 중요하다. 저게 반응을 하기 전, 단 한순간에 모든 일을 끝내야한다. 그렇기 위해선, 두가지 공정이 필요하다. 하나, 존나 빠르게 움직이는 것. 그렇기 위해선.

 

"또, 이 기의 힘이 필요하겠네◆"

 

다리에 기를 집중하여, 탄성을 부여한다. 최대탄성에... 이번엔 좀 많이 땡겨야겠군. 한 여셧걸음 정도는 뒤로 가야겠다.

 

그리고, '디스펠'. 아까전에 저것이 방출한 디스펠 매직을 온몸으로 맞은 덕에, 사용법은 확실하게 이해했다. 그리고 바이패스의 경로 또한 이미 머리속에 들어 있다. 죽었다 깨어난 그때, 데이터로써 저장되어 있었으니까. 그 이후에 따로 마도서를 건들지 않았다면 경로는 그대로일터. 여기서부터가 좀 성가신게, 이 디스펠 매직을 확실하게 발동시키기 위해선 마도서를 직접 잡아, 손을 통해 디스펠 매직을 저 마도서에 직접 흘려넣어야한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이걸 눈치채지 못하게 한순간에 저지르기 위해선, 디스펠 매직 마법의 시전이 끝난 시점에 곧바로 발동시켜야한다. 타이밍, 각도, 그리고 운의 영역이다.

 

"후... 도박인가."

 

일단 제어 가능한 부분은 전부 다 제어했다. 스펠 발동 시간, 탄성으로 날아가 마도서에 도달하는 시간과 각도. 마도서가 갑자기 움직일 수도 있고, 내게 공격을 가할 수도 있다. 이것만큼은 상대의 능력이 미지수인만큼 절대 확신할 수 없는 영역. 하지만... 할 수 밖에 없지.

 

"간다... 최대탄성, 여섯걸음."

 

 

 

 

 

 

 

 

 

 

 

 

 

 

 

 

 

 

 

 

승부는 한순간이었다.

 

사라졌다고 생각한 우이는 어느샌가 마도서에 도달하여 있었고, 그녀의 손바닥이 마도서에 닿자마자 휘황찬란한 빛이 일며 마도서에 담긴 사념을 지워냈다. 무너져내리는 마계신의 날개, 그리고 마력을 잃고 바닥에 툭 하고 떨어지는 마도서. 마계와의 바이패스로 인해 주위에 충만하던 마력은 온데간데 없고, 그저 정적과 파괴의 흔적만이 도서관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말도 안돼."

 

파츄리 널리지는 전율했다. 분명 그녀는 우이에게 '바이패스의 연결을 끊으면 된다'라고 말은 했다. 하지만 그런게 절대 가능할리가 없었다. 그런걸 가능케하는 방법이 있을거라곤 상상하지도 못했다. 가능하더라도, 저렇게 깔끔하게 해내리라고는 생각치도 못했다.

파츄리 널리지는 생각했다. 대체 눈 앞에 있는 저것은 무엇인가? 사실은 저것이 내게 적대적이라면? 지금은 비상사태. 스펠 카드 룰 같은건 의미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니, 눈 앞이 흔들리고 기분이 급격하게 나빠졌다. 몸이 아래로 쏠리는 감각을 느끼는 파츄리였지만, 그것을 누군가가 받친다.

 

"어이쿠, 괜찮냐? 상처는... 대충 아문거 같은데."

"......너, 대체 뭐야?"

"말투 보소. 걱정해주는 사람한테 너무한거 아냐?"

 

삐진듯이 불만스러운 말투로 답변하는 우이. 그녀는 파츄리의 몸을 일으켜 근처 의자에 앉힌 뒤, 자신도 의자에 앉는다.

 

"좀 정리가 됐으니까 다시 한번 자기 소개. 내 이름은 우이. 아까전의 저 마도서 때문에 죽어버린 이 집 고용...예정자. 라고 하면 알려나?"

"....그때의 그 남자? 네가?"

"뭐, 그런 눈빛으로 보는 것도 당연하겠지. 나도 거울 보면 깜짝깜짝 놀라는걸. 저 마도서, 앨리스 마가트로이드랑 공동작업?"

"맞아."

"역시... 덕분에 난 이 모양 이 꼴이라는 이야기로군."

 

뭐, 나름 만족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하고, 어깨를 으쓱이는 우이. 그러고서 그녀는, 아까전에 슬쩍슬쩍 이야기를 했었던 모든 일의 전말을 이야기 했다. 마도서에 의해 사망 직후 혼만이 마계로 도착한 일, 신키에 의해 전생한 일, 그리고 이곳까지 도달하기 까지의 일을.

거기까지 이야기를 듣던 파츄리는 잠시 생각하더니, 손가락을 튕겼다.

 

"소악마, 전에 준비했던 옷. 가져와."

"네? 그, 신입한테 줄 옷 말씀하시는건가요?"

"그래. 분명 어째선지 내 방에 있었지. 가져와줘."

"알겠습니다."

 

고개를 숙이곤, 어디론가 향하는 소악마. 그런 그녀를 보며 우이는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신입한테 줄 옷... 혹시?"

"맞아. 원래라면 너한테 줄 옷이었지. 사쿠야는 원래 너한테 여기 일을 시키려고 했었어. 한동안 네가 죽었던걸 레미는 몰랐으니까, 복장을 준비하라고 지시했었고... 그때 사쿠야의 곤란해 하던 표정이란..."

 

그때를 떠올리며 쓰게 웃는 파츄리.

 

"그런데 옷은 갑자기 왜?"

"갑자기라니. 그런 옷을 입고 레미한테 찾아갈 생각이었어? 아무리 그래도 고용주한테 실례잖아."

"고용주라니, 이제와서 무슨..."

"농담이야. 여기서 일하라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지금 줄 옷은 지금부터 일어날 일에 어느정도 도움이 될거 같아서 말야."

"옷이...?"

"여기 가져왔어요!"

 

헐레벌떡 뛰어오는 소악마의 손에 들려 있는건 고급스러운 슈트케이스였다. 왠지 모르게 안에 돈이 한가득 들어 있을것 같은 인상의 그 가방을 우이가 열어보자, 거기엔 꽤 잘 빠진 집사복이 들어 있었다.

 

"이건... 평범한 옷은 아닌 모양이네."

"맞아. 내가 할말은 아니지만 여기 마법도서관은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바깥세계의 인간에겐 다소 위험한 곳이지. 그 집사복은 도서관의 위협에서부터 어느정도 너를 보호시키기 위해 주문제작한 옷이야."

"입어봐도?"

"물론."

 

파츄리가 손가락을 튕기자, 우이의 머리 위로부터 커튼이 스르르 흘러나와 그녀의 주변을 가린다. 간이 드레스룸 같은걸까.. 뭔가 주섬주섬 옷을 입는 소리가 들리더니, 옷을 다 입은 우이가 커튼을 들추고 나타난다.

검은색 슈트에, 하얀 셔츠. 붉은색 넥타이가 인상적인 그야말로 판에 박힌 집사복이었다.

 

"...생각해보니 평소에 입던 양복이랑 크게 다르지 않네."

"어울리는걸. 당장 일해도 되겠어."

"이 소동이 끝나면 그러지. 원래라면 여기서 일할 예정이었으니까."

"그보다, 어때? 옷은."

"마법에 대한 저항이 어느정도 있나보네, 이거. 아마 루나 레이 정도는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옷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감상을 말하는 우이. 마력을 이해한지 얼마 안되었지만, 그녀는 이미 마법에 대해 거의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본인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신키에게서 받은 것은 그 육체 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응. 거기에, 지금의 너라면 좀 더 응용도 가능할거야."

"...과연. 외부의 마력에 대해선 어느정도 저항력이 있지만, 내부에서 흘려보내는 마력은 받아들이는 성질이구나. 재밌는걸. 말하자면 강화 가능 아이템이라는건가."

"어디까지나 평범한 인간을 위한 집사복이라, 내구도 자체는 기대할만큼은 아니겠지만 말야."

"그래도 확실히 도움은 되겠는걸. 아까까지 입던 넝마에 비하면 말야."

 

이런저런 공격으로 옷으로써의 기능을 완전히 잃어버린 양복을 바라보며 쓰게 웃는 우이.

 

"...네 말에 따르면, 아마 레미와 플랑은 폭주하고 있을거야."

"음. 그래서 일단은 플랑도르부터 진정시키려고."

"플랑부터?"

"걔는 지금 지하에 있는 자기 방에 사쿠야의 능력 떄문에 봉인되어 있잖아? 언제 사쿠야의 능력이 풀릴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레밀리아를 먼저 상대하고 있다가 갑자기 2:1이 되어버리면 그것만큼 위험한건 없을거니까."

"그렇게 치면 레미가 플랑과 싸우고 있는 너를 습격할 수도 있겠지."

"그거야 그렇긴 한데... 리스크로 따지자면 플랑을 먼저 공략하는게 좋겠다- 라는거지."

"......"

"뭐, 그런 이야기니까 마스터는 여기서 쉬고 있으라고. 후딱 다녀와서 여기 정리하는거 도와줄께."

"마스터?"

"여기서 일할 예정인데, 아무리 그래도 주인장을 막 부를 수는 없잖아? 그러니까 마스터. 그리고 마법에 대해 가르쳐주기도 했으니, 대충 제자 비슷한 포지션이라는걸로."

"...나보다 대놓고 유능해보이는 개체한테 마스터 소리를 들어도 말이지."

"그런 소리 말어. 기기 스펙이 좋다고 해서 무조건 유능하다고 할 수는 없잖아. 소프트웨어도 중요한 법이라구."

"소프트...뭐?"

"뭐, 그렇게 됐으니 나는 가볼께. 좀 있다 보자고, 마스터. 그리고, 선배!"

"서, 선배? 저요?"

 

우이의 인사에 깜짝 놀라는 소악마. 선배라니?

 

"여기서 나보다 오래 일했으니 선배 맞잖아?"

"그, 그거야 그렇긴한데..."

"그럼!"

 

척! 하고 손을 들어보이는 애니메이션에 영향을 존나 받은 오타쿠처럼 인사해보이곤, 우이는 돌풍처럼 도서관을 빠져나간다.

 

"서...선배래...우히히..."

"기뻐보이네, 소악마."

"우헷!? 아, 아니에요. 그런건~ 으헤헤~"

"......"

 

한심한듯 소악마를 쳐다보던 파츄리는, 문득 주변을 둘러본다. 여기저기 무너진 책장, 종이타는 냄새, 여기저기 흐트러진 책들과 먼지 등으로 말 그대로 엉망진창이 된 도서관. 정신이 아득해지는걸 느끼며,

 

"...일단 한숨 잘까."

 

그녀는 피곤에 찌든 목소리로 중얼거리곤, 침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적응 능력

 

마계신 신키가 자신의 자식들이 마계 이외의 환경에서도 적응할 수 있도록 고안된 일종의 신체 특성.

신체를 주위 환경에 적응 시킨다. '환경'이라 함은 단순히 자연 환경 뿐만 아니라, 특성이 부여된 대상의 생명을 위협하는 모든 요인을 일컫는다. 그리고 이 특성은 특성이 부여된 대상에게 영구히 적용된다.

대부분의 마계 생물엔 이러한 신체 특성이 적용되어 있지만, 마력 총량과 적응 능력의 한계치는 비례하기 때문에 보통은 자연 환경에 적응하는 정도로만 특성이 발달되며, 마력 총량이 높을 수록 적응할 수 있는 환경에 대한 범위가 점점 넓어진다.

 

 

 

월부 [엔드 오브 더 문라이트]

 

달의 마법의 기초 마법인 '루나 레이'를 150겹 겹치는 스펠카드. 우이의 첫 스펠카드이나, 스펠카드를 만들 때 방향 지정을 따로 하지 않아 그저 은백색의 커다란 구체가 생길 뿐인 스펠카드가 되었다. 다만, 위력만큼은 압도적. 스펠카드로써는 완벽한 실패작. 처음에는 다 그런거지.

 

 

 

 

 

 

AND

! 주의 !

이 글은 갈 곳 없는 망상을 때려박은 동방 2차 창작 소설입니다. 따라서 때때로 역겹습니다. 읽는걸 권하지 않습니다.

이 글에는 2차 창작에서의 터부(개인적 관점)인 오리지널 캐릭터, 줄여서 오리캐가 나옵니다. 우욱씹 소리가 절로 나올것으로 예상됩니다. 한번 더 읽는걸 권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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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때문에 이렇게 늦었냐 하면 이 편 자체도 3번정도 엎었고 덤으로 취직도 되서 그렇습니다

 

 

 

 

 

 

 

 

 

 

 

 

 

 

 

 

 

 

 

 

 

 

 

 

 

 

 

 

"......"

 

환상향에 흘러들어온지도 벌써 3주.

 

들어오자마자 루미아에게 먹힐뻔하고, 다음날엔 파츄리의 마도서를 잘못 건드려(마리사 때문이었지만) 몸과 영혼이 분리가 되고, 어쩌다가 다시 몸에 돌아와보니 관짝에 넣어진채 땅에 묻혀 있었다.

 

이 파란만장함의 피크는, 몸으로 돌아와 보니 어째선지 스타일리쉬하고 중성적인 미녀가 되어 있었다는 점일까. 아니, 성별이 아예 없어졌으니 이걸 미'녀'라고 불러야할지 어떨지. 애시당초에 미'인'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하다. 인간이 아니게 되어버려서...

 

아무튼, 환상향에 들어오고 나서 엄청난 일을 연속으로 겪고 나서, 이제는 조금 안정적이게 되었다.

 

...여기 녀석들이 엄청나게 경계하고 있는 것만 제외 하면.

 

 

지저, 지저의 마을.

 

 

본래 여기에 있는 녀석들은 대부분 요괴의 산에 있던 요괴들이었지만, 다들 성격이라던가 존재 자체의 위험성이라던가 이래저래 영 껄끄러운 녀석들이었던 모양. 그런 여러모로 위험한 녀석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요괴의 산이 아닌 이 곳 지저, 과거에 지옥이 있었던 장소로 이주했고, 지상을 침범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맺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단순하게 말하자면, 여기 있는 놈들은 죄다 여러 의미로 한따까리 하는 놈들이다 이말이다. 그럼에도 녀석들이 나를 엄청나게 경계하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 코메이지 사토리가 나를 거두어들였기 때문이다. 정확하겐 코이시가 거둔거지만, 코이시는 능력의 영향으로 이런 화제에서 언급되지 않는다.

 

지저에 사는 요괴들은 대부분, 사토리랑은 엮이고 싶지 않아한다. 마음을 읽는 요괴따위와 엮여봐야 불쾌하기만 할 뿐이라는게 그 이유다. 뭐, 아예 이해가 안가는건 아니지만... 즉, 나랑 엮이는 건 결국 사토리랑 엮이게 되는 것과 같다는 거겠지. 오린 왈, '곧 익숙해 질꺼에요' 라던가.

 

사실 나로써는 오히려 고마울 따름이다. 그도 그럴게, 지저는 사실상 환상향의 할렘가나 다름 없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 빽(?)이 있다는건 상당히 든든하다. 그리고 엮이고 싶지 않다 라고 말은 했지만, 상점가 같은데서 물건을 구입 할때도 딱히 거래 거부를 당하는 것도 아니니까 그렇게까지 문제 될 것도 아니다.

 

"어디보자, 분명히..."

 

폰을 꺼내 지도를 확인하며, 주위를 둘러본다. 아, 그렇지. 꽤나 신기한 일인데, 폰에 깔려 있는 지도 맵에 환상향의 지도가 업데이트 되어 있었다. 그것도 꽤나 자세하게. 지저 마을의 가게나 건물위치, 거기에 심지어 인물의 위치까지 상세하게 표시해준다. 마치 게임에서 나오는 미니맵 같다고나 할까. 굉장히 편리하다.

 

몸이 이렇게 된 이후로, 먹을 것도 필요 없고 수면도 필요 없는 사축 적합 보디가 되어버렸지만, 어찌되었던 개인용 방까지 마련해준 사토리에게 뭔가 보답하는게 좋을거 같아서 물어봤더니, 한가지 일을 제안해 왔다. 그래서 지저 마을까지 오게 된 것.

 

사토리가 말하기론, 최근들어서 펫들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모양이다. 서로 싸우는 일이 잦다나. 문제는 싸우고 나서 그 이유를 물어보면 기묘하게도 쌍방이 그 이유를 모른다는 것이었다. 사토리의 앞에서 거짓말을 하는건 정말로 트릭키한 일일테니, 아마 진실이겠지.

 

하여간, 이전에 주문해 놨지만 결국 필요가 없어져서 맡겨놨던 거대한 철제 우리를 가져와 달라고 부탁해 줄 수 있겠느냐, 라는게 사토리의 부탁이었다. 슬슬 우리로 가두지 않으면, 정말로 크게 다치는 펫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라나.

 

다만, 그 부탁하러 갈 상대가 말이지...

 

"남의 집 앞에서 왜 그렇게 기웃 거리는거야? 우이."

 

힘의 사천왕, 일컬어지는 괴력난신, 그리고 이 곳 지저 마을을 관리하는 관리자. 호시구마 유기.

 

"아, 역시 이 집이었구나. 관리자가 사는 집치곤 평범하네."

"그래? 그래도 보기보단 꽤 넓다구? 다른 녀석들 집보단."

"크게 달라보이진 않는데..."

 

관리자라고 하길래 꽤 으리으리한 저택이나 아니면 요새 같은 곳에 살줄 알았더니, 유기는 놀랍게도 평범한 가정집 문을 열고 나타났다. 솔직히 주소가 맞나 긴가민가 했었는데...

 

"그래서? 나한테 뭔가 용무라도 있는거야?"

"아, 맞다. 그렇지. 사토리한테 부탁을 받고 왔어. 저번에 주문 했었던 철제 우리가 필요하다고 하던데."

"철제 우리?"

"어. 키우는 펫들이 갑자기 서로 싸우려고 들어서 격리시킨다고 하나봐."

"......"

 

미간을 찌푸리는 유기. 안그래도 저놈의 외뿔때문에 위협적으로 보이는데, 저렇게 인상쓰니까 더럽게 무섭게 보인다. 어린애들 요실금 제조기가 되겠군.

 

"뭔가 문제라도 있는거야?"

"어? 아아, 아니아니. 철제 우리라. 그렇지. 사토리가 예전에 부탁했었어. 하지만 중간에 쓸 일이 사라졌다고 가능하다면 맡아줄 수 있겠냐고 했었지."

"내 입장에서 해도 될 말일지는 좀 애매한데, 그거 꽤 무례한 부탁 아냐?"

"아아, 보통이라면 그렇게 받아들이겠지만 말야. 사토리에게 그 철제 우리건을 수락한건 애시당초 내가 사토리에게 빚이 있었기 때문이거든. 그런거라서 딱히 신경쓰지 않았어."

"호오..."

 

둘 사이에 뭔가 있었다는 이야기로군. 그나저나 유기는 사토리를 딱히 껄끄럽게 여기지 않는 것 같네. 강자의 여유 같은걸까.

 

"하지만 조금 곤란하네. 그 우리 말인데, 지금 쓰고 있거든."

"엥?"

"뭐... 직접 보는게 빠르겠군. 들어와. 원래라면 보여줄만한건 아니지만... 네가 보는 편이, 사토리가 납득하기 쉬울테니까."

 

...이걸 갑자기? 나는 그냥 평범하게 심부름만 하고 올 생각이었는데...

 

하긴, 이대로 그냥 돌아갔다간 사토리가 '왜 이유를 듣지 않고 온거야?' 라고 혼낼게 뻔하다. 걔 앞에선 구라도 못치니 원. 일이 귀찮게 돌아가기 시작한 것 같지만, 이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겠지. 사실 조금 궁금하기도 하고. 오니가 사는 집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으음...?"

 

유기를 따라 집에 들어오니, 집 안은 유기가 말한대로 정말로 넓었다. 아니, 넓다고 하기 이전에 내부는 커다란 동굴 같이 암벽으로 둘러쌓여 있었다. 애시당초 겉이랑 속이랑 내용물이 전혀 다르자녀. 요술 같은건가?

 

"정말 보기보단 꽤 넓네."

"오니는 거짓말을 말하지 않는다구?"

"그런거 같네... 근데, 어떻게 되어 있는 구조야? 다른 장소랑 이어져 있는건가? 아니면 홍마관처럼 시공간 조작으로 공간 자체를 늘린건가?"

"글쎄? 나도 양도 받은거라서 말야. 사신이 지은 집이라는 이야기만 들었어."

"사신이라..."

"손님이 온거니 원래라면 차라도 대접하는게 좋겠지만... 댁은 그런 성격은 아닌거 같아서 말이야. 본론으로 바로 넘어가도 되겠지?"

"물론이지."

"그렇다면 이 방이야."

 

유기는 나 스스로 문을 열라는 듯이, 허리에 손을 올리고 눈 앞에 있는 장지문을 향해 턱짓을 한다. 그녀가 만들어내는 분위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며, 나는 조심스레 문을 밀어 연다...

 

"....?"

 

그런데, 눈 앞에는 생각치도 못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방 자체는 정말 평범한 일본식 방이었지만, 방 여기저기에 귀여운 인형이 가득했다. 굴러다니는 술병도 몇개 보이고, 안주가 담겨 있었던 것 처럼 보이는 그릇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그런 주제에, 옷가지는 꽤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 이 개성 넘치는 방은 대체...

 

- 쾅!

 

그때, 갑작스레 눈 앞에서 장지문이 큰 소리를 내며 닫힌다. 고개를 돌려보니, 유기가 당황한 표정으로 장지문에 손을 대고 있었다. 어.... 이 반응, 혹시?

 

"유기, 혹시 아까전의 여러 의미로 귀여웠던 방은 혹시"

"방을 잘못 찾았네! 이쪽이야, 이쪽."

"......"

 

...이야기가 딴길로 많이 샐거 같으니, 딴지 걸지는 말자...

 

하지만 방을 헷갈리는 걸로 봐서, 유기도 딱히 이 집에 익숙하진 않은 모양이다. 하긴, 솔직히 확 눈에 띄는 구분이 없으면,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는 내장이다. 솔직히, 나는 이 집에서 길을 잃을 자신도 있다.

 

"이번엔 진짜로 여기야."

".......? 뭐야, 이 냄새."

"들어가보면 알게 될거야."

 

유기는 바로 옆에 있는 방문을 열고, 내게 손짓하고 있었다. 그보다, 대체 뭐지 이 냄새는? 오래된 화장실에 들어가는 썩은내에 섞여 있는건... 피 냄새? 아니, 그보다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엄청 많이 나는데요. 마치, 이성을 잃은 짐승의 울음소리...

 

...아하. 과연. 그렇게 된거였군.

 

"아무래도, 지령전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은 아니었나보네."

"처음 봤을때도 생각했지만, 눈치 하나는 정말로 빠른 녀석이네, 너. 그 말 대로야. 여기는, 이성을 잃은 지저의 주민들을 가둬 놓는 곳. 내버려 뒀다간 다른 요괴에게 죽을테니까 말야."

 

유기와 함께 방에 들어서자, 문 밖에서 들렸던 비명 소리가 더 크게, 그리고 더욱 다양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철제 우리는 당장 눈에 보이는 것만 해도 12개. 하지만 저 너머에 또 다른 문이 있는 걸 보아, 안에도 더 있을지도 모른다.

 

철장마다 한마리 씩 요괴가 갇혀 있는데, 다들 이성을 잃고 옆에 있는 요괴에게 공격을 가하려고 하고 있었다. 우리에 몸이 부딪쳐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도, 그들의 공격성은 멈추지 않았다 

 

"녀석들은 지저에 사는 녀석들 중에서도 급이 낮은 요괴들이야."

"...사토리의 펫들이랑 같은 상황이네. 근데 계속 이러고 있는거야? 사토리네 펫은 그래도 사토리한테 혼나면 이성이 돌아오던데."

"이성이 돌아왔다고?"

"응. 어라, 여긴 아니야?"

"......."

 

내 말을 듣고 침묵하는 유기. 잠깐 생각하더니, 유기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튼, 사토리에겐 미안하지만, 보다시피 지금 당장은 우리를 가져다 줄 수가 없어."

"원인은 파악 됐어?"

"그게 됐으면 이러고 있겠어?"

"흐음."

 

지령전 뿐만 아니라, 지저 전체에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을 줄이야... 근데 가만 있어봐? 어째서 사토리의 펫들은 아직까지 증상이 덜한거지? 아무리 얘네들이 하급 요괴들이라고는 하지만, 적어도 사토리의 펫들 보다는 격이 높을터인데... 뭐, 레이우지 우츠호처럼 신과 동화된 녀석은 빼고 말이야.

 

"...일단은 알겠어. 그럼 난 사토리에게 지금 상황을 보고 하러 갈께. 우리에 대해서 뭐 따로 더 전할 말이라도 있어?"

"음... 아니, 잠깐만. 지령전엔 나도 동행하지. 지금 지저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할 필요가 있어보이네."

"그러셔, 그럼."

 

 

[호시구마 유기가 동료가 되었다!]

 

 

...어디선가 '호시구마 유기가 동료가 되었다!' 라는 이상한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일단 넘어가도록 하자.

 

하여간, 마치 지옥 같은 광경을 뒤로하고, 우리는 유기의 집에서 나왔다. 으음, 여기는 원래 지옥이 있었던 곳이니까, 복각판 미니 지옥 같은 느낌이려나. 그나저나...

 

"왜 저 녀석들은 이성이 돌아오지 않는데, 사토리네 펫들은 이성이 돌아오는걸까?"

"모르지. 하지만 이대로 두는건 좋지 않은 흐름이야."

"하급 요괴의 수가 많아서, 녀석들을 가둘 우리가 부족해지니까?"

"수가 많아서, 라는 부분은 틀리지 않았어. 하지만..."

 

그렇게 말하며, 유키는 자신의 스커트를 허벅지까지 들어올렸다. 그러자 투박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다리의 왼쪽 허벅지가 보랏빛으로 부어오른 것이 보였다. 그 누가봐도, 심각한 부상. 타박상은 아니고, 이건... 물렸다? 독을 가진 무언가에게 물린걸로 보이는데...

 

"쿠로다니 야마메는 아냐?"

"모를 수가 없지. 지저의 아이돌이잖아?...그러고보니 요 며칠간 보이질 않던데. 설마..."

"아아. 이건 그녀석을 격리 시키다가 물린거야. 능력은 사용하지 못하던 모양이었지만, 엄청나게 빠르더군."

"거미독에 당했다는 이야기야? 그거 위험한거 아냐?"

"음. 츠치구모의 독 따위, 나한테는 원래라면 통하지도 않겠지만 말야. 어째선지 통하는 것 같아서 힘줘서 막고 있는거야."

"......???"

 

독이라는거, 힘주면 막아지는 종류의 무언가였던가? 아닌걸로 아는데?? 그보다 쿠로다니 야마메가 폭주했다고...? 츠치구모라는거, 그렇게까지 하급 요괴였던가?

...아니, 이건 그런 뉘앙스가 아니군.

 

"하여간 요지는..."

"점점 높은 단계의 요괴들까지 폭주하고 있다?"

"맞아. 문제는, 얼마나 빠른 속도로 단계가 상승하는가? 겠지."

"으음..."

 

그게 사실이라면, 상당히 커다란 이변이다. 거기다가 만약에 이 사태가 지저뿐만 아니라 지상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면? 생각하기도 싫군. 거기에, 아까전의 그 요괴들의 모습... 스펠카드 배틀 같은 고상한 행동을 할 수 있을것 처럼 보이진 않는다. 이 상황에 레이무가 나서서 만에 하나 다치기라도 하면 바깥 세계로 돌아갈 예정이 훨씬 더 미뤄질테지. 그건 좀 곤란하다. 뭐, 이런 몸뚱아리를 가지고 바깥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지 어떨지는 또 다른 이야기겠지만...

 

"그러고보니, 지저에서 사는건 좀 익숙해졌나? 우이?"

"으잉?"

"지저에 온지도 이제 1주일 정도 넘었잖아? 생활은 좀 어떤가 싶어서."

"어... 딱히 문제는 없어. 근데 이 타이밍에 물어볼만한 이야기야?"

"당장 누군가가 습격해오는 것도 아니니까 괜찮잖아? 그렇지. 지령전에서 살면 여기까지 장보러 오는데는 좀 시간이 걸릴텐데. 그건 좀 익숙해졌어?"

"이전에 살던 곳도 장보려면 좀 멀리 나와야 했거든. 그래서 그런 부분은 익숙해."

"호오. 바깥 세계의 경험을 살린 셈인가."

"별로 살리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지만 말야."

 

집세랑 보증금이 싼데는 다 이유가 있더라니까, 씨부럴... 취업 준비중이었다보니 다른 선택지가 없긴 했지만. 

 

"사토리는 어때? 집주인이 마음을 읽는 요괴라서 불편하지 않았어?"

"글쎄? 사토리 말로는 '이렇게 사고와 행동이 일치하는 인간은 본적이 없다' 라고 하던데?"

"바보라는 말을 돌려서 말한거 아닐까?"

"그거, 네쪽이 내가 바보라고 꽤 직설적으로 말한거 같은데."

"하하하! 그런가? 미안 미안. 하지만 대단한걸? 여기 녀석들 중에 사토리를 껄끄러워하지 않는 녀석은 거의 없다구?"

"자기 생각이 남한테 읽히는데, 그렇게 생각하는게 사실 당연하긴 하지. 댁은 딱히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야?" 

"오니는 솔직한게 장점이니까 말야."

"과연."

 

확실히, 유기는 권모술수를 꾸밀 것 같은 인상은 아니다. 생각이 많을 수록, 숨기는게 많을 수록 사토리와의 상성은 커진다. 유기 같은 성격은 사토리의 능력이 크게 의미가 없을테지. 나는... 비슷하긴 하지만, 조금 다른 부분이 있긴 하다. 뭐, 중요한건 아니고.

 

그나저나, 아까부터 거리가 썩 조용하다. 지난번에 유기와 함께 거리를 걸었을땐 유기에게 인사를 건내는 인사가 거의 끊이질 않았는데. 그 이전에, 아까전에 내가 여길 지나올땐 이렇게까지 한산하진 않았다. 지금은 개미새끼 한마리도 안보이는게...

 

그때, 오싹. 하고. 주위가 나를 바라보는 감각이 느껴진다.

 

"그... 아까전에 말했던 '누가 습격해 오지도 않을테니까 괜찮잖아?' 라는 말, 취소하는게 좋아보이네."

"...그러게. 그나저나 용캐도 눈치 챘네. 살기를 눈치챌 수 있을 정도로 싸움에 익숙해 보이진 않는데 말야."

"싸움은 잘 모르겠지만, 시선엔 꽤나 민감한 편이라."

"그럼 최대한 구석으로 도망가 있어. 내가 처리하지."

"그게 그렇게 쉬울 것 같진..."

 

- 슈욱!

 

"않네!"

 

몸이 멋대로, 등 뒤에서 날아오는 나이프 모양 탄을 피하며 반대로 그 손잡이를 잡고 날아왔던 방향으로 되던진다.

 

"크엑!"

"호오."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비명과, 감탄하는 유기의 목소리. 정작 나 자신은 두리번 거리는 밈으로 알려진 존 트래볼타에 빙의하여 주위를 두리번 거릴 뿐이다.

