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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 보컬 어레인지 곡 번역 가끔 합니다
by Lunawhis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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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갈 곳 없는 망상을 때려박은 동방 2차 창작 소설입니다. 따라서 때때로 역겹습니다. 읽는걸 권하지 않습니다.

이 글에는 2차 창작에서의 터부(개인적 관점)인 오리지널 캐릭터, 줄여서 오리캐가 나옵니다. 우욱씹 소리가 절로 나올것으로 예상됩니다. 한번 더 읽는걸 권하지 않습니다. 욕설이 나옵니다. 좀 많이 나올 예정입니다. 또 한번 읽는걸 권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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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만의 갱신




































홍무이변.

환상향 전역이 붉은 안개로 감싸여졌다고 하는, 임팩트는 확실하지만 '그래서 뭐 어쩌라는거임? 왜 문제인거?' 라고 묻는다면 살짝 미묘한, 그런 이변.
그런 홍무이변이, 이번엔 완벽한 치사성과 함께 화려한 컴백 무대를 장식했다. 안개를 들이 마실 경우, 즉각적으로 호흡 곤란에 빠지며, 안개와 격리 시켜 호흡 곤란을 안정시키면 이번엔 쇠약 증세가 찾아온다. 유카리 왈, 레이무가 아니면 죽었어, 라나. 레이무는 인간이 아닌걸까?
아무튼, 좀... 아니, 상당히 민폐다. 그리고 꼭 이런 아포칼립스 세계관에는, 꼭 한명이나 두명정도, 이러한 환경에서도 아무런 문제 없이 행동할 수 있는 인물이 있고, 그 녀석들이 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움직인다... 라는 스토리는, 이제와선 꽤나 진부한 이야기다.
문제는, 그 주인공이라는게 이번엔 나라는 것.

"*sigh*"

한숨을 푹 쉬며, 주위를 둘러본다. 이 언저리면... 마법의 숲 상공이로군. 본래라면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을 농도의 안개 속이지만, 내 눈엔 꽤나 맑게 보인다. 몸이 익숙해졌기 때문일까.
...익숙해졌다라. 그러고보면 구 작열지옥에서의 그 뜨거운 열기도, 공기따윈 통하지 않는 밀폐된 관 속에서도 나는 결국 '익숙해졌었'지.
가설이지만, 내 몸은 '익숙해 지는 것' 에 특화되어 있는 상태가 아닐까. 말하자면 적응? 뭐, 그런 느낌. 근데 뭐, 지금 그걸 생각해봐야 증명할 방도가 있는 것도 아니다. 다음에 신키에게 직접 물어보는게 더 빠르겠지.
아무튼, 현재 향하고 있는 곳은 홍마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변이 홍무이변인 만큼, 그 원인은 홍마관의 레밀리아 스칼렛에게 있겠지. 설령 아니더라도, 무언가 알고 있을 가능성은 크다.

"무언가 알고 있다... 인가."

분명, 아까전에 만난 야쿠모 유카리도 무언가를 알고 있을 것이다. 요괴의 현자, 행방불명의 주범, 틈새요괴. 그리고, 나를 이곳 환상향으로 데리고 온 주범(98% 확률로). 쇠약 증세에 빠져 있던 레이무를 치료해주고, '인간 마을은 괜찮다' 라는 말만 남기고 떠난 그 종잡을 수 없는 요괴를 떠올리니, 마치 이에 낀 고기 조각같은 찝찝함이 느껴진다. 마치 이변이 일어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한 말투. 뒤에서 얽혀 있었던건지, 아니면 뭔가 사정이 있었던건지...

뭐, 아무튼. 하쿠레이 신사엔 아이리를 두고 왔으니 자고 있는 동안 기습을 당하진 않을 것이리라. 아이리와는 멀리 떨어지면 안된다는 모양이지만, 이정도 떨어지는건 괜찮다고 한다. 나중에 재원을 확실하게 알아둬야겠는걸. 나랑 계속 함께 있어준다고 하고, 거기에 나를 '마스터'로써 생각한다면, 써주는게 예의일테니까.

"음?"

그때, 느껴지는 시선. 원래부터, 그러니까 환상향에 오기 전부터 시선에는 민감했다. 특히나 적의를 가진 시선은 더욱이. 지금은 그 시선이 어디에서 향하는지까지도 느껴진다. 몸이 이렇게 변한 덕분인건지.
떨쳐내고자, 조금 더 속도를 높인다. 그러자 지상에서 크게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시선의 각도가 정확하게 내 등뒤로 향한다. 지상에 있던 녀석이 하늘로 올라온건가. 과연, 이 환경 속에서도 문제 없이 움직일 수 있는 녀석이 나만은 아닌가보다. 그리고, 아마 내 편도 아니겠지. 내 편인 녀석이 저렇게 무시무시한 속도로 내게 따라붙으려고 하진 않을테니까.

"......으잉?"

슬쩍 뒤를 돌아보니, 새까만 구체가 나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처음엔 탄막의 일부인가 싶었는데, 그건 아니다. 저 안에 '시선의 주인' 이 있다. 그렇다는건... 루미아로군. 이것 참, 곤란한데. 홍무이변 시작 후에 처음으로 조우한 요괴가 루미아라니. 우연인가? 우연이라면 대단한 원작 리스펙트지만...

아무튼, 상대는 싸우기 위해 나를 향해 날아오고 있고, 나는 공중전에 익숙하지 않다. 아니, 애시당초 싸움에 익숙하지 않지만... 굳이 따지자면, 그렇다는거다. 그렇다면 최대한 시야가 트여 있는 공터 같은 곳... 저 언저리가 좋겠군.

"읏차... 어어어?! 후우..."

지상으로 착지...는 했지만 착지를 잘못해서 넘어질뻔 했다. 으음, 영 익숙해지질 않는다니까, 날다가 착지하는거. 하기사, 날기 시작한게 불과 몇시간 전인걸 생각해보면 당연한걸지도. 반대로, 왜 이렇게 능숙하게 날 수 있나 싶다. 돌아보니, 나를 따라오던 검은 구체도 다소 떨어진 거리에서 착지하여, 내게 다가 오고 있었다.

"그 새까만 구체에 속에 숨어서 싸우는게 니 전술이냐? 존중은 하지만, 그거 의미 있어?"

내가 살짝 비꼬듯 말을 걸자, 검은 구체는 그 자리에서 뚝 하고 멈춘다. 그리고 그 직후,

- 사아아아아악...

마치 녹아내리듯, 구체는 바닥에 가라앉아버리고 그 중심에 서 있던 소녀가 내게 빙긋 웃는다. 찰랑이는 긴 금발, 이전에 만났을때보다 훨씬 성숙한 바디라인. 그리고, 이전에 보았을떄보다 훨씬 '포식자' 다워진 붉은 눈.
해질녁의 요괴, 어둠을 다루는 요괴. 루미아. 내가 이곳에 환상들이 당하고 가장 처음 만난 지적생명체이자, 처음으로 마주친 위협이었다. 그보다, 예전에 봤을때랑은 분위기가 너무 다른데? 전에 봤을땐 천진난만한 아이었다면, 지금은...

"후후, 어둠속에서도 너무 잘 보여서 잊고 있었어."

...옆집 누나 같은 느낌이다. 이런 누나가 옆집에 있고, 자주 놀았으면 내 인생은 바뀌었을까?...아마 안바꼈을듯.

"전에 봤을때랑은 꽤나 다른 모습이네."
"전에?...우리 언제 본적 있던가?"
"이래서 가해자들이 문제야. 저지른 쪽은 기억을 못한다니까?"
"저지른 쪽... 아아, 혹시 이전에 잡아먹으려고 했던 그 인간? 중간에 무녀가 방해하는 바람에 실패했었지. 기억해."
"그래그래. 기억하고 있다니 다행이네."
"...하지만, 그때 먹으려고 했던건 분명 남자였을텐데, 너는....?"
"뭐, 이런저런 일이 있었거든."

...생각해보면 알아볼 수 있을리가 없네. 나 몸이 엄청 바뀌었잖아. 겉으로 보이는 성별까지 포함해서.

"그나저나, 왜 따라오는거야? 나는 댁한테 용무가 없는데."
"그게 말이지? 들어봐~ 갑자기 몸에 힘이 넘치기 시작한건 좋은데, 갑자기 배가 너무 고파지지 뭐야? 그러는 와중에 네가 지나가는게 보여서 말이야."
"호오. 그야말로 날아다니는 만찬이었겠군."
"그-런거지~"
"...그래서? 어떻게 먹으려고?"
"헤에, 먹혀주는거야?"
"그런건 아니고... 뭐, 어디까지나 호기심이지. 어떻게 먹힐지 궁금해서 말야."
"음~ 글쎄~? 나는 조리는 영 서툴러서 말야. 아마 생으로 먹을 것 같은데, 괜찮을까?"
"안된다고 해서 들어줄 거 같진 않은데.., 뭐. 하지만 순순히 먹혀주진 않을테니 너무 기대하진 말라고?"
"그런가~ 안타깝네... 하지만 좋은 기회야. 이 흘러넘치는 힘... 한번은 시험해보고 싶었어."

그렇게 말하며, 루미아는 자신의 손바닥 위에 어둠의 구체를 만들어내더니, 그대로 손아귀에 쥔다. 그러자, 어둠은 그 형태를 바꾸어... 검이 되었다.
오 씨발 뭐야. 그런것도 된다고? 존나 간지나는데? 내 중2병 심금을 울리는구만.

"아가씨, 이름은?"
"우이. 근데 너 이제부터 나 잡아먹는거 아냐? 굳이 이름은 왜 물어?"
"이 힘을 얻고 나서 사냥하는 첫 사냥감이니까. 기념으로 말야~ 그보다, 우이라, 좋은 이름이네."
"남들은 죄다 안어울린다고 웃던데."
"뭐 어때? 괜찮아... 그 이름조차도 함께 씹어 먹어줄테니까!"
"무례하긴."

검을 휘두르는 루미아. 휘둘러지는 어둠의 검은, 마치 채찍처럼 늘어나 그대로 내 목을 노린다. 하지만, 이번엔 무의식적으로 피하는게 아닌, 공격을 보고 내 의지로 행하는 회피 행동. 몸을 숙여서 칼날을 손쉽게 피한다. 유기의 힘을 베낀 이후로, 그녀의 힘이 몸 어딘가에 남아 있다는 실감이 있다. 뭐라고 할까, 30% 정도는 내 몸에 녹아들었다는 느낌?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신체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하고 동체시력 또한 동일하게 상승했다. 이게 30%라니 솔직히 말이 되나 싶긴 하지만.

"그거, 베이면 어떻게 되는거야?"
"한번 베여보던가!"
"싫거든?"

검을 마구 휘두르는 루미아. 검신이 탄력 있게 움직이다보니 그 궤도가 불규칙하긴 하지만, 못피할 정도는 아니다. 뭔가, 되는대로 휘두르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능력은 강화되었지만, 그걸 다루는 '경험'은 쌓이지 않았다는걸까. 하지만... 왜 갑자기 강화된거지? 이 붉은 안개의 영향인가? 아니면, 이변해결사들을 습격했다는 요정들에게 들러붙어 있었다는 '검은 기운'의 영향? 하지만, 유기때랑은 다르게 루미아와는 대화가 성립하고 있다. 개인차가 있는걸까,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있는건가... 아차차, 그런 생각을 할 정도로 여유가 있진 않았지, 지금은.

안타깝게도 내가 지금 당장 가능한 것은 근접 공격 뿐이다. 하지만 저렇게 대놓고 위험해보이는 어둠의 검을 휘두르는 루미아를 상대로, 근접 공격이라... 별로 내키진 않는데. 원거리 공격을 할 수 있는 수단은 없을까? 탄막... 은 당장은 시도도 해보고 싶지 않다. 지난번에 사용 했을때 리스크가 너무 컸던걸 고려하면. 그럼 뭐... 바닥에 떨어져 있는 돌이라도 던져야겠네.

"흡!"

크게 휘둘러지는 루미아의 검을 굴러서 피하며, 바닥에 떨어져 있는 돌을 줏어 그녀에게 던진다. 피융- 하며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날아간 돌맹이는, 그대로 루미아의 어깨에 명중... 하기 직전에, 어둠에 막힌다. 하지만, 둔하게 들려오는 타격음. 어둠에 가로 막혀서 어느정도로 데미지를 입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느정도 데미지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것 만으로 충분하다.

"어디보자..."

루미아가 다시 공격해 오기 전에, 던질만한 돌을 최대한 많이 줏어 주머니에 넣는다. 왠지 어렸을때 돌 주워서 주머니에 넣던 때가 생각나네.... 그때는 왜 그랬었더라? 이제와선 기억도 안난다.

- 투두둑!

"윽!?"

순간, 돌을 주우려는 손 바로 앞에 새까만 표창 같은게 여러개 꽂힌다. 반사적으로 물러나 앞을 보니, 고통으로 표정을 일그러뜨린 루미아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어깨는 마치 대물저격총에 맞은 것 마냥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데미지가 있을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저정도로 치명상을 입힐 줄이야? 대체 무슨... 설마, 유기의 힘이 이정도로 강한건가? 이거 30% 정도일텐데?

"죽인다... 죽여서 먹는다...!"
"...이거야 원."

온몸으로 살의를 내뿜으며 자신의 몸 주변에 어둠을 전개하기 시작하는 루미아. 아까의 여유는 온데간데 없고 거의 반쯤 이성을 잃은 상태인지, 무언가를 계속 중얼거리며 내게 한걸음씩 다가오고 있다. 압도적인 적의에 온몸에 오한이 들지만, 머리속은 매우 침착하다. 주머니에 챙겨 놓은 돌은 3개... 저 상태의 루미아에게 이걸 빗맞춘다면, 목숨이 위험할테지. 하지만, 맞추기만 하면 된다. 맞추기만 하면, 내기 이긴다.

"흡!"

주머니에서 손을 빼며 팔을 휘두르자, 루미아의 어둠은 반사적으로 앞으로 향해, 매우 두꺼운 어둠 장막을 만들어낸다. 그렇겠지. 한번 당한걸 또 당할만큼 어리석지는 않다는 거겠지. 다만,

"!?"
"훼이크다 이 병신아!"

루미아가 내가 돌을 던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건, 내가 빠르게 그녀의 옆으로 돌아 들어간 시점. 즉사는 조금 곤란하니, 노리는건 다리, 그리고 허리!

- 슈슉!

재빠르게 어둠의 장막이 그녀를 감싸지만, 한박자 늦었다. 둔한 파열음과, 소녀의 비명이 숲을 가득 메우고, 그녀를 감싸고 있던 어둠이 완전히 걷힌다.

"...오, 오우."

무릎 아래의 다리 부분은 저 멀리로 날아가고, 허리쪽이 움푹 파인채 루미아는 그 자리에 쓰러져 있다. 인간형 요괴는 아무래도 그 신체적 구조가 인간과 비슷해서 그런걸까, 척추를 박살낸 탓인지 몸을 전혀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이걸 노린거긴 하지만, 실제로 저지르고 보니까 꽤나 참혹한 광경이다. 애시당초에 이거, 이미 즉사급인데? 뭐가 '즉사는 조금 곤란하니' 냐...
...뭐, 어쩌겠어. 안그랬으면 산채로 잡아먹혔을텐데.

- 스스스스...