 

최근 들어서, 몸에 위협이 들어오면 이런식으로 몸이 멋대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이 늘었다. 아무래도 내가 손해보는게 없다보니까 그냥 그러려니하고 받아들였지만, 잘 생각해보면 엄청난 일 아닌가, 이거? 심지어 그렇게 갑자기 격하게 움직였는데도 근육통 하나 없다. 지나치게 편리한걸, 이 몸뚱아리...

 

이러한 움직임을 보인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긴 하지만, 여전히 신기해서 몸을 살펴보고 있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이젠 숨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는지 우리의 주위를 각종 요괴들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 하지만 거... 다들 꽤나 자코 향이 강하게 나시네. 대부분이 아까전에 유기의 집에서 봤던 녀석들과 비슷한 급으로 보인다. 유기가 전부 다 가두진 못했던걸까? 아니면 폭주에는 다른 조건이 있어서, 이전까진 거기에 해당하지 않았던걸까. 뭐, 당장 생각할건 아니다.

 

"꽤 많은거 같은데, 어떻게 할거야? 유기."

"음. 전부 박살낼 수는 있는데 말이지."

"그랬다간 이 일이 정리된 후의 뒷일이 더 귀찮지 않아?"

"그게 문제긴 해. 그럼, 어떻게 할까. 도망가?"

"오니라면 요술 정도는 쓸 수 있는거 아냐? 제일 좋은건 얘네들한테 최대한 해를 덜주면서 떨쳐내는거라고 보는데. 어떻게 안될까?"

"안타깝게도 그쪽은 친구의 특기분야라서. 나는 힘쓰는 일 전문."

"힘이라... 흐음."

 

주위를 가득 메운 하급 요괴들. 폭주중임에도, 유기가 뿜어내는 기백에 쫄았는지 생물로써의 본능으로 섣불리 다가오지는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게 그 유명한 분노조절잘해 인가... 하지만, 그럼에도 그 포위망은 점점 좁혀져 오고 있다. 즉, 격돌은 시간문제라는 것.

 

다만, 이들도 결국은 이 곳의 주민이다. 예를 들어 저기에 있는 눈깔요괴는 일전에 내게 양파를 팔아줬던 상점의 주인이다. 궁금해서 저 녀석 앞에서 양파를 살짝 뜯어봤더니, 기쁨으로 온몸으로 눈물을 뚝뚝 흘리던 걸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뭐, 2일 전이었으니까. 

 

즉, 여기서 누군가가 유기의 주먹으로 일격사를 하는 만큼, 지저의 기능에 구멍이 뚫린다는 것. 게임처럼 아무나 막 죽여도 되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날아간다는 선택지도 없지는 않겠지만, 쟤네들 중에서도 날줄 아는 녀석이 아는 녀석은 있다. 그녀석들한테 쫒기기 시작하면 답이 없는데...

 

요지는, 녀석들의 눈을 가리면서 한번에 먼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그런 방법이다. 뭔가 방법이 없을까? 폰으로 찾아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아참. 인터넷 연결 안되어 있지."

 

그런 주제에 위치 추적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꽤나 의문이지만. 이런 상황인데도 아무 생각 없이 휴대폰을 꺼내드는 걸 보면 습관이란건 무섭구만.

 

...가만 있어봐? 이 지도, 분명 3D로 각도를 틀면 전체적인 지형도 볼 수 있었던걸로 기억하는데... 아, 된다. 으음.

 

"...이거 밖에 답이 없나. 유기?"

"뭔데?"

"지금 당장 있는 힘껏 지면을 내려쳐줘."

"뭐? 하지만 이 근방은... 아하, 과연. 그렇다면!"

 

내 말에 망설이지 않고 주먹을 치켜 들어올리는 유기. 그리고,

 

- 슈우욱! 쿠우우우우우웅!

 

무슨 로켓이 쏘아지는 소리가 나더니, 발 아래가 무너지고, 중력이 몸을 아래로 잡아당긴다. 이곳은 지저 마을에서도 가장 지면의 두께가 얇은 곳. 근데 아무리 그래도 한방으로 땅이 꺼질 거라는 생각은 못했는데 말이지.

 

위를 올려다보니, 흙먼지가 자욱하게 끼어있다. 먼지를 뚫고 오는 녀석들은 아무래도 없는 모양. 작전은 성공인 셈인가.

 

참고로 지저 마을의 아래에 있는 것은, 구 작열지옥 터. 작열지옥이었던 곳 답게, 엄청나게 뜨거운 곳이다. 내 몸 자체는 내열 성능이 뛰어나지만, 옷이 상하는게 문제란 말이지. 오린도 그렇고 오쿠우도 그렇고, 여기서 어떻게 지내나 몰라.

 

...뭐, 사실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때가 아니라.

 

"유기! 나 좀 받아 줄래? 나 못 날아!"

"...뭐?!"

"못 난다니까! 누나 나 주거!!"

"...아, 그래."

 

쓴웃음을 지으며, 공중에서 나를 캐치하는 유기. 아, 이 우람한(실제로는 평범한 여자애 수준이지만) 팔에 안기니, 반할거 같아...

 

그나저나, 이렇게 떨어지면서 보니 작열지옥 터도 엄청나게 넓구만. 이게 대체 몇 미터야?

 

"날지도 못하면서 그런 작전을 생각했다고? 이상한 녀석이네, 너."

"나는 못날지만 네가 날 수 있잖아."

"그건 그렇긴 하지만... 뭐, 됐어. 녀석들도 쫒아오지 못하는 것 같고."

"저쪽이야. 저쪽으로 일직선으로 날면 지령전의 내부 정원으로 통하는 문이 있어."

"오케이..."

 

문득, 주위를 둘러보는 유기. 그녀는 무언가 걸리는게 있는지 미간을 찡그리고 있었다. 뭔가 이상한거라도 있는걸까?

 

"유기? 왜 그래?"

"아, 아무것도 아니야. 그럼, 갈까?"

 

 

 

 

 

 

 

 

 

 

 

 

 

 

 

 

 

 

 

 

 

 

 

 

 

 

 

지령전, 내부 정원.

 

"...후우."

 

코메이지 사토리는 의자에 앉은 채, 피곤한듯 테이블에 엎드려 있었다. 보통은 서재에 틀어박혀 꼼짝도 하지 않는 히키코모리 기질의 요괴이지만, 최근들어 잦아진 펫들 끼리의 싸움을 말리러 가느라 그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몸이 힘든건 아니다. 애시당초에 펫들은 착한 아이들이라, 이야기를 나누면 금방 싸움을 그만 둬 준다. 다만, 사토리로써의 능력이, 그녀를 엄청나게 힘들게 하고 있었다.

 

순수한 분노의 감정. 색으로 따지자면 붉은색일까. 이성을 잃은 펫들의 마음 속은, 이러한 사고로 가득했다. 그러한 생각을 읽을때마다, 사토리의 멘탈은 조금씩 조금씩 깎여나간다. 감각으로써 표현하자면, 뇌가 새빨간 잉크에 담궈지는 기분이랄까. 그럼에도 그녀의 이성이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는건, 그녀가 그만큼 정신적으로 강하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그러고보면, 슬슬 심부름으로 보낸 코이시의 펫(?)이 돌아올 시간일터.

 

"우이...인가."

 

우이. 얼마 전, 코이시가 데려온 기묘한 인간. 사고방식이나 생각 패턴은 남자애 그 자체였지만, 겉모습은 키 큰 스타일리쉬한 미녀. 마치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듯한, 이상한 인간이었다. 다만, 코이시가 데려왔다 한들 사토리에게 있어 그(그녀?)는 경계해야할 대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토리는 우이의 마음을 읽을 수 없었다.

 

아니, 정확하겐 '허가없이' 마음을 읽을 수 없었다. 사토리는 우이가 대화에 응한 순간부터, 그의 마음을 일시적으로, 그리고 부분적으로만 읽을 수 있었다. 그녀가 마음을 읽을 수 없는 존재는 단 한명, 그녀의 동생인 코메이지 코이시 뿐. 하지만 그조차도 코이시가 제 3의 눈을 닫으면서 사토리의 능력의 다음 단계로 나아 갔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인간에게 능력이 통하지 않는데다가, 그녀의 능력을 조건부로 '허용'시키다니. 경계를 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다만, 그에겐 정말 한톨의 적의도 느껴지지 않았다. 코이시도 그를 집에 들이고 나선 좀 더 자주 집에 들어오는 것 같고. 그렇기에 사토리는 그의 체류를 허가했다. 애시당초에 곧 있으면 나간다는 모양이니...

 

그런 그에게, 사토리는 오늘은 심부름을 부탁했다. 펫들끼리의 싸움을 사토리 혼자선 제어하기가 힘들어졌기 떄문이다. 마음 아프지만, 일부의 펫들은 가두어둘 수 밖에 없는 상황.

 

그때,

 

- 콰아아아아아아앙!!!

 

"!?"

 

안뜰에서 들리는 엄청난 파괴음. 깜짝놀라 돌아보니, 구 작열지옥 터로 이어지는 철문이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나타난 것은...

 

"으헤~ 덥구만. 와, 너는 땀도 하나 안흘리네? 어떻게 되먹은 몸이야?"

"철문을 손가락 하나로 날려보내는 댁은 어떻게 되먹은 몸인데?"

 

호시구마 유기와, 어째선지 그녀의 품에 안겨 있는 우이였다.

 

 

 

 

 

 

 

 

 

 

 

 

 

 

 

 

 

 

 

 

 

 

 

 

 

 

 

"아아, 과연... 우리 펫들한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군요. 그래서 철제 우리를 빌려줄 수가 없다고. 거기에 점점 폭주하는 요괴들이 증가하고 있다, 라. 어려운 이야기네요. 에? 그 채소팔이 멘타로도 폭주를? 그는 그래보여도 요괴로써는 낮은 급은 아니었을텐데... 쿠로다니 야마메도? 아아, 과연. 유기, 당신의 몸에 독이... 에, 힘줘서 막고 있다구요? 그거 가능한 일이었나요?"

"......"

"......"

 

도착한 이후, 나와 유기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음에도 사토리는 일사천리로 스토리를 진행해 나갔다. 마음을 읽는 능력이라는건 편리하구만.

 

지령전, 사토리의 서재. 분명히 이 저택, 접객용 스페이스가 있었을터인데 왜 여기로 데리고 온걸까. 평범하게 자기가 편한 곳으로 불러온거 아닐까?

 

"......."

"아."

 

앗, 사토리가 내 시선을 피했다. 아무 생각 없이 자기가 편한 곳으로 안내한거구나. 얼마나 손님이 안왔던거야. 그러고보면 내가 코이시랑 왔을때도 서재로 끌려 왔었지. 뭐, 여긴 습도도 적고 따뜻하고 테이블도 있어 편안한 공간이긴 하다.

 

".......(흥)"

 

아, 어째선지 '봤지? 딱히 여기로 데려 와도 문제는 없다고?' 라는 듯한 표정 짓고 있어, 이 사토리 요괴.

 

"그 말대로긴 한데, 차이점이라면 한가지. 마을의 녀석들은 이성을 잃으면 돌아오지 않고, 사토리네 펫은 그렇지 않다는 것. 맞지? 유기."

"아아. 사실 내가 여기에 온 것도, 그 차이를 알기 위해서야."

"차이라."

 

사토리와의 주종관계? 거기에 요력으로 이어진 무언가가 있는걸까? 아니, 판타지 세계도 아니고 그건 아닐테지.... 가만, 환상향이면 판타지 소설 같은거 아닌가? 그렇다면 하나의 가능성으로 남겨둬야겠군. 그게 아니라면, 지령전이라는 지역의 특수성? 아니, 그건 아니야. 사토리의 펫은 기본적으로 지령전에 살지만, 지령전 바깥에서 서식하는 녀석들도 꽤 된다. 다들 사토리를 좋아해서 자주 찾아오긴 하지만... 가만, 이거 주인과 펫보단 어머니와 자식같은 관계 아냐?

 

"후훗,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어? 뭐야. 너희들끼리만 이야기 하지 말라고."

"아아, 실례했어요. 하지만 유기, 저로써는 잘 모르겠어요. 제가 뭔가를 하고 있는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아, 하기야. 나도 사토리가 펫들끼리 싸우는걸 멈추는걸 본적 있어. 근데 사토리가 평범하게 꾸중 하는 것 만으로도 진정 되던데? 거기다가, 아까전의 그 녀석들만큼 살기 등등하진 않았어."

"으음... 지리적 조건의 문제인건가? 그러고보면 폭주가 심화되는 속도는 우리집 근처가 훨씬 빨랐던 것 같은데..."

"저희 집은 지저 마을과는 조금 떨어져 있으니까요. 만일 그렇다면 그 영향도 있지 않을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러고보니 사토리, 구 작열지옥 터에 원령의 수가 꽤 줄어든 것 같은데 아는 건? 요정의 수도 극단적으로 줄어 있었어."

"원령과 요정, 인가요... 글쎼요. 저도 작열지옥 터에 대해선 자세하게 알지 못해서... 오린이라면 알지도 모르겠네요."

"지금쯤이면 어디 있는지 알아?"

"글쎄요. 오린은 종종 지상으로도 가는 모양이라, 행선지를 종잡을 수가 없어서요."

 

그러고보면 지상에서 내 묏자리를 파헤친 것도 오린이었지. 코이시의 지시긴 했지만. 가만, 오린 말고도 있잖아? 작열지옥 터에 사는건.

 

"오쿠우 말인가요? 안그래도 요 며칠간 얼굴을 보이질 않아서 걱정이었어요. 오린 말로는 괜찮다고는 하던데..."

"오쿠우가?...듣고보니 최근엔 잘 안보였네...."

 

오쿠우, 레이우지 우츠호. 평범한 지옥까마귀었지만, 야사카 카나코가 그녀를 야타가라스라는 신과 융합시켜 굉장히 위험한 요괴로 재탄생한 사례. 그러고보면 확실히 오쿠우의 모습이 요 며칠간 보이질 않네. 까마귀 상태일때 내 어깨에도 앉아줘서 마음에 들었었는데.

 

"유기, 그런데 작열지옥 터에 원령이 없는건 무슨 문제인거야?"

"두가지 케이스지. 전부 다 지상으로 나갔거나, 전부 다 어딘가 숨었던가. 전자라면 지상에서 소동이 일이났겠지만 그건 내 알 바는 아니고. 후자라면 이상사태야."

"...전자도 충분히 이상사태라고 생각하는데?"

"뭐, 들어봐. 원령은 기본적으로 숨을 이유가 없어. 녀석들을 해할 수 있는 수단 자체가 적기 때문이야. 하쿠레이의 무녀 같은 영적인 능력이 있는 녀석이거나, 특수한 무기를 가지고 있는 녀석이라던가. 풍문으로 들었지만, 명계의 정원사라는 녀석이 그런 능력이 있는 칼을 가지고 있다지?"

"글쎄?"

 

콘파쿠 요우무가 가지고 있는 누관검과 백루검 말하는건가. 그러고보면 콘파쿠 요우무라... 그 반령의 감촉이 늘 궁금했는데 환상향 체류 기간(?) 동안 어떻게 만날 방법이 없으려나. 얼마 남진 않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그런 능력을 가진 녀석이 날뛴다면 원령은 당연히 숨어. 하쿠레이의 무녀가 왔을때는, 그 몸을 뺏어보잡시고 덤벼든 녀석들이 꽤 있었다곤 하지만..."

"오린한테 들은 바론 그 자리에서 죄다 제령당했어요."

".......잠깐만 있어봐. 그렇다는건 뭐야. 그런 시도조차 못할 녀석이 작열지옥 터에서 날뛰고 있다는거야?"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지. 그리고 하나 더. 요정이 없는건 이상해."

"요정? 그러고보니..."

 

환상향에서 요정들은 정말 말그대로 어디에서든 나타난다. 그건 구 작열지옥 터도 예외는 아니다. 거기에 요정은 시끌벅적한걸 좋아해서, 만약에 유기가 말한대로의 녀석이 있다면 오히려 요정이 더 날뛰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는건...

 

"요정조차 꺼리는 존재였다던가?"

"그럴 가능성은 있지."

"하지만 요정도 꺼리고, 원령도 꺼리는 존재라는건 대체..."

"...유기, 당신은..."

 

사토리가 유기의 마음을 읽었는지, 화나서 뭔가를 이야기 하려는 그떄.

 

- 끼이이익...

 

작지만 확실하게 들리는 문열리는 소리. 돌아보니,

 

"오린?...야, 잠깐만. 이 상처...!"

"냐..."

 

고양이 모습의 오린이 피투성이가 된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털 여기저기가 불타 있고, 앞발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거기에, 여기저기에 보이는 타박상. 요괴니까 이정도로 죽지는 않겠지만, 이 상처는... 꽤 심각하다.

 

"...그래요, 오린. 오쿠우가."

"...젠장, 말하자 마자 이건가."

"잠깐만 있어봐. 오쿠우가 폭주하고 있다는거야? 하지만 오쿠우의 몸에는..."

"네. 야타가라스님이 계시죠."

"하지만... 아."

 

머리속에서, 무언가 한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야타가라스를 가진 오쿠우가 폭주를 한다는 그 상황을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가설이.

 

"오린. 어짜피 말 못하는 상태니까, 생각만 해줘. 사토리가 들을 수 있으니까. 오쿠우가 이상해지기 전에, 뭔가 만지지 않았어?"

"냐, 냐..."

"! 그렇다고 하네요. 우이, 어떻게 그걸?"

"잠깐만 사토리, 아직. 오린한텐 미안하지만 조금만 더 물어볼게. 어떤 물건이었어?"

"......"

"눈알같이 생긴... 노란 구슬? 사토리님께 가져다 주면 좋아할 것 같다면서, 인가요..."

"오케이, 고마워. 오린. 사토리."

"알고 있어요. 오린, 우선 상처부터 치료해줄께. 잠깐만 참아줘."

 

허둥대지 않고, 익숙한 몸짓으로 오린의 몸을 들어올려 서재를 나서는 사토리. 하지만, 그녀의 표정엔 여기에 체류한 뒤 처음 보는 절박함이 담겨 있었다.

 

"....아무래도, 댁 예감이 적중한 모양이네. 유기"

"별로 맞추고 싶진 않았지만 말야."

"후우... 그래서? 어떻게 할거야?"

"어떻게 하냐니, 그거야."

 

어깨를 으쓱이는 유기. 그녀의 시선은 서재 문 밖으로 언뜻 보이는 안뜰에 향해 있었다.

 

"가는거야?"

"아아. 위험하니까 너는 여기 있도록 해, 우이."

"그러고 싶긴 한데, 그 눈알같은 구슬에 흥미가 생겨서 말야."

"...잠깐만, 따라올 셈이야? 아무리 그래도 야타가라스를 상대로 그쪽을 감싸면서 싸울 수는 없다구?"

"미쳤어? 누가 싸우는데까지 따라간대? 나는 떨어진 곳에서 아까 오린이 말한 그 구슬에 대해서 알아볼 생각이야. 열선을 막 쏴대는 적한텐 난 전투력이 0이라구?"

"...미친건 어느쪽인지. 떨어진 곳이라고는 해도, 불똥이 튀는것 까진 막아줄 수 없어. 그래도 괜찮지?"

"막아달라고 한적도 없네요. 그보다, 엄청 챙겨주네. 원래 성격이 그런겨?"

"글쎄다, 성격 같은건 잘 모르겠다만... 듣자하니 너, 코이시 녀석이 데려 온거라며."

"코이시? 그렇긴 한데."

"...그 녀석이 데려온 친구라면, 되도록이면 다치지 않게 하고 싶어서 말야."

"허어..."

 

유기의 표정에는, 약간의 죄책감이 담겨 있는 것 처럼 보였다. 코이시랑도 뭔가 있었던건가... 하지만 표정을 보니, 내가 발을 들일만한 영역은 아닌 것 같다.

 

"그럼 가볼까? 그 까마귀가 언제 작열지옥 터에서 여기로 나올지 모르는 일이니까 말야."

"그러네. 여기서 오쿠우랑 네가 붙었다간 지령전을 다시 지어야 할 거야."

"아하하. 그렇겠지. 그러니까 그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빨리 내려가자구."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유기는 내 등을 팡- 치더니 먼저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참고로 나는 그 일격에 10초간 움직일 수 없었다. 아파서 못 움직이는 경험, 꽤 오랜만인걸...

 

고통이 좀 가시는걸 느끼며, 나는 유기를 따라 다시 구 작열지옥 터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구 작열지옥 터.

 

다소 설명이 부족했을 수 있을것 같아서 보충 설명을 하자면, 지금 내가 찾고 있는건 오쿠우가 만졌다는 그 구슬이다. 그 구슬은 분명 이번 이변의 핵심 아이템일 것이다. 야마메의 독이 유기에게 먹혔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요력을 증폭하는 무언가일 가능성이 높다. 다만, 그 증폭되는 요력에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거겠지. 유기가 폭주하지 않는다는건... 으음, 그만큼 그릇이 크다는거 아닐까? 잘 모르겠다.

 

그 구슬을 오쿠우가 가지고 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유기의 집 근처의 요괴들이 여전히 폭주하는 모습을 보이고, 사토리네 펫이 내가 집을 나서기 전까진 멀쩡했던걸 생각해보면 지금 오쿠우가 그 구슬을 소지하고 있을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정보를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1. 구슬의 정체는 요력을 증폭하는 무언가.

2. 닿는것 만으로도 신을 몸에 깃들게 한 요괴조차 폭주하게 될 정도로 불안정하고 위험한 물건.

3. 그 힘은 주위에도 영향을 미친다. 아마 가까울 수록 영향력이 크리라.

 

그리고 여러가지 정황을 생각해봤을때 도출되는 정보는... 그 구슬은, 아까 우리가 바닥을 박살내고 내려온 그 지점 인근에 있을 가능성이 있다, 라는 것이다.

 

"하... 근데 여기서 그걸 어떻게 찾냐."

 

굴러다니는건 돌밖에 없는 허허벌판을 바라보며, 나는 한숨을 쉬며 중얼거린다. 야이씨, 초등학생도 이것보단 성의있게 맵 만들겠다. 대체 여기서 뭘 어떻게 찾으라는거야?

 

...가만? 그러고보면 오쿠우 걔는 인간 폼이던 까마귀 폼이던 평범하게 날아다니잖아. 이런 허허벌판을 날아다니면서 어떻게 그 구슬을 핀포인트로 찾은거지? 구슬이 가진 힘에 이끌린걸까? 아니면... 구슬이 반짝인다던가? 그러고보면 까마귀는 반짝이는 물건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그렇다고 한다면 오쿠우가 찾아 냈다는 사실이 놀랍진 않을 것 같다. 다만, 몸이 이렇게 변한 뒤로 나도 눈이 꽤 좋아지긴 했지만, 까마귀처럼 특정한 무언가에 더 잘 반응한다거나 그런건 아니라서 찾는데 꽤 시간이 걸릴 것 같다.

 

- 콰아아아아아앙!!

 

"오우, 열심히 하고 있구만."

 

이 멀리서도 들리는 굉음. 아마 유기가 오쿠우와 만나 교전 중인거겠지. 이쪽은 유기가 시간을 끌어주는 동안, 그 눈알 모양의 구슬을 찾도록 해보자. 근데 찾아서 뭐 어째야할까... 그것도 고민이긴 하네. 그리고 그 물건이 내게 어떤 해를 줄지도 모르는 판국에...

 

아니지, 아니야. 도망칠 변명부터 만드는건 좋지 않다. 물론 이번 일은 나랑 크게 상관 없는 일이긴 하지만, 어떠한 형태로든 연루된 이상 어느정도의 역할은 해야하지 않겠어?

 

"으음... 아얏?!"

 

그때, 파직 하고 정전기 같은 무언가가 발끝을 스쳐지나간다. 이상하네, 신발은 신었는데 정전기라니...? 아니, 이건...

 

- 파직!

 

"우오..."

 

눈앞에 손을 뻗자, 무언가 보이지 않는 장벽 같은 곳에서 부터 번쩍- 하고 붉은색 번개 같은게 나타나 손을 튕겨낸다. 아, 이거 그건가!

 

"칫, 결계인가...!"

 

한번쯤은 진짜로 해보고 싶은 씹덕 대사 Top50에 들어가는 그 대사를 드디어 말할 기회가 생기다니.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야. 하지만, 이런 아무것도 없는 곳에 결계 같은게 있을리가 없다. 그렇다는건...

 

"...저건가."

 

아까전까진 보이지 않았던, 새하얀 눈알같은 구슬이 둥둥 떠 있는게 보였다. 살짝 뒷걸음질 쳐보니, 구슬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가까이 가야만 보이는건가... 이런 기믹이 있는 결계 안에 있는데, 오쿠우는 대체 어떻게 저걸 찾아서 만진거지? 혹시, 원래는 슬립상태 였다가 오쿠우가 만져서 이렇게 된걸까? 뭐, 중요한건 그게 아니고.

 

이게 원흉이라면, 지금 당장 부수는게 맞겠지... 혹시 몰라서 가방에 들어 있던 캠핑용 나이프를 들고 온게 정답이었군. 맨손으론 박살낼 수 있을거 같진 않아보인다. 뭐, 그것도 실제로 만져보면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그나저나 이 구슬, 어디서 본 적이 있는거 같은데, 착각이겠지?

 

- 파직!

 

"으-음."

 

평범하게 걸어들어가려니, 결계 때문에 다가갈 수가 없다. 결계가 주는 전기충격(?)은 그렇게 강하지 않지만, 몸은 확실하게 밀려난다. 마치 고무에 튕겨나가는 기분이다. 그렇다면, 이 나이프를 던진다면...

 

- 파직! 슈우우욱!

 

대충 던져본 나이프는 내 몸이 닿았을 때처럼 붉은색 번개로 한번 거부당하더니, 정확하게 나의 심장을 향해 향해 되돌아온다.

 

"옴메야!?"

 

나 자신은 깜짝 놀랐지만, 몸은 반사적으로 몸을 빼며 나이프를 되잡고 있었다. 던지는 공격도 안되나... 질량이 문제였던걸까? 아니면 결계를 해제하는 방법이 따로 있는건가? 일단 결계를 조사해보자. 조사해보면 해제방법도 보일지도 모르니...

 

- 3분 후 -

 

"몰?루"

 

결계의 주변을 돌아보면서 나이프를 이용해 결계의 크기와 범위는 대충 알아냈지만, 해제 방법은 알 수 없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이런류의 기술에 대한 지식이 거의 전무한 레벨이다. 조사를 해서 뭘 알아낼 수 있을리가 없지. 으음, 유기를 데리고 오면 뭔가 알려나? 유기라면 왠지 힘으로 어떻게든 해결해줄 것 같은 인상인데.

 

아니면 지금이라도 레이무를... 아니, 그건 좀 아니군. 여기서 하쿠레이 신사까지 멀기도 먼데다가, 나는 지저에서 그정도로 멋대로 행동해도 될 정도의 입장은 아니다. 일단 혹시 모르니까 결계에 몸통박치기라도 해볼까?

 

"파워 차지!"

 

테○ 보가드의 그 기술명을 외치며 온몸을 결계에 갖다 박는다. 그러자, 예상대로 온몸에 전기가 내달렸지만...

 

"어?"

 

의외로 간단하게, 결계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어라? 그럼 아까전까지 사용된 3분은 뭐였던건데? 어이가 없네, 진짜.

 

뭐, 좋은게 좋은거다. 원래의 목적을 다해야지. 저 빌어먹을 구슬을 깨면, 어떻게든 될 것이리라...

 

가만, 오히려 깨부수면 상황이 더 악화된다거나 그런거 아냐? 적어도 전문가한테 보여주고 싶은데... 어떻게 한다. 일단은... 그렇지. 일단은 손에 잡아보자. 부수던 누군가에게 조사 의뢰를 맡기던, 일단 내가 소지 할 수 있는 물건인지는 판단이 되어야한다. 오쿠우의 경우, 만진 것 만으로 폭주 해버렸지만... 나는 어떨까. 최악의 경우 죽으려나? 그렇게 되면 환상향 오고 난 뒤로 두번이나 죽는 셈인데. 근데, 지옥에서 죽으면 지옥에 가는걸까? 아니면 천국으로 가는걸까. 아, 동양쪽이면 천국보단 극락정토이려나? 잘은 모르겠지만.

 

"Hoocha!"

 

어딘가의 상어가 내는 추임새와 함께, 구슬을 힘껏 잡는다. 그리고...

 

"...아무일도 없는데?"

 

딱히 몸에 이상이 생긴것도 아니고, 시간이 멈추지도 않았고, 시간이 가속하지도 않았고, 시간이 지워지지도 않았다. 그보다, 생각보다 맨들맨들하네. 무슨 유리구슬 같아... 어, 잠깐만. 이거 갑자기 손바닥 위에서 움직이는...!?

 

- 파킨!

 

오른손바닥 위에 있던 눈알 모양의 구슬은, 갑자기 내가 왼손에 들고 있었던 나이프로 맹대쉬 하더니, 그대로 참피의 위석이 깨지는듯한 소리를 내며 깨져버렸다. 아니, 이건 대체 무슨...?

 

...잠깐만. 아까전의 그 구슬, 어디서 봤다 했더니 그거잖아. 아시아라○ 저택의 주민들에서 봤던, 일본의 신기 중 하나인 이쿠타마(生玉). 분명, 작품에선 요괴의 파워업 효과나 물건에 생명을 부여하는 효과가 있었던거 같은데... 하지만, 만화에서 봤던거랑은 다르게 금방 깨져버렸다. 거기에 작품내에선 주위의 요괴를 폭주시키는 효과도 없었고. 만화랑 실제랑은 다르다는 건가... 아니, 지금 이걸 실제라고 해도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환상향이니.

 

뭐, 어찌 되었던 의도했던거랑은 달리 구슬은 멋대로 파괴되었으니 그걸로 된게 아닐까? 너무 적당적당한거 같지만, 애시당초 내가 이 이상 뭔가를 할 수 있을거 같진 않고.

 

"...조용하네."

 

그러고보니, 아까전까지 들려오던 유기와 오쿠우의 전투 소리가 들리질 않는다. 장소를 옮긴걸까, 아니면 전투가 끝난걸까. 구슬이 깨졌으니, 다들 제정신으로 돌아온 걸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선, 유기를 찾아볼...

 

"오, 호랑이도 부르면... 아니, 여기선 도깨비도 부르면 온다인가."

 

마침 저 멀리서, 유기가 터벅터벅 걸어오는게 보인다. 전투의 피로때문일까, 그녀의 걸음걸이는 꽤 지쳐보였다. 그러고보면 옷도 여기저기 찢어 진것처럼 보이는데... 하긴, 그 오쿠우를 상대로 싸웠는데 사지가 멀쩡한게 신기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은 든다.

 

"이봐, 유기!"

"......."

"...음? 유기~?"

"......."

"유...윽?!"

 

순간,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머리속에서 도망치라는 본능적인 명령과, 이미 인간의 본능을 벗어난 육체가 엇갈려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 젠장, 이 느낌... 저게 살기라는건가. 저 멀리 있는 유기가, 엄청나게 큰 괴물처럼 보인다.

 

"큭... 윽!?"