그때, 루미아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올라온다. 아까전에 루미아가 사용하던 어둠과는 다른, 어딘가 불길하게 느껴지는 그 기운. 유기를 상대로 이겼을때도, 유기의 몸에서 저런게 피어 올라왔었지. 그때는 아이리가 해결해줬지만... 지금은 어떻게 해야할까.

- 키이이잉...!

갑자기 주머니에서 엄청난 열이 느껴진다. 반사적으로 주머니에 손을 넣어 열원을 꺼내보니, 일전에 신키에게서 받은 머리장식이 강렬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에...에이쟈의 적석!"

※아닙니다.

- 삐융! 치이이익!

한줄기의 빛이 머리장식에서 뿜어져나와, 그대로 검은 기운을 지져 없애버린다. 그리고는 다시 빛을 잃고 잠잠해지는 머리장식.
이건 또 뭔 상황이여. 자동 방위 시스템같은거라도 설치되어 있는걸까? 그 창조신이 마계의 창세기때부터 계속 착용하고 있었던 물건이라고 했으니, 어떤 장치가 설치되어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거란 생각은 들지만.

"그런거라면 밖에다 꺼내둘까."

뒷머리를 정리하고 신키의 머리장식으로 머리를 묶는다. 그나저나, 아까전에 루미아가 공격하려고 들때는 왜 발동하지 않았던걸까? 저 검은 기운에만 반응하는건가...? 점점 저 검은 기운의 정체를 알 수가 없어지는데.

"어라?"

문득 루미아를 보니, 그녀의 몸에 입힌 상처가 모두 깔끔하게 사라져 있었다. 여전히 기절해 있낀 하지만... 요괴의 재생력?...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빠르고. 검은 기운이 빠져나가면 그전까지 받았던 데미지는 사라진다... 라는 법칙인걸까? 만일 그렇다면 꽤나 편리한 시스템이로군.
그나저나, 신사에서 출발한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이런 상황이... 왠지, 격하게 지령전으로 돌아가고 싶어지는데. 으음... 그냥 내팽겨치고 돌아갈까? 영 위험해보이는데...

"...쩝."

입맛을 쓰게 다시며, 홍마관을 향해 다시 날아오른다. 이번 이변이 그 '검은 기운'이 연관되어 있다면, 정보를 얻을 수 있을 때 얻어두는게 좋다. 지저에, 그런 사건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거라는 보장이 없으니까. 그리고 이대로 포기하면, 그거야말로 대참사다.

 

"귀찮네..."























홍마관 인근, 요괴의 호수.

"하아..."

꽝꽝 얼은 호수의 기슭에서, 숨을 뱉어본다. 아직 날이 쌀쌀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일단은 봄이다. 오히려 초여름이라고 해도 좋겠지. 그런데 이렇게 하얀 김이 나오는건 말도 안되지 않나? 아무래도 호수 주변 온도가 다른 곳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낮은듯 하다. 다행히 신체 기능의 저하는 아직 일어나고 있지는 않지만, 이정도 추위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

"치르노...겠지, 이건."

이 인근에서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녀석은 그 녀석 밖에 없다. 얼음의 요정, 치르노. 이 무식하다고 해도 될 수준의 냉기를 보아하니, 그 녀석도 검은 기운의 영향을 받았을 확률이 높다. 그렇다는건 즉슨, 지금 상황에 검은 기운의 영향을 받은 녀석들은, 홍마향 스토리 라인의 보스들이라고 생각해도 되겠지.

싸우지 않고 그냥 보내준다면 좋겠지만, 과연 어떨지... 적어도 내가 여태까지 만났던 검은 기운과 관련된 개체는, 전부 호전적이었다. 기대는 별로 하지 않는게 좋으리라. 어디보자, 여기서부터 홍마관에 어떻게 가는게 좋으련지. 치르노에게 들키지 않고, 곧바로 홍마관에 진입 할 수 있는 방법이라 하면...

"초고도에서의 직선 낙하를 통한 진입..."

치르노에게 들키지 않을 정도의 고도까지 날아 올라 직선 낙하로 곧바로 홍마관으로 진입하기 위해선, 상당한 비행 컨트롤이 필요 할 것이다. 문제는 그것 뿐만이 아니라 착지를 어떻게 할까, 다. 아직 착지하는데에 익숙하지 않은 상태에, 그런 걸 했다간 직선 낙하가 아니라 직선 추락이다.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조금 무모한 작전인 거 같은데... 하지만, 다른 방법이 당장 떠오르질 않는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어느쪽이던, 일단 이 근처를 벗어나야한다. 요는 치르노에게 들키지 않고 접근하는게 대전제이기 때문. 어디보자, 일단은...

"어디로 가느냐? 홍마관은 그쪽이 아니라 이쪽일터인데?"
"....쯧."

생각하기가 무섭게 바로 걸려버리네. 좀 너무한거 아닌가.
돌아보니, 아까전의 루미아와 비슷하게 상당히 성숙해진 모습의 치르노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루미아와는 다르게 그녀에게선 살의나 적의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뭐냐, 무녀가 아니지 않느냐. 나는 또 하쿠레이의 무녀가 찾아온줄 알았건만."
"레이무는 아마 이렇게 무식하게 키가 크지 않았을텐데 말이지."
"그랬던가? 뭐, 이 몸이 작을땐 전부 다 커보였으니 말이지. 하여, 그대는 이런 곳에 어떤 일로 찾아온거지? 이 붉은 안개속을 유유히 걸어다니는 모습을 보아하니, 평범한 인간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만."
"뭐... 사정이 있어서. 입장으로 치면 레이무 대신이라고나 할까."
"호오, 그런가. 그렇다면 환영하지. 홍마관까진 내가 안내할터이니, 따라오게나."
"너는..."
"아, 그러고보니 통성명을 하지 않았군. 내 이름은 치르노. 보다시피 최강의 요정이라네. 그대의 이름을 들려주지 않겠나?"
"우이. 그렇게 불러줘."
"음. 잘 부탁하네, 우이."
"나야말로, 치르노."

기품있게 고개를 숙이며 내 말에 답하는 치르노. 음..,. 뭔가 내가 생각했던 치르노의 상이랑 많이 달라서 당황스러운데. 중간중간에 치르노다운 편린이 보이긴 하지만.
치르노를 따라, 꽝꽝 얼어붙은 호수를 가로지른다. 얼음빙판 위를 걷는데도 이렇게 미끄럽지 않은건, 치르노가 내 앞을 걸어가면서 일부러 지면(?)에 얼음가루를 뿌려두어, 넘어지지 않도록 마찰력을 키워준 덕분이다. 감각으로 따지자면 마치 모래사장을 걷고 있는 느낌이다. 그러고보면...

"그러고보니, 이 호수 안쪽에는 붉은 안개가 끼질 않았네."
"음. 저건 우리들 요정에게 있어선 독 그 자체니까. 물론, 이 몸은 최강이니까 저정도 안개에 소멸하진 않아. 하지만..."

치르노가 바라보는 시선을 따라가보니, 거기에는 어디서 줏어왔는지, 드럼통에다가 장작을 넣어 불을 떼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불 근처엔, 꽤나 많은 수의 요정들이 모여 있었다. 다들 평범한 요정인것 처럼 보이는데...

"저 녀석들을 버릴 수는 없어서 말이지. 그래서 호수 전역에 이 몸의 힘을 전개해 둔 상태이니라. 그 흡혈귀의 피 따위는 이 몸의 힘으로 얼릴 수 있으니까."
"호오... 셸터구나, 여기는."
"그런 셈이지. 하지만 아쉽게도 이 몸은 얼리는 것 밖에 하지 못하니까 말일세... 이 추위는 저렇게 자기들끼리 어떻게 할 수 밖에 없는 상태라, 조금 마음이 아프군."
"흐음... 하지만, 내가 알기론 요정은 죽어도 죽는게 아니라며? 이런 말 하면 거슬릴지도 모르지만,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아?"
"...그대는 말을 고르지 않는 편인가 보군. 하지만, 그 말도 일리는 있지. 평범한 상황이라면, 말이지."
"평범? 그럼 지금은 평범하지 않은 상황이라는거야?"
"음."

고개를 끄덕이며, 홍마관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치르노.

"이 안개는 흡혈귀인 레밀리아 스칼렛의 혈액. 그리고 흡혈귀는, 빼앗는 힘을 지니고 있지. 힘도, 양분도, 그리고 존재도."
"요정은 자연현상의 발현... 존재를 빼앗긴다는건 즉 소멸...."
"그런 이야기일세. 그래서 이렇게 녀석들을 지킬 수 있는 방벽을 만들어둔게지."
"과연."

치르노가 레이무를 기다렸던건, 그런 이유인가. 이 현상을 해결하려고 나서려면, 호수 주위의 결계를 해제하고 홍마관으로 쳐들어아가야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이 안에 있던 요정들은 전부 소멸한다... 라는건가. 확실히, 곤란하긴 하겠군. 그래서 대신 이 현상을 해결해줄 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라는 거겠지.
...음? 가만 있어봐. 그럼 홍마관 전역을 이 결계로 감싸면 환상향 전역으로 퍼져나가는 안개를 막을 수 있는거 아닌가?

"치르노, 이 결계 말인데. 혹시 더 넓힐 수 있어?"
"음? 불가능하진 않네만..."
"그럼 이 결계로 홍마관 전역을 감싸면, 안개가 환상향 전역에 퍼지는건 막을 수 있는거 아냐?"
"호오... 과연. 막는데만 급급해서, 거기까지 생각은 못했군."
"할 수 있겠어?"
"음. 하지만, 이미 늦은게 아닌가? 이미 바깥으로 나가버린 안개는 어떻게 하지 못하네만."
"아니, 레밀리아가 저 안개로 에너지를 흡수한다면, 반드시 본체에게 돌아가야 할 필요가 있을터. 그걸 막는 것 만으로도 상당히 도움이 될거야. 그리고 그 사이에, 내가 레밀리아를 칠게... 아니, 그 이전에. 홍마관까지 결계를 확장 시킨다면, 같이 쳐들어갈 수 있는거 아냐?"
"글쎄. 해봐야 알겠지만, 지금보다 결계가 넓어진다면 나는 거기에 집중을 해야하네. 아마 전투는 힘들걸세. 맡기지."
"그런가... 그럼 어쩔 수 없지... 근데, 이거 이렇게 쉽게 믿어주는거야? 내가 이대로 도망갈지도 모르잖아."
"흐음. 그러니까 지금, 본인이 그렇다고 고백하고 있는건가?"
"아니, 그건 아닌데... 어디까지나 그럴 가능성이..."
"네가 그렇지 않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은가? 어째서 그런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군."
"뭐..."

이런 부분은 요정답다고 할까. 의외로 순진한걸... 뭐, 이렇게 전면 협력 해준다는데 마다할 이유도 없다. 오히려 이쪽은, 치르노가 내 뒤통수를 칠 것을 감안해야하는 상태이지만...
...그럴거였으면 진작에 공격했겠지. 이러니저러니 해도 나도 좀 나이브한건가.

"그럼 잘 부탁할께, 치르노."
"음. 건투를 비네. 간다!"

치르노가 눈을 감고 손을 앞으로 내밀자, 그녀의 얼음 날개가 환하게 빛나더니 결계의 범위가 점차 넓어지기 시작하고, 이윽고 홍마관 전역을 삼키는 것이 보였다. 이걸로, 레밀리아의 안개가 이 이상 환상향 밖으로 퍼져나가진 않을 것이다. 자, 그럼 나는 내 일을 해볼까.






























홍마관 정문 앞.
치르노의 냉기는 확실히 레밀리아의 안개와는 상성이 좋은지, 그녀의 결계 내부에선 시야가 굉장히 맑다. 물론 나는 안개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지만... 아무튼 그렇기에, 이 거리에서도 그녀의 모습이 잘 보인다.
금색 별이 달린 베레모, 그리고 치파오...라고 해야하나? 아무튼 중국풍의 복장을 입은, 붉은 머리의 여인, 홍 메이린. 지금와서 그녀를 쿠레나이 미스즈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겠지.
하지만 이 거리에선 그녀가 검은 기운의 영향을 받았는지, 받지 않았는지 구분하기가 어렵다. 외견으론 크게 변화가 없는 것 같은데... 그나저나, 무슨 회피 불가능한 게임 이벤트 npc 처럼 문 앞에 딱 서 있으니, 영 껄끄럽네. 왠만하면 안싸우고 지나가고 싶은데 말이지. 내 목적은 어디까지나 이 붉은 안개를 막는거지, 홍마관의 인원을 모두 쓰러뜨리는게 아니니까. 뭐, 치르노 덕에 반쯤 성공한 느낌도 들긴 하지만.
대화가 통하면 좋겠는데...

"....!?"

한걸음 걷자마자, 순간 온 몸이 무언가에 짓눌리기 시작한다. 마치, 중력이 적어도 10배는 된 것 마냥 몸이 무겁다. 그리고 온몸의 감각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말라고 경고 하고 있다. 이건... 메이린이 무언갈 하고 있는건가!?

"윽...!?"

꽤나 여러번 말하는 것 같아서 끈질기다고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신키에 의해 부활한 이후로, 내 신체능력은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당연히 거기엔 눈도 포함되어 있어서, 적어도 50m 이상 떨어져 있는 지금 이 위치에서도 메이린의 머리카락 갯수를 셀 수 있을 정도로 눈이 좋은 상태다. 그렇기에,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메이린은, 자고 있다. 자면서 침입자를 막는다니, 그야말로 문지기의 극의가 아닐까?
일단 걸을 수는 있으니, 좀 더 가까이 가야... 으윽...!?

"몸이... 말을 안들어...?!"

아래를 내려다보니, 마치 지나치게 무거운 물건을 들었을때처럼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있었다. 젠장, 이래서야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일단 몸을 움직여야 하니, 조금만 뒤로... 흐으으으읍!!!

- 철퍼덕!

"어우! 씨발! 좆되는줄 알았네!"

두, 세발자국 벗어난 것 만으로, 온몸을 짓누르고 있던 무언가가 사라져 나도 모르게 입에서 욕지거리가 여과없이 튀어나온다. 생각해보면 딱히 여과하려고 한 적도 없었던거 같군. 몸을 일으키며 몸에 묻어 있던 흙을 털어낸 뒤, 다시 한번 메이린을 본다. 음, 여전히 자고 있군. 무언가를 한것처럼 보이진 않는데. 아까 그건... 일종의 결계 같은거였던걸까? 가까이 오는 자를 짓누르는... 뭐, 결계이던 패왕색 패기이던 중요한건 메이린에게 가까이 가려고 하면 이런 일이 발생한다는거다.
가만 있어봐. 그럼 메이린이 없는 위치에서 진입 하면 되지 않을까?


- 5분 후 -

안되는 모양입니다.
모든 방향에서 접근을 시도 해보았지만, 가까이 갈 수록 몸을 짓누르는 감각이 심해져 나아갈 수가 없었다.
심지어 실제로도 힘이 가해지는 모양인지, 얼음 호수 위에서 접근하려다가 발밑의 얼음이 깨져 이 날씨에 수영을 하고 말았다. 어째선지 금방 말라서 감기 걸리거나 동상 걸릴 일은 없어 다행이지만...

"흐음... 이래서야 다가가지도 못하자녀. 씨벌."

화풀이로 길바닥의 작은 돌을 걷어차본다. 갑자기 코이시를 걷어찬 기분이 들어서 묘한 죄책감이 드는건 왜일까.
코이시라... 원래 동방을 알던 때에는 최애캐라고 막연히 생각했지만, 코이시를 실제로 보고 있는 지금은 난 그녀에게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걸까. 환상향에 환상들이 하고서 쭉 정신이 없었으니까 생각할 겨를도 없었지만...
실제로 그녀를 봤을때, 조금 이상한 여자애 정도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아니, 조금일까? 무덤을 파헤치고, 명백하게 사람이 들어 있을 관을 뜯어서 나를 꺼냈으니까.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것도 무의식적으로 행한걸까? 무의식이라, 마법의 단어로군.
아무튼...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지만, 계속 지내다보니 나의 생각은... 뭐,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하지만 자기 능력이 안통할때마다 분해하는 모습은 귀엽고, 얼굴도 귀엽고, 몸짓 하나하나가 귀엽다. 아무튼 귀엽다. 보고 있으면 질리지가 않을 정도로. 나는... 코이시를 좋아하는건가? 아직 만난지 기껏해봐야 한달이 덜 지나서, 아직 친하다고 부르기도 조금 애매한 느낌이 없지 않아 있는데... 으음, 이것저것 재는 성격인지라 영 이런 부분에선 확실하게 마음의 정리를 못한다니까. 지금 날아가는 저 돌맹이처럼 인간관계도 가볍게 생각 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
...가만, 돌맹이가 날아가네? 메이린의 패왕색 패기는 어쩌고?

"설마..."

아까전에 루미아한테 던지려고 줏어놨던 돌맹이를 주머니에서 꺼내, 가볍게 메이린의 머리 옆, 그러니까 홍마관의 정문을 향해 던져본다.

- 까앙!

고속으로 날아간 돌맹이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철문을 직격하여, 크고 거슬리는 소리를 울리게 한다. 메이린의 이 기운은, 무기물에는 통하지 않는건가...? 아, 하긴. 생각해보면 메이린의 기운이 모든 것을 짓누른다면 이미 이 주변의 지형이 변해 있어야 정상이다. 그렇다면 방침은 정해졌지. 노리는건... 다리!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고 싶었던 꿈을 담아...!"

그럴싸한 투구 폼으로, 메이린의 다리를 향해 돌맹이를 전력투구한다. 뭐, 정작 나는 야구 룰도 제대로 모르지만.

- 피융!

하지만 위력 자체는 엄청났는지, 돌맹이가 지나간 조금 후에야 흙먼지가 크게 휘날릴 정도로 빠른 속도로 돌맹이는 메이린의 다리를 향해 날아간다. 또 그 그로테스크한 광경을 보겠지만... 요괴니까 그정도로는 죽지 않겠지?

- 빠아아악!!!! 휘잉!

그리고 착탄과 동시에, 내 오른쪽 머리 옆을 무언가가 초고속으로 스쳐지나간다. 그리고 무심코 오른쪽 귀를 만져보니... 내가 알던 형태가 아닌, 상당히 축소된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리고, 손을 보니 피가 잔뜩.
고통은 거의 없다. 하지만, 잠깐이지만 의식이 멀어지고 수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뭐지? 귀가? 반 고흐? 뜯겨져나갔어? 뭐에? 내가 던진 돌맹이? 무심코 던진 돌맹이에 개구리가 죽는다? 개구리도 몰리면 문다? 아니 이건 아닌데? 메이린이 받아쳤어? 하지만 자고 있었잖아? 설마 몸이 멋대로? 그게 돼? 사람 맞아? 사람 아니잖아? 잠깐만 혹시 일어나 있

"지금은 시에스타 중이니, 조금만 조용히 해주겠어? 가능하면 영원히."

그때, 사고를 끊어내는 차가운 목소리. 어느샌가, 내 배엔 가늘지만 단련의 흔적이 보이는 팔이... 꽂혀 있었다.

"커....억...?!"
"이것만으로는 조용해주지 않을거 같으니... 조금만 더 일할까."

고개를 들어보니, 어디까지나 졸린듯한 얼굴로, 하지만 확실한 살의를 가진 푸른빛의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온몸에 무언가가 흘러들어온다. 따뜻한... 아니, 뜨거운 기운이... 게다가 엄청나게 요동쳐서, 마치 다음 순간에 폭발해버릴 것만 같은...!
이거 설마, 채광연화장!?

"크아아아아악!!!....어?"
"어?"

그때, 나도 메이린도 당황한듯 '어?'라는 소리를 낸다. 나의 경우는 방금전까지만 해도 폭발할 것 같았던 기운이 한순간에 사그라들어서. 메이린도... 비슷한 이유겠지. 그리고 어느샌가, 내 배를 꿰뚫고 있던 메이린의 팔은 그대로 절단되어 있었다. 빠르게 거리를 벌리는 메이린. 하지만 그녀의 팔 절단면이, 무지개색으로 빛나고 있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저렇게 보니 파문질주로 당한 상처 같구만.

"상처가...?"

양복 윗도리랑 와이셔츠에 뚫린 자국은 나있지만, 정작 메이린의 팔에 의해 꿰뚫린 상처는 온데간데 없었다. 그리고 이, 몸에 넘쳐나는 기운은...
...과연. 아무래도 내가 아까전에 세웠던 가설은 맞았던 모양이다. 최악의 방법으로 증명되고 말핬지만...

"적응 능력..."
"큭... 대체 뭐냐, 너는!"
"피콜로이신가? 무슨 팔이 벌써 자란대?"

잘려나갔던 팔이 벌써 재생된 메이린이 내게 소리친다. 그나저나, 이렇게나 메이린과 가까이 있는데 아까전의 그 패왕색 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고보면 메이린이 기습했을때도 느끼지 못했지. 그 기운은, 자고 있을때만 발산하는건가...? 그렇게 생각하면, 오히려 지금이 상대하기 편하다.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죽인다, 같은 소리하는건 아니지? 그만두는게 좋을껄. 아무래도 내 몸은, 같은 수가 두번은 통하지 않는 모양이니까."
"뭐라고?"
"그... 아무래도 적응해버린 모양이거든. '기' 라는거에 말야."
"뭐..."
"아니, 진짜라니까? 이런 것도 할 수 있게 됐다고. 봐봐?"

양손을 들어올리고, 그 손에 무언가를 감싸는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러자, 양손을 일곱빛깔로 빛나는 기운이 감싼다. 오오, 뭔가 될거 같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진짜로 되는구나. 존나 신기한데?

"기를...?!"
"야 ㅋㅋ 이게 되네. 아무튼, 좀 지나갈께. 댁네 주인한테 용무가 좀 있어서 말야."
"내가 순순히 지나가게 할거라고 생각하나?"
"안하지. 그러니까 이렇게 하는거야."

- 파아앙! 빠아아악!

다리에 기를 모아 마치 총알처럼 몸을 내던져, 그대로 메이린의 몸통에 옆차기를 갈긴다. 날아가는 속도가 생각보다 상당히 빨라서 발차기 하는 타이밍을 놓칠뻔 했지만... 몸이 멋대로 움직여줬다. 하지만 이정도 속도여도 반응이 가능한지, 메이린은 양팔을 교차시켜 내 발차기를 막았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 없다. 아까 내 몸을 날려버린 기술과 같은 원리로...!

"펑!"

- 파앙!

발바닥에서 작게 터지는 무지갯빛 기운. 그것이 그녀의 팔을 날려버리진 못했지만, 그 충격은 컸는지 팔의 가드를 풀어버린다. 아무래도 이 '기'라는 거, 온 몸으로 내보낼 수 있는 모양인데...

"그렇다면 이런 것도 가능하겠지!"
"뭣...!?"

공중에 붕 떠 있는 내 몸의 윗부분을 억지로 기로 짓눌러, 몸을 강제적으로 땅바닥에 착지시킨다. 그리고 그 다음, 몸을 돌리면서 일으켜 그대로 기를 담은 팔꿈치로 메이린의 몸을 가격. 그녀의 몸은 크게 밀려난다. 괴로워하는 표정을 보니, 꽤 쌔게 들어간 모양. 조금이라도 게임을 아는 사람이 내 움직임을 봤다면, 마치 게임처럼 모션 캔슬한 것 처럼 보였겠지.

"한번 더!"
"큭!?"

한번 더 발 밑에 기를 터트려, 빠르게 메이린을 향해 날아간다. 그리고 그녀는 또 다시 방어 자세를 취하지만...

"는 뻥이고!"
"?!"

공중에서 한번 더 기를 터트려, 메이린의 머리 위를 넘어간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돌맹이를 꺼낸다. 이건 못튕겨내겠지!
...조금 플래그 같은데, 이거.

"흡!"

- 피융! 파박!!!

"크윽, 비열한 놈!"
"기습한 놈이 할 소린 아니거든!"

피할 타이밍을 주지 않고 던진 돌맹이었지만, 급소를 빗겨나가 적중하여 다소 피해는 적어보인다. 심장을 노리고 던진건데, 옆구리에 맞았나... 그 짧은 순간에 몸을 비틀어서 맞을 위치를 바꾸다니. 쌓아온 경험이 다르다는 걸까? 어느쪽이던, 부상을 입힌 지금이라면 밀어붙여서 어떻게든 쓰러뜨릴 수 있지 않을까?...아, 생각해보니 얘 팔이 잘린 다음 순간에 재생됐었지. 의미 없구만.
그럼 어떻게 해야... 이 기라는걸 써서 어떻게든 할 수 있지 않을까? 으음, 떠올리는거다. 서브컬쳐에 대가리를 담군지도 어언 20년, 이쯤되면 유효한 사용법 정도는 나와야 정상이지 않겠어?
...전혀 안떠오르는데요. 기껏해야 아까전처럼 기로 억지로 몸을 움직이는 것 밖엔...

"이번에야 말로 완벽히 조용하게 만들어주마!"
"어? 야, 잠깐만! 나 아직 대책 안 떠올랐는데?!"
"문답무용!"
"뭐, 그렇게 나오시겠죠..."

이렇게 된 이상, 흐름에 맡길 수 밖에 없나. 메이린의 움직임도 보이기 시작하고 있으니... 아니, 그건 원래부터 보였었지. 가만, 그럼 왜 처음에 기습을 당한거야? 아무리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곤 하지만, 시선은 계속 메이린에게 고정하고 있었는데. 아무리 요괴라도, 잔재주 없이 순수한 신체 능력만으론 아까전의 메이린의 움직임을 체현하긴 힘들 것이다. 기를 이동한 고속 이동...? 그런게 있다는걸까? 아까 비슷한걸 시도해보긴 했지만, 그정도까진 아니었다고 생각하는데...
으음, 아까는 단순하게 생각난대로 써본 느낌이었으니, 좀 더 진지하게 해볼까. 발밑에 기를 터트리는게 아니라, 좀 더. 섬세하게. 마치 기로 탄성 있는 신발을 만들듯이... 탄성?

"오오..."

만들다 만 '기의 신발' 로 발을 굴러본다. 그러자, 발에 감은 기가 기세 좋게 발을 지면에서 튕겨낸다. 기로 탄성도 줄 수 있구나. 처음 알았네. 생각보다 만능이잖아? 탄성... 탄성이라 하면...

"아하♣ 그런 좋은 예시가 있었지?♠"
"뭣...?"
"아, 암것도 아냐. 그럼 이만."

다리에 기를 휘감은 뒤 전속력으로 홍마관의 반대편으로 달려간다. 제발, 눈치 채지 않기를...!

"순순히 도망가게 둘거라고 생각하나?"
"야! 문지기면 문을 비워두면 안되는거 아냐!?"
"일리있는 말이지만, 지금 당장 너를 처리하면 문제 없지 않겠어!?"

그것도 좀 그럴싸 하긴 하네.
메이린은 전력으로 도망가는 나를 계속 쫒아오고 있다. 내가 스타트가 빨랐는지라 아직까지 붙잡히진 않았지만, 메이린의 발걸음도 빠르다. 아까의 기습공격과 같은 움직임으로 내게 접근하지 않는걸 보니, 역시 사전준비가 조금 필요한 기술인 모양이다.
한 70m 쯤 갔을까. 문득, 기를 휘감은 다리를 크게 잡아당기는 감촉이 느껴진다. 으음, 탄성을 부여한 기의 장력은 이정도 거리쯤이 한계인가... 뭔가, 좀 더 기에 대해 연구하면 장력을 좀 더 늘릴 수 있을거 같은 감각은 느껴지지만 지금은 이정도로 충분하다.

"문은 문지기로 열어야 제맛이지."
"뭣?"
"뭐, 보고 있으라구. 마침 위치도 딱이네."

뒤를 돌아보니, 메이린이 내 등 뒤에서 나를 붙잡으려고 손을 뻗고 있던 때였다. 그 열렬한 마음에 응답하듯, 나는 그녀의 손을 붙잡고, 그대로 그녀에게 몸을 던진다.
출발 지점에 고정 시켰던 기를 해제하면서.

- 슈웅!

여태까지 느껴본적 없는 힘으로 몸이 당겨져, 메이린을 말려들게 한 채로 엄청난 속도로 문을 향해 날아간다. 그리고, 그 기세를 유지한채 그대로...

- 파아앙!! 콰아아아아아앙!!

홍마관의 정문을 부수고, 홍마관의 외벽과 내벽을 몇개나 부순 뒤에나 멈출 수 있었다. 나는 몸 전체를 기로 감싸고 있던 덕에 데미지가 거의 없었지만... 메이린은 아니었는지, 배가 움푹 파인채 기절해 있었다. 아니, 거의 죽은건가? 생각해보면 벽이랑 기를 두른 내 몸 사이에 끼여서 몇번이고 데미지를 입은거니...

- 스스스...

그때, 그녀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검은 기운. 그리고 다음 순간,

- 삐융! 치지지지직...

머리장식에서 아까처럼 레이져가 발사되어, 검은 기운을 그대로 소멸시켜버린다. 아까보다 반응 속도 빨라지지 않았어?

"그나저나, 꽤나 다이나믹하게 엔트리 해버렸네."

지나온 길(?)을 돌아보며 중얼거려본다. 무슨 만화에서나 볼 광경을 눈앞에 두고 있으니, 영 실감이 안난단 말이지. 뭐... 일단은, 그거다.

"이 승부, 어쨌든 저택에 들어온 나의 승리네♠"

우이, 판정승...!(의미불명)

...뭐, 농담은 집어두고. 주위를 둘러본다. 내가 지나온 자리는 폐허가 되어 있었지만, 이 방은 눈에 익다. 아마 여긴 내가 사쿠야에게 안내받은 방... 뭐, 아닐 수도 있지만 그게 중요한건 아니다. 생각해보면 여기에서, 나는 레밀리아를 기다리기로 했었지.
근데, 일이 이렇게 되어버릴 줄이야... 게다가 이번에는 다른 이유로 레밀리아를 찾아왔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뭔가 이상한 기분이다. 저번에는 취직때문에 왔었지.

"취직이라..."

여기에 처음 찾아왔을때는 한달간 살아남기 위한 일터로써 찾아왔지만... 이번에는 문지기로 문을 연 것만으로도 모잘라, 그대로 저택을 파손시키고 무단침입이라. 이거야 원, 취직하기는 글러먹었구만. 자, 그럼 이제 어떻게 한다. 저택에 들어오는건 성공했지만, 꽤나 화려하게 입장해버렸다. 눈치를 채고 누군가 요격하러 올지도 모르겠는걸... 아무도 없긴 하지만.