 

내게 천천히 다가오는 유기. 가까이 오기 시작하면서, 그녀의 모습이 좀 더 자세히 보이기 시작한다. 여기저기 타버린 옷가지, 몸 여기저기는 화상으로 이미 짓물어 있었다. 손가락과 발가락 중 몇개는 불타 없어져 있고, 그녀의 우뚝 솟은 뿔엔 금이 가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내게 다가 오고 있다. 반드시 죽이겠다는 살기를 담은채. 폭주인건가...?! 하지만, 주체가 되는 구슬은 이미 깨졌을텐데...

 

"아..."

 

그렇다는건, 원인이 달리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지금 그걸 알 방도는 내게 없다. 그리고 앞으로도 없겠지. 나는, 눈 앞에 있는 오니에게 살해당할 것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나 스스로에게 지나친 자신감이 있었다. 신키의 능력 덕분에 신체 능력이 상당히 오르고, 인간의 영역을 넘었다고는 해도 실제로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다. 이전의 몸뚱이와는 너무나도 다른 레벨이었기에, 뭐든지 할 수 있을거라 자만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를 봐라. 본능과 몸이 따로 놀아서, 움직이질 못하고 있다. 몸과 본능이 따로 놀아서 사망? 이건 이것대로 다윈상급인걸. 다윈상 2관왕의 업적이다.

 

뭐... 죽임 당하는게 유기라서 어찌보면 다행일 수도 있다. 그녀라면 한방에 내 머리통을 날려주겠지. 고통도 없이 가는거다. 그리고, 그녀에겐 빚이 있다. 내가 지저의 손님으로 받아들여진 것도, 결과적으론 유기가 오케이를 했기 때문이니까. 그런 그녀에게 죽임당하는거라면, 차라리 지나가는 잡요괴에게 죽는것보단 나을지도 모르지.

 

다만, 그녀가 폭주하여 나를 죽인 뒤엔 어떻게 될까. 그대로 지저 마을로 올라가, 모두를 말살할까? 그리고 지상까지 올라가서 많은 이들을 해칠까? 과연 그녀는 그걸 바라는걸까. 유기는 지저세계의 관리자다. 그리고 지저에 대해 꽤 애착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까전에 내 기상천외한 의견을 들어줄리가 없었을테니까. 그렇게 해서라도, 마을의 요괴들을 최대한 해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 그녀가 폭주하여 모두를 죽이고, 이윽고 정신을 차렸을때 그녀는 어떻게 될까.

 

"안돼..."

 

그래선 안된다. 내가 죽기 싫은건 당연한거지만, 그녀가 영문도 알 수 없는 현상으로 그런 죄를 짊어져서는 안된다. 그래서는 안된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건 단 하나.

 

도망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굳어 있던 몸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좋아, 그렇다면 이제...

 

"어?"

 

- 슈우우우우욱!!!

 

마치 로켓이 발사되는 소리와 함께, 내 안면에 주먹이 날아들고 있었다. 어떻게 움직여도, 피하는건 불가능하다.

 

씨발. 늦었네.

 

 

 

 

 

 

 

 

 

 

 

 

 

 

 

 

 

 

 

 

 

 

 

 

 

"신키님, 말씀드릴 것이."

"왜 그러니? 유메코."

 

마계, 신키의 방.

 

신키가 직접 만든 존재이자 전속 메이드인 유메코가 느긋하게 실뜨기를 하고 있는 신키에게 말을 건다. 다소 당황스러워하는 표정을 짓는 유메코를 보며, 신키는 그녀의 그런 표정을 보는게 꽤 오랜만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최근 마계의 한 구석에 존재 하는 법계에서 히지리 뱌쿠렌의 봉인이 풀린 것을 제외하곤,, 마계에 이변이 없었던게 한몫 한 것도 있다.

 

...그러고보면, 하나 더. 이변이 있긴 했지. 하고 신키는 떠올렸다. 자신의 실수로 영혼만 날아왔던, 한 청년을.

 

"마계의 일부에서, 지속적으로 마력이 빠져나가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머, 그래? 위치는?"

"여기에."

 

유메코는 얼마 전에 신키가 주었던 스마트폰 비슷한 기계를 자신의 주인에게 내민다. 얼마전에 찾아온 틈새 요괴가 들려준 바깥세계의 정보를 바탕으로 창조한 물건으로, 그 기능 또한 비슷하다. 준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능숙하게 사용하게 되다니... 신키는 놀라움과 감사함을 느끼며 유메코에게서 기계를 받아든다. 액정에 표시되고 있는 것은, 지난번 그 청년을 만난 그 위치.

 

"아아, 이거라면 문제 없어. 놔두도록 하렴, 유메코."

"알겠습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고, 언제나처럼 신키가 앉아 있는 의자의 옆으로 이동해, 그대로 대기한다.

 

"......"

"......"

 

그러자, 신키는 '왜 이유를 묻지 않는거니? 물어봐! 물어봐줘!' 하는 듯한 표정으로 유메코를 빤히 바라본다. 속으로 한숨을 쉬며, 유메코는 어쩔 수 없이 입을 연다.

 

"...어째서 그런 명령을 내리시는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잘 물어봐 줬어! 사실 말이지~"

 

신키는 기다렸다는듯 그 청년, 쇼우이치를 만난 이야기를 유메코에게 해주었다. 자신 떄문에 환상들이한 바깥 세계의 남자가 몸과 영혼이 분리되어 버린 일. 원래라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자기 자신의 몸을 마계의 것으로 바꿔달라는 의외의 제안을 해온 사실. 그리고 그 과정이 꽤나 즐거웠다는 일까지.

 

물론, 즐거워 하는 신키와는 반대로 유메코에겐 속이 쓰려오는 이야기였다. 즉, 마계의 마력을 무한정으로 끌어다 쓸 수 있는 인간을 초월한 무언가가 환상향에서 깽판을 치고 있을거란 이야기일테니까. 그녀는 언젠가 만났던 하쿠레이의 무녀를 떠오르며 한숨을 쉬었다. 최악의 경우, 조만간 또 보게될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애시당초, 앨리스라면 보러 가시면 될거 아닙니까. 신키님께서 딱히 환상향에 가면 안된다는 규칙은 없을터."

"그, 그치만. 엄마가 갑자기 찾아가면 부담스럽지 않겠어?"

"...마법책을 집었는데 갑자기 어머니와의 대화가 시작되면, 그건 그것대로 부담스럽지 않겠습니까?"

"그런가?"

"하아... 그리고, 쇼우이치라고 했습니까? 그 남자가 언제 죽을지 모르지 않습니까. 환상향은 바깥 세계의 인간이 살기엔 적합하지 않은 곳입니다."

"아, 그거라면 괜찮아! 그에겐 그걸 줬으니까!"

 

자신만만하게 엄지를 척 치켜올리는 신키. 순간, 불안감이 엄습하는걸 느끼며 유메코는 떨리는 마음을 진정 시키며 묻는다.

 

"...설마, 창조 능력을 주신건 아니겠죠?"

"에이, 설마~ 애시당초 그건 준다고 해서 다룰 수 있는게 아니야."

"...그렇다면?"

"내 머리장식이랑, 환경 적응 능력."

"신키님..."

"에? 왜 그래? 유메코. 배라도 아픈거야?"

"......"

 

후우, 하고 마음속으로 한숨을 쉬며, 유메코는 미간을 찌푸렸다. 확실히, 신키가 준 것들이라면 어디에서 죽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그 자가 나쁜 마음이라도 먹으면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신키님의 머리장식도 위험한데, 심지어 환경 적응 능력이라니, 아무리 그래도 지나치십니다!"

"주, 줘버린건 어쩔 수 없는걸. 그리고, 그렇게 나쁜 애처럼은 보이지 않았어!"

"하아..."

 

이젠 숨기지도 않고, 한숨을 푹 쉬며 이마를 부여잡는 유메코. 그리고 그녀는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부디, 그 인간이 신키가 말한대로 악인은 아니기를.

 

 

 

 

 

 

 

 

 

 

 

 

 

 

 

 

 

 

 

 

 

 

 

"크으윽!?"

"??"

 

갑자기, 유기가 당황하는 듯한 신음을 내며 내게서 멀어진다. 완전히 죽은줄 알고 쫄았는데, 어째선지 상대가 먼저 쫄았네. 왜지?

 

자세히보니, 유기의 주먹이 무언가 날카로운 것에 찔린 듯 크게 패여 있었다. 그 손에선 피가 철철 흘렀지만, 얼마 안가 상처는 치료되었다. 다만, 그녀는 여전히 이쪽을 경계하는지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중. 저 상처... 분명, 아까전까진 없었는데. 혹시 누군가가 지원을?

 

"......?"

 

주변을 둘러보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혹시 기습한 뒤에 숨은건가? 이런 차폐물이 없는 곳에서 그런 계통의 은신이 가능한건, 워크래프트의 블레이드마스터 아니면 코이시일텐데. 거기에, 유기의 시선은 처음부터 내쪽을 향하고 있었다. 그보다, 아까부터 머리를 움직일때 느껴지는 이 위화감은 뭐지. 왠지 이마쪽으로 머리의 무게중심이 묘하게 쏠리는 기분이...?

 

"머시여 이건?"

 

만져보니, 맨들맨들하고 열이 느껴지는 원뿔형의 무언가가 만져졌다. 갑자기 이마에 고○가 나는 상업지가 생각는데... 아니, ○추는 아니다. 이건, 뿔이다. 그것도 눈앞에 있는 유기의 것과 같은 형태의 것. 뭔가 축축해서 손을 보니, 뿔을 만진 손바닥에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과연, 유기의 저 상처는 이 뿔에 찔린 것인가. 뿔의 끝을 만져보니 꽤나 날카롭다. 존나 아팠겠군...

 

아니, 그게 아니라. 왜 뿔이 나 있는건데? 그리고 쟤는 왜 나를 경계하는거고? 그저 갑자기 돋아난 뿔에 당황해서 경계하는걸까?...으음. 그럴 가능성이 없는건 아니겠지만, 상대는 이성을 잃었다고는 해도 유기다. 뿔에 찔린 것만으로 저렇게 당황하진 않을터. 그렇다면...

 

"흡!"

 

- 쉬이이익!!

 

가볍게 주먹을 질러보자, 바람을 세차게 가르는 소리와 함께 내질러진다. 그리고, 주먹을 내지를때의 이 묵직하고 서늘한 감각... 내가 알고 있던 내 몸의 힘과는 차원이 다르다. 거기에, 몸을 움직일때마다 느껴지는... 뭐라고 해야할까. 몸의 기억이라고 해야할까? 의식적으론 전혀 모르는 움직임이지만, 몸의 근육이 다음 동작을 대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렇게 발을 들어서 내려 찍으면...

 

- 콰아아아앙!!!

 

"홀리 쉿~"

 

굉음과 함께 땅이 움푹 패인다. 그럼에도 몸에는 아무런 무리가 오지 않는다. 다만, 무의식적으로 몸이 멋대로 움직이던... 그러니까, 날아오던 나이프를 나도 모르게 되던졌던 최근의 그 감각과는 다소 다른 느낌이다. 그래, 다른 사람의 몸을 움직이면 이런 느낌인걸까.

 

즉, 그거다. 아무래도 유기의 신체 능력을 베껴온 모양이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고, 유기의 본 능력의 몇퍼센트를 베껴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아까처럼 무력하게 당하지는 않을테지. 

 

좋아, 일단 유기를 진정시키자. 어떻게 하냐고? 뭐... 지금 이 몸으로 할 수 있는건 하나 뿐이지.

 

"뎀벼, 씨발!"

"크아아아아악!!!"

 

나의 도발에 이성을 잃고 달려드는 유기. 자, 집중하자. 유기의 힘을 어느정도 베껴왔다면, 공격 부위에 따라서 충분히 데미지를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턱주가리!"

 

- 빠아아악!!

 

스탭을 이용해 사선에서 벗어나는 동시에 유기의 턱을 주먹으로 후려갈기는건, 이성을 잃고 마구잡이로 달려드는 그녀를 상대로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크게 휘청거리는 유기의 몸. 다만, 뼈를 부순다거나 그런 레벨의 충격은 주지 못했다. 유기의 뼈가 단단한건지, 내가 약한건지... 다만, 틈은 생겼다.

 

"하아아압!"

"크으으윽!!"

 

휘청거리는 그녀의 안면을 힘껏 걷어찬다. 축축한 무언가가 발목에 잔뜩 느껴지는걸 보아 코를 제대로 공격했나보다. 다만,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윽!?"

"크아아악!!!"

"으어어어어 씻팔!!"

 

내 오른쪽 다리를 붙잡은 유기는, 인정사정없이 내 다리를 짓이긴다. 아드레날린 분비 때문인지 뭔지는 몰라도 고통은 거의 느껴지지 않지만, 오른쪽 발목 아래로 감각이 사정없이 사라져간다.

 

"크아아아아!!!"

"어? 어어어!?"

 

거기에 그치지 않고, 유기는 그대로 내 다리를 잡은채로 팔을 힘껏 휘둘러, 그대로 나를 던져버린다. 고속으로 날아가는 몸. 덤프트럭에 치여 날아가면 이런 느낌인걸까. 아니, 그런걸 생각할게 아니라 착지! 근데 오른쪽 다리가 작살이 났는데 될까?

 

"오오?"

 

내려다보니, 오른쪽 다리의 상처는 깔끔하게 나아 있었다. 찢겨나간 옷은 여전히 찢어진 채였지만... 유기의 요괴로써의 재생 능력도 배껴진걸까? 뭐, 어찌 되었던 간에.

 

- 치이이이익!

 

다리가 땅에 닿자, 꽤나 몸이 뒤로 밀려나긴 했지만 생각 이상으로 바닥에 안정감 있게 착지했다. 날아가는 운동량이 있으니 두어번 더 튕겨나갈 줄 알았는데... 이거, 순수하게 다리 힘만으로 이렇게 된건가? 물리 법칙 어떻게 되버린거여?

 

이 엄청난 재생능력과, 유기의 힘... 잘 하면 이길 수 있을거 같긴 한데. 문제는 이 상태가 얼마나 지속되냐, 다. 당장 다음 순간에 끊길 수도 있고, 영원히 지속될 수도 있다. 확실한 답이 없는 이상, 전자를 전제로 움직이는게 맞겠지. 하지만, 어떻게 한다. 턱에 펀치를 클린 히트 시켰는데도 기절하지 않는걸 보면, 평범하게 싸워서는 승산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고보니, 유기의 능력을 배꼈다면 탄막도 사용 할 수 있지 않을까? 어디보자, 유기는 어떤 탄을 사용 했더라...

 

"캬아아아악!!!"

"사람 생각하는데 갑자기 달려드는게 어디 있어!?"

 

마치 굶주린 야수처럼 내게 달려드는 유기. 그녀의 몸을 피하던 그 순간, 머리 속에 무언가가 스쳐지나갔다. 그것은 영상. 유기의 눈 앞에는 레이무가 있고, 유기는 자신만만하게 팔을 치켜들며 선언한다.

 

"괴륜「지옥의 고륜」!"

 

- 빠아아아악!!

 

나도 모르게 영상속의 유기를 따라 외치자 그 순간, 어디서 나타났는지 알 수 없는 거대한 쇠 족쇄가 여러개 나타나, 그대로 유기의 몸에 직격해 그녀의 몸을 날려버린다. 그녀에게 직격한 족쇄는, 그대로 어디론가 날아가버리다가 잠시 후 사라진다. 이건, 유기의 스펠 카드인 지옥의 고륜인건가? 분명히 이거 노말 난이도 스펠일텐데, 이렇게 강하다고?

 

"흐으으윽!?"

 

그리고 다음 순간, 빨려나가듯 온몸의 힘이 사라진다. 나도 모르게 무릎을 꿇어버린다. 마치 갑작스레 격한 운동을 했을때와 같은 피로감이 전신을 무겁게 만든다. 스펠 사용의 반동인건가...!? 아니, 나도 모르게 쓴 것 치곤 반동이 너무 쌘거 아니야?

 

"후욱, 후욱, 후우..."

 

이미 산소가 필요없어진 몸인데도, 몸은 반사적으로 숨을 가쁘게 내쉰다. 그런데, 숨을 쉴때마다 몸의 피로감이 점차 사라져간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심호흡을 크게 한번 하자, 몸은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왔다.

 

...마력, 인건가? 숨을 쉬는걸로 마력을 보충하고 있는건가? 그리고 아까전의 그 피로감은, 마력이 바닥나서 생기는 것이고?...그렇다고 치면 이거 연비 개병신인데?

 

다만 파괴력은 확실하다. 유기의 스펠을 쓸 수 있는 거라면, 지옥의 고륜만을 쓸 수 있는 것 아닐테지. 그렇다면, 타이밍 맞게 '그 스펠'을 꽂아 넣으면 내 승리다. 아무리 유기 본인이라도, '그 스펠'을 정통으로 맞으면 성하진 않겠지. 다만, 지옥의 고륜으로 이정도인데 '그 스펠'을 쓰면 내 몸이 어떻게 될련지... 그리고, 지속시간의 제한을 알 수 없는 이상, 언제까지고 기다릴 수는 없다.

 

답은 속전속결. 호흡이 진정되면, 곧바로...

 

- 슈우우우우욱!!!

 

"흐메 씻펄!!"

 

다리에 최대한 힘을 모아 급하게 점프하자, 내가 있던 자리에 쇠 족쇄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지나간다. 아니, 이거 설마...

 

- 슉! 슈슈슉!!!

 

"아니 씨발."

 

고개를 들어보니, 유기가 미친 듯이 쇠 족쇄를 던져대고 있었다. 속도는 아까전에 내가 날렸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 저런거에 한방 맞았다간 버기 선장님처럼 되어버릴꺼야. 젠장, 이성이 없어보이길래 이런건 안쓸거라 생각했는데.

 

점점 상황이 악화되어 가는군. 이 강화 상태가 언제 풀릴지 모르는데, 저 유기가 원거리 공격까지 하기 시작했다. 점점 타이밍 잡기가 어려워져가는데... 근데, 점프 한건 좋은데 나 언제 떨어지냐? 체공시간 엄청난데?

 

"...날고 있네?"

 

머리속에서 움직임을 떠올리자, 몸은 천천히 그 위치로 이동한다. 그러고보니 유기 녀석, 날 수 있었지.. 거기다가 생각보다 컨트롤 하기 쉽다. 이거라면...!

 

"하아아압!!!"

 

도망은 가지 않는다. 감속도 하지 않는다. 그저, 최대한의 스피드를 내어 유기를 향해 날아간다. 머리 옆을 족쇄가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지나가지만, 쫄 필요는 없다. 어짜피 이렇게 무모하게라도 다가가지 않으면, 결국은 죽는다. 그러니, 이렇게 위험한 행동이 오히려 가장 안전책이다.

 

머리속에서 떠올려본다. 그 스펠의 스펙을. 강력한 스펠이긴 하지만, 클린 히트를 위해선 거리 조절이 중요하다. 그리고, 준비 시간이 존재한다는 것도 잊어선 안된다. 이렇게 말하니 무슨 로망기 같군. 뭐, 로망기 맞지. 생각해보면.

 

"우선은 시간."

 

유기에게 도달하기 직전에 궤도를 틀어, 그녀의 뒤에 착지한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재빠르게 그녀의 뒤통수를 걷어차 올린다. 탄막에 가려져 내 모습이 안보였던건지, 기습은 완벽하게 성공하여 발차기는 클린 히트. 이걸로 뇌진탕 정도라도 일어나주면 다행이겠지만, 공중에 붕 뜬 유기가 나를 노려보고 있는 꼬라지를 보아하니 그걸 바라긴 어려워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없다. 충격으로 공중에 띄워, 잠깐이라도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면 그걸로 충분하니까.

 

"지옥의 고륜."

 

스펠 선언과 동시에, 열댓개의 커다란 쇠 족쇄가 유기의 몸을 짓눌러, 그대로 땅에 박아버린다. 이걸로 시간은 벌었다. 몇초나 번걸까. 10초? 5초? 아니, 그런건 생각하지 말고, 다음이다.

 

"후우...하아..."

 

심호흡을 하며, 스펠 사용으로 소모 된 체력을 회복 시키며 머리 속에 이미지를 떠올린다. 유기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 그 기술. 스펠카드 배틀의 룰을 지키면서도, 그녀 자신의 막강한 힘 또한 자랑할 수 있는, 최고로 아름다운 스펠 카드를.

 

유기의 위치는 완벽하다. 시간도 있다. 그리고, 몸이 버텨줄지 어떨지는 지금은 생각할 필요가 없다.

 

"사천왕..."

 

한발짝, 걷는다.


- 콰아아아앙!!!

 

유기를 깔아뭉개고 있던 쇠 족쇄들이 박살이 나며 하늘을 난다. 저렇게 깔아뭉개져 있는 자세에서, 오직 힘만으로 저걸 죄다 뿌리쳐 낸 것이다. 존나 무섭네 씨발.

 

"오의."

 

한발짝, 걷는다.

 

일어선 유기가 내게 달려오려고 한다. 그녀의 귀기스러운 모습에 전신의 세포가 도망가라고 비명을 지르고 있다. 하지만, 도망가지 않는다. 도망가게 되면, 내겐 그 무엇도 남지 않게 될테니까. 말 그대로의 의미로.

 

그리고, 마지막 한발짝.

 

"삼보필살."

 

 

 

 

순간, 소리와 색이 모두 사라진다.

 

 

 

 

 

- 콰과과과과광!!!

 

뒤늦게,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시야 전체를 고밀도의 탄막이 뒤덮는다. 그리고 기억에 남아 있는 스펙에 따르면, 실전용으로 사용 할 시에 탄 하나의 파괴력은 유기의 전력 펀치 한방과 동급이라고. 그걸 수십발을 한방에 맞았으니, 몸이 성하진 않겠지.

 

하지만, 유기의 상태를 확인할 여유도 없이.

 

"!!!!!!"

 

소리도 지르지 못할만큼의 격통이 온몸을 내달린다. 숨을 어떻게든 쉬긴 해보지만, 제대로 되고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감각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시야가 뒤흔들리고 있는 꼴을 보니 아마 아파서 데굴데굴 구르고 있는걸까. 몸의 컨트롤은 이미 잃어버렸고, 차라리 죽여달라는 생각까지 고개를 쳐든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악!!!!!"

 

드디어 비명소리가 나온다. 반대로 말하자면 비명을 낼 수 있을 만큼은 회복했다는 뜻이다. 몸은 여전히 아프고, 이 고통으로 쇼크사 할 일은 없을 거라는 직감적인 확신에 정신이 어떻게든 되어버릴 것 같지만, 점점 회복하고 있다는 사실에 모든 의식을 집중한다. 언젠가 끝난다. 언젠가 끝나...!

 

"흐아!흐악!!하악!!하악...!하아...!"

 

몸의 고통이 점점 나아지는게 느껴진다. 씨, 씨발... 군대에 있을때 조차 이렇게까지 5분이 길게 느껴지진 않았는데... 회복하는데 드는 시간은 정확히 5분이었지만, 느껴지는 체감시간은 50년에 가까웠다. 마지막으로 심호흡을 한번 크게 하자, 고통은 씻은듯이 사라진다.

 

"니미 씨발, 내 다시는 이딴 짓 하나봐라! 개씨발 진짜!"

 

이마를 짚으며, 아까전의 고통의 기억을 잊고자 반사적으로 욕을 마구 내뱉는다... 아차, 이마에 뿔 있지 않았나? 이거 관통상...

 

"...뿔이 없어져 있네."

 

타이밍 좋게 지속시간이 끝난걸까? 아니면 뭔가 조건이 있었던 걸까? 지금 그걸 알 방도는 없고, 솔직히 지금은 그걸 신경 쓸 때가 아니다.

 

"유기!...어?"

 

유기가 있었던 쪽으로 다가가려고 고개를 돌리니, 거기에는 유기가 서 있었다. 여기저기가 타박상으로 보랏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이마에선 피를 질질 흘리고 있었다. 처참한 모습이었지만, 그녀의 얼굴은 그런건 상관 없다는 듯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지?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한...

 

- 스스스스...

 

"저건 또 뭐여?"

 

유기의 정수리로 부터, 무언가 검은 연기 같은게 흘러나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곧바로 내게 달려들...!?

 

"끈질기네요!"

 

- 파지지직!!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와 함께 붉은색 번개가 내달리더니, 그대로 검은 연기에 직격해 연기를 소멸시켜버린다. 아니, 이번엔 또 뭐야?

 

"괜찮아요, 마스터?"

"...뭐?"

 

돌아보니, 속옷조차 입지 않은 붉은머리의 소녀가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키는 코이시보다 조금 작은 정도일까. 머리카락은 허리까지 내려오는 롱 헤어, 그리고 동양풍의 귀여운 이목구비를 가진 그녀의 눈동자는 자신의 머리색과 같은 새빨간 색이었다. 마치 중~고등학생 오타쿠가 자캐를 만들긴 했는데, 단색만을 써서 지나치게 단조로워 보이는 그런 모습이었다. 물론 내 이야기를 하는거다.

 

나를 마스터로 부른 그녀의 손엔, 그 가녀린 팔다리와는 대조적으로 커다란 캠핑 나이프가 들려져 있었다. 저 디자인, 어디서 많이 봤는데... 아니, 저거 내 나이프잖아? 아까 혹시나 해서 가져왔던... 분명, 이쿠타마가 나이프에 직격해서 파킨- 해버린 이후로 손에 들고 있었던 기억이 없긴 한데...

 

- 털썩!

 

그때, 서 있던 유기가 무너지듯 쓰러진다. 깜짝 놀라 그녀에게 다가가 숨 쉬는지를 확인해본다. 다행히 숨은 쉬고 있다. 호흡도 규칙적이고... 평범하게 자고 있는걸까. 더디긴 하지만, 몸의 상처도 점점 아물어가는게 눈에 보인다.

 

"그녀는 괜찮을거에요. 본래부터 오니 중에서도 특수하게 강한 개체니까요."

"허어... 그 뭐냐, 설명해주는건 좋은데 일단 이거라도 입어라."

 

여기저기 찢어지긴 했지만, 적어도 사이즈 덕분에 중요부위는 가릴 수 있을 정장 상의를 벗어 그녀의 어깨에 얹어준다. 살짝 놀라는듯한 눈치였지만, 딱히 저항하지 않고 어깨에 걸쳐진 상의를 조금 여미었다. 모습을 보니 딱히 알몸을 보이는것에 대한 수치심은 없어보이지만, 눈치는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다른 요괴들도 슬슬 정신을 차릴거에요. 제가 깨어났으니까요."

"허어. 일단 순서대로 설명해줄래?...돌아가면서라도 괜찮다면. 읏샤."

 

유기의 몸을 공주님 안기로 들어올리며 이야기하자, 붉은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라는 이야기라는데, 어때? 사토리."

"이 아이는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아요... 그런데, 집 주인을 거짓말 탐지기로 쓰는건 어떨까 싶은데요, 우이."

"얘 말이 진짜라면, 네 펫들이 싸우는 원인을 내가 없앤 셈이 되는데 그정도는 서비스 해주시지?"

"...그렇게 말할줄은 알았지만요. 하지만, 다소 믿겨지지 않는 부분이 있네요."

"나도 그렇긴 혀."

 

지령전, 내 방(임시).

 

사토리의 여벌의 옷을 입고(빌렸다) 여기저기 두리번 거리는 붉은 소녀를 바라보며, 나와 사토리는 속닥거리고 있었다.

 

붉은 소녀는 자기 자신을 타케미카즈치의 일부라고 소개했다. 정확하게는, 타케미카즈치의 번개가 깃든 이쿠타마이라나. 하지만 순수한 번개만이 담겨 있었던 이쿠타마였기 때문에 물건에 생명을 불어넣기도 까다로웠고, 의식의 매개로 사용하기도 힘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어딘가에 매장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어느샌가 환상향에 흘러들어왔다는 모양이다.

 

하여간, 언제부터인가 구슬 상태의 그녀의 몸에 '안좋은 것'이 달라 붙었다고. 그것은 요괴는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신도 아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또렷한 의식을 가지고 그녀의 힘을 이용해 주위에 영향을 주기 시작해... 이번 사태를 일으켰다고 한다.

 

그러던 중 '안좋은 것'은 다음 단계로 행동을 옮겼다. '그릇'을 옮긴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녀를 주웠던 레이우지 우츠호와 공존하고 있던 '야타가라스'에. 신대의 물건조차 이용해먹었던 '안좋은 것'은, 쉽사리 우츠호의 제어권을 빼앗고, 날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 그녀를 유기는 전력으로 쓰러뜨렸지만, 이번에는 그 '안좋은 것'이 유기에게 옮겨가고... 그리고 나한테 왔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정말로 놀랐어요. 저를 받아들일 수 있는 물체가 있을 줄이야. 인간은 이런걸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군요, 마스터!"

"뭐... 아마도?"

 

신기한 듯이 내 캠핑 나이프를 이리저리 들여다보며 신기해하는 붉은 소녀. 번개만이 담겨 있던 이쿠타마였던 그녀가 무언가에 생명을 불어넣기 힘들었던 까닭은, 생명을 불어넣는 과정에서 대상에게 번개까지 같이 옮겨져, 대상이 잿더미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으음, 그치만 얘가 만들어졌다는 그때 당시에도 철기는 있었을 거라 생각하는데... 아닌가? 아니면 철기로는 안되고, 저 칼의 도신이 탄소강이라서 가능했다던가? 잘은 모르겠다.

 

"그런데, 아까부터 그 '마스터'라는 호칭은 뭐야? 애시당초 나는 너한테 마스터라고 불릴만한 일은 안했고, 뭣보다 신대에서 왔다면 다른 방식으로 불러야 하지 않아?"

"나는 당신의 이 캠핑 나이프? 라는 것을 그릇으로 삼아 탄생했어요. 즉, 당신의 것이라는거죠. 그리고 마스터라는 칭호는, 이 아이의 기억에서 가져온 것에 지나지 않아요. 부르는 방식은 어디까지나 당신의 뜻에 따르겠어요."

 

이 아이라니, 캠핑 나이프가? 쟤 평범하게 미국 해외직구한 상품인데... 아, 미국꺼라서 영어인거야?

 

"허어... 니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뭐. 그리고 호칭 같은건 아무래도 좋아. 네가 마음에 들면 마스터라고 부르던, 주인님이라고 부르던, 새끼야 라고 부르던 신경 안써."

"그렇다면, 그대로 마스터로 부를께요. 울림이 마음에 드네요."

"그러십니까."

 

나와 붉은 소녀의 대화를 듣고 있던 사토리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사토리? 어디 가?"

"우츠호와 오린... 그리고 유기를 간병하러 가려구요."

"아, 그거라면 나도..."

"아뇨, 괜찮아요. 이건 어디까지나 주인인 제 일이에요. 그러지말고, 우이는 그 아이에게 이름이라도 붙여주는게 어때요?"

"이름?"

"네. 아무래도 이름이 없는 모양이더라구요. 그럼."

 

그렇게 말하며, 사토리는 내 방(임시)에서 나간다. 아니, 갑자기 그렇게 말씀하신다 한들.

 

"이름... 그러고보면 이전에 저에게도 호칭은 있었어요."

"이름이 아니라 호칭? 뭔데?"

"진홍의 번개..."

"죠니 라이덴이신지?"

"그건 누구인가요?"

"아니, 있어. 그런 사람이. 신경 쓰지 마."