"...여긴?"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다소 익숙한 풍경임을 깨닫는다. 기억나는 방이다. 여기는... 그래, 내가 사쿠야에게 안내 받았던 그 방이다. 다이나믹 엔트리로 다소 어질러졌지만, 이 가구 배치와 풍경... 틀림 없다. 거기에, 확실한 증거가 하나.

"바스켓..."

사쿠야가 내게 가져다 줬던 빵이 담긴 바스켓이, 침대 옆 선반 위에 그대로 놓여져 있었다. 내가 놓은 위치다. 한달이 지났는데,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니... 거기에, 빵에는 전혀 상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방부제를 미친듯이 넣은거거나, 아니면.

- 몰캉~

"기, 기묘한 감촉이네."

바스켓 주변에 손을 갖다대니, 마치 보이지 않는 무언가로 만들어진 벽에 닿은 것과 같은 감각이 느껴진다. 굳이 따지자면... 그래. 달리는 자동차에서 유리창 밖에 손을 뻗었을때 느껴지는 그 감각. 그러고보니 그거, 속설에 의하면 가슴을 만지는 감촉과 비슷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즉, 지금 나는 가슴을 만지고 있는건가!

 

"...가슴...아니, 시간 정지 능력인가."


...그렇군. 사쿠야는 언제든 내가 돌아와서 빵을 먹을 수 있게 조치를 취해둔건가. 특정 공간을 시간정지 상태로 만들어 놓은거겠지. 하지만, 나는 오피셜하게 한번 죽었으니 꽤 의미 없는 짓인거 같은데. 감상인가? 아니면 레밀리아의 지시인가? 어느쪽이던, 나쁜 기분은 들지 않는군. 왠지 미안해지기도 하고.
그때, 복도쪽에서 누군가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온다. 슬슬 이 굉음을 듣고 누군가가 찾아올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그나저나, 발걸음에서 경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와줬구나, 레이무...!"
"레이무는 비번이야. 휴가 받아서 라스베가스에 놀러갔다고."
"...!?"

거기에는, 표정에 다급함이 보이는 이자요이 사쿠야가 숨을 헐떡거리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꼴은 말도 아니었다. 옷은 여기저기 찢어져 있고, 흉한 자상이 팔과 다리에 여기저기. 딱 봐도 흉터가 남을 수준의 것들이라 나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진다. 이상한 일이군. 레밀리아가 홍무이변을 일으켰다면, 사쿠야는 적으로써 나를 맞이해야하는 것 아닌가? 거기에, 마치 레이무를 기다렸다는 듯한 말투. 마치, 누군가 이변을 해결해주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아아, 대충 그런 느낌이구나. 이번 이변, 아무래도 고의적으로 발생한 이변이 아닌 모양이다.

"역시... 살아 있었어. 쇼우이치, 맞지?"
"그렇긴 한데... 어떻게 알았어? 스스로 생각해도 외견이 꽤나 바뀌었다고 생각하는데."
"이래뵈도 홍마관의 메이드장이야. 같이 일할 사람의 본질을 놓칠 정도로 눈이 옹이구멍은 아니라고."
"아니, 그건 평범하게 눈이 있어도 모를거 같은데."

당장 나 자신도 한동안은 거울 보는게 익숙하지 않았다고. 이걸 한눈에 알아본다니, 얘 뭐야. 무서워... 그나저나, 간만에 쇼우이치라는 이름으로 불렸네. 지령전에선 모두에게 우이라고 불렸으니까, 신선한 느낌이다. 어느쪽이던 본명은 아니지만.

"...다행이야. 아가씨 말씀대로, 살아 있었구나."
"어쩌다보니, 말이지. 그보다 중요한건 그게 아니고,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그건... 윽...!"

뭔가를 말하려다가, 괴로운듯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지려고 하는 사쿠야. 곧바로 그녀의 몸을 부축하기 위해 손을 뻗는다. 하지만 문득 그 뻗은 손을 보니, 미약하지만 기가 둘러져 있는게 보인다. 앗, 젠장할. 좆됐다. 아직 익숙해지지 않은건가. 그대로 사쿠야에게 닿으면 사쿠야를 공격하는 셈이 될텐데...!
허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고. 닿은 손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기는 그대로 사쿠야의 몸을 상냥하게 감싼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사쿠야의 몸 상태의 정보가 머리속에 흘러들어온다.

"뭐, 뭐야. 이 상처들은...!"

온 몸에 금이 가 있는 듯한 몸 상태였다. 뼈는 대부분이 금이 가 있었고, 근육은 끊어지진 않았지만 파열되기 일보 직전. 장기에도 꽤나 무리가 간 상태. 도저히 뛰어올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었다. 아니, 뛰어오긴 커녕 몸을 움직일때마다 격통에 정신이 혼미해질 레벨이다. 초인적인 정신력... 아니, 그건 아니다. 신체의 일부를 능력으로 손본 것일테지. 예를 들어 신체에 오는 고통의 시간을 조절해서, 몸만큼은 계속 움직일 수 있게 한다거나.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부상은... 말도 안된다.

"...작은 아씨의 능력을 피하는걸, 아주 조금 늦어버리는 바람에."
"이, 일단은 침대에서 쉬어. 아차, 잠시만 있어봐."

사쿠야를 조심스레 벽에 기대게 한 후 침대 위에도 흩어져 있던 벽의 잔해를 대강 치우고, 다시 사쿠야를 조심스레 침대에 앉힌다. 하는 김에, 메이린의 몸을 들어 사쿠야의 옆에 눕힌다.

"메이린...! 어떻게 된거야?"
"여기 들어갈려고 하니까 죽이려고 들더라고. 어쩔 수 없이 쓰러뜨렸어."
"쓰러뜨렸어, 라니... 쇼우이치 너, 대체..."
"아니, 그런건 됐고. 레이무를 찾았다는건 이번 이변이 원치 않은 상황이었다는 거고, 레밀리아는 무언가에 의해 조종 당하고 있는거라 생각하면 되겠지? 예를 들어 검은 기운이라던가."
"마, 맞긴 한데..."
"거기에, 플랑도르가 폭주한 것 치곤 건물이 전반적으로 성한 상태. 네가 어떻게든 한거지?"
"...그것도 정답. 너, 대체."
"파츄리 널리지에 대해선 정보가 없고... 의아한건, 사쿠야. 네가 검은 기운에 당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야."
"그건... 큭...!"
"아차, 미안. 지금 제대로 된 답변을 들을 수 없는 몸상태였지. 일단 쉬고 있어. 나머지는 어떻게든 해볼께."
"....부탁..."

말을 끝맺지 못하고, 사쿠야는 의식을 잃는다. 사실, 그녀의 몸상태를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의식을 유지하고 있는게 신기한 레벨이다. 오히려, 병원에 데려가야할 레벨이지만... 이 상태의 사쿠야를 치르노의 결계 밖으로 끌어내면, 십중팔구 붉은 안개에 의해 사망할테지. 자, 그럼 이제부터 어떻게 할까. 사쿠야의 반응을 보아하니, 레밀리아와 플랑은 검은 기운의 영향을 받은게 틀림 없다. 플랑은 사쿠야가 일단 어떻게든 해줬으니 우선순위를 뒤로 미뤄도 될거 같고... 이대로 레밀리아에게 돌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만, 누락된 정보가 신경 쓰인다.
파츄리 널리지. 그녀에 대한 정보만이 쏙 빠져 있는 상태.
...일단은 마법도서관으로 가볼까. 여기는 적진 한복판. 여유가 있을때 정보의 결손을 메워두고 싶다. 그렇지 않아도 모르는게 한바기지인데...

"...다녀 올께."

괴로운듯 끙끙거리는 사쿠야와 평안하게 잠들어 있는 메이린에게 이불을 덮어준다. 치르노의 결계 때문에 이대로 뒀다간 감기걸릴테니...
그리고, 복도로 나선다. 어디보자, 내가 지난번에 여기에 왔을때엔 마법도서관에 들리지 않았지. 정확하겐 못한거지만. 일단 위치를 좀 파악해봐야겠는데...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내 휴대폰의 지도 앱은 환상향과 완벽하게 동기되어 있다. 적어도 지저에서는. 지저에서도 그랬다면, 지상의 홍마관에서도 그 능력은 발동 될 것이다.
...근데, 생각해보면 보통 지도 앱에 저택 방 정보 같은건 안들어가 있을거 아냐? 아무리 이 지도 앱의 성능이 뛰어나다곤 해도, 홍마관의 내부 지도까지 보일리가...

"있네. 근데 UI가...?"

평소의 지도 앱과는 UI가 다소 상이하다. 마치, 게임의 미니맵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실내에선 이 앱을 사용해보지 않아서 몰랐는데, 구조물 안에 들어가면 이렇게 표시해주나 보다. 존나 고성능인데? 위치는... 지하인가. 근데 이 지하쪽에 까만색 원이 크게 표시되어 있는건 뭐지? 입구까지 막고 있는게 영 심상치 않은데...

뭐 어쩌겠어, 일단은 가보자고.





























- 피융! 피융!

"파츄리님, 제 3 방벽이 파괴되었어요!"
"알고 있어... 이것 참. 자기가 쓴 마도서에 자기가 공격 받다니, 오래 살고 볼 일이야."

홍마관, 마법도서관 중앙. 자조적인 웃음을 입가에 띄우는 피투성이의 보라색 머리카락의 소녀, 파츄리 널리지. 홍무이변이 재발한 시점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도서관을 벗어나지 않아 바깥 상황을 전혀 모르는 그녀였지만, 그녀는 그녀대로 다른 골칫거리와 싸우고 있었다.

시작은, 초급 공격 마법을 적어놓은 마도서가 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였다. 마도서가 자기 멋대로 움직이는 일은 드물지만, 이따금씩 있는 일이었다. 거기에 대해 아무런 의문을 가지지 않은 파츄리는 종자인 소악마에게 책을 정리하라고 명령했지만...
움직이는 책이 하나 둘씩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파츄리는 뭔가 이상하다는걸 눈치채, 움직이던 마도서를 조사하려는던 찰나.
마도서는 스스로 마법을 쏘아내어, 파츄리를 공격하였다.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파츄리는 그 공격을 복부에 정통으로 맞아, 관통상. 사식, 사충의 마법 익혀 불로의 몸이 된 파츄리였지만, 불로이지 불사의 몸은 아니다.
치명상을 입은 그녀는 반사적으로 마법방벽을 치고, 치유 마법으로 최대한 상처가 벌어지지 않도록 치료하며 농성 중인 상태인 것이었다.
누군가가 와주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하지만, 다시 한번 말하지만 파츄리는 도서관 바깥이 어떠한 상황에 쳐해있는지를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누군가가 금방 와주려니 하고 다소 낙관적인 상태의 그녀였지만 농성 시작 후 8시간 남짓 지난 지금, 뭔가가 단단히 잘못된 것을 인지했다.
마법방벽을 보수할때마다, 마력의 극심한 소모로 인해 상처가 벌어진다. 치유 마법을 동시에 돌리고 있어 한동안은 괜찮았지만, 아까전부터 방벽이 파괴되는 속도가 심상치 않다. 아마도 제멋대로 움직이는 마도서가 점점 많아지는 거겠지.
거기에, 파츄리의 마력은 이미 한계를 맞이하고 있었다.

"윽..."
"파츄리님!?"
"옆에서 소리치지 마. 머리가 울리니까..."
"아, 죄송해요..."
"...이대로라면 위험하겠는걸. 하아. 대체 뭐가 어떻게 된건지."

열심히 금이 가고 있는 제 4방벽을 올려다보며, 파츄리는 체념한듯 한탄한다. 자기가 만든 마도서에 쏘여 죽다니, 마녀의 죽음으로썬 솔직히 좀 심한게 아닌가- 하고 생각하던 파츄리는, 문득 얼마전 자신의 마도서에 의해 죽은 한 남자를 떠올린다. 레밀리아의 운명 조작에도, 기어이 죽어버린 운 나쁜 남자. 원인을 제공한 장본인으로써 일말의 죄책감이 있긴 했지만... 이건 그 벌인걸까? 배에 가져다대었던 손을 들어 피가 잔뜩 묻은 그 손바닥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죽을때가 되니 별 생각을 다하게 되는구나.'

적어도, 그 연구만은... 그 남자를 죽게 만든 그 마도서의 연구만은 완성시키고 싶었는데, 라고 생각하던 찰나.

- 쨍그랑!

"제 4 방벽이..."
"남은건 마지막 한장. 소악마, 이쯤에서 숨겨둔 힘 같은걸 발휘할 생각은 없니?"
"그런거 있을리가 없잖아요... 저도 방벽 강화에 마력을 전부 써버리는 바람에, 이젠 마력탄 하나도 안쏴진다구요."
"그래..."

마력이 부족해서 치유 마법조차 제대로 기능을 하지 않는건지, 그녀가 억지로 막아둔 상처에서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축축해서 기분나쁘네, 라고 흐릿해져가는 의식속에서 생각하는 파츄리. 마지막 방벽이 깨져 마도서에 공격 당해 죽는게 빠를까, 실혈로 인한 쇼크사가 빠를까. 어느쪽이든 절망밖에 없는 그녀의 눈동자에서 빛이 사라지려고 하던 바로 그때.
마력 방벽에 들어오는 충격이, 일제히 멈췄다. 방어에 사용하던 마력이 일부 넘쳐, 치유 마법으로 돌아온다. 흐려지던 의식이 맑아지는걸 느끼며, 파츄리는 고개를 갸웃했다.

"소악마,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있겠니?"
"...아무래도 저희를 공격하던 마도서들이 다른 타겟을 찾은 모양이에요."
"...안 좋은걸. 레미나 플랑이면 몰라도 사쿠야가 여기를 찾아온거라면, 그녀는 대처를 못하고 죽을텐데. 레미한테 혼나겠어."

누군가가 오길 바란건 맞지만, 지금 상황은 사쿠야로썬 수습이 안될 것이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파츄리는 미간을 찡그리며 말한다.
파츄리는 지금 현재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 자신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똥 씹은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방벽은 유지되고 있지만, 방벽 수복에 들 마력을 치유 마법에 돌리고 있는 덕분에 아까와는 다르게 치유 마법이 150% 정도 오버클럭으로 발동되고 있다. 덕분에 그녀의 상처가 빠르게 아물고 있어 가능한 움직임이었다.

그리고, 파츄리가 입구의 상태를 보기 위해 시야 확장 마법을 사용 하였을때, 보인 것은...

쏟아지는 수많은 마법 사이를 화려하고 확실하게 피하고 있는, 장신의 여성이었다.

















 

"이건 뭔 씹..."

 

마법도서관의 문을 열자마자, 10권의 마도서가 나를 덮쳐든다. 마도서는 제각각 펼쳐진채로, 그 앞에 마법진을 띄운채 내 주위를 어지러이 움직이며 내게 마법을 쏘아낸다. 10권이나 되는 마도서이고, 모두가 다른 마법을 쏘아내고 있지만 결국은 투사체를 쏘아낸다는 점이 공통점이려나. 파츄리가 하고 있는걸까?

 

'...아니겠군.'

 

마도서가 10권이나 되다보니, 그리고 이래저래 이동을 하고 있다보니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것 처럼 보이지만, 탄의 갯수, 사출 속도, 발사 빈도가 완벽하게 패턴화되어 있다. 자동 방위 시스템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인지... 어느쪽이던, 사람의 의지가 관여하고 있지 않는 것은 확실해보인다. 게다가 딱히 연계가 되고 있진 않아서, 하나씩 하나씩 조지면 크게 문제 없이 파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단 하나,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다는걸 제외하곤.