 

그보다, 신대 사람들은 엄청나게 중2병적인 호칭을 마구 짓는구만. 하긴, 그때 당시엔 중2병이라는 단어 조차 존재하지 않았을거고.

 

"그보다, 이름이라... 어렵네. 아, 그렇지. 코이시, 네 의견도 좀 이야기 해주지 않을래?"

"에? 왜 보이는거야?"

"보이고 자시고, 처음부터 거기 있었자녀."

"그, 그치만 이번엔 진심으로 능력을..."

"잘 모르겠고, 어때?"

"끙... 이 아이는 귀엽게 생겼으니까, 무조건 이름에 '사랑'이 들어가 있었으면 좋겠어!"

"앞뒤 문장이 잘 안이어지는거 같긴 한데, 사랑이라. 코이, 아이, 렌, 이런거 말하는거지?"

"응!"

 

하기사, 귀엽게 생기긴 했지... 바디(?)는 미국꺼지만, 본체의 출신은 일단 일본이니, 일본식 이름을 붙여주는게 맞겠지. 코이시의 의견도 리스펙트 하자면, 보자...

 

"마스터, 먼저 말해두지만요."

"뭔데?"

"물건에 이름을 붙이는건 매우 중요한 일이에요."

"일본에선 특히나 더 그렇다는 모양이라더라. 난 옆나라 출신이라 잘 모르겠다만."

"그런건 상관 없어요. 이름을 붙이는건 매우 중요한 일이라구요."

"거, 알겠으니까 그렇게까지 프레셔 안줘도 되거든..."

 

사실 대충 '렌' 같은 이름을 붙이려고 했는데, 이 녀석의 표정을 보아하니 그런건 NG인가 보다. 으음... 그렇다면.

 

"아이리, 는 어때? 코이시의 의견을 리스펙트한거지만..."

"아이리, 인가요?"

"응. 사랑(아이)에 번개(카미나리)를 섞어서, 아이리."

"......"

 

슬쩍 코이시를 보니까, 실망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니, 나한테 기발한 작명 센스는 없단 말이야. 멋대로 기대해놓고 그런 얼굴로 날 보지 마...

 

"괜찮네요. 아이리, 오늘부터는 그렇게 불러주세요. 마스터."

"엣!?"

"아니, 니가 왜 놀라냐 코이시... 그래서, 아이리.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야?"

"어떻게, 라고 말씀하심은?"

"마스터라고 불러주는건 기쁘지만, 딱히 너를 묶어둘 생각은 없어. 네가 하고 싶은대로 행동 했으면 좋겠어. 그러니까 이 질문은... 말하자면 단순한 호기심이지."

"...이상한 소리를 하시네요, 마스터는.저는 마스터가 없으면 죽는걸요?"

"뭐?"

"아, 죽는다고 하면 좀 어폐가 있네요. 정확하겐 동면 상태에 빠져요. 배터리... 방전? 이라고 설명 하면 알아 들으실 수 있을거라고 이 칼의 기억이 이야기 해주네요. 정확하게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요."

"아~...과연. 너, 나한테 힘을 공급 받고 있는거구나, 지금?"

"네. 하지만 이제서야 알아채신걸 보니, 마스터의 에너지량은 어마어마한 모양이네요. 저, 분명 연비가 나쁠거거든요."

"...그래? 그건 잘 모르겠는데."

 

아까 스펠카드 한번 썼다고 호흡곤란 상태에 빠졌으니까 말야. 하지만 이 여자애... 아니, 아이리가 딱히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내가 모르는 썸띵이 있는 거겠지.

 

"우이, 그럼 바깥 세계엔 아이리도 데려가는거야?"

"엥? 갑자기?"

"갑자기는 아니지...... 며칠 뒤면 바깥 세계로 돌아가는거잖아. 아니었어?"

 

어쩐지 아쉬운듯 입을 삐죽이며 나를 바라보는 코이시. 그러고보니 그랬지. 그나저나, 코이시는 기억해주고 있었던건가. 한번밖에 말 안했던걸로 기억하는데.

 

"뭐, 레이무가 제시했던 한달이라는 시간이 사흘 뒤면 끝나지. 근데 돌아갈지 어떨지는 아직 안 정했는데."

"에? 계속 여기 있는거야? 진짜?"

"그것도 딱히 정하진 않았는데. 일단 고민 중이긴 해. 말도 없이 사라지진 않을테니까 걱정하지 마, 코이시."

"응."

"뭐, 본제로 돌아가서. 만약에 나간다는 가정하에 아이리도 데리고 나가느냐, 인데 말야."

 

턱에 손을 대고 아이리를 내려다보자, 아이리가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까부터 누구랑 대화를 하고 계신거에요, 마스터?"

"마이 이매지너리 프렌드."

"네?"

"농담이야. 코이시?"

"다행이야. 아이리쨩한테는 문제 없이 능력이 발동되고 있었네. 사토리 요괴로써의 프라이드가 깎여나가는 줄 알았다구."

"!?"

 

깜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는 아이리. 그런 아이리에게, 코이시는 베시시 웃으며 살짝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나저나, 나랑 대화를 하면서조차 존재를 인식당하지 않다니... 코이시의 능력이 강하기는 정말로 강한 것 같다. 여전히 나한테는 안통하지만.

 

"얘는 코메이지 코이시. 이 집 주인 여동생이자, 내 친구야. 이 집에 눌러 붙을 수 있는건 어디까지나 얘 덕분이지."

"잘 부탁해, 아이리쨩~"

"마스터의 은인이란 말씀이시군요. 그럼 코이시님이라고 부르면 될까요?"

"은인이라니, 그정도까진 아니야~"

 

손사레를 치며 좋아하는 코이시. 뭐, 실제로 은인이라기보단 도굴꾼에 가깝긴 하지. 비율로 따지자면 3:7 정도일까.

 

"...뭐, 잘됐네. 어짜피 코이시 너랑도 이야기를 나눌 필요는 있다고 생각했거든. 앉아줄래?"

"으, 응."

 

내가 진지한 이야기를 할거라는 분위기를 풍기자, 다소 당황하며 얌전히 아이리 옆에 앉는 코이시. 음, 귀엽다.

 

"사실 있잖아. 얼마 전까지는 바깥 세계로 돌아갈 생각이었어. 걱정되는 요소가 몇개 있긴 했지만, 아직 바깥 세계에서 하고 싶은 일이 많았으니까."

"얼마 전까지는?"

"응. 그런데 오늘 그 생각이 좀 바뀌게 되었어. 이유는 두가지. 하나는 내 몸에 대해서 좀 더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야."

 

평범하게(?) 신체 강화와 반사신경이 뛰어난 것 이외에는 크게 개성이 없을거라고 생각해 왔었는데, 오늘 유기와의 싸움으로 그 생각이 완전히 깨지게 되었다. 유기의 힘을 베꼈을때의, 그 압도적인 감각. 그리고 그 감각의 일부는 아직도 몸에 남아 있다. 아직 이 몸뚱아리에는, 풀리지 않은 비밀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봤을때, 그 비밀은 바깥 세계에서 알아내기엔 힘들 것이라는 기묘한 확신이 있었다.

 

"사실 나도 우이가 가끔씩 진짜 인간인지 의심되기도 해."

"뭐, 몸 자체는 이미 인간이 아니지 않을까, 싶긴 해. 하여간 그게 첫번째 이유.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아까 아이리가 이야기 해줬던 것에 대해서야."

"오쿠우랑 오니 언니까지 조종했던 그 까만거 말하는거지?"

"응. 아무래도 신경이 쓰여서 말이야... 그리고, 왠지 이번이 끝이 아닐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

 

내가 이래뵈도 동방Project에 대해선 꽤나 자세히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편이지만, 이번 것과 같은 이슈는 단 한번도 발생한 적이 없다. 심지어, 이렇게까지 괴멸적인 피해를 주는 존재에 대해선 묘사 된 적이 없다. 이번 일은 하마터면 하쿠레이의 무녀조차 죽을 수 있을 정도로 스케일이 큰 이변이었던걸 생각해보면...

 

그리고 그 송곳니가 언제 사토리와 코이시에게 향할지 알 수 없는 이상, 그냥 환상향을 뜨기엔 매우 찝찝하다. 코메이지 자매는 내 은인이다. 한명은 나를 무덤에서 꺼내줬고, 한명은 내게 의식주를 주었다. 그녀들이 위험에 언제 빠질지 모르는 상태에서 바깥세계로 돌아간다는건 좀...

 

"그래서, 어느정도 상황이 일단락 되었다고 판단될떄까진 돌아가는걸 보류하는게 어떨까 싶어서 말야. 코이시, 너는 어떻게 생각해?"

"나야 우이가 여기 있는 쪽이 당연히 좋지. 우이가 오고 난 뒤론 매일매일 재밌는걸?"

"그렇게 말해주니 기쁜데. 그럼 그렇게 하자. 레이무한테는... 내일 가서 이야기 할께."

"응. 알겠어.... 후암~ 갑자기 졸리네. 난 슬슬 자러 가볼께, 우이."

"그려. 얼른 들어가서 자. 내일 보자고."

"응... 내일 봐..."

 

손을 흔들며 방을 나가는 코이시. 아무래도 내가 돌아갈지 어떨지에 대해서 계속 신경쓰였던 모양이다. 긴장이 풀려서 졸음이 몰려온 거겠지. 자, 그럼 나는...

 

"갈까."

"마스터, 어디로?"

"하쿠레이 신사. 가는길에 지저의 상황도 한번 확인해보고 갈 생각이라 지금 나가야할거 같아."

 

유기가 부재중인 상황에서, 혹시나라도 무슨 일이 있는게 아닐까 걱정이 된다. 원래대라로면 내 알 바는 아니지만... 이상하게 신경쓰이네. 유기의 능력을 베낀게 영향을 미친걸까.

 

"그럼 저도 따라갈께요."

"괜찮겠어? 안 피곤해?...아, 그러고보니 따로 떨어져 있으면 방전된다고 했었지."

"그것도 있지만요, 저는 힘을 공급받는 동안엔 잠을 필요로 하질 않아요."

"그런거라면야. 그럼 출발하자고, 아이리."

"네."

 

자, 그럼 어디부터 돌아봐야할까...

 

 

 

 

 

 

 

 

 

 

 

 

 

 

 

 

 

 

 

 

 

 

 

 

 

9시간 뒤, 하쿠레이 신사 인근.

 

"...아이고, 이제야 도착하게 될 줄이야."

"벌써 해가 떠버렸네요, 마스터."

"생각보다 오래 걸렸네."

 

폭주 자체는 아이리가 말한대로 수습이 되어 있었지만, 폭주때문에 부서진 집이 생각보다 많고, 특히 일전의 탈출로 뚫어버린 구멍을 메우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걸려버렸다. 아무리 그래도 이정도로 걸릴 줄이야...

 

"몸은 안 힘들어?"

"아까전에도 말했지만, 전 마스터가 옆에 있으면 휴식이 필요 없어요."

"그건 다행이네."

 

하지만 어찌보면 잘된걸지도 모른다. 이 시간이면 레이무도 깨어나 있겠지. 자고 있는 녀석을 깨워서 '야! 나 한동안 안돌아갈랜다!' 라고 이야기 해봐야 '사람 자는거 깨워서 까지 해야할 말이었어?'라는 말이나 들었을테니까.

 

그나저나, 날아댕기는거 엄청 편하네. 안전운전 한다고 필요 이상의 속도는 내지 않았지만, 한번쯤 최대로 속도를 얼마나 낼 수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은데... 일단 다음 기회로 넘기기로 하고.

 

"...왠지 조용하네."

"그런가요?"

"내 기억으로는 이 시간쯤에 레이무는 아침 청소를 하러 경내에 나오는걸로 알거든. 하지만 경내에는 커녕, 사람의 인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아."

"잠깐 어디 외출했다던가, 그런거 아닐까요?"

"그런걸까? 으음, 다음에 다시 찾아오기 귀찮은데."

 

거의 100% 신사 안에 누가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일단 내려가서 직접 둘러볼까.

 

"...기다리고 있었어."

 

- 파지직!!

 

"오?"

"마스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갑작스레 나와 아이리의 주위를 황색의 반투명한 막이 에워싼다. 만져보니, 어제의 아이리 때와 같은 감각이 손끝을 타고 전해져온다. 즉, 결계.

 

"미안한데, 무슨 일인지 물어봐도 될까. 레이무?"

"난 네가 누군지 몰라. 하지만 슬슬 내게 올거라고 생각했지, 이 악당놈!"

"그... 뭔 소리신지?"

 

틈새로부터 나타난 레이무는, 거친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보다 꽤 지쳐보이는데... 무슨 일 있었던걸까? 사람을 다짜고짜 가두고 보는걸 보면, 꽤나 마음이 급한 모양인데.

 

....아니, 다짜고짜 행동하는 부분은 의외로 정상운영인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상황은 꽤나 이상하다.

 

"환상향의 이변해결사가 차례차례 쓰러지고 있어. 너희가 누군진 모르지만, 이 타이밍에 내 앞에 나타났다는건 그런 뜻이겠지!"

"잠깐만 있어봐. 무슨 소리야?"

"시치미 떼도 소용 없어! 자, 전부 불어! 그렇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완전히 봉인해버릴테니까!"

"마스터, 이정도 결계라면 제가 어떻게든..."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 하지만 여차하면 부탁할께. 레이무! 몸뚱아리가 이렇게 되어서야 당연히 못 알아볼만 하지만, 나야! 쇼우이치! 얼마전까지 너희 신사에서 신세 졌던! 네가 사진 찍어줬잖아! 기억 안나?"

"...뭐?"

"홍마관에 간 뒤로 이런저런 일이 있었거든. 어찌됐던, 네가 모르는 사람은 아니야. 그리고, 아까전에 말했던거에 대해선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난 여태까지 지저에 있었다구."

 

양손을 들고, 무해함을 어필해본다. 슬쩍 아이리를 돌아보니, 아이리도 나를 따라서 양손을 들고 있었다. 똘똘한 친구로군.

 

"......믿을거 같아?"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은채, 부적을 더 꺼내드는 레이무. 아, 씻팔. 갑자기 꼴받네 이거.

 

"야! 됐어! 씨발 믿지 마! 나도 지저에서 이상한 이변에 휘말려서 뒤질뻔 했는데, 이래 죽나 저래 죽나 똑같겠지! 해봐! 봉인해보라고, 빌어먹을 겨드랑이 무녀!"

"ㅁ,뭐라고?!"

"어짜피 무슨 말을 해도 안믿을꺼잖아! 걍 봉인하라고! 에라이 씨발, 이럴거면 그 검은 기운한테 죄다 뒈지도록 내버려둘껄 그랬네 진짜!"

"검은 기운...?! 잠깐만, 너도 본거야?"

"보고 자시고 그 애미뒤진 것한테 대가리부터 으깨질뻔 했거든! 근데 그게 뭐 어쨌다고! 뭐해? 빨리 안하고!"

"......"

 

미간을 찌푸리던 레이무는, 손을 가로로 한번 휘두른다. 그러자, 나를 가두고 있던 결계가 사라진다.

 

"하? 봉인하는거 아니었어?"

"마리사나 요우무를 쓰러뜨렸던건, 그 검은 기운으로 이상해져있던 요정들이었어."

"...검은 기운? 게다가 요정이라고?"

"아무래도 너한테는 들어야할 이야기가 있을 것 같네. 봉인할지 말지는 그 뒤에...응!?"

"뭐지?"

"이건...!?"

 

레이무와 나, 그리고 아이리가 동시에 무언가를 느끼고 반응한다. 살기... 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거대하고, 그리고 질척한 무언가. 심약한 사람들에겐 신체적으로 심각한 데미지를 줄 수 있을 것 같은 레벨의 기운.

 

그리고...

 

- 후욱!

 

세상이 붉은색으로 가득 찬다.

 

어느 한 방향에서 뿜어져 나온 붉은 기운이, 삽시간에 나와 레이무, 그리고 아이리가 있던 하늘을 포함해 환상향 전역을 감싼 것이다. 손을 뻗어보지만, 무언가가 만져지진 않는다. 그리고 이 축축한 느낌... 안개, 인가? 붉은 안개?

 

"쿨럭, 쿨럭!"

"레이무?"

"뭐, 뭐야. 이거... 숨이... 잘 안쉬어져...!"

"!"

 

목을 부여잡고 괴로워하는 레이무. 그리고 얼마 안가, 그녀는 괴로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떨어져 내려가기 시작한다. 젠장, 이건 또 뭔 좆같은 상황이야?

 

"제기랄. 아이리, 일단 신사 안으로 들어간다!"

"네!"

 

레이무를 공중에서 캐치하고, 그 기세로 하쿠레이 신사까지 날아간다. 레이무의 표정은 여전히 좋지 않다. 숨... 이 붉은 안개 탓인건가? 그렇다는건, 이 붉은 안개를 차단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레이무를 살릴 수 있다는 이야기겠지. 우선은 실내로 들어가야...!

 

...가만, 붉은 안개? 거기에다가 아까전에 붉은 안개가 뿜어져 나온 그 방향은 분명 홍마관... 그렇다는건.

 

"...홍무이변...?"

 

씨벌, 별 좆같은걸 복각하네. 뭔 생각이야?

 

 

 

 

 

 

 

 

AND

! 주의 !

이 글은 갈 곳 없는 망상을 때려박은 동방 2차 창작 소설입니다. 따라서 때때로 역겹습니다. 읽는걸 권하지 않습니다.

이 글에는 2차 창작에서의 터부(개인적 관점)인 오리지널 캐릭터, 줄여서 오리캐가 나옵니다. 우욱씹 소리가 절로 나올것으로 예상됩니다. 한번 더 읽는걸 권하지 않습니다.

욕설이 나옵니다. 좀 많이 나올 예정입니다. 또 한번 읽는걸 권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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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마관, 레밀리아의 방.

"사쿠야. 오늘 저녁은 뭐야?"
"야타가라스의 알을 사용한 오무라이스랍니다. 우연치 않게 얻을 기회가 있었어요."
"야타가라스의 알... 그 인공태양을 만드는 까마귀의?"
"네. 인간 마을에서 만난 모리야 신사의 무녀가 줬답니다."
"후후, 태양을 싫어하는 나를 비꼬는 의미로 준걸까? 다음에 만나면 답례는 후하게 줘야겠어."

큭큭큭, 하고 처절하게 웃는 레밀리아. 그녀를 모르는 사람이 이 모습을 본다면, 자신을 모욕한 그 '모리야 신사의 무녀'에 대한 복수를 생각하며 웃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사실 평범하게 오늘 저녁이 오무라이스라서 텐션이 오른 것 뿐이었다.

"저기 사쿠야. 아까전에 그거, 어떻게 생각해?"
"그거, 라고 말씀하심은."
"그 틈새요괴 말이야."

레밀리아는 불쾌한듯 표정을 찡그리며 이야기한다. 그녀를 모르는 사람이 이 모습을 본다면, 그 '틈새요괴'라는 존재는 입에 올리는것만으로도 불쾌한 존재인가 보다, 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사쿠야의 손에서 미묘하게 피망 냄새가 났기 때문에 표정을 찡그린 것이다. 흡혈귀는 감각이 날카롭고, 레밀리아는 피망을 싫어했다. 명백하게 오늘의 오므라이스엔 피망이 들어가 있으리라.

"'손님이 올테니, 여기서 지내게 해주면 고마울거야,' 라니. 그 여자는 여기를 여관인가 뭔가로 착각하고 있는게 아닐까?"
"지극히 옳으신 말씀입니다만, 아가씨..."
"뭐야."
"그렇게 생각하셨다면, 그녀가 건낸 과자 바구니는 거절하는 편이 나았던게 아닐까 하고."
"윽."

침대 옆 테이블에 있는 바깥세계의 과자로 가득한 바구니를 지적당해 숨을 흘린다. 하지만, 레밀리아는 이내 웃음짓는다.

"이런거, 받아 놓은 뒤에 나중에 오는 그 손님이라는 녀석은 내치면 그만이야."
"역시나 아가씨. 요괴의 현자조차 속이는 그 솜씨, 감탄했습니다."
"후후후, 물론이지."

고고하게 웃는 스칼렛 데빌이었지만, 역시 스스로도 부끄러웠는지 얼굴을 조금 붉히고 있다.
표정도 무마시킬겸, 침대에 걸터 앉아 있던 레밀리아는 침대에서 일어나, 문득 창문으로 향한다. 그저 변덕으로써.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아무 의미도 없는 행위였다.
하지만, 그 행위는.

"어머?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더니."

창문 아래로 보이는 정원, 그 중앙을 문지기와 함께 걸어가고 있는 한명의 청년에게 있어선 그야말로 웃어 넘길 수 없는 농담이자 마른 하늘에서 떨어진 날벼락이었다.
레밀리아의 능력은 '운명을 조종하는 능력'. 그녀 자신이 그것을 제어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알려진 바 없지만... 다만, 그 능력은 진짜다.
그것은 레밀리아의 자의였을까, 혹은 사고였을까.
레밀리아에 의해 관측되어버린 불쌍한 바깥 세계의 청년의 운명은 이 순간. 압도적으로 뒤틀려버렸다.

"후후, 재밌어 지겠는걸."

레밀리아의 혼잣말. 만일 이 사실을 후에 청년이 알게 된다면 반드시 이 말을 했을 것이다.
'지랄 마 씨발! 하나도 재미 없어. 빌어쳐먹을 모기년아!', 라고.












기묘한 감각이었다.
어둠속에서, 마치 꿈을 꾸고 있는것만 같은 몽롱함을 느끼며 그저 떠다니는 그런 감각. '아아ーーー이것이 죽음인가' 라고 중2병 풀 전개한 생각을 잠깐 했었지만, 뭔가 그건 아닌거 같다. 근거는 없지만, 적어도 죽은건 아닐거라는 묘한 확신이 느껴졌다.
그럼 여긴 어디지? 아까, 마리사에게서 파츄리의 마법책을 회수했는데, 마리사 때문에 그 책이 내 손 안에서 펼쳐져서... 으음. 납득이 안되는 전개로군. 돌아가면 마리사한테 한소리 해야겠다.

"어서오렴, 귀여운 내 아가."

그때, 어떤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가라니? 혹시 나보고 말하는거 아니겠지?

"우리 엄마 목소리는 이렇게 오오하라 사야카 같지 않은데? 뉘셔?"
"에?"

깜짝 놀라는 듯한 목소리와 함께, 주위의 풍경이 일변한다. 어두운건 아까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뭐랄까. 레트로풍의 디지털 세계에 온듯한 풍경이다. 그 있잖아, 선이랑 색으로만 3D를 표현하던 그거. 가만 있어봐, 여기가 여전히 환상향이고... 아까전에 파츄리가 말했었지? 마계와의 바이패스를 연결하는 연구를 하고 있었다고. 그 사실을 고려하면, 여긴 마계일거다. 왜 내가 여기 있는지는... 자세한건 모르겠지만.

"우왓, 뭐야 이거."

방금전까진 완전히 어둠속이라 몰랐는데, 내 몸을 내려다보니 입고 있던 양복은 온데간데 없고, 나체 상태의 몸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거기다가 거시기도 안보이고. 내...내가...곶...!
농담은 됐고, 아마 정신체만 마계로 날려보내진 모양이다. 으음, 바깥세계에 있을때 서브컬쳐를 너무 많이 쳐먹어서 그런가, 스스로도 납득하는 속도가 너무 빠른거 같아서 걱정되긴 하는군. 돌아가서 일상생활이 가능해질런지 모르겠네.

"저기...?"
"?"

고개를 들어보니, 3쌍의 이형의 날개를 등에 펼친채 조심스레 나를 내려다보는 은발의 여성이 있었다. 그녀의 대한 묘사는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라서 영 이미지가 고정되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작군. 저 커다란 날개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거 같지만.
신키, 마계의 창조신. 이 레트로 디지털 세계의 지쟈스 되시겠다.

"누구신가요?"

고개를 갸웃하며 내게 묻는 신키. 근데 그건 내가 해야할 질문이 아닌지?

"쇼우이치라고 합니다만?"
"우리집 아이... 앨리스랑 아는 사이신가요?"
"앨리스는 뉘겨?"
"미, 미안해요! 사람을 잘못 불렀어요!"
"아, 그러십니까."

미안한듯 연신 고개를 꾸벅이는 신키. 대체 뭐가 어떻게 된거야?

"저기, 그 뭐냐. 사과는 안해도 되는데 내가 왜 여기 있는지 좀 알려줄래?"
"간만에 우리 애의 마력이 느껴져서 그만."
"...조금만 더 디테일하게."
"간만에 내 딸인 앨리스 마가트로이드의 마력이 느껴져서 그만."
"그쪽 디테일 말고! 상황을 좀 더 설명해 달라고!"
"아하."

아하, 같은 소리 하고 있네.
하여간, 그녀의 이야기를 이런 저런 쓸데 없는 정보를 빼고 설명하자면...
몇달전, 신키는 마계의 어느 지역에서 오래전에 환상향으로 떠난 자신의 딸, 앨리스 마가트로이드의 마력을 느꼈다고 한다. 호기심에 그녀가 그 지역... 그러니까 지금 내가 있는 이 지역에 와보니, 아무래도 환상향과 이곳을 직접적으로 잇는 통로를 만드려는듯한 마력의 움직임이 있었다고 한다.
본래라면 적당히 마력을 흩어내서 마법을 무효화 시켰겠지만... 신키는 그러지 않는 대신, 마법에 세공을 가했다. 통로의 마력이 활성화 될때, 그 통로를 통해 시전자의 영혼을 강제로 이곳으로 소환하는 세공을. 앨리스의 마력이 느껴졌으니, 십중팔구 앨리스와 만날 수 있을거라 굳게 믿고서.
뭐, 그 통로의 마력이 아까전에 그 책을 펼쳤을때 활성화 되었고, 그 책을 들고 있던 내가 시전자로써 인식되어 지금 이렇게 소환됐다... 라는 모양.
아니, 이 아줌마는 이 짧은 내용을 어떻게 1시간 동안이나 늘려서 말할 수 있는거냐. 일종의 재능이구만.

"음? 그러고보면... 내가 여기에 있다는건, 내 육체는 어떻게 되는건데?"
"어머, 걱정할거 없어. 평범한 인간이 아닌 이상에야, 영혼이 육체를 떠난것만으론 크게 지장은 없을 거야. 사식, 사충의 마법 정도는 익히지 않았니?"

이 아줌마는 은근슬쩍 뭔 소리를 하는거야?

"...잠깐만, 신키. 확인차 다시 묻는데, 그럼 평범한 인간이 그 마법인가에 휩쓸리게 되면, 그 시점에 죽는다는 이야기야?"
"육체 기능의 정지를 죽음으로 정의하자면, 그렇지. 하지만 쇼우이치, 당신은 마법사잖아?"
"...뭔 소리야. 나, 평범한 인간인데?"
"???"
"??????"
"에??하지만... 에????"

창조신의 입에서, 얼빠진 추임새가 흘러나왔다. 야야, 잠깐만 있어봐. 이거 그러니까 그거지?

"야."
"...네."
"나 그럼 1시간 전에 너한테 살해당한거냐?"
"......"

내가 얼굴을 들이미니, 필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는 신키. 그 얼굴은, 놀라울정도로 경직되어 있었다.

"잠깐만. 인간의 육체는 활동이 정지 되도 2-3분 정도는 버틴다고 들었...지만, 1시간이나 지났네. 어째서더라? 맞아. 어디 사는 아줌마가 3분이면 끝날 이야기를 1시간이나 끌어서..."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내 말이 쐐기가 되었는지, 내게 연신 허리를 굽히며 사죄의 말을 입에 올리는 신키. 하지만 나는 이런걸 듣고 싶어서 이 말을 한게 아니다.

"되돌아갈 방법은 없어?"
"에?"
"내 몸으로 되돌아갈 방법 말이야. 댁 그 날개도 그렇고, 아까 말하던 말투도 그렇고, 뭔가 이것저것 능력이 있는거 같은데. 뭐 방법 없어?"
"돌아갈 방법..."
"예를 들어 죽은 육체를 되살린다거나."
"불가능한건 아니지만... 이미 상하기 시작한 육체를 되살려서 그 안에 돌아가도, 심각한 후유증이 남을지도."
"그거야..."

일정시간 이상 뇌에 피가 가지 않으면 뇌가 망가진다고 들은 적이 있는거 같다. 아까 말한 2-3분도 그 언저리의 이야기다. 그게 1시간이나 되었다면,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으음, 네 기술론 그 후유증을 없앨 수 있어? 마법이라던지."
"...장담할 순 없어. 쇼우이치, 당신이 마계 출신이었다면 충분히 되살릴 수 있었을텐데."
"흐음."

아무리 창조신이라도 이세계의 오브젝트에 간섭하는데엔 한계가 있다는건가. 개발 환경이 너무 다르다, 정도로 이해하면 되려나. 개발 환경이라, 프로그래밍이었다면 포팅 작업을 거쳐서 개발을 진행하면 되는데...
...포팅?

"신키, 혹시 내 몸을 마계의 것으로 바꿀 수는 없어?"
"뭐?"
"만화나 그런거 보면 그런거 있잖아. '마력의 침식으로 이계의 존재로 바뀌어' 어쩌고저쩌고 하는 전개. 그런거 가능할까?"
"...그런..."
"그런?"

그런 되도 않는 소리를- 같은 말을 하려나. 하긴, 내가 생각해도 말도 안되는 소리이긴 하다. 아무리 마계신이라고 해도, 되는 일이 있고 안되는 일이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예?"

없는 모양이다. 마계신의 마력은 만능입니까?

"맞아. 네 육체는 이미 상해가고 있지만, 여전히 혼의 주소는 남아 있어. 그 주소값을 유지한채로, 몸을 마력으로 침식, 강화 한다면... 충분히 되살릴 수 있겠어!"
"오오..."
"이런 일은 처음 해봐. 너한텐 불쾌할지도 모르겠지만, 가슴이 뛰는걸. 마계에선 이런 '처음'이라는 자극이 부족하거든."
"괜찮아. 살려 준다면야 뭐."
"마침 네 몸은 아직 매개체의 근처에 있어. 당장이라도 작업을 시작할 수 있어."
"얼마나 걸리는데?"
"5분?"

무슨 윈도우 업데이트냐.
...그나저나, 마계의 것으로 몸의 성질을 바꾼다라. 내가 말을 꺼낸거긴 하지만, 생각해보면 엄청 무모한 이야기 아닌가? 거야 이대로 죽는것보단 낫겠지만... 몸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알 수가 없다.

"저기, 신키."
"왜?"

뭔가 허공에서 콘솔창 같은걸 꺼내 두드리는 신키에게 말을 걸자, 신키는 바쁜지 내쪽에 시선도 안준채 대답한다.

"아, 묻고 싶은게 있는데... 작업 끝날때까지 기다릴께."
"아니야, 괜찮아. 이래뵈도 마계의 창조신인걸. 그정도 멀티태스킹은 가능해. 뭐든 물어봐."
"...은근슬쩍 엄청난 명함을 들이미는군. 아무튼, 지금 하는 작업으로, 내 몸에 어떤 변화가 있을까?"
"으음~ 글쎄? 일단 무조건 수명은 늘어나지 않을까? 마계의 지성체들은 기본적으로 수명이 길거든. 심지어 지금 네 몸을 바꾸고 있는건 내 마력이니까... 최소한 200년 정도는 기대수명이 늘어날거야."
"200년!?"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네가 평범한 인간으로써 생활을 이어나간다면 그렇다는거야. 네가 만약 마법을 쓰게 된다면..."
"...설마, 몸이 마법의 부하를 견디지 못해서 수명이 줄어든다거나?"
"아니? 닫혀있던 마력회로가 열려서 불로불사가 될거야."
"......"

200년도 많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엔 불로불사라고? 갑자기 스케일이 너무 커져서 와닿질 않는데. 아니, 그보다 마법? 나 마법도 쓸 수 있게 되는거야?

"그리고 또, 보자... 아마 외형에도 살짝 변화가 있을거야. 신경쓰일 정도는 아니겠지만, 혹시나해서 말해둘께."
"뭐, 귀가 엘프처럼 길어진다거나 그 언저리야?"
"음~ 그런 느낌일까나."

종족값이 달라지는 셈이니, 어쩔 수 없는걸까. 아까 수명 이야기를 생각해보면, 훨씬 수수하다.
근데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이거 오히려 내가 댓가를 치뤄야 할 정도로 불공정거래 아닌가? 설마, 나중에 뭔가를 요구한다거나 하는건...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정말로 미안해."
"잉?"
"나는 오랜만에 우리 딸을 만나고 싶었을 뿐이야. 설마 거기에 평범한 인간이 말려들 줄은... 이걸로 용서받을 수 있을거란 생각은 안하지만, 적어도 내 성의라고 생각해줘."
"...그래놓고, 나중에 댓가를 요구하거나 그러는거 아니지? 쉐어웨어 마냥. 저지른 일에 비해서 주는게 투 머치라구."
"쉐어웨어가 뭔진 모르겠지만, 무슨 말인지는 알겠어. 확실히, 갑자기 이렇게 들이밀면 의심스럽겠지... 그래, 이걸로 믿어줄지는 모르겠지만..."

신키는 한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묶고 있던 머리방울을 빼내어, 내게 넘겨준다. 그걸 받아들자, 놀랍게도 머리방울은 정신체일터인 내 손바닥 위에 아무런 문제 없이 놓인다. 정확하겐, 방울부분만. 끈부분은 반투명한 내 손바닥 안에서 흔들리고 있다.

"이건?"
"내가 창세때부터 지니고 있던 악세서리야. 반드시 네 여정에 도움이 되겠지. 팔아도 좋고, 어딘가에 사용해도 좋아."
"...꽤 중요한 물건 같은데."
"이걸로 날 믿어주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줄께."
"......"

아니, 부담스럽다고 말했는데 왜 더주는거야...
하지만 조금 의외로군. 창조신이라고 하길래, 죄책감이나 양심같은건 이미 닳아 없어졌거나, 애시당초 없을거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잘못 생각한걸지도 모르겠다.
...그 이전에, 이젠 분위기상 이 이상 의심하기도 힘들다. 그리고 이 머리방울, 이렇게 들고 있는것 만으로도 힘이 흘러들어오는 확실한 실감이 든다. 뭐, 분명 도움은 되겠지.

"자, 작업은 다 끝났어. 준비는 됐어?"
"어? 아, 응. 그거야 물...론?"

신키의 말에 고개를 들어 그녀의 얼굴을 보니... 어느샌가, 그녀의 머리카락을 또 다른 머리방울이 묶고 있었다.

"...아까 머리 풀지 않았어?"
"응. 이건 방금 만든거야. 말했잖아? 창조신이라고."
"오, 오우..."

창조라는 거창한 능력을 참 수수한 방향으로 사용하는구만.

"좋아. 그럼 지금 당장 원래의 몸으로 되돌려 보내줄께... 아, 혹시... 괜찮으면, 하나 부탁 좀 들어줄래?"
"뭔디?"
"앨리스라는 아이를 보면, 안부 좀 전해줘. 그리고 가끔씩은 집에 돌아오라고도 말이야."
"...얼굴도 모르는데?"
"보면 알거야. 엄~청 귀여운 애거든!"
"아, 그러셔."

뭐, 사실 특징은 알고 있으니 구분해내는데엔 문제 없을거다.

"이렇게나 도와줬으니, 그정도 부탁은 당연히 들어줘야지."
"고마워. 쇼우이치. 그럼,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 또."
"그래, 다음에 또 보자고. 신키."

미소를 지으며 하늘하늘 손을 흔들어주는 신키의 모습이 보이다가, 주위의 모든 풍경이 암전된다.

























".....???"

암전되는 시간이 너무 긴데? 렉이라도 걸렸나?

- 파삭! 후두둑!

'머시여 씨벌!?'

갑자기, 무언가가 쏟아지는 소리가 크게 들려온다. 그보다, 좁아!? 여긴 또 어디야! 이것도 몸으로 되돌아가는 과정중 하나인가?

[흑...제길...제기랄...!]
[제대로 덮어줘. 그게 네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속죄야.]
[으으윽... 흐윽...!]

뭔가 위에서 누군가가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린다. 무언가에 둘러쌓여 있어서 잘은 안들리지만... 마리사랑 사쿠야인가? 확신은 할 수 없지만.
...가만 있어봐. 내가 있는 곳... 관짝 안 아냐? 맞는거 같은데?

-파삭! 후두둑!

"아....!?"

목소리가 안나와!? 심지어 아까부터 이상하리만큼 몸이 뜨겁고 무겁다. 감기몸살이라도 걸린거 같은 기분이다. 문제는 지금 목소리가 안나오면 많이 곤란하다는거다. 적어도 내가 살아있는건 알려야 생매장은 안될거 아냐!

"으...아...ㅆ..."

- 파삭! 후두둑! 파삭! 후두둑!

이게 뭐야 씨벌. 되살아났다 싶더니, 몸이 말을 안들어서 다시 뒤지게 생겼자녀. 그보다 벌써 숨쉬기가 힘들어지는 느낌이다. 관짝에 있으니 당연한걸지도 모르겠군.
세상에나 씨발. 책 펼쳐서 뒤진것만으로도 다윈상급인데, 되살아났는데 관에 갇혀서 다시 죽는거니까 다윈상 2관왕이네. 별로 기쁘진 않지만...

- 파삭! 후두둑! 파삭! 후두둑!

"후우..."

하지만 이상하리만큼 공포는 없다. 솔직히, 더 발광해야하는게 옳지 않을까 스스로도 의문이 들지만 그럴 마음은 들지 않는다. 한번 죽어봐서 그런걸까? 아니면 내가 지나친 상황에 정신이 나간걸까? 에고고, 이래서야 신키한테서 받은 머리장식도 말 그대로 장식으로 썩히겠군.
아 젠장. 어짜피 디지는거, 걍 잠이나 자자. 몸도 무겁고 열도 나겠다, 한숨 자면 괜찮아지겠지.
...못 일어날 가능성이 더 높지만.

- 파삭! 후두둑! 파삭! 후두둑!
- 파삭! 후두둑! 파삭! 후두둑!
- 파삭! 후두둑! 파삭! 후두둑!
- 파삭! 후두둑! 파삭! 후두둑!
...............
..........
......
...
..
.



























[...코이시님. 진짜로 해요?]
[응. 여기 뭐가 묻혀 있는지 궁금한걸.]
[아무리봐도 무덤으로 보이는데...]
[무덤이면 오히려 좋은거 아냐? 오린, 네 생업이잖아.]
[저, 장례식장은 덮쳐도 무덤을 파헤치진 않는데요...]
[빨리빨리! 시체면 오린이 가지고 보물이면 반반 나눠가지면 되잖아?]
[하아... 어쩔 수 없지. 어디보자, 삽이 분명 여기에...]
[무덤은 안 파헤친다며? 왜 삽을 가지고 있는거야?]
[에? 아... 아하하~]

뭔가 소란스럽다. 사람 무덤 앞에서 대체 왜 이렇게 시끄럽게 떠드는거야?

- 팍! 팍! 팍!

...가만 있어봐. 나 왜 안죽었지? 거기다가 열도 내리고 무거웠던 몸도 완전히 가벼워졌다. 진짜로 자고 나니까 괜찮아졌네. 정말로 감기몸살이었나?

- 팍! 팍! 팍!

산소는 어떻게 된거야? 보통 관 속에서 인간은 6시간도 못 살고 죽는다고 어디서 봤는데. 어디 구멍이라도 뚫려 있나?

- 팍! 팍! 팍!

"......???"

- 팍! 팍! 팍!

어라, 나 숨 안쉬고 있네. 그런 주제에 몸은 또 움직이고. 신키의 마력으로 몸을 침식 시키긴 했지만... 이거, 설마 완전히 다른 생명체가 된건가? 산소도 필요 없는? 이건 좀 이상한 기분인데. 의도해서 숨을 쉬어보지만, 딱히 숨이 막힌다거나 그런 불쾌함은 없다. 오히려, 뭔가 따뜻하고 건강한 기운이 가슴속에 가득 차오르는 그런 느낌. 이게 대체 무슨 일인고?

- 팍! 팍! 팍!

그보다, 아까부터 위에서 존나 시끄럽네. 뭐야 대체? 흙 파내는거 같은 소리가 자꾸 들리는데. 군대 있을때 생각나서 PTSD 올거 같으니까 그만뒀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근데,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네. 설마 이거, 내 무덤을 파내고 있는거야? 나한텐 좋은 소식이긴 한데, 뭔가 복잡한 심경이 드네.

- 팍! 팍! 쿵!

"어메 씨벌."

아무래도 무덤을 파내던 삽이 드디어 내 관에 도달한 모양이다. 약간의 진동과, 커다란 소리가 관 전체를 울렸다. 소리가 생각보다 크게 울려서 깜짝 놀랐네.

[코이시님!]
[뭔가 있어?]
[그... 관인거 같은데요!]
[에엥~? 보물상자라던가, 그런거 아니고?]
[안타깝게도 아닌 모양이에요!]
[어쩔 수 없지~ 그 관이라도 꺼내보자.]
[...진짜로 해요? 아무리 화차인 저라도 이건 좀 아닌거 같은...]
[어허! 자꾸 말 안들으면 언니한테 이를꺼야!]
[그거 반대로 코이시님이 혼나실테니까 그냥 이르지 마세요. 어쩔 수 없지...]

- 팍! 팍! 팍! 팍!

꽤나 열심히 땅을 파내는 소리가 들린다. 옆을 파내서, 정말로 내가 들어 있는 관을 꺼낼 생각인가보다. 그보다, 화차? 코이시? 설마, 지금 환상향의 주민 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토리 요괴랑 잔기털이 고양이가 내 묘지를 파내고 있는거야? 이걸 좋아해야해 말아야해? 점점 혼란스러워지는데.

[코이시님! 근데 이거 조금 오래 걸리겠는데요! 정말 관째로 꺼낼까요?]
[그럼 내용물만 꺼내자. 할 수 있겠어?]
[네! 그, 죄송한데 수레에서 빠루 좀 던져다 주시겠어요?]
[빠루?...이거 말이야?]
[네! 그거에요!]
[던질께~]

- 터엉!!!

"ㅆㅂ!?"

조온나 시끄럽네, 이거!? 무슨 고문 당하는 기분이다.

[어라?]
[미안~ 혹시 맞았어?]
[아, 아뇨. 맞은건 아닌데... 안에서 소리가...?]

스윽, 하고 무언가 가져다대는 인기척이 느껴진다. 소리를 듣기 위해서 머리를 갖다댄걸까? 문맥상 그럴거 같은데. 그럼 이걸 안할 수가 없지.

"WRYYYYYYY......"

[...으, 으응!?]
[왜 그래~?]
[아, 아뇨. 안에서 뭔가 소리가 들린거 같은...]
[이상한 소리 하지말고 얼른 꺼내! 빨리 안하면 저녁밥 안줄꺼야!]
[...한번도 준적 없으시면서.]

아, 보람차다. 이런 반응을 원했단 말이지. 근데 잠시만, 지금 이거 연다고? 그것도 빠루로? 잘못하면 내용물(=나)에 영향 가는거 아냐? 막 관 파편 같은게 몸에 박히고? 그런건 싫은데. 알려주면 조심해서 열려나? 좋아, 관짝 문을 두들겨서 내가 안에 있는걸 알리자. 그럼 조심해서 열겠지. 으윽, 좁아서 팔 움직이는것도 불편하네. 기왕 관에 넣어주는거, 큰거에다가 좀 넣어줄 것이지.
후우, 겨우 자세 잡았네. 두드리는 정도로는 안들릴 수도 있으니, 전력으로 문을 때리자. 자세가 이러니 힘도 제대로 안들어가겠지만. 좋아... 하나, 둘...!
아, 근데 이거 주먹으로 치면 아플거 같은데.

- 쾅! 빠직!

"?"
"???"

막판에 겁먹어서 어설프게 때려버린 관짝 문. 하지만 내 어설픈 주먹에 관짝 문은 굉음을 울리며 쪼개져, 내 상반신이 드러나는 정도의 범위가 박살났다. 어... 부실공사 같은건가? 아니면 내가 생각하는것 이상으로 시간이 지나서, 관이 썩은건가? 아니, 그렇다 쳐도 이 위력이 설명이 되지 않는데...
그보다 관짝 옆에서 빠루를 들고 있는 붉은 머리의 네코미미 소녀랑 눈이 마주쳐서 굉장히 어색하다. 이, 이 상황을 타개할 드립이 필요하다! 어...

"관짝 속에서 곤니치.... 어?"
"......???"

여전히 상황을 이해 하기 위해 정지된 네코미미 소녀의 모습. 드립은 명백하게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런것 따윈 아무래도 좋을 정도의 위화감이 내 머리 속을 맴돈다.
목소리가, 다르다.
내가 낸 목소리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요염했다. 굳이 따지자면 아사카와 유우에 가깝다. 코바야시 유우랑 비슷한 느낌도 어느정도 나기도 하고... 아니, 지금은 성덕으로써의 어필을 할때가 아니지.

"오린!? 엄청난 소리가 났는데, 괜찮아!?"
"아... 코, 코이시님! 아, 안에... 사람이...!"
"관이라며? 사람이야 당연히 있겠지. 그거 화차가 해도 되는 대사는 아니라고 생각해!"
"하, 하지만... 살아 있는데요?"
"에? 뭐라고? 나도 볼래!"

대체 내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거지? 죽었다 살아나는건 처음이라 잘 모르겠는데, 원래 이런거야? 구글에 치면 나오나? 아, 그러고보니 신키가...

'- 그리고 또, 보자... 아마 외형에도 살짝 변화가 있을거야. 신경쓰일 정도는 아니겠지만, 혹시나해서 말해둘께.'

라고 말했었지. 근데, 목소리의 변화를 외형의 변화라고 쳐도 되는거야? 거야 게임에선 외형변화 시킬 때 목소리도 바꿀 수 있는게 있긴 하지만... 이건 그런 이야기가 아니잖아? 그리고 아까전에 그 힘... 그건 대체...

"와! 진짜네? 정말로 살아 있잖아!"
"!?"

정신 차려보니, 동공이 텅 비어 있어 일말의 공포마저 느껴지는 소녀의 얼굴이 상당히 가까이 와 있었다. 에메랄드색 눈동자, 옅은 멜론색 곱슬머리, 그리고 가슴팍에 보이는 닫혀진 제 3의 눈.
닫혀진 사랑의 눈동자, 코메이지 코이시.

"저기~ 이름이 뭐야? 왜 이런데 누워 있어? 내 말 알아 들을 수 있니?"
"코이시님, 일단 관에서 꺼내주는게..."
"아, 그렇구나. 근데 아까 그 소리는 뭐였어?"
"관의 문이 부서지면서 난 소리에요."
"오린이 한거야? 빠루로 그런 소리가 나다니, 오린은 대단하네~"
"아, 아뇨. 한건 제가 아니라 그 관 속에 있는 여자애가..."
"에? 얘가? 그럼 정말로 왜 이런데 누워 있었던걸까? 스스로 나오면 될텐데. 신기하네."

읏차, 하고 관에서 비키는 코이시. 그러자 옆에 있던 네코미미 소녀... 오린이 빠루를 들고 다가와 관짝 문을 뜯어내기 시작한다. 이대로도 나오기야 나올 수는 있겠지만, 좀 어설프게 박살나서 많이 불편하긴 하다. 뜯어준다니 고마울 따름이네.
...잠시만 있어봐. 방금 놓쳐선 안되는 묘사를 오린이 나한테 한거 같은데. 아닌가? 내가 잘못 들었나?

"무슨 사정이 있는진 모르겠지만 일단 꺼내줄테니까 기다려봐, 언니야! 끙~차!"

- 쩌쩌저적!

오린이 빠루를 관짝 문에 박고, 힘을 줘 들어올리자 나무가 뜯어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며 문짝이 들어올려지기 시작한다.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했다곤 해도, 보아하니 꽤나 단단하게 박혀 있었던 모양인데... 꽤나 어렵지 않게 여는걸 보니 역시 요괴는 다르다, 라는 느낌이 드는군.
...그보다, 또 뭐라고? 아까 '여자애'라고 하길래 잘못 들은줄 알았더니, 이번엔 '언니야'라고? 대체 뭔 소리야? 내 얼굴은 아무리 좋게 봐줘도 여자로 보기엔 상당한 무리가... 무리...가...?

'- 그리고 또, 보자... 아마 외형에도 살짝 변화가 있을거야.'

...설마하는 마음에, 오른손을 뻗어 고간으로 향하게 한다. 아니겠지... 아니야. 설마. 아니죠? 마계신님, 외형만 변한거죠? 목소리는 외형에 맞춰서 바꾼것 뿐이죠?

"어...어억...?!"

어... 없어? 마이 존슨이, 없다고? 하반신에 감각은 있는데, 존슨만이 없다고? 아니, 그 이전에, 진짜 말 그대로 고간에 아무것도 없는데? 뭔가가 있다는 느낌조차 없어. 이... 이게 무슨 일인고?

"읏~차! 자! 어서 나와!...왜 그래? 표정이 안좋은걸."
"잠시만 기다려봐. 지금 급작스럽게 떠난 마이 선을 추모하고 있는 중이니까."
"????"

후우, 미안하다 존슨... 결국 예행연습만 하다 갔구나. 흑흑, 못난 주인이 미안해...
뭐, 궁상 떠는건 적당히 하고.

"음?"

두 사람(?)이 보고 있어 계속 누워있을 순 없기에 몸을 일으키자, 발치에 무언가 닿는게 느껴졌다. 내 가방이다. 아무래도 나를 묻어줄때 같이 넣어둔 모양이다. 어디보자, 가방 안에 넣어둔 폰은... 아직 살아 있군. 근데 왜 배터리 용량이 100%지? 마지막으로 봤을때 50% 언저리였고, 보조 배터리도 안꽂아놨는데... 버그났나?
그보다, 이틀이나 지나 있었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지났군. 기껏해야 8시간 잔 줄 알았더니.

"아, 그거 휴대 전화지? 전에 본적 있어! 그런데 크기가 다르네?"
"기종마다 다른 법이지. 바깥세계엔 심지어 접을 수 있는 스마트폰도 있다고."

개인적으론 어마금 시리즈에 나오는 시라이 쿠로코가 쓰던 롤러블 디스플레이형 스마트폰을 갖고 싶었지만, 나온다더니 결국 안나오더라고.

"바깥세계? 그럼 넌 바깥세계에서 온거야? 그런데 이런데 왜 묻혀 있었어?"
"글쎄다. 정신 차려보니 관짝 안이었거든. 설마, 살아서 나오리라곤 생각 못했지만."
"헤헤, 그럼 나랑 오린이 생명의 은인인 셈이네?"
"???"
"......"
"응???"

내가 시선을 오린에게 옮기니, 오린은 내게서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무덤 도굴꾼이 갑자기 생명의 은인 행세라니, 다리오 브란도도 깜짝 놀랄 뻔뻔함이군. 오린은 적어도 거기에 동조할 생각은 없어보이지만.

"그... 일단 여기서 나가자고."
"그, 그래요. 코이시님. 우선 여기서 나가죠."
"응? 응?"

나와 오린을 번갈아보며 고개를 갸웃하는 코이시였지만, 일단은 무시한다. 그나저나 조금 깊군. 저 앞에 날아서 올라가는 고양이 요괴처럼 나도 날 수 있으면 편하겠지만... 다행히 땅을 꽤나 체계적으로 파놔서, 기어올라가는것보단 편하게 지상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마인크 좀 해봤나본데, 오린.
이틀만에 본 하늘은 노을이 져가고 있었다. 자, 이제 어쩐다. 홍마관으로 돌아가는 방법도 있겠지만, 적어도 이 둘한텐 은혜를 갚고 싶다. 경위가 어찌 되었던, 결과적으로 이 묏자리에서 기어나오게 해줬으니까. 거기다가 이 몸...

"으헤... 이거, 겉모습은 빼박 여자구만."

폰 카메라를 셀카 모드로 돌려, 몸을 확인해본다. 키는 그대로 170 중반이지만, 몸은 기존에 멸치같은 남정네가 아닌, 슬렌더한 준 모델급 여성의 몸으로 변해 있었다. 얼굴은 중성적이지만 확실히 여성스러움이 엿보인다. 원래 얼굴의 요소가 거의 없는 점은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나마 남은 요소는 머리카락 정도려나. 원래 어깨까지 오는 장발이었으니.
하지만, 생식기는 없었다. 딱히 벗어서 확인한건 아니지만, 확실하게 없다는걸 느낄 수 있다. 이래서야 모델링 된 여캐랑 뭐가 다른건지. 아, 물론 야겜이 아닌 경우를 말한거다.
...그보다, 어느새 화각에 들어와서 손으로 V를 날리고 있는 코이시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저기?"
"응? 왜? 사진 찍는거 아냐?"
"에라 모르겠다. 브이~"
"이~"

- 찰칵!

제길, 코이시 이 녀석 귀엽잖아. 심지어 나도 꽤 이쁘게 찍혔다. 아, 젠장. 이 얼굴 적응 안되네... 얼굴이 바뀌는게 이렇게까지 위화감을 줄 줄이야. 요새 신선한 경험 많이 하는구만.

"그래서? 너는 누구야?"
"그러고보니 대답하지 않았구나. 나는..."

가만 있어봐. 이 겉모습으로 쇼우이치는 좀 이상하지 않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남자이름 같잖아. 그럼...

"...우이야."
"우이? 겉보기보다 귀여운 이름이네?"
"......"

생각해보니 이 떡대로 우이라는 이름도 이상했다. 하지만 이제와서 바꿀 수도 없어보인다.
하여간 원제로 돌아와서. 이 몸으로 홍마관에 돌아가봐야 나를 알아볼 사람이 있을지 의심스럽다. 생각해보니 레이무도 나 못알아보는거 아냐? 그럼 환상향에서 못나가는거 아님? ㅈ된거 아냐 이거?

"나는 코메이지 코이시! 그리고 얘는 언니의 펫인 오린!"
"풀 네임은 카엔뵤 린이지만 말야."
"음. 코이시에 오린이지? 뭐가 어찌 됐던간에, 꺼내줘서 고마워."
"히히, 뭘."
"은혜는 은혜니까, 갚고 싶은데 말이지. 너희 둘한테. 뭔가 바라는게 있어? 가능한 한도에서 도와줄께."

사실 당장 오늘 묵을 곳도 없어서 곤란한 형편이긴 하지만... 뭐, 그 부분은 관속에서 이틀이나 잔 덕에 이젠 노숙도 편할거 같다는 낙관적인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되겠지.

"나한텐 굳이 안그래도 돼, 언니야~ 난 코이시님의 명령에 따랐을 뿐인걸."
"그럼 나한테 두배로 해주면 되겠네! 그치? 오린?"
"어... 무, 물론이죠. 코이시님."
"...뭐, 본인이 그렇게 원한다면야. 그럼 코이시, 바라는걸 말해봐."
"내 펫이 되줘!"
"기각."
"에!? 뭐든지 들어주는거 아니었어?"
"가능한 한도에서, 라고는 말 했지. 약관은 잘 읽어봐야 하는거란다."
"그럼 펫은 한도 밖이라는거?"
"안타깝게도."

내가 그런 취향이었다면 즉답으로 yes라고 말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취향은 아니다.

"펫은 안되지만 친구라면 되어줄 수 있는데. 물론 이건 들어주는 소원엔 안들어가."
"...친구?"
"응. 친구. 안될까?"
"......"

갑작스레 침묵하는 코이시. 어, 어라. 뭔가 내가 말을 잘못 했나? 초면인데 갑자기 '친구가 되어줄께' 같은 건방진 소리를 해서 화난걸까?

"이래도 나랑 친구가 될 수 있을거 같아?"
"???"

갑자기 무슨 소리래, 얘는?
고개를 갸웃하며 오린을 바라봤더니, 정작 오린은 코이시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그 이전에, 우리를 무시하고 묏자리에 다시 흙을 뿌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내 말 실수에 상관하기 싫어서 저러는걸까. 으음.

"......거봐. 조금만 제어를 푼것 만으로, 나를 완전히 놓쳐버리는걸. 그러면서 어떻게 친구가..."
"뭔 소리여. 너 계속 내 앞에 서 있잖아."
"어????"
"????"

의아함과 놀람으로 뒤섞인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코이시. 얘는 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
가만 있어봐. 이거, 코이시의 능력이 발동되고 있는건가?
코이시는 사토리 요괴다. 마음을 읽는 요괴. 하지만 모종의 이유로 그녀는 마음을 읽는 제 3의 눈을 닫아, 그 능력을 잃었다. 그 부작용일까, 아니면 닫았기에 열린 능력일까, 그녀는 무의식을 조종하는 능력을 얻었다.
그 능력은 간단하게 말해서, 정말 간단하게 말해서 모두의 인식에서 사라지는 능력이다. 물론 언니인 코메이지 사토리는 그녀를 인식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오린이 그녀와 함께 행동할 수 있었던건, 코이시 자신이 그 능력을 제어했기에 가능한게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오린이 우리를 무시하고 작업을 시작한건, 내 말실수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코이시가 능력을 발동했기 때문이리라.
근데 문제는 이거지. 왜 나한텐 효과가 없을까?

"내, 내가 보여? 내 목소리가 들려?"
"물론 보이고 들리지. 뭘 그리 놀라? 혹시 뭔가 했어?"
"어...어라? 잠깐만? 혹시 상태가 안좋나...?"

고개를 갸웃하면서, 갑자기 주위에 떨어져 있던 굵은 나뭇가지를 줍는 코이시. 그리고는, 오린의 엉덩이를 냅다 후려쳤다.

"냐아아아앙!? 뭐, 뭐야!? 언니야? 언니야가 한거야?"
"아니, 난 안그랬는데."
"냐아아앙..."

엉덩이를 어루만지며, 주위를 둘러보는 오린. 하지만 눈 앞에 있는 코이시를 알아채진 못했다. 꽤나 기묘한 광경인걸, 이거. 만약에 코이시가 나쁜 마음을 먹는다면... 생각도 하기 싫어진다.

"...이상한걸. 능력은 발동 되고 있는데."
"얌마. 겨우 그거 확인할려고 때린거야? 다른 방법도 있지 않았어?"
"!?...정말로 내가 보이는거야, 우이?"
"아니, 반대로 난 니가 뭔소릴 하는지 모르겠는데."
"......"

침묵한채 나를 올려다보는 코이시. 하지만 아까처럼 화난건 아닌거 같다. 오히려, 뭔가 신기한걸 봤다는듯한 그런 표정. 아, 이거 딱 내가 동물원에서 펭귄 처음 봤을때 이런 표정이었는데.

"...저기요?"
"알겠어."
"뭐가?"
"친구가 되어줄께, 우이."
"오오... 근데 말은 내가 꺼내긴 했지만, 이럴때 뭐라고 답해야하지?"
"글쎄? 나도 잘 모르겠는데."
"어... 그럼... 잘 부탁해. 코이시."
"응, 앞으로 잘 부탁해, 우이!"

베시시 웃는 코이시. 오, 오우... 언어능력이 퇴화될것만 같은 귀여움이군. 얘 진짜로 요괴인가? 천사가 아니라?

"그러고보니 우이, 혹시 약속 같은거 있어?"
"나 방금 무덤에서 기어나왔는데, 약속 같은게 있겠냐..."
"그래? 잘됐다. 그럼 우리집에 놀러와! 궁금한 것도 생겼구, 이렇게 만난거 좀 더 이야기하고 싶어."
"그건 더할 나위 없는 제안인걸... 근데, 지금 당장 가는거야?"
"응! 날도 어두워졌고, 아직 밤엔 추운걸. 오린, 돌아가자!"
"아, 네! 언니야, 가방 여기다 넣어."
"오, 땡큐."

오린의 화차에 내 가방을 넣고, 코이시와 오린의 뒤를 따른다.
갑작스레 너무나도 많은 일이 일어났다. 죽기도 했고, 되살아나기도 했고, 생매장 체험도 했고, 이걸 TS라고 불러도 될지 어떨지도 모를 기괴한 신체변형도 일어났고, 이젠 내 소지품을 시체 넣는 수레에 넣어보기까지. 어메이징 그 자체로군.
하지만,

"뭐해, 우이! 빨리 가자!"
"아니, 평범하게 따라가고 있었거든."
"더 빨리! 집중선이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느낌으로!"
"끼요오오오옷!! 이렇게?"
"아하하하하! 바보 같아! 근데 맞아! 그런 느낌!"

이유는 없지만 코이시의 얼굴을 보고 나서야, 정말로 무언가가 시작되었다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게 뭔지는 모르겠고, 어떻게 끝날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잘 끝났으면 좋겠다는 그런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홍마관, 레밀리아의 방.

"사쿠야, 오늘 저녁은 뭐야?"
"야타가라스의 알을 사용한 오무라이스랍니다."
"...이틀 전에도 먹었고 어제도 먹었잖아. 오늘도 또?"
"하지만 이번엔 피망을 넣지 않았답니다."
"훗, 이번만은 봐주도록 할께."
"감사합니다, 아가씨."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사쿠야. 사실, 그녀는 이틀전에 사고로 쇼우이치를 죽게 한 탓에 상당히 심란한 상태였다. 물론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건 마리사였지만, 제대로 감시를 하지 않았다는 책임감이 남아 있었다.
사실, 그녀 자신도 신기했다. 흡혈귀의 시종으로써 살아오며, 수많은 이들의 죽음을 봐왔지만, 사람이 죽은 것으로 이렇게까지 흐트러지는건 그녀로썬 이번이 처음이었다. 얼마나 흐트러졌는지, 주인의 저녁 메뉴를 3일 연속으로 같은걸 내올 정도였다. 필살기(피망 빼기)로 어떻게든 넘기긴 했지만, 다음은 없을 것이다.
스스로를 다독이며, 머리속으로 최대한 쇼우이치에 대한 죄책감을 밀어내는 사쿠야였지만...

"그러고보니, 그는 좀 어때? 일은 잘 해내고 있어?"
"...그, 라고 말씀하심은?"
"그 있잖아. 그 불쾌한 틈새요괴가 부탁했던 남자. 설마 레이무의 소개장까진 가져왔을 줄은 몰랐는데."
"어..."
"하지만 깜짝 놀랐어. 설마 플랑한테 붙잡혔는데도 상처 없이 돌아올 줄이야. 꽤나 흥미로운 인간이야. 플랑도 마음에 들어 하는거 같고."
"그..."
"그러고보니 제대로 만나서 인사도 안한 것 같네. 저녁 먹기 전에 한번 만나보고 싶은데, 지금쯤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어?"
"아, 아가씨... 그..."
"응?"