 

"사거리 이슈 시발!"

 

당연한(?) 이야기지만, 마도서는 날아다니고 있고 이쪽은 걸어다니고 있다. 물론 하늘을 날지 못하는건 아니지만, 뛰어다니는 것 보다 둔한데다가 탄막이 짙어 거리를 좁힐 수도 없다. 즉, 원거리 공격 수단이 없다는 치명적인 문제. 기를 응용한다면 어떻게든 원거리 공격을 할 수는 있겠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이거야 원.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돌 좀 더 주워서 올껄 그랬나. 적어도 3~4권 정도만 떨궈도 어떻게든 될거 같은데...

쯧, 지들만 불덩이나 얼음덩이 던지고 말야. 그리고 저 면도칼 같은거 던지는 저거. 투사체 크기가 너무 작아서 보고 피하도 존나 빡세네. 거기다가 쏘아낸 것들이 그대로 바닥에 남아서, 발 디딜 틈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잘못하면 미끄러 넘어질 수도...

 

"?"

 

생각해보니 게임도 아니고, 쏘아진 마법의 부산물은 당연히 바닥에 남는구나? 그럼 이거 줏어서 던지면 되는거 아냐? 아니, 굳이 손으로 잡고 던질 필요도 없겠구나.

 

"흡!"

 

강하게 발을 굴러, 주위의 금속 칼날을 공중에 띄운다. 바닥 주변에 얕게 '탄성' 속성을 가진 기를 흩어놓은 덕에, 꽤 높은 위치까지 떠오른다. 이거라면.

 

"따샤!"

 

다리가 다칠걸 대비해 다리에 기를 두르고, 그대로 떠오른 칼날들을 마도서를 향해 걷어찬다. 뭐, 아주 당연한 이야기지만 대부분의 칼날은 마도서에 닿지도 못하고 허공을 향해 날아간다. 하지만.

 

- 파바바박!!

 

일부의 칼날은 운좋게 두권의 마도서에 직격하여, 그대로 책장을 찢어발긴다. 일부가 훼손된 것만으로도 기능에 이상이 생겼는지, 마도서는 그대로 힘없이 바닥에 툭 하고 떨어진다. 본체 자체는 약한데다가 자체적으로 방어수단은 갖추고 있지 않나보군. 즉, 맞추기만 하면 어떻게든 된다는 이야기다. 맞추기만 하면 되는거라면, 최대한 많은 횟수로 공격하는게 맞겠지. 손으로 던지는게 가장 현명하겠군.

 

"좋아..."

 

남아있는 마도서의 마법을 피하며, 열심히 바닥에 흩어진 칼날을 줍는다. 그리고, 이동 패턴 상 지면과 가까워지는 마도서를 노려, 칼날을 던진다....몇번 빗맞추긴 했지만, 어떻게든 20번 내외로 마도서를 전멸 시킬 수 있었다. 이게 힘은 생겼는데, 정밀한 동작은 아직 힘든거 같네. 투척도 연습해야하나?

아무튼 슬슬 안으로 들어가자. 원래의 목적은 파츄리의 상태를 확인하는거니까.

 

"이건...?"

 

마법도서관 내부. 어두컴컴한 도서관 안에서, 소란스럽게 돌아다니는 마도서들이 한가득하다. 아까전의 그것들과는 다르게 이쪽을 공격하려는 것 같진 않지만... 뭔가 이상한데. 내가 마법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적어도 마도서라는 것들이 저렇게 정신 사납게 돌아다니는 종류의 물건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나 많은 책장이 필요할 리가 없을테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먼지! 씨팔, 존나 날려! 저것들이 움직이기 시작한게 얼마되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아니면 청소를 드럽게 안하고 있거나.

...그나저나, 뭔가 안쪽이 상당히 소란스럽다. 이 위치에선 책장에 가려서 안쪽이 잘 안보이네. 위에서라면 좀 보일거 같긴 한데, 이놈에꺼 책장이 너무 높아서...

아참, 나 날 수 있지? 날 수 있게 된지 어... 아직 30시간도 안지났구나. 그래서 그런지 영 익숙해지질 않는다.

 

"읏차... 뭐고 씨발."

 

마법 도서관의 중앙, 몇개의 테이블이 원형으로 엎어져 있고, 그 주위를 감싸듯 반투명한 방벽이 쳐져 있다. 다만, 방벽은 조금만 손대도 깨질 것 처럼 금이 심하게 가 있다. 그리고, 그 방벽을 공격하는 마도서들. 그 중심에는... 내가 찾던 파츄리와, 붉은 머리칼의 소악마가 있었다. 다만, 파츄리의 복부부터 아래가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다. 복부에 큰 상처를 입은 모양.

 

어디보자, 즉 그건가? 마도서가 폭주해서 파츄리를 공격하고, 지금은 농성중인 상태? 아마 마도서의 폭주는... 그 검은 기운이 원인일 가능성이 매우 다분하겠군. 그렇다면 파츄리를 구하는게 옳은 판단이겠는데... 문제는, 마도서의 숫자가 적어도 백단위로 보인다는 부분일까. 모든 마도서가 공격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반대로 언제 공격해올지도 모르는 상태다. '지키면서 싸운다' 라는 선택지는 없다. 애시당초에 아까전에 10권의 마도서를 무력화 하는데에도 사거리 이슈로 한 세월이 걸렸는데, 저 수를 상대로는 도저히. 내가 마법이라도 쓸 줄 알면 모르겠는데.

 

"...으음, 전혀 모르겠어."

 

시험삼아 움직이지 않는 마도서를 책장에서 슬쩍 꺼내 훑어보지만, 내용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말이 어렵다기 보단, 문장 구조 자체가 전혀 성립하지 않는다. 몇개 띄워서 읽어보면 어느정도의 규칙성은 보이지만... 일종의 암호화 같은걸까. 게임 같은거 보면 이렇게 읽기만 한 것만으로 마법을 쓸 수 있게 되고 그러던데. 으음, 그럼 나는 마법을 쓰지 못하는걸까? 적어도 유기의 힘을 어느정도 쓸 수 있고, 기는 쓸 수 있지만...
기라. 성질변환까지는 어떻게든 확실하게 내 것으로 만들었지만, 시간이 부족해서 그 이상의 것을 하진 못했다. 할려면 할 수 있을거 같다는 근거 없는 확신은 있지만, 안정적으로 현상을 일으킬 수 있는가 하면 그 부분은 꽤 부정적인지라.

 

자, 그러면 어떻게 할까. 어찌되었던 간에 파츄리에 대한 정보는 메워졌다. 그리고 당장 나를 공격할 수 있는 상태이긴 커녕, 가만히 놔두면 알아서 죽겠지. 다만, 지금의 파츄리는 저 검은 기운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도우러 가는게 맞는거 같은데...  이쪽은 원거리 공격 수단이 전무한 상태이고, 아까와 같은 요행이 통할거란 나이브한 생각은 애시당초 하지 않는다. 그런고로...음, 적어도 어그로 정도는 끌어서 그녀들이 재정비할 시간을 버는게 최선일려나? 

 

"그런거라면야 뭐... 좀 하는 편이지."

 

애시당초 아까전의 10권의 마도서의 공격도 가볍게 피했다. 그리고 저것들은 변칙적인 공격을 가하지 않는다. 프로그래밍 된 대로 움직이는 개체... 검은 기운의 정체를 알 수 없기 때문에, 방심은 할 수 없지만. 할 수 있는 만큼 해야지.

 

"간다."

 

저것들은 내가 어느정도 가까워졌음에도 여전히 파츄리를 노리고 있다. 그저 다가가기만 해서 어그로를 끌 수 있을지는 미지수. 확실한 행동으로 녀석들의 에임을 내게 돌려야해. 가장 간단한건... 적대적 행동이지. 이 높이라면, 직선 이동으로 마도서를 공격할 수 있다.

 

"아까만큼의 도움닫기는 필요 없겠어."

 

다리에 기를 두르고 기를 책장에 고정 시키고, 탄성을 부여한다. 그리고 두발자국 뒤로 물러난다. 조금이라도 힘을 풀었다간 순식간에 앞으로 튀어나갈 것 같은 감각이 다리를 감싸고...

 

"최대탄성, 두 발자국."

 

- 피융!!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귀를 때리고, 몸이 날아가며 들리는 소리가 이후에 들려온다. 그리고 엄청난 속도로 가까워져오는 풍경. 마도서의 무리는, 다음 순간 눈 앞에 있었다.

 

"너흰 아직 준비가 안 됐다!"

 

만년동정같은 대사와 함께, 발을 휘둘러 최대한 많은 마도서를 휩쓸리게 하며 고속으로 날아간다...만, 가만 있어봐. 이거 멈추는건 어떻게 하더라?

 

- 콰아아아아아앙!!!!!

 

"크엑!"

 

큰 충격음과 함께, 내 몸은 그대로 도서관의 벽에 쳐박힌다. 벽이 움푹 패이고, 주위에 종이쪼가리(아마 마도서의 잔해)가 날린다. 부러지거나 어디 다친 곳은... 없군. 기를 몸 주위를 둘러서 방어하는 것도 까먹었는데, 전혀 부상이 없다니. 무시무시하구만, 이 몸뚱아리... 그나저나, 또 홍마관에 구멍을 뚫을뻔 했군. 으음, 이거 나중에 변상하라고 하는건 아니겠지. 그러면 곤란한데.

 

"오. 작전은 성공이군."

 

옷에 묻은 먼지를 털며 뒤돌아보니, 파츄리를 공격하던 마도서 전부가 내게 날아오고 있었다. 거기에, 책장에 꽂혀 있던 마도서들도... 갑자기 매트릭스의 센티넬이 생각나는 장면이구만. 자, 여기서부터는 도망갈 시간이라 이거지.

 

"비 사이로 막가고~ 탄 사이로 막가는~ 아니, 당신은!?"

 

이제는 너무 낡아서 그 누구도 기억하지 못할 드립과 함께, 마도서 무리가 쏘아내는 각기의 마법을 피하며 도서관을 가로지른다. 그나저나 저렇게나 많은 마도서들이 공격을 해오는데, 날아오는 탄의 종류만 다를 뿐 죄다 투사체 마법이다. 그러고보면, 책장에 있는 모든 책이 조종당하고 있진 않은 것 같은데. 이 마도서들이 멋대로 움직이는 것들이라면, 조종 당하는 데에도 조건이 있는 걸지도.

 

- 들려? 거기 도망가고 있는 사람.

 

그때, 머리 속에 들려오는 목소리. 이건, 파츄리의 목소리... 염화 같은건가? 근데 이거 어떻게 다시 말 걸면 되는거지. /r 같은 명령어라도 쓰면 되나?

 

- ...명령어? 무슨 소리야?.

 

? 머고. 이게 왜 되지? 그리고 아까전에 머리속에서 명령어를 떠올릴 때, 뭔가 스위치가 눌러지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대충... 이런 느낌.

 

- 아아. 들려? 이러면 되나.

- ...들려. 염화를 쓸 수 있는걸 보니, 너도 마법사구나. 이 근방에선 본 적 없는 얼굴인데.

- 얼굴?... 아, 저거구나. 그걸로 보고 있는거야?

 

마도서 무리가 쏘아내는 탄막을 요리조리 피하며 슬쩍 둘러보니, 시야 한구석에 보라색 마법진이 떠 있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마법진의 중심에는, 눈이 그려져 있다. 아마 원거리에서 이쪽을 보는 마법 같은거겠지. 일단 손 흔들어주자.

 

- ! 벌써 시야 확장용 마법진의 위치를 알아낸거야?

- 눈이 좋은지라. 그래서, 어쩐 일로? 지금 좀 바쁜데.

- 알고 있어. 우선 본론부터 말할께. 네가 시간을 끌어준 덕분에 아슬아슬하게 마법을 쓸 수 있을 만큼 마력이 돌아왔어.

- 기껏해봐야 30초 정도 벌어줬을텐데.

- 그러니까 아슬아슬하게 라는거지. 내가 지시하는 타이밍에, 중앙으로 저것들을 유인해줄 수 있겠어?

- 오케이.

 

시간을 그렇게 길게 끌지도 않았는데 파츄리는 벌써 태세 정비를 끝낸 모양이다. 이런 상황을 언제든 준비하고 있는걸까, 아니면 평범하게 실력이 좋은걸까. 어느쪽이던 뭐. 일이 빠르게 진행되면 나야 좋지.

 

- 지금.

"으잉!?"

 

아니, 겁나 빠르네. 당황해서 발 헛디딜뻔 했잖아. 중앙으로 유인하라고 그랬지? 유인이라고 하면 당연히 매복 공격이 있겠지. 최대한 적을 몰아서 끌고 가는게 좋겠군. 그러기 위해선, 지금보다 이동이 느려야하지만... 솔직히 안맞는걸 전제로 움직이고 있어서 속도를 늦출 수가 없다. 즉, 맞을 각오를 하고 속도를 늦춰야한다는 이야기. 거기에 필요한 건...

 

"경화."

 

온몸을 기로 감싸고, 기를 딱딱하게 경화 시킨다. 경화 시킨 기를 두른 채 이동해야하기 때문에, 당연하지만 아까보다 움직임이 둔해진다. 하지만,

 

- 팅! 티티팅!

 

내 머리를 향해 날아오던 나이프탄이 차가운 금속음과 함께 튕겨져 나간다. 투사체 사용 마법 중 가장 탄속이 빠른건 저 금속계 마법들. 그리고 이 '경화'는, 저정도의 금속 투사체 정도는 간단하게 튕겨낼 수 있다. 정확하겐 '그런 느낌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생각만큼의 성능이 안나왔다면 지금쯤 내 머리에 나이프가 꽂혔을 거란거 아냐?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소름이 끼치는군.

아무튼, 경화만으론 막을 수 없는 빙결계만큼은 확실하게 피하며 중앙으로 향한다. 그나저나, 아까전보다 주변 온도가 살짝 뜨뜻해진 것 같은데?...가만 있어봐. 이 느낌, 작열지옥에서 느끼던 그 감각이랑 비슷한데... 설마.

 

- 도착하자마자 아래로 내려와.

 

"크레이지하구만."

 

내가 책장에서 뛰어내리는 것과 동시에, 하늘 높이 엄청나게 농축된 화염구가 떠오른다. 그리고, 내가 파츄리의 옆, 즉 마법방벽에 들어선 순간.

 

"일부, 로얄 플레어."

 

- 삐융! 쿠구구구구구구구....!!!

 

화염구는 팽창하여 마치 인공태양처럼 뜨겁게 불타며 내 뒤를 쫒아오던 마도서를 죄다 태워버린다. 덤으로, 주위의 책장들도 상당 수 그슬린다. 타진 않는걸 보면, 특수한 가공이라도 한걸까.

 

"하아....하아...큭..."

"어이쿠."

 

호흡을 거칠게 내뱉다가 무너져내리는 파츄리를 반사적으로 붙잡는다. 그러자, 아까전에 사쿠야의 몸상태를 알 수 있었던것과 같은 느낌으로 파츄리의 몸 상태를 이해한다. 복부에 커다란 상처. 어케 살았노 싶을 정도로 커다란 상처다. 장기에도 큰 손상이 갔는데... 아니, 무언가의 영향으로 시간이 되돌아가듯 회복 되고 있는것이 느껴진다. 이 방어막도 그렇고... 원소계열의 마법만 쓸 줄 아는줄 알았더니, 이런 계통의 마법도 쓸 줄 아나 보네. 치유 마법이라.