귀엽게 고개를 갸웃하는 레밀리아에게, 사쿠야는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면목 없습니다, 아가씨! 그 남자는, 들어온 그날 사고로..."
"뭐???"
"파츄리님께서 연구하시던 위험한 마법책을 실수로 여는 바람에, 그대로..."

사실 사쿠야는 쇼우이치의 죽음을 일부러 숨긴게 아니었다. 말할 틈이 없었고, 말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주인을 이틀간 속인게 되니, 사쿠야는 허리를 숙여 사죄한 것이다.
다만, 레밀리아는 다른 벡터로 깜짝 놀라고 있었다.

"말도 안돼! 그는 이틀 전에 죽을 운명이 아니었단 말야!"
"예?"
"적어도 내가 맡는 기간 동안엔 절대로 죽지 않도록 운명을 바꿔놨다구! 만일 우리 저택에 있다가 죽으면 레이무한테 미움받을거 같아서!"
"그, 그렇다는건..."
"사쿠야, 그의 사체는 어떻게 했지?"
"관에 그의 유품을 담아서, 저택에서 조금 떨어진 숲에 묻었습니다만..."
"안내해, 얼른! 이틀이라면 그래도 어떻게든 될거야!"

고개를 숙인뒤, 신속하게 외출 준비를 하는 사쿠야와, 초조한듯 발을 구르는 레밀리아.
그녀들이 파내어진 쇼우이치의 무덤과 텅 빈 관을 발견할 때까지, 앞으로 7분.

AND

! 주의 !

이 글은 갈 곳 없는 망상을 때려박은 동방 2차 창작 소설입니다. 따라서 때때로 역겹습니다. 읽는걸 권하지 않습니다.

이 글에는 2차 창작에서의 터부(개인적 관점)인 오리지널 캐릭터, 줄여서 오리캐가 나옵니다. 우욱씹 소리가 절로 나올것으로 예상됩니다. 한번 더 읽는걸 권하지 않습니다.

욕설이 나옵니다. 좀 많이 나올 예정입니다. 또 한번 읽는걸 권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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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꺽... 여기가 소문으로만 듣던 그 섬인가..."

 

요괴의 호수 인근. 하쿠레이 신사에서 출발해 나름 빠른 걸음으로 걸어왔다 생각했지만, 벌써 해가 어둑어둑 져간다. 어두워질수록, 호수 한가운데의 있는 섬에 위치한 붉은 저택은 더욱더 공포를 더하고 있다. 절대로 가까이가면 안될거 같은 그런 오라가, 저택에서 나오고 있었다.
섬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육로는 눈앞에 있는 이 돌다리. 외적으로부터 주인을 지키기 위한 요새로써의 위치 선정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잘 생각해보면 환상향엔 날아다니는 놈들이 천지에 널렸다. 그러니 요새로써의 의미보단 아마 주인의 취향이 아닐까.
그러고보면, 저택 입구에 문지기가 있을터. 홍 메이린이라는 이름의 중국권법을 잘 쓰는 요괴다. 어째서 중국의 요괴가 서양 요괴가 사는 저택의 문지기 같은걸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으으, 역시 이 언저리는 춥네."

아무래도 호수 위라 그런지, 이곳은 주위에 비해 온도가 적어도 3도 정도 낮은것처럼 느껴졌다. 거기에 곧 있으면 해가 진다. 밤이 되면 한자릿수로 온도가 떨어지는게 아닐런지.
그나저나, 어떻게 잘 이야기가 되면 좋을텐데. 솔직히 이 시간에 문전박대를 당해버리면 답이 안선다. 인간 마을까지는 조금 거리가 있는데다가, 애시당초 여관이 있을지도 불명이다. 떠돌아다니는 사람 자체가 적은, 폐쇄된 세계이니.

"저기가 입구인가... 음."

돌다리를 건너, 조금 걸으니 홍마관의 정문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문은 굳게 닫겨 있고, 그 문 앞에는 갈색의 중국풍 옷을 입고 있는 소녀가 굳건히 서 있다가... 내가 오는걸 봤는지 뭔가 권법의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아주 당연하지만 경계 당하고 있군. 으음, 메이린은 자주 존다는 설정을 알고 있어서, 혹시나 자고 있으면 몰래 지나갈 수 있는거 아닐까 하고 살짝 기대하고 있었는대.

"거기! 그 이상 다가오면 쫒아내겠어!"

메이린의 경고가 날아든다. 하지만 목소리 자체가 귀여운지라 그다지 효과가 없다. 성우로 따지자면 후치가미 마이 언저리려나...

"여기서 일하고 싶어서 찾아 왔는데요?"
"...뭐? 보아하니 인간인데, 여기가 어딘진 알고 찾아온거야?"
"흡혈귀가 사는 저택이라면서요? 혹시 잘못 찾아왔나?"
"아, 아니. 잘 찾아오긴 했는데... 으음???"

어이가 없었는지, 자세를 풀고 고개를 갸웃하는 메이린. 아무래도, 나같은 케이스는 처음인지 당황을 금치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 스스로 생각해도 웃기긴 해.

"거기에 하쿠레이의 무녀한테 소개장도 받아왔는데. 들여보내주면 안될까요?"
"자, 잠깐만. 으음.... 그 소개장이라는거, 확인해도 될까?"
"뭐, 좋으실대로."

가방에서 레이무에게 받은 편지봉투를 꺼내, 문앞으로 걸어가 메이린에게 내민다. 하지만 메이린은 딱히 봉투를 받아들어 내용을 확인하려고 하진 않고, 얼굴을 조금 가까이 해 편지봉투의 냄새를 확인한다.

"...확실히, 무녀에게서 나던 냄새가 나는군. 하지만 여전히 수상해."
"뭐,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은 하는데 말이죠."
"......"

메이린은 그 청옥색의 눈동자로 나를 들여다보더니, 이내 한숨을 쉰다.

"거짓말을 하는것 같진 않고. 하지만 그냥 들여보내주기엔 좀 그러니까, 내가 저택 안까지 동행한다. 이의는 없지?"
"아휴, 물론이죠."

애시당초 순순히 안에 들여보내줘도 문제다. 내부는 겉보기보다 넓다고 하는데, 당장 눈에 보이는 건물도 그닥 작지는 않다. 한 3층쯤 되어보이는데다가 심지어 이 건물, 지하도 있다며? 그런 곳에서 아무런 지식도 없는 상태로 말이 통할만한 인물을 찾아다니는게 그렇게 쉬울거 같진 않다.
오히려 메이린이 동행해주는게 나로썬 훨씬 낫다는 이야기.

"옷차림을 보니 마을에 사는 인간은 아닌거 같네. 바깥에서 흘러 들어온건가?"
"뭐, 그렇죠."
"바깥 세계엔 별난 인간도 다 있네. 내가 여기서 일하면서, 제 발로 와서 일하게 해달라고 한 녀석은 네가 처음이야."
"아하하..."

앞서 나아가며 쓰게 웃는 나를 곁눈질하는 메이린. 여전히 경계하고 있는 모양이네. 듣던 소문보단 깨어 있는 사람...아니, 요괴인가보다.

"우선 사쿠야씨한테 데려가면 되겠지... 아마 지금쯤이면..."

뭔가를 중얼거리는 메이린. 사쿠야라, 말 나온김에 이곳에 사는 주요 인원들을 되짚어보자.
첫번째로, 눈 앞에 있는 문지기 '홍 메이린'. 중국식 이름에 중국풍의 의상을 입고 있고, 중국권법의 달인이니 아마 중국출신이겠지만, 환상향에선 드문 '루츠'를 알 수 없는 요괴다. 뭐, 홍마향은 구작과 신작의 경계선에 있으니, 대충 설정한 거겠지만...
두번째로, '파츄리 널리지'. 홍마관 내에 위치한 마법도서관의 주인이고, 마법사다. 원소마법이 특기인 모양인데... 사는 곳 특성상, 천식이 있다던가. 마법사는 기본적으로 전성기때의 젊음을 유지하는 모양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병에 걸리지 않는다거나 죽지 않는다거나, 그런건 아니라는 모양이다.
세번째로, 아까전에 이름이 나온 '이자요이 사쿠야'. 이 저택에 사는 유일한 인간이자, 홍마관의 메이드장. 말이 인간이지, 시간을 조종한다는 사기급 능력을 지녔기 때문에 이미 인간을 초월했다. 홍마관의 내부가 넓은것도, 그녀가 한 일이라고 한다. 그... 아마 미래의 공간을 현재로 불러와 공간을 넓혔다고 생각한다. 나도 뭔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으니, 자세한건 오! 나의 여신님에 나오는 스쿨드한테 물어보자.
그리고 네번째. 이 홍마관의 주인이자, '스칼렛 데빌'이라는 거창한 이명을 지닌 '레밀리아 스칼렛'. 겉보기엔 어리지만, 500년 이상을 살아온 흡혈귀이다. 참고로 '스칼렛 데빌'이란 별명은, 그녀 자신이 소식가인지라 피를 양껏 마신 뒤에 남은 대량의 피가 그녀를 듬뿍 적셔서 그렇다고 한다. 절대 뷔페엔 데리고 싶지 않은 성격이다.
...마지막, 다섯번째는.

"이봐. 거기서 뭐해?"
"응? 오오..."

메이린이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든다.
생각하다보니 눈치를 못챘는데, 우리는 벌써 홍마관 안에 들어와 있었다. 여기는 로비인가? 발치의 붉은 마법진에서 뭔가 드라이아이스같은 연기를 뿜어내고 있고, 주위의 광원은 바닥의 마법진과 여기저기 설치 되어 있는 촛불 뿐이라 어둑어둑하다. 다만, 사방팔방으로 뚫려 있는 복도 쪽은 꽤 환한걸 보니 로비만 이렇게 분위기를 살려놓은 모양이다. 주인의 취향이 느껴지는군.
그래그래, 마지막 다섯 명째의 주요 인물. 그녀의 이름은 '플랑드르 스칼렛'.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주인인 레밀리아 스칼렛의 친족이다. 구체적으론 여동생. 굉장히 강력한 능력을 지닌 흡혈귀이지만, 그때문인지 정서적으로 불안정해서 오랜 기간 동안 지하에 유폐되어 있었다고 한다. 가둬봐야 더 도지기만 할거 같긴한데. 하여간, 솔직히 걸어다니는 시한폭탄 같은 애라서 별로 맞닥뜨리고 싶지 않은 인물 순위 1위다.
참고로 겉모습은 미디어믹스에서 흔히 보이고, 그렇기에 인기가 많은 금발적안이다. 게다가 옷 디자인도 귀여운데다가, 날개가 꽤 인상적이다. 나뭇가지에 7색의 보석이 열린듯한, 그런 날개다.
그래, 저기 마침 보이네. 저거다. 으음, 직접 보니까 사탕같아 보이기도 하네. 햝으면 색마다 맛도 다를까?...아까 스이카 뿔로 반성해놓고, 나란 놈은 배우질 않는구만.
...가만? '저기 마침 보이네' 라고?

"어라? 메이린, 무슨 일이야?"
"자, 작은아씨?!"
"뭐야~ 갑자기 놀라고. 나 몰래 맛있는거라도 먹고 있었어?"
"아니요, 그..."
"응~? 어라라? 뭐야, 그거? 인간?"
"아~...네에. 여기서 일하고 싶다고 해서..."
"에? 일하고 싶대? 여기서?"
"네..."

그 말을 듣고 다다다 달려와, 내 앞에 서는 소녀. 금빛의 웨이브진 단발, 홍옥보다 붉고 요염하게 빛나는 눈동자. 장난스러운 웃음을 머금은 입술 사이로 보이는, 날카로워보이는 송곳니. 그리고, 이 귀엽고 배덕적인 매력을 지닌 외모와 상반되는 압도적인 아우라. 고양이 앞에 선 생쥐가 이런 기분일까. 루미아에게 산 채로 먹힐뻔하던 순간에도 느끼지 못했던 공포에, 식은 땀이 흐른다.

"흐응~ 좋아! 정했어! 얘, 내가 데리고 갈래!"
" "예?" "

나와 메이린이, 동시에 되물었다. 하지만 플랑드르는 개의치 않고, 이번엔 내 팔을 양손으로 붙잡았다.

"여기서 일하고 싶다며? 마침 같이 놀던 요정도 고장나버렸고, 타이밍 좋네!"
"그, 그렇지만 작은아씨. 그 인간은 하쿠레이의 무녀가 준 소개장을 가지고 있어서..."
"뭐야, 언니한테 먼저 알려줘야 된다는거야?"
"네에...그러니 일단은..."
"싫은데?"
"예?"
"인간, 그 소개장이란거. 줘봐."
"잉? 아, 여기."
"이봐, 잠ㄲ..."

아차, 나도 모르게 플랑드르한테 소개장을 주고 말았다. 대화 흐름이 너무 스무스해서 무심코.
소개장을 받아든 플랑드르는, 등 뒤에서 나타난 또 한명의 플랑드르에게 그걸 넘겨준다. 그러자 그 플랑드르는, 어디론가 달려가버린다.

"자, 언니한테는 내가 이야기 할께. 그걸로 된거지?"
"그건..."
"자, 가자. 인간! 나, 마침 하고 싶은게 있었어!"
"으어어어"

저항하면 팔이 찢겨나갈거 같은 힘에 이끌려, 나는 그녀에게 끌려간다. 돌아보니, 메이린이 나를 도축장에 끌려가는 돼지를 바라보는듯한 연민어린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아니, 동정할거면 한번만 더 설득을 해보라고. 사실 자업자득이지만.















"...근데, 난 왜 이러고 있는거람."
"아하핫, 간지러워."
"얌마. 움직이지 마. 아무리 요괴라도 고막 찢어지면 불쾌할거 아냐."

홍마관 지하, 플랑드르의 방.
완전히 메르헨 느낌 풀 전개인 방이거나, 완전히 폐허가 되어 있는 방일거라는 예상을 제치고, 그녀의 방은 생각보다 간단하며, 기능적이었다. 오히려, 누군가의 개인실이라곤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몰개성했다.
그런 방에 끌려 들어간 내가 그녀에게 명령 받은건... 귀파기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런데 인간, 은근슬쩍 반말하고 있지 않아? 이래뵈도 난 너보다 나이도 많고, 신분도 너보다 위라구?"
"아직 계약이 확정된 것도 아니고, 그렇게 따지면 난 댁을 할머니라고 불러야 하는데. 그래도 된다면 그러지."
"으... 됐어. 할머니는 싫은걸. 아, 거기... 응, 거기야 거기."
"......"

금발 적안의 흡혈귀의 머리를 내 허벅지 위에 얹고(플랑드르가 시켰다), 심지어 그 귀를 파주는 상황. 대체 뭘 어떻게 해야 이런 상황이 되는걸까. 거기에 아까전에 느껴졌던 플랑드르의 아우라는,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너, 귀 파기 잘하네... 사쿠야 레벨까진 아니지만, 꽤나 근접한 실력이야."
"귀파기 ASMR 영상을 좀 많이 봤거든."
"A...뭐?"
"그런게 있어."

설마 도움이 될줄은 몰랐지만. 그보다 생각보다 귓밥이 생겨있군. 요괴도 귓밥이 생기는구나... 하긴, 어찌보면 당연한건가. 식사를 필요로 하는 생명체이니, 당연히 노폐물도 생기겠지. 귀의 구조도 인간과 별다를바 없고.

"그보다 인간이라고 그만 불러. 자꾸 그러니까 내가 종 대표가 된 기분이잖아. 나한텐 무거운 짐이라고."
"그치만 이름 모르는걸."
"그럼 묻던가... 쇼우이치다. 너는?"
"플랑드르 스칼렛... 앗, 거기 조금만 더 해줘."
"오냐."

왠지 여동생한테 귀파기 해주는 기분이다. 여동생은 없었지만.

"쇼우이치... 기네. 우이라고 불러도 돼?"
"야. 니 이름이 더 길거든? 근데, 우이라니?"
"쇼'우이'치니까 우이."
"...적어도 남자한테 붙일만한 별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만?"
"그런게 어딨어. 귀여우면 그만이지. 그래도 되지? 거기다 우이는 내 시종이 될테니까, 부르는 방법은 마음대로 해도 되잖아?"
"...그려, 마음대로 하쇼. 그럼 난 뭐라고 불러. 아까 그 메이린인가 하는 사람처럼 '작은아씨'라고 불러?"
"플랑이라고 불러줘. 짧은게 편하잖아?거기다..."
"귀여우니까?"
"물론♪ 잘 알고 있네~"

즐거워졌는지 누운채로 다리를 흔드는 플랑. 귀엽긴 한데, 귀 파는데 방해된다.

"플랑, 조금만 얌전히 있어. 이 뒤쪽에 달린 털뭉치로 마무리 할테니까. 이거 이름이..."
"아! 나 그거 이름 알아! 사쿠야가 가르쳐줬어. 그... 뭐였지? 보...보..."
"보?"
"보우건?"
"전혀 상관 없는 단어가 나와버렸다... 말해도 돼?"
"안돼! 내가 떠올릴 거니까! 으... 뭐였더라..."
"그래, 그렇게 얌전히 있어라."

참고로 정답은 본텐, 한자로 읽으면 범천이다. 인도의 신 브라흐만을 일컫는 말이지만 귀이개에서의 본텐은 딱히 그거랑은 관계 없고 수도승이 입는 본텐게사(梵天袈裟)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걔네 복장에 이런 털뭉치가 있거든. 궁금해서 예전에 찾아봤었다.
하여간, 본텐으로 플랑의 귀 안을 살살 털어내기 시작하자, 그녀의 몸이 작게 떨려오는게 느껴진다. 역시 좀 간지러울려나. 이건 어디까지나 마무리 작업. 길게 해봐야 크게 의미는 없다. 기분은 좋을지 모르겠지만.

"다 됐다... 자, 반대편 하자."
"우응..."
"뭐야, 졸리냐? 그럼 베게 베고..."
"......"
"...이거야 원."

얼굴을 들여다보니, 곤히 잠들어 있었다. 갑자기 붙잡아 오더니 귀파기를 시키질 않나, 기분 좋아졌다고 잠들지를 않나, 멋대로구만. 뭐... 생각해보면 바라지도 않은 좋은 전개긴 하지만. 목숨이 붙어 있잖아?
그나저나, 그렇게까지 기분이 좋았던걸까... 혹시 나, 귀파기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거 아닐까? 사실 이거, 오늘 처음 해보는거란 말야. 플랑한텐 이야기 안했지만.

- 똑똑!

[작은아씨, 계십니까? 사쿠야입니다.]

그때, 노크하는 소리와 함께 문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내가 대답했다간 플랑을 깨울것 같아 조용히 있었더니, 얼마 안가 방문이 스르르 열린다. 그리고, 문 너머에 있던 여성이 눈에 들어온다.
메이드복을 입은 회색 머리칼의 소녀. 구렛나루쪽에 땋은 머리를 늘어뜨린게 인상적인 여자애다. 그녀의 사파이어색 눈동자는, '뭘 어떻게 해야 이렇게 되냐'라는 듯이 크게 뜨여져 있었다.
홍마관의 메이드, 완벽하고 소쇄한 메이드, 트릭없는 마술사, PAD장(이건 2차 창작이지만), 이자요이 사쿠야. 그녀를 바라보고 있자니, 갑자기 허벅지에 실린 무게감이 확 가벼워진다. 내려다보니, 자고 있던 플랑은 사라지고, 왠 종이 한장이 놓여져 있었다. 뒤집어 보니, '밖에서 이야기 하자. 조용히 나와' 라고 적혀 있다. 생각보다 글자가 귀여운건 일단은 넘어가자.

"호오..."

자리에 일어나 뒤돌아보니, 플랑은 어느샌가 침대에 누워 잠들어 있었다. 시간을 멈춰서 플랑의 위치를 옮긴건가.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엄청나게 당황했겠군. 뭐, 사전 지식이 있는 나조차도 꽤 깜짝 놀라고 있다. 근데 생각해보면 레이무가 날아다니는건 아무런 생각 없이 봤는데, 난 왜 이제와서 놀란걸까.
하여간, 방에서 나선 뒤 문을 살짝 닫아주고 주위를 둘러본다. 사쿠야의 모습이 보이질 않는데... 뭐, 로비로 나가보면 알겠지.
홍마관의 지하는 듣던대로 미로처럼 되어 있었다. 여기저기에 갈림길이 있고, 심지어 눈에 띌만한 이정표도 없이 그저 돌로 된 복도만이 쭈욱 펼쳐져 있어서, 만약에 플랑이 나를 기절시켜서 여기로 데리고 왔다면 정말로 지하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어디보자, 여기서 오른쪽으로 꺾어서 3개 정도 갈림길을 지난 뒤에 왼쪽으로 간 뒤에... 찾았다. 위로 올라가는 계단.
그런데, 계단을 올려다보니 거기에는 벽에 기대어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사쿠야가 있었다.

"그 미로 같은 지하에서 이렇게 빨리 빠져나오다니, 조금 감탄했어."
"미로같은줄 알고 있었으면 아까 방문 앞에서 기다려주지?"
"뭐, 일종의 입사시험 같은거라고 생각해줘. 자, 따라와."
"입사시험, 이라."

그러고보니 여기로 날아오기 전에, 면접 떨어진 뒤에 집에 가고 있었지... 생각해보면, 면접도 떨어졌는데 차에까지 치이다니. 대체 얼마나 좆박은 인생인거야? 심지어 그 뒤엔 이상한 세계로 날아가기까지 했으니 원.

"그나저나, 어떻게 한거야?"
"뭘?"
"작은 아씨가 장난감을 망가뜨리지 않은건 처음이거든. 아, 혹시 내상?"
"살벌한 소리를 하는구만. 멀쩡하거든? 그리고 난 플랑이 원하는대로 귀파기를 해줬을 뿐이야. 별다른건 아무것도 안했다구."
"귀파기? 아아, 그러고보니 최근에 해드리질 못했네..."
"아까전에 문지기도 그렇고 그쪽 반응도 그렇고, 이 집의 작은 아씨는 꽤나 트러블메이커인가 보네."
"...솔직히 네가 살아있는게 신기해. 소식을 듣자마자 시체 뒷정리할 생각만 하고 있었으니까."
"정신 나간 곳에 들어와버렸군."
"네 발로 들어왔잖아?"
"아 ㅋㅋ 진짜로 이정도일줄은 몰랐지~"

내가 웃으며 대답하자, 어이가 없다는듯 내게 눈길을 보내는 사쿠야. 그리고 얼마 안가, 어느 방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사쿠야는 방 문을 열며 말한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아가씨는 식사중이니까, 식사가 끝나시는대로 여기로 오실꺼야."
"그러고보니 벌써 저녁 식사시간인가."

때마침 복도 밖으로 보이는 바깥은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 그러고보니 아침부터 아무것도 못먹었네... 오늘 먹은거라고 해봐야 레이무네 신사에서 얻어먹은 차랑, 오는길에 가방에서 꺼내 먹은 스○커즈 하나 뿐이다. 떠올리니 갑자기 배가 고파진다.

"빵 정도라면 챙겨줄 수 있는데?"
"진짜? 부탁해도 될까?"
"...상당히 배가 고팠나보네. 알겠어. 금방 가져올께."
"오오, 고마워. 아, 그..."
"사쿠야야. 이자요이 사쿠야."
"고마워, 사쿠야. 난 쇼우이치."
"쇼우이치... 응. 외웠어. 조금만 기다려."

라고 말하자마자, 사쿠야는 약 0.1초 동안 사라지더니 다음 순간 손에 빵이 담긴 바구니를 들고 나타났다.

"기다렸지?"
"...0.1초정도?"
"어머나. 이렇게 나타나도 놀라질 않네. 바깥 세계 사람이라고 들었는데."
"초장부터 하늘을 날아댕기는 무녀를 만나서 말야."

사실 그 이전에 사람 잡아먹는 요괴를 만나긴 했지만. 하지만 생각해보면 사쿠야의 말도 일리가 있다. 보통 사람이라면 환상향으로 날아온 시점에서 패닉을 일으켰을 것이다. 사전 지식이 있다곤 해도, 되돌아보면 지나치게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는것 같다...마음 속 한구석에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걸지도. 그러고보면 뭔가 환상향에 왔다는 제대로 된 실감을 아직까지 느끼지 못하고 있다. 으음, 나 뭔가 문제라도 있는건가.

"우유랑 물은 바구니 안에 있어. 자, 갖고 들어가 있어."
"고마워, 사쿠야."
"별말씀을. 그럼, 조금 있다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더니, 사쿠야는 흩날리는 트럼프 카드와 함께 모습을 감추어버린다. 일일이 고생이 많구만...
방을 들어가보니, 내장이 놀라울정도로 플랑의 방과 같았다. 아까전에 플랑의 방에서 느꼈던 위화감에 박차가 가해지는군. 그렇다면 이 방의 구성은 일종의 프리셋 같은걸까? 플랑의 성격이 들은대로라면, 이래저래 부숴먹는게 많을테니.
하지만 내가 직접 본 플랑은... 그정도까지 나사가 빠져 있는거 같진 않던데. 애는 플랑 정도로 제멋대로여도 된다고 생각해.
...뭐, 플랑이 휘두르는 능력이 미니어쳐 인피니티 건틀렛같은거라서 문제인거겠지만.

"...생각보다 달아."

집주인을 위한 선택인건지, 빵이 하나하나 다 달다. 이상하다, 분명히 나는 바게트 빵을 씹었는데, 왜 단거지? 이거 보통 안달지 않나? 윽, 그보다 급하게 먹었는지 목이 메인다. 우유...는 왠만하면 피하고 싶은데. 유당불내증이라. 근데 이 빵에는 반드시 우유를 먹어야 할거 같은 그런 느낌이란 말이지. 으음... 우선, 당장은 물을 마시고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근처에 화장실이 어디인지 좀 알아보자.아무리 그래도 방마다 화장실이 있진 않을테고...

"...어디보자."

혹시나 부재시에 레밀리아가 올 수도 있으니 일단 가방에서 꺼낸 노트를 한장 찢어 테이블 위에 얹고, '화장실 찾으러 떠납니다' 라고 적어놓은 뒤 복도로 나온다. 한가지 문제가 있다면, 이러한 가정집(?)의 경우 화장실에 대한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불특정 다수가 들락날락하는 건물이라면 화장실의 위치를 표시해놓지만, 이런 폐쇄적인 저택에서 그런 의미 없는 행위를 했을거라 생각하긴 힘들다.
결국 어쩔 수 없이, 방을 하나하나 확인해 보는 수 밖에 없겠구만. 사실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저택내의 누군가와 조우해 장소를 안내받는거지만... 적어도 이 복도엔 아무도 안보인다.
아니, 한명 보인다. 보인다라고 해야하나, 어째선지 이쪽을 향해 달려온다. 그리고 그것의 너머로부터, 수십개의 얼음 조각이 고속으로 날아온다. 3개 정도 나한테 직격 코스!?

"뭐꼬 씨발!?"
"으아아악! 비켜!"

날아오는 얼음조각을 피하고 있으니, 나를 향해 달려오던 여자아이가 내게 소리지른다. 그리고, 그녀의 뒤엔 수십개의 마법진과 함께 날아오는 또 한명의 소녀가. 뭐, 간단하게 말하자. 마리사가 파츄리한테 쫒기고 있었다. 마리사의 손에 들린 몇권의 책을 보니, 대충 이유는 알거 같다.
자, 선택지는 두개. 마리사를 피해 그녀를 보내준다. 속도를 보아하니, 이대로 두면 파츄리는 마리사를 놓칠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선택지는, 마리사를 붙잡는다. 이 선택지는 앞으로 신세질 수도 있는 저택에, 도움을 줘서 입지를 굳힐 수 있을것이다. 아마도.
마리사한텐 미안하지만... 아니, 생각해보면 쟤 저거 훔쳐가는거잖아. 미안할거 없지.

"You shall not pass!"
"뭐, 뭣이!!! 으악!"

내가 달려들거란 생각은 못했는지, 마리사는 피하지도 못한채 그대로 나의 골드버그급 스피어를 맞고 그대로 제압당한다. 그림만 보면 다 큰 남자가 여자애를 덮친것처럼 보이겠지만, 어디까지나 공익(?)을 위한 일이다.
그나저나 골드버그라니, 스스로 말한거지만 꽤나 그리운 이름이로군.

"뭐하는거야, 이 자식!"
"나 쇼우이치에겐 옳다고 믿는 꿈이 있다! 그건 홍마관의 달콤한 꿀을 빨며 1달간 환상향에서 살아남는거지!"
"뭔 소리하는거야, 저리 비켜! 내가 뭘 잘못했다고!"
"아니... 그치만 너, 명백하게 도둑질 하고 있었던거 아냐?"

내가 물끄러미 마리사가 들고 있다 놓친 책들을 바라보고 있자, 시선을 피하며 말한다.

"저, 저건... 빌리는거야!"
"그렇다는데요, 보라색 머리 아가씨."
"하아... 하아... 헛소리도 정도껏 해야지, 도둑고양이가..."

여기까지 오면서 지쳤는지, 곧 죽을 것 같이 숨을 가프게 내쉬며 파츄리는 마리사의 말을 즉시 부정했다.

"이봐, 너. 언제까지 여자애 위에 올라타 있을거야."
"글쎄다? 그건 내가 정하는게 아니라서."
"켁,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그렇게 말하며 마리사는 제압되지 않은 왼팔을 들어 쓰고 있던 모자에 손을 넣더니, 거기서 무언가 나무통 같은걸 꺼낸다. 나무통이라고 해야하나, 그녀의 상징과도 같은 미니 팔괘로였다. 저런걸 모자속에 넣고 다녀도 되는거야? 저거 화기 아니야?

"통구이가 되고 싶지 않으면, 비키는게 좋을거야!"

미니팔괘로를 내게 겨누며 큰 소리치는 마리사. 평범하게 생각하자면 장난감을 겨누는것처럼 보이지만, 확실히 그녀의 말대로 내가 여기서 비키지 않으면 미니팔괘로의 화력으로 내 상반신은 통구이가 될 것이다. 미니팔괘로엔, 적어도 그정도 화력은 있으리라.

하지만...

 

"에잇."

"앗!? 돌려줘!"

 

마리사의 손에서 미니팔괘로를 뺏는다. 아무리 그래도 이걸 뺏을줄은 몰랐는지, 생각보다 간단하게 뺏을 수 있었다. 마음같아선 멀리 던져버리고 싶지만... 던졌다가 고장나면 이래저래 귀찮아질거 같으니, 마리사의 팔이 닿지 않는 곳으로 밀어보낸다.

 

"저게 뭔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사람한테 겨눠도 되는건 아닌거 같아 보여서."

"으윽... 체엣, 알겠어. 돌려줄테니까 슬슬 놓아줘."

"그렇다는데요?"

"...놓아줘도 돼. 책은 회수했으니까."

 

마법책은 전부 파츄리의 등 뒤에 둥둥 떠 있었다. 저렇게 있으니까 무슨 캐릭터 스킨같구만. 하여간, 마리사의 위에서 물러나자 찡그린 표정으로 이쪽을 노려본다.

 

"너 이 자식, 나중에 두고봐. 얼굴 외웠으니까..."

"너무 정석적인 악역 대사라 도리어 신선하군."

"하지만 파츄리, 오늘은 평소보다 과하게 반응하는거 아냐? 평소엔 몇권정도 훔...아니, 빌려가도 뭐라고 하지 않았잖아."

"네 입으로 그런말을 하는거야?...하지만, 그럴 수 밖에 없었어. 네가 가져간 책 중에 특별한게 있었거든."

"특별한 거라니?"

"새로운 마법을 연구하고 있어. 마계와의 바이패스를 연결해서, 주위의 마법을 증폭시킬 수 있게 하는거지. 그 과정이 적힌 마법책이야."

"헤에..."

 

...어느샌가 사이좋게 마법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두 마녀. 의외로 사이는 좋을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당신은 누구? 또 레미가 줏어온 부랑자인가?"

"홍마관 취직 희망자인데요."

"....에? 여기에 취직을 한다고?"

 

아, 마녀조차 어이없어 하고 있어. 확실히 내가 좀 이상하긴 한가보다.

 

"바깥에서 흘러들어왔는데, 결계를 수리중이라고 들어서... 한달동안 숙식할 곳이 필요했거든요."

"바깥세계라... 흐음..."

"파츄리, 아까전에 말한 그 마법책이라는건 어느걸 말하는거야?"

"왼쪽 제일 위쪽에 있는 까만거."

 

마리사의 물음에 대충 대답하면서 턱에 손가락을 가져다대고 무언가를 생각하는 파츄리. 그런 파츄리의 눈치를 보던 마리사는, 갑자기 족제비보다 날렵한 움직임으로 왼쪽 위에 있는 검은 마법책을 집어들고,

 

"그렇다면, 이걸 빌려가겠어!"

 

라고 당당하게 외치며, 2번째 범행을 시도했다. 뭐지? 방금전에 풀어줬더니, 바로 눈앞에서 또 범행을 저지르려고 한다고? 대단한 배짱인데.

마리사는 그 날렵함을 그대로 살리며, 아까전에 내가 밀어뒀던 미니팔괘로를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당신, 그녀를 붙잡아줘! 저건 아직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출력이 아니야! 아직 연구 도중이니까, 최악의 경우 죽을 수도 있어!"

"도둑한텐 딱 알맞는 벌이 아닌지?"

"됐으니까 얼른!"

 

진짜로 사이 좋은거 맞는거 같은데. 파츄X마리... 좋군... 하여간, 잠깐 멍때린 사이에 마리사는 복도의 끝까지 달려나가고 있었다. 내가 딱히 다리가 빠른건 아닌데... 뭐, 할 수밖에 없나.

 

"거기서라, 도둑년아!!!!"

"빌리는것 뿐이라고-!"

 

냅다 달려나가며 외치자, 의외로 마리사의 대꾸가 돌아온다. 그보다... 달리면서 눈치챈건데, 생각했던 것 보단 느리다. 여자애라서 어쩔 수 없는걸지도. 뭐, 이정도면 금방 잡겠는데.

근데 꼭 이런 생각을 하면 사람 놀리듯이 다른 상황이 벌어지더라.

 

"켁! 어쩔 수 없지!"

 

내가 거의 따라 잡은걸 보고 혀를 차며, 마리사는 자신의 옆에 있는 창문을 벌컥 연다. 바깥으로 나갈 생각인가. 하지만 바깥으로 나간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

 

"엥?"

 

갑자기, 마리사가 품속에서 빗자루를 꺼냈다. 아니, 농담 아니고, 진짜로 품속에서 빗자루를 꺼냈다. 어케 했노 시발!? 그보다 상황이 급격히 안좋다. 이거, 빗자루를 타고 날아가버리면 잡을 방도가 없다. 나와 마리사 사이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지만, 이대로라면 명백하게 놓칠 것이다. 젠장, 뭔가 방법은...!

 

"이건?"

 

그때, 시야 구석에 눈에 띄는 얼음덩어리. 아마 아까전에 파츄리가 날린 얼음덩이일 것이다. 날카로운 부분은 없는걸 봐서, 애시당초 파츄리는 그녀를 해할 생각은 없었나 보다... 아니, 이 무게의 얼음덩이가 머리에 맞는다 생각하면 딱히 그런거 같지도 않지만. 하여간, 내게 필요한건 잠깐의 시간이다. 그것만 있으면 마리사를 잡을 수 있다. 그렇다면...!

 

"Frag out!"

 

얼음덩이를 마리사를 향해 던진다. 달리며 던졌기에 그렇게까지 빠르게 날아가진 않았지만... 다행히도 얼음덩이는 마리사의 어깨에 직격해, 그녀의 몸이 움츠러든다. 쟤 몸에 직격했을때, 눈앞에 '11'이라는 환각이 보인거 같은데... 게임 좀 작작 할걸 그랬다. 그보다 마리사, 저자세 판정이구나.

 

"으랏차!"

"그아악!?"

 

달리는 그 기세를 몰아 점프해, 그대로 마리사의 어깨에 옆차기를 선사한다. 체중이 실린 발차기에, 마리사는 손에 들고 있던 마법책을 놓치고 그대로 밀려나 넘어진다. 후우, 아슬아슬했네.

"너 임마! 다 큰 남자가 나같은 여린 여자애를 발로 차도 되는거냐!"
"방금전에 사람을 구워 죽이려고 했으면서 어디가 여린 여자애여..."
"에라이, 아까껀 당연히 그냥 해본 말이었지!"
"그래서, 아까 그 나무통에 그런 능력은 없었다?"
"...그건 아니지만."
"얌마."

한숨을 쉬며, 마리사가 떨어뜨린 검은색 마법책을 들어올린다. 그리고 그 순간, 압도적인 오한이 전신을 감싸는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은 위험하다고, 온몸의 신경이 비명을 지르는듯했다. 이 손에 쥐고서야, 파츄리의 말에 실감이 든다. 확실히 이런거, 펼치면 죽을지도 모른다. 마리사는 잘도 이런걸 가지고 가려고 했군.

"수고했어."
"아이고, 별 말씀을."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며, 나는 내게 다가온 파츄리에게 책을 건낸다. 솔직히 지금도 내팽겨치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하니까, 빨리 가져가 줬으면 좋겠다.
이젠 책을 보고 싶지도 않아 바닥을 내려다 본다. 그런데 마법책의 그림자 아래, 마법진 같은게 그려져 있는게 보인다. 아까 언뜻 봤던 파츄리의 마법진과는 모습이 많이 다르다. 마법책이 자체적으로? 가능성은 있지만 개연성은 낮다. 그러고보면, 마리사에겐 지상에서부터 분출되는 류의 스펠카드가 있지 않았던가?

"광부, 어스라이트 레이라구!"
"쯧!"

- 삐융!

마리사의 목소리를 듣고 마법진에서 광선이 발사되는 것보다 아주 조금 빠르게, 마법책을 들어올린다. 아마 마리사에 대한 지식이 없었다면, 내 반응이 늦어 책은 광선에 직격해 튕겨져나가, 마리사에게 날아갔으리라. 아니면 불탔거나.
하지만, 오히려 그러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른다.

- 팔락!

광선에 스친 충격인지, 내가 책을 급하게 들어올리느라 잘못 잡아서인지 알 수 없지만, 마법책이 펼쳐지고 말았다. 내 손 안에서.
한동안의 정적.
그리고.
어둠이 나를 삼켰다.















"어서오렴, 귀여운 내 아가."

어둠속에서, 그런 목소리가 들렸다.

AND

! 주의 !

이 글은 갈 곳 없는 망상을 때려박은 동방 2차 창작 소설입니다. 따라서 때때로 역겹습니다. 읽는걸 권하지 않습니다.

이 글에는 2차 창작에서의 터부(개인적 관점)인 오리지널 캐릭터, 줄여서 오리캐가 나옵니다. 우욱씹 소리가 절로 나올것으로 예상됩니다. 한번 더 읽는걸 권하지 않습니다.

욕설이 나옵니다. 좀 많이 나올 예정입니다. 또 한번 읽는걸 권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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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천장이다."

 

이번엔 진짜로.

눈을 떠보니, 적어도 어딘가의 원룸이나 맨션은 절대 아닐것 같은 천장이 시야 내에 가득 펼쳐져 있었다. 어딘가 향같은 냄새도 나고, 풀냄새 같은 것도 나는게 동양의 종교시설 중 어딘가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졸린 머리 속에서 맴돌고 있다. 나는... 대체...

 

"으음..."

 

몸을 일으키니, 몸을 덮고 있던 무언가가 흘러내리는게 느껴진다. 내려다보니, 급하게 어디서 구해온 것처럼 보이는 낡고 넓은 천이 내 몸을 덮고 있었다. 이불 대신인걸까. 주위를 둘러보지만, 정말 멋들어질 정도로 아무것도 없다. 작은 창문만이, 햇빛을 방 안에 들여오고 있었다. 적어도 정식적으로 사람이 자는 곳은 아닌 모양이군. 쓰지 않는 방이거나 창고이거나, 그 언저리려나. 그보다 바닥의 이 다다미... 그렇게까지 누워 있기 좋은 소재는 아닌거 같군.

...다다미? 왠 다다미? 적어도 한국에서 다다미를 쓰는 곳이라고 해봐야 정말로 한정되어 있다. 그런 곳에 핀포인트로 납치된건 아닌것 같고...

아니, 잠깐만 있어봐. 납치고 자시고, 분명 어제는...

 

"...어제의 그건.."

 

명백하게 포식을 위해 나를 바라보던 그 붉은 눈이 생각나, 새삼스레 온몸에 소름이 돋아오른다. 나를 구하러 왔던 소녀가 아니었다면, 난 정말로 산채로 먹혀 죽었을 것이다. 여자애한테 뜯어먹혀 죽는 성벽이 있었다면 아쉬웠을 수도 있겠지만, 어찌됐던 살아 있다.

 

"하쿠레이 레이무, 라."

 

환상의 무녀, 하쿠레이 대결계를 지키는 수호무녀, 이색접, 겨드랑이 무녀 등. 여러가지의 이명(?)을 지니고 있는 소녀, 하쿠레이 레이무. 어제의 그걸 코스프레라고 부르기엔, 그 힘은 진짜였다. 그 괴물같던 금발의 소녀(높은 확률로 루미아)를 한방에 날려버렸으니까.

즉, 정리하자면 어제 밤에 막차도 끊겨서 걸어가던 중에, 차에 치여 날아가 한강에 빠진줄 알았는데, 눈을 떠보니 이상한 숲이었고, 갑자기 나타난 요괴소녀한테 목숨을 위협받다가 무녀에게 도움을 받았다... 라는거 같은데.

...솔직히 너무 클리셰 덩어리 전개라서 오히려 웃음도 안나온다. 애시당초에 환상향이라니, 그거 술주정뱅이가 만든 게임 이야기 아니었어? 이게 진짜 있다고?

 

"일단은...읏차."

 

자리에서 일어난 뒤, 몸을 덮고 있던 천(이불 대용)을 곱게 개어서 방 구석에 놔두고, 장지문을 열어 바깥으로 나간다. 아침의 살짝 쌀쌀한 날씨가 식힌 나무바닥의 감촉이, 묘하게 기분 좋다. 거기에 이 공기. 과연, 환상'향'. 즉 촌동네라 이건가. 공기 하나는 엄청 맑다 이거겠지. 어렸을때, 시골에 있는 외갓집에서 맞는 아침이 생각나서 살짝 그리워진다.

조금 걸어서 마당 근처까지 가보니, 내가 신고 있던 구두가 마루 아래 놓여져 있는게 보였다. 마루에 앉아 구두를 신고 있자니, 저 멀리서 빗자루질을 하는 소리가 나긋나긋하게 들려온다.

...그나저나, 그때 레이무를 본 이후의 기억이 없는데. 애시당초에 난 왜 여기서 디비 자고 있었던거지?

 

"어라?...옷 상태 왜 이래?"

 

이제서야 눈치 챘는데, 입고 있던 양복이 여기저기 찢어져 있는게 보였다. 그렇다는건 즉... 내가 뜬금없이 어떠한 힘에 각성한건 좋은데, 폭주하는 바람에 정신을 잃었고, 폭주한 상태로 레이무한테 달려들어서 이렇게 되었다... 뭐 이런건가?
...내가 멋대로 상상한거지만 정말로 말도 안되는 헛소리로군. 하지만, 적어도 옷이 이렇게 헤진건 내가 기억을 못하는 동안 일어난 일인건 분명하다. 그 요괴한테 덮쳐지긴 했지만, 이정도까지 난폭하게 당하진 않았으니까.

"뭐, 어찌 되었던."

레이무랑 이야기를 해볼 필요는 있어보인다. 이 이후의 방침은... 그 뒤에 정하도록 하고.
빗자루 소리에 이끌리듯 걸음을 옮겨 모퉁이를 지나자, 곧바로 경내의 정면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좁구나, 하쿠레이 신사...

"오오..."

그나저나, 벚꽃 한번 멋들어지게 피었다. 아담한 신사에 만개한 벚나무와 흩날리는 벚꽃잎. 그리고, 그 한가운데서 빗자루를 들고 있는 아름다운 무녀의 모습. 분위기 한번 끝내주는군.

"아~! 귀찮아! 그냥 한꺼번에 태워버릴까보다!"
"......"

끝내주는 분위기 파괴 멘트로군. 그보다 경내에서 무녀가 방화하는거, 벌 받는거 아냐? 잘은 모르겠지만.

"태우다가 신사에 불이라도 붙으면 어쩌려고?"
"응? 어머, 일어 났구나. 농담이야, 농담. 애시당초 이렇게나 흩날리면 태우는게 더 힘들껄?"
"벚나무를 태운다는줄 알았는데."
"오호, 그런 방법이."
"농담이거든."

알고 있어~ 라고 대답을 하면서도, 레이무의 시선은 근처의 벚나무로 향하고 있었다. 알고 있는거 맞지...?

"그나저나 머리는 어때?"
"머리라니?"
"아... 기억 못하는구나? 어제 말야..."









- 그 옷차림, 바깥세계에서 흘러들어온 모양이네. 괜찮아?
- 겨드랑이! 겨드랑이를 내놓은 무녀라니! 개쩔어!
- 하?








"...라는거야."
"......"

그, 조금 혼란스러우니까 잠깐 정리해보자. 내 기억에는 없지만, 내가 레이무를 보고 가장 처음으로 한말이 저 '겨드랑이 개쩔어!' 였고, 레이무는 그 말에 자연스레 꼭지가 돌아서 내 뒤통수로 순간이동해 그대로 내 머리를 통천각으로 걷어차 기절시켰다. 그 뒤로도 화가 안풀려서 내 몸을 질질 끌고 신사로 돌아왔기 때문에, 옷차림이 이렇게 된거다... 라고.
나, 처음보는 여자애한테 겨드랑이 개쩔어라고 말한거냐? 완전 개병신새끼잖아! 하지만 왠지 내가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내 자신이 너무 싫다...

"그, 그랬군. 정말로 미안해. 아무리 그래도 처음보는 여자애한테 너무 실례되는 말을 했네."
"괜찮아, 괜찮아. 그만큼 기절한 뒤에도 실컷 팼으니까."
"...그, 그런것 치곤 몸이 꽤 멀쩡한데."
"힘조절은 잘 하는 편이거든."
"개쩐다..."

이것이 폭력의 프로인가. 이쯤되면 멋있어보인다.
...근데 얘, 일단은 무녀 아니었나. 무녀가 폭력의 프로인건 좀 그렇지 않나? 대충 소림사의 스님정도의 카테고리로 생각하면 되는걸까.

"뭐, 이렇게 서서 이야기하는것도 좀 그러니. 안에 들어갈까. 차는 마시니?"
"으음, 딱히 즐기진 않는데."
"그래? 하지만 차 밖에 없으니까 참아. 따라와."

그럼 왜 물어본건데?
빗자루를 토리이 옆에 세워두고, 신사 뒤편으로 걸음을 옮기는 레이무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간다. 그나저나, 이세계인가... 보통 이세계 이동이라면, 뭔가 특별한 능력을 얻는다거나 그 언저리의 특전이 있는걸로 유명한데. 그런것 치곤 내 몸이 뭔가 새로운 감각에 눈을 떴다거나, 보여서는 안될 스테이터스 창이 보인다거나, 그런 느낌은 전혀 없다.

그나마 위화감이 있다면, 생각했던 것보다 레이무랑 대화할때 매끄러웠다는 점? 아니, 여자애랑 이야기 하는게 오랜만인데도 매끄러웠다는게 신기하다던가 그런게 아니라, 그 이전의 문제. 언어의 문제다. 일본어야 어느정도 익히고 있지만, 대화를 매끄럽게 이어나갈 정도의 레벨이었나 하면 솔직히 의심스럽다. 애니로 배운 일본어는 한계가 있다고. 그 있잖아, '어째서 김군은 여고생같은 말투를 쓰죠?' 같은거.

다만, 레이무와의 대화에 있어서 그러한 위화감은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다른 나라의 언어를 사용 했다' 라는 위화감 자체가 느껴지지 않는다. 혹시, 나도 모르는 새에 언어 능력에 눈을 뜬건가? 만약에 환상향 밖에 나가서도 이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면, 평범하게 모든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는거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미묘한 능력이로군."

"뭐?"

"아니, 아무것도 아냐."

"흐응. 아무튼, 여기에 앉아 있어. 차 가져 올테니까."

"아, 고마워."

"별 말씀을."

 

살짝 웃어보인 뒤, 어디론가 걸어가는 레이무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주위를 둘러본다. 레이무를 따라 도착한 이곳은 아무래도 거실인 모양. 아까 내가 일어났던 장소와는 다르게, 서랍이나 테이블 같은 가구가 몇개 보인다. 이야기를 한다면 테이블 앞에 앉아 있는게 맞겠지 라는 생각에 테이블 앞에 앉는다.

장지문이 열린 상태라, 아까전에 나왔던 뒷마당이 그대로 보인다. 시야 구석엔 연못의 끝자락이 보이고, 여기저기에서 벚나무가 불어오는 바람탓에 탈모를 일으키고 있었다.

...벚나무가 탈모라니, 이 아름다운 풍경에 있어 모독같은 멘트로군. 스스로의 재능(?)에 두려워진다.

 

"으~음. 환상향, 인가."

 

어떻게 할까. 내가 기억하기론, 환상향에서 바깥 세계로 돌아가는건 그렇게까지 어렵지 않은걸로 알고 있다. 요는 결계 밖으로 내보내기만 하면 그만이기에, 하쿠레이 대결계의 관리자인 레이무에게 있어선 쉬운 작업일...지도 모른다. 솔직히 잘은 모르겠지만. 즉, 이렇게 흘러 들어온건 좋지만 나가는건 자유. 그런 이야기일테지.

하지만, 나가서 할 일이 있나? 트러블이야 이것저것 있겠지만, 바깥으로 나가면 일본일테니 우선 대사관에 연락해서 어떻게든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하면 적어도 한국에 돌아가는건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다음엔?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내 생활비를 지원해주는 형에게 짐이나 되어가면서, 무직상태로 계속 한국에 남아 있을 이유라도 있을까? 물론 이곳에 있는다고 해도 뾰족한 수가 나는건 또 아닐거고, 바깥 세계와 환상향 내에서의 과학 기술 차이를 생각해보면, 불편한게 한둘이 아닐테지. 그럼에도, 환상향이란 말이지. 그렇게 쉽게 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으음...

 

"기다렸지... 뭐야, 표정 한번 험악하네. 내가 독약이라도 가져올줄 알았어?"

"아, 아니. 좀 혼란스러워서."

"뭐... 그렇겠지. 갑자기 여기로 흘러 들어 왔을테니까."

 

자, 하고 내미는 찻잔을 두손으로 받아들자, 테이블에 쟁반을 내려놓고 내 반대편에 앉는 레이무. 그리고, 입을 열었다.

 

"우선 상황을 말해줄께. 여긴 환상향이라고 불리는 곳이야. 간단하게 말하면 그냥 촌동네지. 요괴나 이런게 있긴 하지만."

"흐음."

"어제 너를 덮쳤던건 아까 말했던 요괴. 환상향의 요괴는 기본적으로 인간을 먹지 않기로 약속하긴 했지만, 그 룰이 애매하게 적용되는 너같은 '흘러 들어온 녀석들'은 몇몇 먹히는 모양이야. 마침 내가 그 근처를 날고 있어서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산채로 먹혔을거야."

"즉, 너는 내 생명의 은인이라는 이야기?"

"그런 셈이긴 하지만... 신경 쓰지 마. 일단은 내 업무에 들어가는거니까. 그리고, 여기서부터가 본제인데..."

 

조금 말하기 어려운지, 아니면 뭔가 귀찮은 상황이 생긴건지 레이무는 잠깐 내게서 시선을 피하더니, 차를 들고 조금 마신다.

 

"그, 원래라면 바깥에서 온 인간들에겐 선택지를 줘. 바깥세계로 돌아갈지, 아니면 환상향에 남을지. 흘러 들어온 인간들은 대부분 돌아가길 원했으니까, 아마 너도 그럴거라 생각하지만..."

"뭔가 느낌이 안좋은데."

"응. 네 예상대로야. 너는 바깥세계로 못나가. 당장은."

"이유는?"

"음~...그 원인을 구체적으로 대답하자면 이것저것 설명해야할게 많은데."

"간단하게 말하자면?"

"문이 공사중이야."

"그렇군."

 

아무래도 하쿠레이 대결계에 무언가 문제가 생긴 모양이다. '당장은'이라고 말한걸 보면, 그렇게까지 치명적인 무언가는 아닌 모양이지만... 하지만, 돌아가지 못한다라. 이건 예상하질 못했는데. 이러면 강제적으로, 환상향에서 일정기간 동안 살아야한다는 이야기가 되잖아? 그럼 먼저 가장 필요한건 의식주의 '주'로군.

 

"그럼 어떻게 하지? 그 문의 공사가 끝날때까지, 난 어디서 지내면 되는데?"

"으음... 그렇네. 이 신사에게 지내게 한다는 방법도 없지는 않지만... 일단은, 나 여기서 혼자 산단 말이야."

"좀 그렇긴 하네. 아무리 그래도 혼자사는 여자애 집에 남자를 들여놓는건 이래저래 문제가 있을테니까."

"아니, 사실 나는 상관 없긴 한데. 마리사 녀석이 이상한 소리를 해댈까봐..."

"마리사?"

"응. 좀 오래된 친구 녀석인데, 자주 여기로 놀러오거든... 아, 내 정신 좀 봐. 내 이름도 이야기 안해주고 있었구나."

"그러고보니 듣지를 못했네."

 

뭐, 이쪽은 일방적으로 레이무를 알고 있긴 하지만. 물론 아까 이름이 나왔던 마리사에 대해서도.

 

"내 이름은 하쿠레이 레이무. 이 곳, 하쿠레이 신사에서 일하는 무녀야. 네 이름은?"

"응? 내 이름?"

"응. 네 이름."

"어... 본명은 일본인이 제대로 발음하긴 어려울테니, 일본식으로 부르자면 '쇼우이치' 정도려나?"

"흐응, 쇼우이치구나. 잘 부탁해, 쇼우이치."

"이쪽이야말로, 레이무."

 

앗, 그러고보니. 일본에선 친하지 않은 상대는 우선 성으로 부르는 예법이 있었던거 같은데. 하쿠레이라고 부르는 편이 좋았으려나? 갑자기 친한척 한거 아닌가, 이거.

 

"그래서 말인데, 쇼우이치."

"아, 응."

 

으음, 딱히 신경 안쓰는 눈치로군. 마음속으로 어떻게 생각하고 있으련지는 모르겠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걸 보니 적어도 거부하지는 않나보다. 여기서 굳이 호칭을 바꿀 이유는 없어보이는군.

"이제부터 어떻게 할거야?"
"아니, 그렇게 말해봐야 나도 딱히 수가 있는건 아닌데."

나도 애시당초 내 의지대로 여기에 온게 아니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사고를 해본적이 없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있다는거지. 어디 보자.

"...우선 묻는데, 내가 이 환상향이라는 곳에 적응하는데에 도움은 줄거야?"
"뭐, 나름대로는 도와줄께. 돈이랑 여기서 사는 선택지 이외엔 말야."
"그, 그러십니까."

가장 마음 편한 선택지랑 가장 중요한 요소가 빠진거 같은 기분이 들지만, 내가 알기로는 하쿠레이 신사의 수입은 그렇게까진 좋지 않은걸로. 아쉽긴 하지만 예상범위 내다.

"환상향의 지도는?"
"지도? 지도 같은건 왜?"
"적어도 어딜가면 위험한지, 그런것 정도는 알아야지. 지도를 보면서 파악하는게 제일 편해."

그렇게 되면 우선은 정보다. 다행히도 환상향 자체에 대한 정보는 내 머리속에 꽤나 많이 들어가 있다. 다만, 지리만큼은 알 방도가 없었으니... 애시당초 그런 묘사도 없었고, 원작(?)에선.

"지도... 지도라. 그런게 전에 있었던거 같기도 하고...?"
"에, 지도 없어?"
"아마 있기야 있을거 같은데, 창고 어디에 박혀 있는지 알 방도가 없어. 꼭 필요하면 찾아줄 수는 있는데."
"....그 압도적인 귀찮아하는 표정을 보니 부탁하기 좀 그렇네. 혹시 환상향, 지도가 필요 없을 정도로 좁다거나?"
"글쎄. 그렇게까진 좁다고 생각하진 않은데... 아, 너는 바깥세계에서 왔으니 기준이 다르긴 하겠구나."
"그건 또 모르지. 그럼 길을 모를땐, 어떻게 찾았어? 보아하니 지도를 참고할거 같진 않은데."
"응? 평범하게 날아서 찾았는데?"
"......"

안되겠다. 환상향이라서 역시 상식이 안통해. 거야 날아다니면 지도같은건 필요가 없겠지. 보이는 정보량이 다른걸... 어, 그렇다는건?

"레이무, 혹시 날 데리고 날아오를 수 있어?"
"으, 응!? 글쎄...? 해본적은 없지만, 아마 가능할거라... 생각해."
"사실 굳이 날 데리고 날아 오를 필요는 없어. 필요한건 사진이니까. 그래, 네가 대신 사진을 찍어줘도 되겠네."

 

솔직히 이런저런 기능을 가진 휴대폰의 얼마 남지 않은 배터리는 되도록 소모하고 싶진 않지만... 지금이 그 '소모 할 때' 아니겠나.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건네주자, 레이무는 고개를 갸웃하며 나를 바라본다.

"...내가 알던 '휴대전화' 랑은 또 많이 다르네."
"그래? 아마 폴더폰을 본거 같은데, 이건 스마트폰. 뭐, 조작은 간단해. 여기를 누르거나 옆에 튀어나온 부분을 누르면 돼. 이렇게."

-찰칵!

하고. 레이무를 찍는다.

"호에~...근데, 뭘 멋대로 찍는거야?"
"시험삼아 찍은건데... 싫으면 지우고. 자, 이렇게 나오거든."
"호오... 혹시 현상 할 수는 있어?"
"잉? 오오."

현상 이야기가 나오길래 뭔가 해서 사진을 다시 봤더니, 대충 찍은것 치곤 사진이 정말 기적적으로 잘 찍혔다. 레이무가 워낙에나 예쁜것도 있겠지만. 아, 현상이라고 하니 갑자기 내가 들고 있던 가방이 생각났다. 휴대폰용 포토프린터를 갖고 다녔었지, 그러고보니.

"혹시 내 가방 본적 있어? 검은색으로 네모난 놈인데."

대충 손짓으로 크기까지 보여주지만, 레이무는 고개를 갸웃한다.

"글쎄? 네가 여기로 넘어올때 가지고 있었다면, 아마 같이 오긴 왔을텐데."
"그럼 나 발견한 곳 기준으로 남쪽으로 150미터 정도 떨어진 곳 인근에 있을거야. 북극성을 보고 걸어왔으니까."
"근데 그 가방은 왜?"
"거기에 인화기도 들어가 있어서. 취미생활중 하나거든."
"인화기라니... 그런것도 있다고? ...너, 혹시 나한테 거짓말 하는거 아니야? 사진을 미끼로 나한테 가방을 가져오게 하려는..."
"아니? 내가 기절했던 곳 위치만 알려주면 나중에 내가 가지러 갈려고 했는데. 왜, 가져다주게?"
"응? 아, 으음..."

그러고보니 여태까지 가방의 존재를 잊고 있었네. 하기사, 상황이 상황이었으니...
하지만 이걸로 어느정도 안심이다. 그 가방 안에는 아까 말한 포토프린트 외에도 어느정도의 간식이랑, 충전기, 보조 배터리, 이어폰, 필기구와 노트, 그리고 군용 나이프가 들어 있다.
라인업이 이렇다보니, 갖고 있는것 만으로 생존 확률이 어느정도는 늘어날거다. 반대로 이걸 까먹고 있었다니, 뒤늦게 깨달았으면 땅을 치고 후회했을거다.
아, 나이프는 어디까지나 취미생활의 일환으로 가지고만 다니는거고, 어딘가에 쓰거나 그러지는... 나는 대체 누구한테 변명하고 있는걸까. 나 자신?

"...하아. 알았어. 그럼 그 스마트폰?으로 여기저기 찍어주는 김에 그 가방도 찾아다줄께"
"오, 정말로?"
"대신 아까 사진, 현상해 주는거다?"
"물론이지."

가방 안에는 아까도 말했지만 보조배터리도 있다. 가방만 있다면 당장은 배터리가 부족할 일은 없을테지.

"그럼 다녀올께."
"아, 사진 찍는 법 다시 알려줄까?"

혹시나해서 물어봤더니, 대답 대신 레이무는 내게 카메라를 들이 밀고 버튼을 눌렀다.

- 찰칵!
"됐거든요? 기다리고 있어!"

장난스레 미소 지으며, 하늘로 날아가버리는 레이무. 솔직히 방금 그건 좀 두근거렸다. 뭔가 학창시절로 돌아간 느낌이랄까.


"...자, 그럼 어떻게 할까."

레이무가 내준 차를 마시며 생각해본다. 으음, 여전히 차 맛은 전혀 모르겠군. 향이 나는 물이라는 인상 뿐이니... 하지만 일단 찻잔은 전부 비운다. 어찌 됐던 대접받은거니까.
좋아, 아까 레이무가 하다 말던 빗자루질이나 할까. 아무리 그래도 빗자루질에 신사 나름의 예법이 있거나 종교의식적인 의미가 있을거 같진 않다. 내가 해도 크게 문제는 없겠지.

"생각을 했으면 행동으로 옮겨볼까. 읏차."

자리에서 일어나, 여기저기 찢어진 양복 상의를 벗어 대충 던져둔다. 저런걸 입고 빗자루질을 했다간, 금방 땀투성이가 될거다.
구두를 신고 다시 신사 앞으로 돌아들어가서, 토리이에 세워뒀던 빗자루를 잡는다. 시험삼아 한두번 쓸어보지만, 으음. 역시 바깥세계의 기성품을 생각해보면 그렇게까지 편하게 쓸리진 않는거 같다. 하지만 군대에서 쓰던 폐급 빗자루보단 훨씬 쓸만하군. 요는 이 벚꽃잎을 저 구석에다가 모아두면 되는거겠지?