 

하지만 치유 마법의 회복 속도가 매우 더디다. 의식적으로 마법을 사용 하고 있다가, 정신을 잃어서 그런걸까. 하지만, 더디다는건 일단은 발동이 유지되고 있다는 증거. 자연스럽게 회복은 되겠지만... 일단은 눕혀두는게 좋으려나.

 

"이건... 좀, 힘들겠지."

 

바닥에 흥건하게 흘러 나오는 피를 손으로 슬쩍 만져보며 중얼거린다. 아까전의 로열 플레어 사용으로 상처가 벌어졌다. 거기에 마력을 한꺼번에 소모 하는 바람에 정신을 잃었고. 이렇게 될거라는걸 모를리는 없었을텐데.

 

"파, 파츄리님!"

"악마 아가씨, 혹시 치유 마법은 쓸 줄 알아?"

"에?! 아, 아뇨. 치유 마법은 애시당초 고위 마족이나 특수한 종족인게 아니면 보통 사용 할 수 없어요. 물론 전 어느쪽도 아니구요."

"실화냐..."

 

치유 마법이라는거, 생각보다 랭크가 높았구만...

 

"거기에 파츄리님의 치유 마법은 메이드장과 공동 개발한 다른 계통의 마법이라, 보통의 치유 마법이랑은 호환되지 않아요."

"얼씨구 씨벌. 가지가지 하네... 하지만, 납득은 되는군."

 

'시간이 되돌아가듯 회복' 되고 있길래 뭔가 했더니, 그런 내막이 있었군...아니, 지금은 그걸 따질때가 아니지. 이대로라면 파츄리는 확실하게 죽는다. 마녀는 불로지만, 불사는 아니니까.

하지만, 아주 방법이 없는건 아니다. 내가 파츄리의 몸 상태를 실시간으로 알 수 있는 상태이기에 더 확신할 수 있다. 술식은 약하지만 아직 발동되고 있다. 억지로 이 술식을 활성화 시키면, 그녀를 살릴 수 있을 터.

그리고, 그 활성화 방법이라는건...

 

 - 짜악!

 

"일어나 씨발! 잠들면 죽어!"

"에에에에!?"

"씨발 농담아니고 진짜 죽는다고! 일어나!"

 

- 짜악! 짜악!

 

파츄리의 얼굴에 왕복 싸대기를 갈기며, 그녀의 의식의 각성을 강제한다. 의식을 차리면, 자연적으로 술식은 활성화 될테니까. 문제는...

 

"씨...씨벌, 안 일어나네."

"파츄리님한테 무슨 짓이에요!"

 

- 빠아악!!

 

"크헉."

 

정수리에 박히는 묵직한 감각에 고개를 돌려보니, 소악마가 당황한 표정으로 다시 그 손에 든 하드커버 마도서를 들고 내 머리를 내려찍으려고 하고 있었다.

 

"아니, 잠깐만! 얘 의식만 돌아오면 되는거라고!"

"마력 부족으로 기절한거면 그런걸론 쉽게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단 말이에요!"

"리얼?"

"진짜에요!"

"좆됐네."

 

이러면 방법이 없는데. 마력이 부족하면 의식 각성도 힘든건가... 몰랐던 사실이네. 마력, 마력이라... 뭔가 이능을 쓸 수 있긴 하지만, 그 힘의 원천에 대해선 전혀 이해를 못했단 말이지. '기'는 어떻게든 이해했는데 말이지... 그, 방식이 좀... 쩝. 이러면 어쩔 수 없나. 똑같은 방법을 쓸 수 밖에.

 

"악마 아가씨, 혹시 손에 마력을 깃들게 할 수 있다거나, 그런거 있어?"

"이, 일단은 되는데요."

"팔 힘은 어느정도? 예를 들어서, 정권으로 사람 몸 정도는 뚫나? 이상한 질문이긴 하지만."

"뭐, 뭔가요. 대체."

"됐으니까 빨리."

"...당연히 마족이니까, 그정도 힘은 가지고 있어요. 거기에 근력이 없으면 이 도서관에서 일 하기도 힘들구요."

"그거 잘됐군."

 

파츄리의 몸을 살며시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소악마를 향해 양팔을 벌린다.

 

"손에 마력을 담아서, 그대로 내 몸을 꿰뚫어줘."

"에잇!"

"커억! 행동력의 화신!"

 

- 푸우욱!!

 

에잇! 이라는 귀여운 목소리와는 다르게, 그녀의 팔은 흉조가 되어 그대로 내 복부를 꿰뚫는다. 그리고, 흘러들어오는 무언가.

...아, 이게 마력이구나. 내 온 몸에 넘치는 이 힘 같은게 뭔가 했더니. 이게 마력이었군. 좋아, 이해했다.

 

"땡큐. 손 좀 빼줄래?"

"아, 네... 그, 근데. 괜찮아요?"

"...일말의 딜레이도 없이 복부에 스트레이트를 클린하게 박아놓고 그런 말 하는거야? 뭐, 괜찮아."

 

여전히 걱정스러운 기색을 내게 비치는 소악마. 아니, 그렇게 노딜레이로 사람 배를 꿰뚫어놓고 미안해 하는 거, 아무리 그래도 좀 이상하지 않아?

배쪽을 내려다보니, 복부의 상처는 순식간에 아물어 있었다. 옷이야 진작에 엉망진창이니까 상관 없긴 하지만... 배쪽에 구멍만 두개 뚫려 있는거 보니 좀 그렇긴 하네. 패션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세기말이군.

아, 중요한건 그게 아니고. 목적 달성부터 우선하자.

 

"간다."

 

누워 있는 파츄리의 양 손을 모아 잡고, 그 손으로부터 마력을 흘려넣는다. 어떤 감각이냐면 그... 뭐라고 해야하나. 좋아하는 노래를 들을때 나타나는 소름이 돋는 그 감각을 손에 집중시켜서 파츄리에게 전달한다는 느낌이려나. 좀 저릿저릿하군. 근데 이거, 얼마나 흘려보내야 치유 마법이 강제로 시동되는거지? 열심히 흘려보내고 있긴 한데...

 

"으윽..."

"파츄리님!"

"오, 슬슬 시동이 걸리는구만."

 

그녀의 회복 마법이 재활성화 되는 게 느껴진다. 일단 다 회복될떄까지는 마력을 보내줘볼까. 그나저나, 내가 마력의 양 같은건 잘 몰라서 그런데 이거 나는 괜찮은건가? 꽤 많은 양을 "보내고 있는거 같은데... 물로 치자면 한 30L 정도는 흘려 보낸거 같다. 어디까지나 감각의 영역이지만.

 

"그나저나,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마도서한테 공격 당하고 있었던거야? 실수로 이렇게까진 되진 않을거 아녀?"

"마도서가 멋대로 움직이기 전에, 검은 기운이 마도서에 흘러 들어가는걸 봤어요. 처음엔 먼지 같은건줄 알았는데... 그리고 그 뒤론 이렇게..."

"또 검은 기운인가. 하아..."

 

이제 홍마관에서 내가 목격하지 못한 애들은 둘. 레밀리아와 플랑도르. 레밀리아는 애시당초 붉은 안개를 살포하고 있으니 100% 검은 안개에 당한 상태일거고, 플랑도르도 갑자기 사쿠야를 공격한걸 봐서 그쪽도 동일하겠지. 그나마 파츄리쪽은 책만 불태우면 되는거였으니 다행인가...

...가만. 뭔가 이상하다. 마력을 이해해서 그런가? 마력의 흐름이라는게 어렴풋이 보이는데... 이 흐름, 자연적이라고 보기가 어렵다. 마치, 한 곳에 모이는 듯한...

 

"내가 마법을 잘 몰라서 그러는데, 마도서가 이렇게 멋대로 움직이는거, 정상이야?"

"네? 아... 간단한 마법이 부여된 마도서라면,. 마력을 부여하는 것 만으로도 어느정도 움직일 수는 있어요. 멋대로 움직이던 마도서들도 전부 기초 공격 마법이었거든요."

"복잡한 마법은?"

"이론상으론 원격 제어가 가능하긴 하지만... 제어도 어려운데다가, 애시당초 원격 제어라는건 마력량이 통상의 몇배는 더 들어요. 그래서 애시당초 마도서의 원격 제어의 기본은 간단한 마법이 담긴 마도서에 마력을 미리 부여하고, 타이밍 맞게 원격 조작 명령만 내리는 형태죠."

"반대로 말하면, 제어가 되고 마력량만 충분하다면 가능하단 이야기겠군. 그렇지, 예를 들면... 그 마법은 딱 시동할때까지의 마력만 있으면 될거야. 그 뒤론 멋대로 무한동력이겠지."

"아까부터 무슨 말을..."

"파츄리의 연구 중에, 혹시 마계와의 바이패스를 연결하는 마법이 있지 않았어? 아마 마력을 마계에서 직접 끌어오기 위한 목적이었던걸로 기억하는데."

"...!? 그걸 어떻게?"

"어떻게고 자시고, 그거 때문에 한번 죽었는걸. 슬슬 온다. 준비해."

"뭐가 온다는... 이, 이건!?"

"뭐든 붙잡아!"

 

이제서야 마력의 이상을 눈치챈 소악마가 깜짝 놀라며 커다란 책장을 붙들고, 나는 파츄리 위에 감싸듯이 엎어진 채, 기를 이용해 땅에 달라 붙는다. 그리고 그 직후,

 

- 쿠우우우웅!!!

 

마력의 분류는 커다란 충격파가 되어, 주변의 모든 것을 날려버린다. 나는 어떻게든 버텼지만, 소악마는... 날아가진 않았지만 충격으로 기절했군. 이정도로 마력의 흐름이 이상했는데도 알아채는게 너무 늦잖아, 소악마 녀석. 하급 악마라 그런걸까? ...그나저나, 귀찮은 일이 벌어진 것 같은데.

 

"저건 또 뭐야 씨발."

 

도서관의 가장 안쪽. 주위의 책장은 모두 어디론가 날아가거나 잔해가 되어 사라져 있고, 거기에는 그 높던 책장들 보다 조금 더 큰 크기를 지닌, 인간 형태의 무언가가 있었다. 인간 형태...? 아니, 정확하겐 인간 형태는 아니다. 동체에 비해 팔과 다리가 지나치게 크고, 머리는 거의 없다. 게임에서 본 '골렘'의 모습이 딱 저런 모습이었는데.

그리고 그 골렘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수많은 마도서들. 멀어서 잘은 안보이지만, 골렘이 조금씩 움직일때마다 마도서들도 유기적으로 움직인다. 단순히 몸을 구성하는 것만은 아닐테고, 마도서에 써져 있는 마법도 쓸 수 있을 거라 가정하고 움직이는게 좋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아까전의 충격파 이후론 저쪽에서 움직일 기미를 보이질 않는다. 오히려 그게 더 기분 나쁘지만. 어떻게 되어가는거야?

 

"...좋지, 않은걸."

 

그때, 힘겨워하는 목소리와 함께 파츄리가 약한 힘으로 나를 밀어낸다. 그러고보니 충격파 때문에 몸으로 덮어서 막았었지.

 

"일어나도 되는거야?"

"덕분에. 강제로 마력을 쏟아부어지는 바람에 뺨을 한 다섯대는 맞은 기분이야."

"....."

 

다행이다. 실제로 때린 부분은 정신을 잃어서 기억에 없나봐.

 

"그보다 저건 대체 뭐야? 저 마도서, 저런 기능도 있어?"

"그럴리가. 무언가 다른게 덮어씌워진 모양이네... 근데, 저 마도서를 알아?"

"모를리가 있겠냐. 저거 때문에 뒤졌는데. 그리고 저 마도서에 대해선 네가 말해준거잖아?"

"뭐?"

 

여태까지 본 것 중에 가장 크게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보는 파츄리.

 

"설마, 너..."

"아, 잠깐만. 그거 하기 전에 일단 마도서 골렘이나 어떻게든 하자고. 왜 저거 멈춘거야?"

"...멈춘 이유는 아마 '마법을 이해하기 위해'. 자기 몸을 구성하고 있는 마도서를 전부 읽어들일 생각인가보네."

"그게 가능한거야?"

"저기 있는 책들은 대부분 내가 집필한거야. 분량 자체는 많으니 시간은 조금 걸리겠지만, 그래봐야 마녀 한명이 집필한 양. 그렇게 오래 발을 묶진 못하겠지. 그보다, 저 마도서의 모든 내용을 사용할 수 있게 되는게 더 문제."

"허어."

 

즉, 지금은 로딩 중이라서 못 움직이고 있는거란 말이지? 그럼 지금이 오히려 찬스 아닌가? 렉럴렸을때 치는게 국룰 아님?

 

"그럼 지금 공격하는게..."

"그게 이상적이긴 하겠지만, 어설프게 마도서 분석을 끊고 공격 태세에 들어가면 더 위험할거야. 거기에 이 마력량... 저쪽은 마계와 이어져 있어. 공격을 시작한다면, 끝을 볼때까지 멈추지 않겠지."

"흐음. 그럼 공격 태세에 들어가기 전에, 일격으로 핵을 박살내면 된다는거지?"

"그게 베스트긴 해. 그리고 핵이 되는 저 마도서는 꽤 정교한 물건이라, 페이지의 내용이 조금만 소실 되어도 기능을 상실할테니, 저 마도서의 중심에 연필만한 구멍을 뚫는 것 만으로 충분할꺼야. 하지만..."

"그렇게 쉬워보이진 않네."

 

여전히 멈춰 있는 마도서 골렘은 그 핵을 두 팔로 감싸고 있다. 거기에, 얼핏얼핏 보이는 중심지엔 아까 파츄리를 지키던 마력장벽이 몇겹이나 쳐져 있었다. 적어도 12장. 저걸 한방에 뚫으라고?

 

"그렇게 쉬워보이지 않는게 아니라, 불가능한거야."

"그럼 뭐 어째. 뒤지라고?"

"그건... 플랑의 능력이 있다면 어떻게든 될 것 같긴 한데."

"아, 그건 안돼. 걔 지금 불안정한 것 같더라. 사쿠야가 공격 당했어."

"사쿠야가?...곤란하게 됐네."

"그럼 셈이지. 파츄리, 그나마 통할 것 같은 마법은 어떤게 있어?"

"...일단 관통력이 가장 높은건 사일런트 셀레나. 바깥 세계의 책에 빗대자면, 빔 병기려나. 하지만 파괴력은 약해."

"사일런트 셀레나라."

 

분명, 자기 중심을 기준으로 원형으로 빛의 화살을 쏘아올려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스킬이었지. 그 스펠 자체는 지금 쓰기엔 엄청 어려워 보이지만...

 

"그거, 하나의 마법을 '피할 수 있는 스펠카드'로 엮은거지? 근본이 되는 마법, 보여줘."

"어째서 아는거... 아니, 중요한건 그게 아니겠네. 이런 느낌이야."

 

의문은 잠깐 접어두고, 파츄리는 허공에 빠르게 마법진을 그려 마도서 골렘과는 정 반대 방향으로 마법을 사출한다. 마법진 중앙에서부터, 흰 빛의 화살이 쏘아지는 마법. 확실히, 건○에서 나올 것 같은 빔 병기와 살짝 비슷한 테이스트가 느껴진다. 그보다...