 

"...오, 이거 생각보다."

처음에는 그닥 좋은 빗자루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몇번 고쳐잡다보니 훨씬 빗자루질이 수월해졌다. 과연, 오랫동안 쓴 빗자루라서 '결' 같은게 생겨 있는건가. 여기에 맞춰서 쓸어내다보면, 생각보다 금방 끝날거 같다.

"햐아~ 열심이구만, 청년!"

한 반쯤 했을때일까, 뭔가 높은 곳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레이무의 목소리와는 다르다. 거기에, 이 목소리로부터 전해져 오는 진한 취기는...

"여기야, 여기!"
"허어."

목소리가 들린 곳, 즉 토리이 위쪽으로 시선을 옮겨보니, 거기엔 그 커다란 두개의 뿔이 인상적인 소녀가 앉아있었다. 길게 늘어뜨린 호박빛 머리칼을 아무렇게나 풀어 헤친채, 손에는 보랏빛 표주박을 들고서 내게 비어있는 손을 흔들어대는 그것은.
슈텐도지, 이부키 스이카였다. 환상향에서 탑클래스의 요괴인 '오니'. 그 중에서도, 사천왕으로 불렸다는 특별한 오니가. 뭐, 요새의 인식으로 보면 사천왕이라고 말하면 뭔가 약해보이지만... 직접 그녀를 눈 앞에 둔 자라면, 분명히 생각할 것이다.
저 술에 취해 반쯤 눈이 감긴 흐리멍텅한 얼굴을 보면, 진짜 그럴지도 모르겠다, 라고.

"니가 어제 레이무가 줏어온 인간이지?"
"그렇긴 한데. 그런데서 앉아 있으면 위험하다고? 내려 오지?"
"아하하! 이정도 높이, 떨어져도 가렵지도 않다고!"
"그럼 떨어져보던가."
"오케이-"

- 슈웅, 콰아아앙!!

내 말을 들은 스이카는, 정말로 토리이에서 뛰어내렸다. 굉음과 함께 흙먼지를 날리며 바닥에 착지한 스이카. 먼지가 걷혔을때 보인 그녀의 모습은, 확실히 아무렇지도 않아보였다. 저정도면 적어도 아파트 2층 높이인데, 역시 요괴는 다르군.

"호호오~? 나의 이 압도적인 모습을 보고도 놀라지를 않다니, 특이한 인간이네?"
"대신 약간 모에함을 느끼고 있긴 해."
"모에? 뭐야, 그거?"
"그런게 있어."

뿔달린 여자애... 좋지... 하지만 이 녀석, 술냄새가 진짜 장난이 아니군. 다행히도 악취로 느껴지진 않지만... 이것도 미소녀 보정인가 뭔가하는 그건가?

"아무튼 그 기개, 칭찬해줄께!"
"어...고마워?"
"이름은?"
"쇼우이치라고 하는데."
"음! 쇼우이치! 기억해 둘께. 나는 이부키 스이카. 보다시피 오니야! 그래, 기분이다! 지금이라면 뭐든지 하나 소원을 들어줄께!"
"이걸 갑자기?"
"응! 뭐든지 말해보라구!"

가슴을 두들기며, 어째선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나만 믿으라구' 어필을 하는 스이카. 이것도 술기운이 불러오는 기세 같은건가. 하긴, 나도 술마시면 좀 충동적인 부분이 있긴 하지만... 이정도까진 아니다. 요괴란 놈들은 잘 모르겠군.

"그럼... 뿔 만지게 해줘."
"뿔? 그런걸로 해도 되는거야? 뭐, 금은보화라던가 그런건 필요 없고?"
"갑자기 생기는 돈만큼 위험한건 없다는건, 옛날부터 나오는 이야기잖아? 그리고, 당장은 그 뿔을 더 만지고 싶어."

솔직히, 다른 동물의 뿔조차 만져본적이 없다. 한번쯤은 살아있는 생물의 뿔을 찬찬히, 그리고 듬뿍 만져보고 싶다는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지 않을까.
...나뿐인가, 혹시?

"그럼 좋아, 자! 만지고 싶은만큼 만져!"
"우옷, 깜짝이야!"

스이카가 갑자기 내게 다가와 고개를 숙인다. 반사적으로 물러나지 않았다면, 저 뿔에 찔렸을거다. 가까이서 보니, 그녀의 뿔의 끝은 생각 이상으로 날카로워 보였다. 이, 이거. 진짜로 만져도 되는건가? 본인이 된다고 했으니, 만져도 되는건 맞고, 애시당초에 내가 부탁한거지만... 뭐랄까, 뭔가 이상한 짓을 하고 있는 기분이. 하지만,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 턱!

"오, 오오..."

생각보다 우둘투둘하고 사나운 뿔이다. 거기에 의외로 따뜻하다. 뿔이라는거, 혈관도 지나고 그러나? 잘은 모르겠는데... 하지만, 거친 표면을 가진 주제에 의외로 뭐가 묻거나 그러진 않았다. 일단은 관리하고 있는거 같은데...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걸까. 그녀의 저 팔만으로는, 뿔의 위쪽까지 닿을거 같진 않은데... 아차, 얘 분신 쓸 수 있지? 그걸로 본체의 뿔을 관리하고 있는걸까? 왠지 보고 싶은데.

이번엔 양손으로 뿔을 쥐어 매만져본다. 으음, 이거 그거구만. 그 어르신들이 호두 쥐고 흔드는 그거. 손바닥을 자극해서 어쩌고 저쩌고 하던 그 행위를 손바닥 전체로 하고 있는 느낌이다. 좀, 전달하기 힘든 무언가가 있지만, 일단 결론을 말하자면 엄청나게 중독성 있다. 왠지 모를 만족감이 느껴지는군. 게임하다가 화날때 이렇게 뿔을 만지고 있으면 왠지 마음이 진정될거 같다.

아차, 생각해보니 너무 오래 만졌군. 마음껏 만지라는 말은 들었지만, 어찌 됐던간에 여자애의 일부다. 너무 오래 만지는것도 좀 그런가.

....그렇게 생각하면, 이거 가슴 만지게 해주세요!랑 동급의 부탁이었던 셈인가. 갑자기 후회가 밀려오는데.

 

"Zzz..."

"...어? 자네?"

 

선채로 잔다는 신기(神技)를 체현하고 계시는 오니사천왕님. 뭔가, 자고 있는데 계속 만지기도 좀 그렇네. 그렇다고 여기서 선채로 재우는 것도 그렇고... 깨울까.

 

"저기~? 스이...카!?"

"음냐~..."

 

깨우기 위해서 뿔에서 손을 놓자, 갑자기 스이카의 머리가 마치 황소마냥 내게 돌진해, 그리고 그대로 내 몸을 덮친다. 이렇게나 작은 몸인데도, 그 몸이 내게 닿자 마자 마치 중형차가 밀고 들어오는것만 같은 압도적인 물리에너지가 나를 넘어뜨린다. 아차, 얘 오니였지!

 

"으겍!"

"더.... 더...."

 

마치 승리한 검투사가 적에게 마무리 일격을 하듯이, 그 몸으로 나를 눌러오는 스이카. 이쪽은 등부터 바닥에 부딪친 덕분에 숨 넘어가기 일보 직전인데...!

멀리서보면, 작은 여자애가 남자에게 안겨들어 마치 아이처럼 응석 부리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실상은  죽기 직전이다. 아니, 뭔놈의 힘이 이렇게 쌔!? 압력에 짓눌려서 떨쳐내기는 커녕, 숨도 안쉬어진다. 젠장, 이것이 인과응보인가. 아아, 하지만 죽기 직전에 뿔도 실컷 만졌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썩, 괜찮은 인생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거 죽기전에 뿔이라도 좀 더 만져야지.

 

- 턱!

 

"음냐..."

"허어어어억...!?"

 

겨우겨우 뿔을 잡자, 갑자기 몸을 짓누르던 압력이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압력 떄문에 제대로 쉬어지지 않던 숨을 마치 물 속에 오래 잠수해 있다가 빠져 나온 것처럼 반사적으로 크게 들이쉰다. 뭐지, 나 산거야? 뭣 때문에...

 

"...뿔? 이거 때문에?"

"Zzz..."

 

한 손으론 스이카의 뿔을 만지며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아까의 그 압력이 거짓말이었다는 듯, 스이카의 몸은 놀라울 정도로 가벼웠다. 이거 혹시... 기분 좋았던건가? 그, 개를 쓰다듬어주고 있으면 갑자기 잠드는거랑 비슷한 무언가인가? 그러고보니, 뿔을 놓자마자 나한테 달려들었지... 설마 멈추지 말라고 그런건가...

 

"...허어."

 

하지만 이대로 안겨 있는 자세로 냅두는건 좀 그렇다. 뭣보다 이 오니 녀석, 침 흘리고 있고. 어디보자, 몸은 가벼우니 한 손으로 어떻게든 몸을 돌리고 앉혀서... 좋아. 이렇게 내 다리 사이에 앉힌다는 느낌으로 배치를 하면, 만약에 뿔을 놓아도, 빠져 나갈 수 있는 잠시간의 유예가 생길거다. 그렇지만 이왕 이렇게 된거.

 

"조금만 더 해둘까."

 

아까처럼 호기심에 찬 움직임이 아닌, 이번에는 강아지를 쓰다듬는 감각으로 스이카의 양뿔을 어루만진다.

...으음. 화창한 봄 날에, 오니의 뿔을 매만지면서 벚꽃을 올려다보는 것도 나쁘진 않은걸. 다만, 이 장면은 정말로 오해를 사기 쉬우니까 왠만하면 다른 사람한테는 보이고 싶진 않는데.

 

"...너 뭐하는거야?"

"이래서 생각도 하면 안된다니까."

 

시선을 돌려보니, 레이무가 무표정으로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한손에는 검은색 노트북 가방이 들려 있었다. 정말로 찾아왔네.

 

"걔 뿔 만져 주는 것도 좋지만, 일단 약속부터 지키는게 어때?"

"어, 어라? 이거 보고 매도할줄 알았는데."

"뭐가?...아아, 뿔? 나도 가끔씩 걔 뿔 만져주는걸. 만져주면 기분 좋다나봐. 아무튼, 걘 어디서든 자니까 냅두고 빨리 와."

"으음. 아무리 그래도 이대로 바닥에 던져두기엔 좀 그런데."

"정 뭐하면 안방까지 데리고 오던가."

"그럴께. 읏차."

 

잠든 스이카를 일명 공주님 안기로 들어올리고, 레이무를 따라 신사의 뒷편으로... 아! 그러고보니 청소 도중이었는데...?

 

"어?"

 

어느샌가, 벚꽃잎은 신사 한 구석에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마치 요술처럼.

 

 

 

 

 

 

 

 

 

 

 

 

 

 

 

 

 

 

 

 

 

"대충 이런 느낌인가? 어때, 레이무."

"음... 얼추 맞는거 같아."

 

나와 레이무가 마주 앉은 테이블 위엔, 찢어진 노트 한장에 그려진 환상향 지도 ver.alpha가 있었다. 레이무가 찍어와준 사진과, 그녀 자신의 정보를 토대로 대강의 위험도 정보도 메모 되어 있다.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이정도면 훌륭한 지도다. 적어도 행선지를 정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굉장히 큰 메리트다.

참고로 이 지도 제작의 일등공신인 하쿠레이의 무녀는 지금,

 

- 찰칵! 찰칵!

"헤에... 호오..."

 

내 휴대폰을 가지고, 열심히 셀카를 찍고 있다. 아, 하는 김에 나랑 투샷도 찍었다. 나중에 인쇄해서 사진첩에 넣어놔야지. 하지만, 아무리 보조배터리가 있다곤 해도 오래는 못쓰니까 좀 아끼고 싶긴 한데... 뭐, 이정도의 정보를 준거다. 솔직히 보조배터리까지 다 쓴다고 해도 아깝지 않다.

 

"레이무, 문의 공사가 끝날때까진 시간이 얼마나 들어?"

"응? 그, 글쎄? 1달쯤 아닐까?"

"1달인가."

 

결계의 보수에 대해선 잘 모르겠지만, 1달이라면 적어도 ±3주 정도는 생각하는게 좋겠지. 향림당의 위치도 들었으니까, 가지고 있는 것중 몇개를 팔 수 있다면 돈은 어느정도 획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경제활동의 밑천은 있다고 치고, 길어도 한달 반이라면 적어도 옷 3~4벌에, 속옷에, 신발 등... 필요한게 산더미다. 치약이랑 칫솔이 가방 안에 있었다는게 불행 중 다행이로군.

 

"인간 마을로 갈거야? 남기로 한 인간들은 전부 거기로 갔다더라고."

"으음. 인간 마을이라. 좀 애매한데."

"뭐가?"

"지금 나한테 가장 이상적인건 살 곳까지 딸려 있는 직장이야. 환경이 어찌 되었던, 일을 하면서 의식주를 챙길 수 있는 곳이 베스트라는 이야기지. 그것도 한달 하고 조금 더."

"으음... 확실히, 인간 마을에서 그런 집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네."

"의식주를 나눠서 해결하는건 생각보다 어렵다구. 바깥 세계에선 혼자 살았으니까 잘 알아."

 

으음... 하고, 나도 레이무도 팔짱을 낀채 고민한다. 슬슬 정하지 않으면 해가 지고 만다. 왠만해선, 이 이상 레이무에게 신세를 지고 싶지 않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한 구역.

 

"홍마관..."

"홍마관?"

"이, 홍마관 이라는 곳은 어때? 커다란 서양식 저택이라며. 왠지 여기라면 아까 조건을 채울 수 있을거 같은 기분이 드는데."

"그럴지도 모르지만... 거기 흡혈귀 사는데, 괜찮아?"

"굶어 죽는거랑 흡혈귀 사는 집에서 잡일 하는거, 어느쪽을 고를지는 명확하자녀."

"...별나네, 너."

"사는데 필사적이라고 해줄래?"

"하아... 알았어. 그럼 여기서 조금만 기다려. 아, 이거 돌려줄께."

 

레이무는 내게 휴대폰을 돌려주더니, 어디론가 가버린다. 좋아, 우선 짐부터 챙겨놓자. 테이블 위에 뒀던 지도도 챙기고, 포토프린터도 챙기고. 오우, 휴대폰 배터리 엄청 아슬아슬하네... 당장 쓸 일은 없으니 전원 꺼둘까.

"홍마관이라."

개를 쓰다듬는 감각으로, 스이카의 뿔을 매만지며 생각한다. 흡혈귀, 레밀리아 스칼렛이 사는 서양식 저택. 내부는 그녀의 시종인 이자요이 사쿠야에 의해 넓혀져 있기 때문에, 겉보기보다 훨씬 넓다고. 으음, 청소하기 귀찮을거 같은데.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일할 거리가 많다는 것이기도 하다. 취직, 됐으면 좋겠는데.

"기다렸지?...너는 항상 볼때마다 표정이 썩어 있네."
"안 썩게 생겼냐... 난 이제 출발하려는데."
"벌써? 아, 하긴. 지금 출발 안하면 해가 져버리려나."
"그건?"

내가 레이무의 손에 들려 있는 종이에 시선을 주며 묻자, 그녀는 그 종이를 내게 내밀었다. 가까이서보니 종이가 아니라 봉투였다. 돈... 일리는 없고.

"이걸 그 흡혈귀한테 보여주면, 어떻게든 될꺼야."
"소개장 같은거야?"
"그런 셈이지."
"진짜? 오오... 왠지 미안하네. 하나부터 열까지 다 신경쓰게 만들어서."
"뭐, 고마운줄 알면 나중에 돈 벌어서 새전 듬뿍 넣으러 돌아와."
"음. 꼭 그럴께."

레이무에게 소개장을 받아들어, 가방에 집어넣고 신발을 신는다. 해는 벌써 기울고 있다. 조금 빠른 걸음으로 걸어야 할지도 모르겠는걸.

"도중까진 바래다줄까?"
"아니, 괜찮아. 문제 없어."
"그래? 그럼, 잘 가. 문 수리가 끝나면 알리러 갈께."
"고마워, 레이무. 그럼."

레이무에게 손을 흔들어보이고, 걸음을 옮긴다.
환상향에서의 진정한 첫 발걸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이 불안감과 기대감은, 몇번을 느껴도 익숙해지질 않는다. 뭐, 마침 여기는 신사니. 신한테 무사를 기원할 수 밖에 없을까나. 돈은 없으니 마음속으로.

자, 가보자. 홍마관으로.














"이러면 되는거야?"
"응. 수고많았어, 레이무~"

아무도 없는 허공에 던진 레이무의 질문에, 어디선가 들려오는 대답. 어느샌가 레이무의 등 뒤엔, 새까만 '틈새'가 열려 있었다. 그 새까만 틈새 속으로 비춰보이는 수많은 눈동자는 보는 사람을 하여금 공포를 자아내게 하고 있고, 틈새의 양 가장자리엔 틈새를 묶듯 귀여운 리본이 메어져 있어 도리어 기괴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 틈새에서 상반신만 내놓고 있는건, 보라색 원피스를 입은 금발의 여성.
요괴의 현자, 틈새 요괴, 행방불명의 원인, 야쿠모 유카리였다.

"대체 어쩌려는거야? 바깥 세계의 인간을 들여오는건 이제와선 놀랍지도 않지만, '일부러' 나가지 못하게 막겠다니."
"자세한걸 당장은 말할 수 없는 단계지만... 어느정도 예상은 하고 있잖니, 너도?"
"...그 녀석, 대체 뭐야?"

그렇게 말하며 레이무가 소매를 걷어올리자, 여기저기에 푸른 멍이 든 팔이 드러난다. 명백한 타박상. 그 상처를 내려다보며, 레이무는 어젯밤의 한 장면을 떠올린다.
정신을 잃었어야할 그가, 마치 아수라와도 같은 기세로 반격해오는 그 모습을. 순간적이었지만, 그의 움직임은 인간을 뛰어넘어 있었다. 물론 그 뒤엔 움직이지 않을때까지 그녀에게 엉망진창으로 얻어맞았지만. 그녀의 팔에 생긴 멍은, 그 첫 반격을 피하지 못해 생긴 것이었다.

"독이지."
"독?"
"이독제독, 이란거야. 독은 쓰기 나름이거든. 후훗."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 유카리를, 레이무는 언제나처럼 미심쩍은듯 바라보다 한숨을 쉬는 레이무는 마음 한 구석으로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근거는 없었다. 단순한 착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생각엔 기묘하게도 강한 확신이 있었다.
'저게, 그리 쉽게 제어될거 같진 않는데.' 라는, 그러한 생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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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의 !

이 글은 갈 곳 없는 망상을 때려박은 동방 2차 창작 소설입니다. 따라서 때때로 역겹습니다. 읽는걸 권하지 않습니다.

이 글에는 2차 창작에서의 터부(개인적 관점)인 오리지널 캐릭터, 줄여서 오리캐가 나옵니다. 우욱씹 소리가 절로 나올것으로 예상됩니다. 한번 더 읽는걸 권하지 않습니다.

욕설이 나옵니다. 좀 많이 나올 예정입니다. 또 한번 읽는걸 권하지 않습니다.

뒤로가기와 창 닫기 버튼은 항상 여러분의 곁에 있습니다. 잊지 마십시오.



















대한민국, 서울. 어느 한강 다리.

어느 한강다리라고 말하는 이유는 내가 아직 지리에 익숙하지 않아, 내가 대체 어느 다리를 건너고 있는지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지나오면서 표지판을 보긴 했지만, 그런걸 신경쓸만큼 정신상태가 온전하진 않다.

아니, 무슨 씨발 면접을 퇴근시간에 보자고 하질 않나. 면접하면서 별 이상한걸 묻질 않나. 그런 주제에 사람은 오질나게 오래 기다리게 해서 결국 차까지 끊기게 하질 않나. 그래놓고 당일 통보로 떨어졌다고 이야기하질 않나...

이쯤되면 사람 놀리려고 면접에 부른거 아닌가 싶다. 뭐, 물론 회사마다 사정이 있을테니 그럴리는 없겠지만... 문제는, 화룡점정으로 지갑까지 잃어버렸다는 점이다. 덕분에 지금처럼, 하염없이 걷고 있는 것이다.

후우... 그래, 참자. 참고 슬슬 자취방으로 돌아가야지. 지갑을 잃어버리긴 했지만 안에 다행히 현금은 없었으니, 내일 카드 회사에 전화해서 카드 정지랑 재발급 신청부터 넣으면 된다. 화는 슬슬 그만 내고, 정처 없던 이 걸음도 다시 돌려서, 집으로 향하는 길을 다시 찾아야지. 어디보자, 집에 가는 길이...

"어? 빠떼리 없네... 충전 하고 나왔는데, 뭐고?"

그러고보니 폰이 따땃하다. 뭐지? 하고 잠금을 풀어보니, 이동중에 잠깐 하던 게임 화면으로 돌아가 있었다. 그러고보니... 아까 지하철에서 내릴때, 급하게 내리느라 잠금 버튼을 안눌렀던거 같기도 하고... 폰이 따뜻한걸 보니, 꽤나 최근까지 주머니 속에서 게임이 켜진채로 있었던 모양이다. 내 참, 이젠 별게 다 지랄이군.

"일단 현 위치만 확인하고..."

지리엔 익숙하지 않지만, 딱히 길치인건 아니니... 위치만 알면, 대충 표지판만 보고도 어느정도 길은 파악 가능이다. 아는 길이 나올때까지만 좀 고생하면, 그 뒤론 문제 없을거다.

그나저나, 사람 일이라는게 이렇게도 꼬이는군. 솔직히, 이정도면 더 꼬일 일도 없을거라 생각한다. 집에 가자마자 이 불편해빠진 정장부터 벗어 던지고, 맥주나 한캔 까야지...

- 위이이이이잉!

"뭐고?"

멀리서부터 짜증이 날 정도로 크게 들리는 엔진음. 누군가가 엄청나게 밟으면서 오고 있나보다. 아무리 지금 이 다리에 차가 거의 없다곤 하지만, 저정도로 쎄게 밟을 정도는 아닐텐데. 속도를 내고 싶어 하는 마음은 이해하는데 말야.
...근데, 뭔가 이상하다. 저정도 속도로 달리고 있으면 차가 지나갈때의 헤드라이트는 정말 순간적으로 반짝이고 사라질텐데. 어째선지 빛이 사라지질 않는다.

"니미 씨발!?"

그리고, 그 뜻을 이해하고 고개를 돌린 순간, 차는 차도를 넘어 고속으로 내게 달려오고 있었다. '피할 수 없다'는 인식이 든 순간에, 마치 무언가에 의해 잡아당겨진 것처럼 주위가 멀어진다. 순간 머리속에 떠오른 이미지는, 카미유의 수박바 어택을 맞은 팝티머스 시로코의 그 표정이었다. 나도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하는 스스로도 어이없어지는 생각 속에서 몸이 땅으로 떨어져 내리는 감각을 맛본다.

교통사고로 인한 사고사라, 무슨 데스노트에 적힌것 같은 사인이네. 라는 또 다른 개소리같은 생각과 함께, 의식 또한 어둠속으로 떨어져 내려간다.














"......."

모르는 천장이다. 아니, 사실 천장은 아니고 하늘이지만. 눈을 떠보니, 어릴적 시골에서나 보던 별천지의 하늘이 펼쳐져 있고, 시야 구석에는 나뭇잎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어디보자, 잠시만 뇌내 로그를 올려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떠올려보자...
...카미유 수박바 어택은 또 뭐야?

"아!?"

벌떡 몸을 일으켜, 내 몸을 내려다본다. 시야엔 시커먼 싸구려 양복으로 감싸여진 내 몸이 있었다. 찢어지거나 하진 않았고, 고통도 없다. 움직이는 것도... 딱히 문제는 없어보인다. 차에 치였을터인데...?

"여기는..."

여긴 아무래도 어딘가에 있는 숲인 모양이다. 날씨가 그렇게까지 쌀쌀하지 않은걸 보아 늦봄정도일까. 일어나서 주위를 둘러보지만, 인기척이나 인공적인 불빛은 단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주위는 어느정도 색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밝다. 달빛이랑 별빛만으로도 어느정도 시야는 확보가 되는구나.

"좋아."

다행히도 몸은 피곤하지 않다. 밤중의 산길을 걷는 것도 경험상 익숙한 편이다. 밤에 움직이는건 위험하지만, 지금처럼 어딘지도 모르는 숲 한가운데서 가만히 있는게 더 위험할지도 모른다. 특히나 정신적으로... 아, 그렇지.

"...다행이다. 아직 켜져는 있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하늘을 향해 손전등 기능을 켠다. 최근의 휴대폰은 손전등 기능이 뛰어나, 멀리서도 시인이 가능할 정도다. 특히 지금처럼, 주위에 인공적인 불빛이 하나도 없는 경우엔 더욱. 혹시나 누군가가 보고 와줄 수도 있으니까.

물론 발밑을 비춘다는 선택지도 있지만, 지금같은 환경에서 빛에 눈을 익숙하게 하고 싶진 않다. 여차할때 위험해질테니까. 아, 당연하지만 굳이 말해두자면 휴대폰은 권외였다.

"으음..."

이 주위. 하늘이 저렇게나 맑은걸 봐서, 최소한 도심지역은 아닐거다. 그리고 나무에 대해선 솔직히 잘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평소에 봐오던 나무들과는 나뭇잎의 형태나 그런게 좀 다르다... 고 생각한다. 거기에 권외. 이거, 요새 일본에서 유행한다는 이세계 전생인가? 아니, 전생은 아니지. 아까전에 입고 있던 옷이나 소지품이 그대로고, 몸도 그대로니까. 굳이 따지자면 이세계 전송. 옛날에 내가 중, 고등학교때 읽던 양산형 판타지 소설의 흐름이 대부분 이런 느낌이었는데.

"......."

잠깐, 발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본 뒤 몸을 낮춘다. 아까까지 들리던 벌레소리와 새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휴대폰의 손전등 기능을 끈 뒤, 잠시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인다.

아주 희미하지만, 우웅~우웅~하는 의미불명한 소리와,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소리가 점점 커지는걸 보아, 이쪽으로 향하고 있는 모양이다.

"......"

숨을 죽이고, 내 몸을 어느정도 가릴 수 있는 나무 뒤에 앉아, 주위를 살핀다. 바스락 거리는 소리는 점점 커지고, 정체불명의 우웅~ 소리 또한 커져간다.

이윽고, 시야에 포착된 것은.

"?????"

검은 구체였다. 이 한밤중에도 '검은 구체'라고 말 할 수 있을 정도로, 그것은 정말로 새까맸다. 잠깐, 머리속에 '블랙홀엔 빛마저 빨려들어간다' 라는 검증되지 않은 잡지식이 스쳐 지나갔지만, 아무래도 저건 흡인력은 없는 모양이다. 하지만 긴장은 늦출 수 없다. 닿는것만으로 이공간으로 전송될 가능성이 있으니까... 만화를 너무 많이 본걸지도 모르겠다.
다만, 눈앞의 현상은 만화에서의 지식에 메달려야할 정도로 비상식적이다. 여기서 숨을 죽이고 있다가, 어느정도 거리가 멀어진 다음에 움직여야...

- 빠직!

"하~씨발~"

어느샌가 발밑에 있던 나뭇가지가, 내가 몸을 돌리려 한 순간 밟혀 마른 소리를 내고 말았다. 어짜피 들켰으니까 육성으로 욕해도 똑같겠지.

아니나 다를까, 검은 구체는 나를 향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와, 씹. 존나 무섭네 이거!?

"씨발 눈뽕!"

순간적으로 휴대폰을 꺼내 손전등 기능을 켜 검은 구체를 비춘다. 엘렌 웨이크처럼 어떻게든 됐으면 좋겠는데!?

- 콰득!

"젠장, 안되나. 윽!?"

손전등의 빛은 그대로 검은 구체에 흡수 되어버린다. 거기에 구체에서 뻗어나온 손이 내 왼쪽 어깨를 우악스럽게 잡더니, 그대로 밀어 넘어뜨린다. 어깨! 존나 아파 어깨! 좀 옛날 밈이지만 Oh My Shoulder!

몸이 넘어지자, 또 다른 팔이 나타나 오른어깨를 잡는다. 그 엄청난 악력에, 나도 모르게 손에 들고 있던 휴대폰을 놓고 만다. 무슨 씨발 힘이 이렇게 쌔...! 손도 이렇게 작은 주제에...!

"...작은 손?"

문득, 내 어깨를 잡고 있는 손을 내려다본다. 기껏해봐야 15-16살 정도되는... 여자애의 손이었다. 거기에, 내 몸에 걸터 앉은 이 무언가 또한, 그 힘에 비해 그렇게까지 무겁지 않다. 의문이 늘어나기만 하는 가운데 정면을 바라보자, 거기에 어둠은 없고.

"이것도 먹어도 되는 인간인건가-?"

식욕으로 붉게 빛나는 눈동자를 내게 향하고 있는, 금발의 소녀가 있었다.
...루미아잖아? 루미아 아냐? 루미아 같은데? 씨발 루미아 아녀?

"안먹었으면 좋겠는데, 가급적이면."

"그-런건가-? 하지만, 배가 고파선 산책도 못한다는 말도 있잖아?"

"그거, 산책이 아니라 싸움 아냐?"

"헤-똑똑한 인간은 맛있다던데, 그-런건가-?"

"나는 잘 모르겠고, 한니발 렉터한테 물어보고 오는건 어때? 기다려 줄테니까 다녀와."

"뭐든지 경험이 중요한건가-!"

"그렇긴 한데, 나한테 카니발리즘쪽 성벽은 없으니 좀 봐주지!?"

"카-니? 너는 게 맛이 나는건가-!"

"말이 안 통하는구만, 이런 씨발!"

그런가. 내 최후는 금발 요괴 소녀한테 산채로 뜯어먹혀서 죽는건가. 아무리 야가미 라이토라도 이런 사인은 못적겠지. 발버둥치고 싶어도, 그녀의 압도적인 운동능력에서 벗어나는건 힘들어보인다. 이럴줄 알았으면 평소에 운동 좀 해둘껄. 적어도 몸부림은 쳤을텐데.

"그럼, 잘 먹겠스"

- 빠아아아아악!!!!!

그때, 엄청나게 시원한 타격음과 함께 내 몸 위에 올라 타 있던 루미아가 저 멀리로 날아가버린다. 사실, 루미아가 나를 꽉 붙잡고 있었던 탓에 나도 같이 날아갔지만, 중간에 그녀가 나를 놔버리는 바람에 이쪽은 조금 덜 날아갔다.

아까전까지 붙잡혀 있던 어깨의 고통에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리자, 그 고통마저 잊혀질만큼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별이 빛나는 밤하늘 아래, 마치 춤동작을 행하듯 그 흰 소매를 나풀거리며, 공중에서 균형을 되찾는 그 모습. 그 아름다운 모습은 언젠가 들었던 노래 가사를, 인용할 수 밖에 없었다.

紅く、白く、妖しく、烈しく、そして、強靭く。
붉게, 하얗게, 요사스레, 격하게, 그리고, 강하게

舞う、二色の蝶。
춤추는, 이색의 나비.

하쿠레이 레이무.

루미아를 보며 떠올랐던 의구심이, 그녀를 보고 확실해졌다.

이 곳은 환상향.

아무래도 나는, 환상들이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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