 

"이거, 마법을 모을 수도 있나보네?"

 

파츄리가 마법진을 그린걸 봐서일까, 아까전 파츄리가 쓴 마법의 구조가 직감으로 이해된다. 마력을 볼 수 있게 된 영향일지도. 어느쪽이던... 마법을 모으는데에는 이론상으론 한도가 없는 모양이다.

 

"그렇긴 한데... 아무리 모아도, 한도가 정해져 있어서 네가 노리는 그림은 나오지 않을거라 생각하는데."

"한도? 없어보이는데..."

"겉보기에는. 하지만 모으면 모을 수록 제어가 어려워. 그래서 적당히 모아서 연발로 쏘는게 가장 효율적."

"흠."

 

확실히 구조상, 겹쳐서 시전하면 마력의 제어가 점점 어려워지는 형태다. 약간 나뭇가지 하나는 쉽게 휘어지게 할 수는 있지만, 여러개의 나뭇가지를 동시에 잡고 한꺼번에 휘게 하기는 어렵다는 느낌일까... 그러고보니 이 마법, '범위가 커질 수록' 제어가 어려운 형태네. 즉, 애시당초에 효과 범위를 극단적으로 낮게 설정하면, 겹치기 쉬운거 아닐까?

 

"파츄리, 보통 사용되는 한계는 몇개정도야?"

"5개. 그렇게 강하진 않지만, 유의미한 수준의 파괴력은 나오지."

"그럼 저 마도서 골렘의 핵을 공격하려면 몇개정도 겹쳐야 하는거야?"

"어디까지나 이론상으론, 150번은 겹쳐야할지도."

"...그렇게나 많이?"

"내 마법방벽이 저기에 몇개나 쳐져 있다고 생각해? 아무리 달의 마법이 관통력이 높다곤 해도, 15겹 이상이나 마법방벽이 쳐져 있는걸 한번에 깰려면 그정도는 되어야 해. 물론, 어디까지나 이론적이지만."

"하기사, 그런가."

 

뭐, 시도는 해봐야겠지. 저 마도서 골렘이 로딩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만큼, 행동은 빨라야한다.

...그나저나, 제대로 된 마법을 쓰는건 이번이 처음일지도 모르겠네. 여태까지 비슷한 무언가는 계속 써온 느낌이지만, '마력을 이해하고 운용하는' 마법을 사용하는건 처음이다.

그러고보면, 신키 말로는... 마법을 쓰면 닫혀 있던 마법 회로가 열려서 불로불사가 된다고 했던가. 즉, 이걸 쓰게 되면 돌이킬 수 없는 무언가가 되버릴 수도 있다는 뜻인데....근데 생각해보면 이미 비스무리한 무언가가 된 상태라 크게 달라지진 않을거 같네.

 

"가볼까."

 

'마법을 쓴다' 라고 생각함과 동시에, 온몸에 기와는 다른 힘이 흘러 넘치기 시작한다. 마치 엄청 좋은 노래를 들었을때 온몸에 소름이 돋아오는 것과 비슷한 감각. 과연, 이게 '마력회로가 열리는 감각'인가. 그리고, 머리속에서 짜여지기 시작하는 마법 술식. 사일런트 셀레나의 초석이 되는 마법, 루나 레이. 하지만 그 면적을 일부러 줄임으로써, 겹치는데에 드는 부담을 경감한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좋아, 상정했던 것보다 마법을 모으는데에 부담이 적다. 하지만, 위력의 방향성을 완전히 동일하게 엮으려면 하나씩 준비해야하는군. 괜히 서두르다가 시간 낭비하는 것보단 낫겠지만... 하지만 완성만 한다면. 한번이라도 완성 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나저나, 꽤나 따분한 작업이군. 약간, 감각으로 따지면 엑셀 프로그램으로 반복해서 특정한 서식을 작성한다는 느낌이다. 중간중간에 공정을 단축하고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노가다 느낌이라 영 흥이 살지를 않네. 여러개의 마법을 섞는 작업이었다면 꽤 즐거웠을 것 같은 예상이 들기는 하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는 없고.

반대로 말하자면 정신적으로 여유가 없는건 아니다. 보통, 이런 노가다 작업에는 항상 따라오는 무언가가 있는 법이지. 그게 뭔지 아나?

노동요다.

 

 

 

 

 

 

 

 

 

 

 

 

 

 

 

 

 

 

절망. 이 한마디가 지금의 상황을 표현하기에 완벽한 말이라고, 파츄리는 생각했다.

 

치유가 되었다고는 하나 복부에 구멍이 뚫려 기력이 크게 떨어진 상태인데다가, 상대는 마력을 마계로부터 무한히 끌어오고 있는 괴물. 핵의 내구도가 낮다고는 하지만, '저것'은 그녀의 마도서를 전부 끌어다가 이해하려고 하고 있다. 어찌보면 의외일 수도 있겠지만, 그녀가 집필한 마도서 중에는 오행, 즉 화수목금토 의 마법 뿐만 아니라 속성을 지니지 않은 방어용 결계, 해주 마법, 약하긴 하지만 반사 마법 등 다양한 종류의 것들도 있다. 어디까지나 오행 마법은 전문분야일 뿐, 나머지 공부를 게을리 해서야 마녀라고 자칭할 순 없는 법.

 

그런 그녀의 마법을 전부 구사할 수 있고, 마력이 무한이니 출력도 압도적일 저 마도서 골렘을 상대로,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정말로 있는걸까? 게다가 외부의 도움을 바랄 수도 없다. 그녀를 찾아온 '우이' 라는 이름의 여자의 말에 따르면, 이지만.

결국, 이 상황을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파츄리 앞에 선 이 여자, '우이'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그런 그녀는 지금...

 

"~~~♪"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고, 느긋하게 휘파람이나 불고 있었다. 잘 들어보면, 휘파람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 같지만 파츄리는 모르는 노래이다. 휘파람 자체는 그렇게 못 부는 편이 아닌 듯하지만... 애시당초, 왜 이 상황에서 휘파람? 상황이 절망적이라는걸 깨닫고, 자포자기가 된 걸까?

 

"잠깐,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

 

짜증섞인 목소리로 파츄리가 우이의 팔을 붙들려고 하다가, 무언가를 느끼고 당황하여 뒤로 물러난다. 그녀의 팔을 붙들려고 뻗은 손이 저릿저릿했다. 파츄리는 이 감각이 어떤 감각인지 알고 있었다. 마력. 마력의 밀도가 높은 무언가에 손을 대면, 이렇게 저릿한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주로 마법진 등에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다. 그리고, 파츄리는 무언가를 깨닫는다.

 

"...설마, 휘파람으로 마법진을 구축하고 있는거야?"

 

소리로 마법을 구성? 들어본 적도 없는 이야기다. 물론 소리가 마력을 띄는 경우는 충분히 있다. 주로 소령(騒霊)이 자아내는 음색이나, 밤참새의 노랫소리 등에서 볼 수 있는 현상. 이쪽은 정확하겐 요력이지만... 하지만, 소리로 마법을 구성하다니? 하지만 이론상이라면 가능하다. 다만 생각치도 못한 발상이다. 파츄리는, 간만에 호기심에 눈을 크게 떴다. 그녀의 그런 모습은, 마리사가 처음으로 별의 마법을 그녀 앞에서 선보였을때 이후 처음이었다.

 

그리고, 이윽고 휘파람은 멎고.

 

- 파직! 파지직!

 

우이의 머리 위에는, 은색으로 빛나는 거대한 구체가 떠 있었다.

 

 

 

 

 

 

 

 

 

 

 

 

 

"여윽시 노동요야. 일이 금방 끝나는구만."

 

머리 위에 뜬 거대한 구체를 보며 옛 현인들의 지혜에 이마를 탁 치며 감탄한다. 스펠은 완성되었다. 루나 레이를 한번에 150겹 겹쳐, 그 위력을 극대화 한 마법. 그리고, 이걸... 어디보자. 그걸 어디다 뒀더라. 아, 찾았다. 양복 오른쪽 주머니에 있어서 다행히 안찢어졌네. 스펠카드.

 

요 스펠카드라는게 뭐냐 하면, 만들어둔 마법이나 동작을 '저장' 할 수 있는 기능이 있는 카드다. 환상향에선 이 '스펠카드'를 가지고 탄막 승부를 벌인다나 뭐라나. 다만, 이 압도적으로 편리한 기능 때문인지 탄막 승부 중에 사용 가능한 횟수는 정하고 들어간다고 한다. 마력도 그대로 먹고, 행동에 드는 체력도 그대로인데다가, 저장된 마법을 다시 발동할 뿐인, 수정도 불가능한 일종의 매크로 같은 물건이긴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유용하겠지. 으음. 코이시가 준걸 받아두길 잘했군. 이런 일에 쓰게 될 줄이야.

 

"아...음... 시동어가 뭐였더라. 아, 그거지 참. [스펠카드 명명]!"

 

내가 시동어를 외치자, 바닥에 결계가 쳐지고 은은하게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마법진이 아니라 결계가 쳐진건 정식적인 배부처는 하쿠레이 신사라서 그런걸까. 이름이라. 그러고보니 이름을 생각을 안했네. 어디보자, 원천이 되는 마법은 루나 레이지? 그러고보니 아까전에 휘파람으로 부른 노래, 모 리듬게임의 간판급 노래였는데... 생각해보니 그거 제목이 스펠명으로 딱이겠군.

 

"월부 [엔드 오브 더 문라이트]!"

 

내가 이름을 외치자, 번쩍! 하고 결계가 빛나더니 이내 사그라 들어 사라진다. 덤으로, 아까 머리 위에 시전 했던 마법도 사라져 있었다. 문득 스펠카드를 들어보니, 카드에 아까의 마법이 그려진 카드가 느릿느릿하게 현상되고 있었다. 휘적휘적 흔들어보니 어째선지 현상이 빨리되는군. 폴라로이드 카메라 같은건가?

 

"자, 이걸로 준비는 끝났고."

"스펠카드... 그렇구나. 지금같은 상황에선 스펠카드를 몇번이나 쓴다 한들..."

"문제가 되진 않을거란 이야기지. 문제가 된다고 하면 레이무랑 막고라 뜨지 뭐. 내가 지겠지만."

 

솔직히 죽일 기세로 달려드는 레이무는 이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능력도 능력인데, 솔직히 그냥 무서워...

 

"다녀올께. 왠만하면 방어결계 쓰고 버텨봐."

"뭐? 기습 하려던게 아니었어?"

"뭐, 만에 하나라는게 있잖아? 지금은 그것보단 확률이 높을 것 같지만."

 

어깨를 으쓱여보이고, 파츄리의 곁에서 벗어나 빠르게 마도서 골렘을 향해 돌아 들어간다. 저것이 적대적인 존재를 어떻게 색적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뭐, 이렇게 돌아들어가는게 유효한 방법이라고 믿는 수 밖에.

엔드 오브 문라이트의 기초가 되는 '루나 레이'의 유효 사거리는 15m 언저리. 뭉쳐서 파워업을 시켰기 때문에, 한 50m 까지는 사거리가 늘어났다고 믿고 싶지만, 이것만큼은 쏴보지 않으면 모른다.

으음, 색적 하니까 갑자기 생각난건데 코이시는 자동 방범 장치 같은것에 노출이 될까? 예를 들어 적외선 탐지기라던가. 코이시의 능력은 어디까지나 의식을 가진 존재에게서부터 자신의 존재를 지움으로써 그 모습을 숨기는 것. 의식이 존재하지 않는 기계는 속일 수 없는게 아닐까? 아니면, 데이터로써는 남지만 이 데이터 자체가 열람하는 인간의 인지를 조종하여 안보이는 것 처럼 만드는걸까. 그, 말하자면 길디 긴 코드에 사라진 하나의 중괄호처럼 에러만을 일으키는 무언가가 되는걸까?

 

라는 잡생각을 하는 사이에, 유효 사정 거리로 추정되는 거리까지 다가갈 수 있었다. 마도서 골렘의 후면. 말하자면 아슬아슬하게 백어택 판정을 얻을 수 있는 느낌의 각도다. 이 각도라면 골렘의 팔에 막히지 않고 정확하게 핵을 노리고 쏠 수 있다. 아직 마도서를 읽어오는 중이라 그런지, 아니면 나도 모르는 새에 어떻게 인지의 포위망을 피해서 들어온건지 골렘은 날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 자, 그럼.

 

"노리는 곳은 핵. 월부..."

 

스펠카드를 들고 스펠을 선언하려는 그 순간.

 

- 피비비비비비빙!!!

 

"이게 뭔 씹..."

 

골렘을 중심으로, 수십겹의 마력 방벽이 쳐진다. 세기도 어려울 정도고 겹쳐 있어서, 정확하게 몇개인지 파악도 안된다. 젠장, 스펠을 발동 시킬 때 사용되는 적대적인 마력을 감지 당한건가? 하지만, 이제와서 무를 순 없다. 방벽이 여러개라면, 이쪽도 여러번 공격하면 장땡이 아닐까? 이제 와서 무를 수는 없다. 각오를 다지자. 각오가 길을 열어줄테니.

 

"엔드 오브 문라이트!"

 

- 파지지직!!!

 

스펠카드가 발동되고, 나의 머리 위엔 은색으로 빛나는 거대한 구체가 생성된다. 그리고...

 

"응?"

 

...아무 일도 없었다. 잠만, 뭔가 잘못 된거 같은데.

 

"아아아~ 씨발. 맞다!"

 

그러고보니 방향 지정이 안된채로 스펠카드로 저장시켰구나. 그럼 평범하게 루나 레이를 몇겹이고 겹쳐놓은 구체만이 만들어 진 셈이잖아? 좆됐네. 하지만 이 구체 자체의 제어권은 아직 내게 있으니 쏠려면 쏠 수는 있는데 말이지. 으음, 이건 일단 스펠카드로썬 실패작이군. 다만, 아직 쓸모는 있다. 안그래도 한발만으로 충분할까 걱정하고 있었던 참인데, 이렇게 된 이상 응용이다. 스펠카드 자체는 한번 선언한 뒤로는, 다음 스펠을 선언하거나 스펠 브레이크가 되기 전까진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기술을 사용 할 수 있으니, 이 법칙을 응용한다.. 

 

"♪~♬~"

 

엔드 오브 더 문라이트를 휘파람으로 흥얼거리며, 고속으로 마도서 골렘의 주변을 종횡무진 이동하며 엔드 오브 더 문라이트의 마력구를 설치한다. 그 어느 각도에서도 맞을 수 있도록, 최대한 촘촘히, 그리고 신중하게 설치한다. 만약에 반사결계가 있어서 빔이 튕겨나갔을때, 최소한 파츄리 쪽으론 날아가지 않도록. 그리고, 왠만하면 지들끼리 맞았을때 상쇄되어 사라질 수 있도록. 파괴력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이다보니, 이게 벽너머의 누구에게 맞으면 좀 곤란하다. 적어도, 마도서 골렘이 행동을 개시하기 아슬아슬한 타이밍까진...!

 

- 쿠르르르르...!

 

에라이 씨발, 생각하자마자 움직이기 시작하네. 그래도 얼추 90개는 깔았다. 이걸로 충분하면 좋으련만. 조금만 더 깔아야 할까?

 

"아니, 한계다! 누를거다! 지금이다!!!"

 

- 삐융, 파바바바바바바바박!!!!!

 

90개의 엔드 오브 더 문라이트의 마력구에서 빔이 사출되어, 일제히 마도서 골렘을 향해 날아간다. 선글라스가 없으면 실명할 수준으로 엄청난 빛이 발산되지만, 내 몸의 눈은 금방 적응하여 마도서 골렘을 포착한다. 마도서 골렘 주변을 막고 있던 결계 중엔 다행히 반사 결계는 없었는지, 혹은 저정도 밀도의 마력포는 반사할 수 없었는지 죄다 박살나, 그대로 마도서 골렘의 핵을 일점사한다. 그 충격으로, 골렘을 구성하고 있던 마도서들은 여기저기로 펑- 하고 흩어진다. 장관이구만.

 

"해...해치웠나?...앗."

 

젠장, 이놈의 입이. 갑자기 뭔 부활 플래그여. 아무리 그래도 책 자체는 약하다고 파츄리가 이야기 했으니까, 이걸 버틸 수 있을리가 없지.

 

- 파아아앙!

 

그때, 마도서에서 3쌍의 이형의 날개가 펼쳐지고, 그와 동시에 펼쳐진 장벽에 엔드 오브 더 문라이트의 마력구를 죄다 지워버린다. 내 몸에도 닿았지만, 몸에 딱히 이상은 없다. 디스펠 매직 같은건가? 거기에 저 날개... 분명, 신키의 날개. 하지만 신키 본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대체 무슨...?

 

[아아... 앨리스... 내 귀여운 딸... 어디니...?]

 

"진짜로 이게 뭔 씹."

 

들려오는 목소리는 분명히 신키의 목소리다. 하지만, 탁하고... 뭐라고 해야할까. 보이스웨어의 목소리를 듣는 듯한 불쾌함이 있다. 합성된 목소리...? 신키 본체는 아니라는건가?

 

- 저건 사념이네.

 

그때, 머리속에 들려오는 목소리. 파츄리냐?

 

- 에에. 문헌에서 본 적 있는 마계신의 날개... 그리고 이 목소리... 믿긴 어렵지만, 저런 마계신 신키의 사념일거야. 조심해.

 

신의 사념인데 그냥 '조심해' 하나로 정리해도 될 정도의 위험도야?

 

- 원래라면 절망적인 상황이니 유언이나 말하고 있었겠지만... 아까전의 너의 모습을 보고 생각을 바꿨어. 너라면 저걸 어떻게든 할 수 있을거야. 같은 괴물이니까.

 

사람을 괴물 취급하다니... 뭐, 아마 크게 다르진 않을 거 같긴 한데. 공략법 같은건 있어?

 

- 저런게 현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마계와의 바이패스가 아직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야. 그걸 끊을 수만 있다면.

 

어떻게 하는건데?

 

- ...몰라.

 

얌마.

 

- 아무리 그래도 지나치게 상정 외의 상황인걸. 그보다 왜 갑자기 신키의 사념이 나오는거야?

 

애시당초 저 마도서에 연결된 바이패스 통로는 신키가 일부러 놔둔거니까. 저 책을 통해 앨리스랑 만나려고 한거라구.

 

- 처음 듣는 이야긴데.

 

당연하지. 처음하는 이야기니까. 애시당초 저런 남의 세계에 빨대 꽂는 기술을 아무런 의도도 없이 허가할리가 없잖아?

 

- 으...

 

뭐, 어찌됐던 바이패스를 끊으면 된다는거였지. 생각해보니 어떻게든 될거 같아.

 

- 뭐?

 

처음부터 저쪽이 나한테 해답을 준 셈이니까. 보고나 있으라고.

 

자, 여기서부터가 중요하다. 저게 반응을 하기 전, 단 한순간에 모든 일을 끝내야한다. 그렇기 위해선, 두가지 공정이 필요하다. 하나, 존나 빠르게 움직이는 것. 그렇기 위해선.

 

"또, 이 기의 힘이 필요하겠네◆"

 

다리에 기를 집중하여, 탄성을 부여한다. 최대탄성에... 이번엔 좀 많이 땡겨야겠군. 한 여셧걸음 정도는 뒤로 가야겠다.

 

그리고, '디스펠'. 아까전에 저것이 방출한 디스펠 매직을 온몸으로 맞은 덕에, 사용법은 확실하게 이해했다. 그리고 바이패스의 경로 또한 이미 머리속에 들어 있다. 죽었다 깨어난 그때, 데이터로써 저장되어 있었으니까. 그 이후에 따로 마도서를 건들지 않았다면 경로는 그대로일터. 여기서부터가 좀 성가신게, 이 디스펠 매직을 확실하게 발동시키기 위해선 마도서를 직접 잡아, 손을 통해 디스펠 매직을 저 마도서에 직접 흘려넣어야한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이걸 눈치채지 못하게 한순간에 저지르기 위해선, 디스펠 매직 마법의 시전이 끝난 시점에 곧바로 발동시켜야한다. 타이밍, 각도, 그리고 운의 영역이다.

 

"후... 도박인가."

 

일단 제어 가능한 부분은 전부 다 제어했다. 스펠 발동 시간, 탄성으로 날아가 마도서에 도달하는 시간과 각도. 마도서가 갑자기 움직일 수도 있고, 내게 공격을 가할 수도 있다. 이것만큼은 상대의 능력이 미지수인만큼 절대 확신할 수 없는 영역. 하지만... 할 수 밖에 없지.

 

"간다... 최대탄성, 여섯걸음."

 

 

 

 

 

 

 

 

 

 

 

 

 

 

 

 

 

 

 

 

승부는 한순간이었다.

 

사라졌다고 생각한 우이는 어느샌가 마도서에 도달하여 있었고, 그녀의 손바닥이 마도서에 닿자마자 휘황찬란한 빛이 일며 마도서에 담긴 사념을 지워냈다. 무너져내리는 마계신의 날개, 그리고 마력을 잃고 바닥에 툭 하고 떨어지는 마도서. 마계와의 바이패스로 인해 주위에 충만하던 마력은 온데간데 없고, 그저 정적과 파괴의 흔적만이 도서관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말도 안돼."

 

파츄리 널리지는 전율했다. 분명 그녀는 우이에게 '바이패스의 연결을 끊으면 된다'라고 말은 했다. 하지만 그런게 절대 가능할리가 없었다. 그런걸 가능케하는 방법이 있을거라곤 상상하지도 못했다. 가능하더라도, 저렇게 깔끔하게 해내리라고는 생각치도 못했다.

파츄리 널리지는 생각했다. 대체 눈 앞에 있는 저것은 무엇인가? 사실은 저것이 내게 적대적이라면? 지금은 비상사태. 스펠 카드 룰 같은건 의미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니, 눈 앞이 흔들리고 기분이 급격하게 나빠졌다. 몸이 아래로 쏠리는 감각을 느끼는 파츄리였지만, 그것을 누군가가 받친다.

 

"어이쿠, 괜찮냐? 상처는... 대충 아문거 같은데."

"......너, 대체 뭐야?"

"말투 보소. 걱정해주는 사람한테 너무한거 아냐?"

 

삐진듯이 불만스러운 말투로 답변하는 우이. 그녀는 파츄리의 몸을 일으켜 근처 의자에 앉힌 뒤, 자신도 의자에 앉는다.

 

"좀 정리가 됐으니까 다시 한번 자기 소개. 내 이름은 우이. 아까전의 저 마도서 때문에 죽어버린 이 집 고용...예정자. 라고 하면 알려나?"

"....그때의 그 남자? 네가?"

"뭐, 그런 눈빛으로 보는 것도 당연하겠지. 나도 거울 보면 깜짝깜짝 놀라는걸. 저 마도서, 앨리스 마가트로이드랑 공동작업?"

"맞아."

"역시... 덕분에 난 이 모양 이 꼴이라는 이야기로군."

 

뭐, 나름 만족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하고, 어깨를 으쓱이는 우이. 그러고서 그녀는, 아까전에 슬쩍슬쩍 이야기를 했었던 모든 일의 전말을 이야기 했다. 마도서에 의해 사망 직후 혼만이 마계로 도착한 일, 신키에 의해 전생한 일, 그리고 이곳까지 도달하기 까지의 일을.

거기까지 이야기를 듣던 파츄리는 잠시 생각하더니, 손가락을 튕겼다.

 

"소악마, 전에 준비했던 옷. 가져와."

"네? 그, 신입한테 줄 옷 말씀하시는건가요?"

"그래. 분명 어째선지 내 방에 있었지. 가져와줘."

"알겠습니다."

 

고개를 숙이곤, 어디론가 향하는 소악마. 그런 그녀를 보며 우이는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신입한테 줄 옷... 혹시?"

"맞아. 원래라면 너한테 줄 옷이었지. 사쿠야는 원래 너한테 여기 일을 시키려고 했었어. 한동안 네가 죽었던걸 레미는 몰랐으니까, 복장을 준비하라고 지시했었고... 그때 사쿠야의 곤란해 하던 표정이란..."

 

그때를 떠올리며 쓰게 웃는 파츄리.

 

"그런데 옷은 갑자기 왜?"

"갑자기라니. 그런 옷을 입고 레미한테 찾아갈 생각이었어? 아무리 그래도 고용주한테 실례잖아."

"고용주라니, 이제와서 무슨..."

"농담이야. 여기서 일하라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지금 줄 옷은 지금부터 일어날 일에 어느정도 도움이 될거 같아서 말야."

"옷이...?"

"여기 가져왔어요!"

 

헐레벌떡 뛰어오는 소악마의 손에 들려 있는건 고급스러운 슈트케이스였다. 왠지 모르게 안에 돈이 한가득 들어 있을것 같은 인상의 그 가방을 우이가 열어보자, 거기엔 꽤 잘 빠진 집사복이 들어 있었다.

 

"이건... 평범한 옷은 아닌 모양이네."

"맞아. 내가 할말은 아니지만 여기 마법도서관은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바깥세계의 인간에겐 다소 위험한 곳이지. 그 집사복은 도서관의 위협에서부터 어느정도 너를 보호시키기 위해 주문제작한 옷이야."

"입어봐도?"

"물론."

 

파츄리가 손가락을 튕기자, 우이의 머리 위로부터 커튼이 스르르 흘러나와 그녀의 주변을 가린다. 간이 드레스룸 같은걸까.. 뭔가 주섬주섬 옷을 입는 소리가 들리더니, 옷을 다 입은 우이가 커튼을 들추고 나타난다.

검은색 슈트에, 하얀 셔츠. 붉은색 넥타이가 인상적인 그야말로 판에 박힌 집사복이었다.

 

"...생각해보니 평소에 입던 양복이랑 크게 다르지 않네."

"어울리는걸. 당장 일해도 되겠어."

"이 소동이 끝나면 그러지. 원래라면 여기서 일할 예정이었으니까."

"그보다, 어때? 옷은."

"마법에 대한 저항이 어느정도 있나보네, 이거. 아마 루나 레이 정도는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옷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감상을 말하는 우이. 마력을 이해한지 얼마 안되었지만, 그녀는 이미 마법에 대해 거의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본인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신키에게서 받은 것은 그 육체 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응. 거기에, 지금의 너라면 좀 더 응용도 가능할거야."

"...과연. 외부의 마력에 대해선 어느정도 저항력이 있지만, 내부에서 흘려보내는 마력은 받아들이는 성질이구나. 재밌는걸. 말하자면 강화 가능 아이템이라는건가."

"어디까지나 평범한 인간을 위한 집사복이라, 내구도 자체는 기대할만큼은 아니겠지만 말야."

"그래도 확실히 도움은 되겠는걸. 아까까지 입던 넝마에 비하면 말야."

 

이런저런 공격으로 옷으로써의 기능을 완전히 잃어버린 양복을 바라보며 쓰게 웃는 우이.

 

"...네 말에 따르면, 아마 레미와 플랑은 폭주하고 있을거야."

"음. 그래서 일단은 플랑도르부터 진정시키려고."

"플랑부터?"

"걔는 지금 지하에 있는 자기 방에 사쿠야의 능력 떄문에 봉인되어 있잖아? 언제 사쿠야의 능력이 풀릴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레밀리아를 먼저 상대하고 있다가 갑자기 2:1이 되어버리면 그것만큼 위험한건 없을거니까."

"그렇게 치면 레미가 플랑과 싸우고 있는 너를 습격할 수도 있겠지."

"그거야 그렇긴 한데... 리스크로 따지자면 플랑을 먼저 공략하는게 좋겠다- 라는거지."

"......"

"뭐, 그런 이야기니까 마스터는 여기서 쉬고 있으라고. 후딱 다녀와서 여기 정리하는거 도와줄께."

"마스터?"

"여기서 일할 예정인데, 아무리 그래도 주인장을 막 부를 수는 없잖아? 그러니까 마스터. 그리고 마법에 대해 가르쳐주기도 했으니, 대충 제자 비슷한 포지션이라는걸로."

"...나보다 대놓고 유능해보이는 개체한테 마스터 소리를 들어도 말이지."

"그런 소리 말어. 기기 스펙이 좋다고 해서 무조건 유능하다고 할 수는 없잖아. 소프트웨어도 중요한 법이라구."

"소프트...뭐?"

"뭐, 그렇게 됐으니 나는 가볼께. 좀 있다 보자고, 마스터. 그리고, 선배!"

"서, 선배? 저요?"

 

우이의 인사에 깜짝 놀라는 소악마. 선배라니?

 

"여기서 나보다 오래 일했으니 선배 맞잖아?"

"그, 그거야 그렇긴한데..."

"그럼!"

 

척! 하고 손을 들어보이는 애니메이션에 영향을 존나 받은 오타쿠처럼 인사해보이곤, 우이는 돌풍처럼 도서관을 빠져나간다.

 

"서...선배래...우히히..."

"기뻐보이네, 소악마."

"우헷!? 아, 아니에요. 그런건~ 으헤헤~"

"......"

 

한심한듯 소악마를 쳐다보던 파츄리는, 문득 주변을 둘러본다. 여기저기 무너진 책장, 종이타는 냄새, 여기저기 흐트러진 책들과 먼지 등으로 말 그대로 엉망진창이 된 도서관. 정신이 아득해지는걸 느끼며,

 

"...일단 한숨 잘까."

 

그녀는 피곤에 찌든 목소리로 중얼거리곤, 침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적응 능력

 

마계신 신키가 자신의 자식들이 마계 이외의 환경에서도 적응할 수 있도록 고안된 일종의 신체 특성.

신체를 주위 환경에 적응 시킨다. '환경'이라 함은 단순히 자연 환경 뿐만 아니라, 특성이 부여된 대상의 생명을 위협하는 모든 요인을 일컫는다. 그리고 이 특성은 특성이 부여된 대상에게 영구히 적용된다.

대부분의 마계 생물엔 이러한 신체 특성이 적용되어 있지만, 마력 총량과 적응 능력의 한계치는 비례하기 때문에 보통은 자연 환경에 적응하는 정도로만 특성이 발달되며, 마력 총량이 높을 수록 적응할 수 있는 환경에 대한 범위가 점점 넓어진다.

 

 

 

월부 [엔드 오브 더 문라이트]

 

달의 마법의 기초 마법인 '루나 레이'를 150겹 겹치는 스펠카드. 우이의 첫 스펠카드이나, 스펠카드를 만들 때 방향 지정을 따로 하지 않아 그저 은백색의 커다란 구체가 생길 뿐인 스펠카드가 되었다. 다만, 위력만큼은 압도적. 스펠카드로써는 완벽한 실패작. 처음에는 다 그런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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